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520
“미안하지만, 필레나.”
레펜하르트는 주먹을 쥐었다.
“너를 살려 둘 생각은 없어. 그러기엔 넌 너무 위험해.”
전신이 격통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그는 애써 주먹을 들어 올렸다. 지칠 대로 지쳤지만, 어둠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지금의 필레나라면 이 한 방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굳이 레펜하르트가 손을 쓸 필요는 없었다.
사아아아-.
필레나의 온몸이 서서히 백화白化되기 시작했다. 전신이 새하얗게 표백되며 조금씩 흩뿌려진다. 사지말단에서부터 손가락, 발가락이 가루가 되어 흘러내린다.
“실패했어…….”
인간이라기보다는 풍화에 시달리는 석상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녀는 망연자실한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점점 더 그녀의 몸이 무너져 내린다.
레펜하르트는 미간을 찡그렸다.
‘저건…….’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거대한 어둠의 힘, 그것을 다루기 위해 필레나는 아카식의 권능으로 간신히 균형을 맞추며 그 막대한 힘을 다뤘다. 그나마 사령인, 데스 나이트나 렐시아를 다룰 때까진 그 균형이 얼추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짐 언브레이커블의 악령들은 그녀의 한계를 몇 배나 넘어서는 괴물들이었다. 그런 존재를 다루기 위해 필레나는 무리해 가며 아카식을 마력으로 치환했고, 그만큼 반동은 더욱 커졌다. 그녀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거대한 마력 부하負荷가 아카식 드라이브가 침묵하며 모조리 시전자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백화 현상이 팔다리를 넘어 전신으로 퍼져 간다. 신에게 저주 받아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옛 여인의 전설처럼, 그녀의 육체가 새하얀 재로 변해 간다.
“보고 싶어…….”
단말마처럼 필레나가 한마디를 흘렸다. 말라붙은 가루 사이로 한 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파사삭!
그녀의 전신이 붕괴했다. 인간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새하얀 재가 수북하게 쌓여 바닥에 퍼졌다. 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
아무 말도 못 한 채 레펜하르트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비록 그녀를 살려 둘 생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다.
“빌어먹을 세이어…….”
답답한 내심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레펜하르트는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단은 좀 쉬자…….”
☆ ☆ ☆
“아이고, 죽겠다…….”
“나도 죽을 맛이다. 진짜 죽다 살았네.”
온몸을 주무르며 타시드와 러스가 혀를 내둘렀다. 둘 다 지독히 지치고 상처 입어 서 있기조차 힘들다. 강력한 재생력과 체력을 지닌 아틸카조차도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도 잘 해결된 것 같아 다행이군.”
괴물의 시체를 보며 아틸카는 웃었다. 박살 난 괴물의 시체 사이에 피에 물든 키린트와 제이드의 머리통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너머론 꼼짝도 하지 않는 여러 기의 골렘도 보였다. (참고로 천사 병단은 이미 예전에 죄다 죽었다.)
“일단 몸부터 추스르세.”
아틸카가 무한의 주머니에서 유리병 몇 개를 꺼내 러스와 타시드에게 던졌다. 복용자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약학계의 베스트셀러, 힐링 포션이었다. 감사히 받아 든 뒤 두 사람이 포션을 마시고 또 상처에 부었다.
사용하자마자 상처가 눈에 띨 정도로 빠르게 아물어 갔다. 감탄하며 러스와 타시드가 아틸카를 바라보았다.
“이거 보통 힐링 포션이 아니네요?”
“그러게? 그동안 힐링 포션 많이 마셔 봤지만 이렇게 효과 좋은 건 처음인데?”
아틸카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렇겠지. 내 피로 만든 거거든.”
“…….”
러스와 타시드의 말문이 막혔다. 지금 목구멍으로 훌렁 넘긴 게 아틸카의 신체 일부였단 말이냐!
타시드가 울상을 지었다.
“우엑, 속이 거북해…….”
“닥치고 마저 처먹게. 편식은 몸에 나쁘다는 거 모르나?”
이걸 편식의 계열에 넣어야 할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타시드와 러스는 빠르게 부상을 다스렸다. 원래 힐링 포션의 치유력은 주재료인 트롤의 피의 효능에 따라 결정된다. 대륙 최강의 트롤인 아틸카의 피로 만들었으니 그 치유력도 장난이 아닌 것이다.
“자, 자, 이것도 마시고.”
아틸카가 또 다른 병을 꺼내 던졌다. 병을 받아 들고 러스가 물었다.
“이건 또 뭡니까?”
설마 아틸카의 살점이라도 갈아 넣은 건 아니겠지? 두 사람이 미심쩍은 눈으로 병을 보았다. 아틸카가 손을 내저었다.
“안심하게. 그건 짐 언브레이커블 특제 체력 회복수라네.”
안도하며 둘은 병뚜껑을 땄다. 짐 언브레이커블의 체력 회복수는 이미 130년에 걸쳐 그 효능이 보장된 바 있다. 원가가 너무 높아서 대중화만 안 되었을 뿐이지.
약수를 목으로 넘긴 뒤 러스가 치를 떨었다.
“맙소사, 이거 제작 단가가 병당 금화 팔백 닢이던가 하지 않았어?”
타시드도 헛웃음을 흘렸다.
“보석을 삼켜도 이거보단 싸겠군. 이거 만들면서 카를 재상 울었겠는데?”
두 사람이 다 마신 걸 확인한 뒤 아틸카가 빙그레 웃었다.
