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526
“필라넨스시여! 당신의 종에게 무한한 은총을 내리소서!”
조금씩 느려지던 두 사람의 움직임에 다시 활기가 돌았다. 전신의 힘과 스피드도 더욱 올라간다. 오러 유저나 주술사와 달리 정령사인 시리스와 마검사인 카를은 가호 퍼 주는 보람이 있는 것이다. 다른 이들도 체력 회복 정도는 충분히 되니 재차 맹렬히 공세를 가한다.
“쯧, 귀찮은 것들이로다.”
보다 못한 세이어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몇 줄기 섬광이 따로 날아가 마켈린과 실란을 덮쳤다. 그러나 딱히 그들을 도우러 달려가는 이는 없었다.
대신 두 사람이 성표를 높게 쳐들었다.
“알 포트여, 지켜주소서!”
“필라넨스여! 가호의 빛을!”
반투명한 막이 그들을 감싸 세이어의 공격을 튕겨 냈다.
“그렇군, 이 정도는 알아서 막는단 말이지?”
원래 방어만이라면 성직자가 오히려 마법사나 오러 유저보다도 더 뛰어난 것이다. 성표를 든 채 실란이 쾌재를 외쳤다.
“당연하지! 원래 차도살인이랑 자기 보신은 성직자 따라갈 직종이 없거든?”
“……우리가 그렇게 흉악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던가?”
마켈린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저리 표현하니 그것 참 뉘앙스가…….
“저것들부터 처리해야겠군.”
부동자세로 움직이지 않던 세이어가 앞으로 나섰다. 날파리들을 무시하고 바로 마켈린과 실란에게 날아간다. 손가락을 내밀며 마력을 모아 일격에 뻗어 낸다.
“쓰러져라!”
그때였다.
“너나 쓰러져라!”
어느새 레펜하르트가 그의 머리 위에 와 있었던 것이다. 아주 잠시, 세이어가 성직자들을 신경 쓰느라 집중력을 잃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일격을 가한다!
“타아아앗!”
그런데 오히려 세이어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걸렸구나.”
휙 고개를 돌리며 세이어가 손을 뻗었다. 뻗어 내던 마력이 순식간에 회수되어 레펜하르트에게 쏟아진다. 전환이 빨라도 너무 빨라,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윽! 함정이었나?”
당황하며 레펜하르트는 두 팔을 모아 스파이럴 가드를 펼쳤다. 그러나 세이어의 마법은 공격용이 아니었다. 마력의 섬광