“다행히 병당 금화 사백 닢 정도로 해결이 되었다네. 거기서 제일 비싼 재료가 트롤의 심장인데, 그건 자체 조달이 되거든.”
“이보쇼!”
“마찬가지잖아!”
이젠 울상을 넘어 죽상이 된 두 사람이었다. 뭐, 그래 봤자 이미 약은 배 속에 들어가 버렸다. 과연 비싼 값 하는지 마치 신관의 치유술을 받은 것처럼 금방 기력이 돌아왔다.
아틸카도 회복수를 들이켰다. 힐링 포션이야 재생력이 있으니 굳이 먹을 필요 없지만 체력은 회복시켜야 하는 것이다. 자기 심장을 자신이 먹다니, 그야말로 트롤이 아니고선 겪기 힘든 경험일 것이다.
“시리스 양도 깨워서 약 먹이게. 작전대로 되었으니 다른 쪽과 연락을 취해야지.”
시리스는 여전히 혼절한 상태였다. 그녀의 입술을 보며 러스와 타시드가 찜찜한 표정을 교환했다.
“이거, 먹여야겠지?”
“그렇겠지?”
“재료는 비밀에 부치자.”
“응, 그러자.”
잠시 후 시리스가 깨어났다. 다른 사람들처럼 포션과 회복수를 마시며 그녀가 감탄했다.
“이거 정말 효과 좋네요?”
“……비싼 거거든요.”
“그렇지, 비싼 거지, 거짓말은 아니지…….”
애써 딴청을 피우는 러스와 타시드였다.
“……?”
의아해하는 시리스에게 아틸카가 손짓을 했다.
“폐하와 연락을 취해 주게, 시리스 양.”
아카식 드라이브가 휴면 상태에 돌입했으니 통신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시리스가 무한의 주머니에서 작은 수정판을 꺼냈다.
“아, 네.”
☆ ☆ ☆
아틸카의 피와 살(?)은 레펜하르트 일행 전원에게 주어졌다. 카를과 이니야, 마켈린도 덕분에 체력을 회복하고 상처를 추스르고 있었다. 다행히 이쪽은 원재료까진 잘 몰라서,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었다.
그 후 카를도 수정판을 꺼내 통신 마법을 걸었다. 그동안 부단히 노력한 덕에 이젠 그도 4서클의 어엿한 마법사가 되었다.
“무사하십니까, 폐하? 그리고 시리스 양?”
이내 표면이 셋으로 갈라지며 각자 영상을 비쳤다.
“그쪽은 별일 없나, 카를?”
“예, 보아하니 다들 무사한 것 같군요.”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지만 그래도 죽은 이는 없다. 그 사실을 기뻐하며 아틸카가 물었다.
“정말 아슬아슬했습니다. 어느 쪽이 성공한 겁니까? 폐하? 아니면 왕비 전하?”
이니야가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당하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레펜하르트 님이 성공하셔서 다행이네요.”
수정판을 들여다보면 실란이 눈을 깜빡였다.
“에? 이쪽도 아닌데요? 왕비 전하께서 처리한 거 아니었어요?”
다들 서로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세 팀 모두 백업 시스템 근처에도 못 갔다고?
“작전 자체를 모르실 테니 제라드 님일 리도 없는데?”
실란의 혼잣말에 레펜하르트와 카를이 눈빛을 교환했다.
“폐하.”
“음, 역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주고받는다.
“그 친구들이 성공한 것 같군요. 거 보십시오. 제 말이 맞는다니까요?”
“앞으론 자네가 뭔 작전을 꺼내건 절대 토를 달지 않겠네.”
모든 이들의 둘의 표정에 의아해할 때였다. 갑자기 수정판에 또 하나의 마법 통신이 들어왔다. 수정판이 넷으로 갈라지며 한 무리의 일행의 모습이 비친다.
“에, 이렇게 하는 거 맞나? 들립니까, 폐하?”
“아, 보인다. 다들. 신기하네, 이거.”
그것은 날렵한 인상의 잘생긴 엘프 사내와 풍만한 가슴을 지닌 건장한 오크 여인의 모습이었다. 이니야와 아스레일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세르펠?”
“스탈라 씨?”
그뿐이 아니다. 그들 뒤로 낯익은 이들이 더 있었다. 시리스와 마켈린도 역시 입을 쩍 벌린다.
“샤일렌 언니?”
“말로이드? 슬로이틀?”
안타레스에 남아 있던 오크, 엘프, 드워프의 강자들, 그들이 죄다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화면에 서로 얼굴을 들이밀려고 아주 난리다.
“좀 옆으로 가소, 하다툼 공. 안 보이잖아.”
“그럼 내가 안 보이잖소, 유스테아?”
그들을 무시하며 세르펠이 정중한 어조로 보고를 올렸다.
“작전 성공입니다, 폐하!”
☆ ☆ ☆
오크 대모 스탈라와 투사 하다툼.
드워프 오러 유저인 슬로이틀과 말로이드, 유스테아.
엘프 정령사인 세르펠과 샤일렌.
이들은 모두 안타레스에 남은 이종족 강자들이었다.
세이어를 상대하기 위해선 손발이 맞고 각자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전력이 필요하다. 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이들은 최종전에 참가하지 못했고, 그래서 안타레스에 남아 제국의 공격에 대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렇다.
적어도 대외적으론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어떻게 저들이 여기 있죠?”
이니야의 질문에 카를이 빙그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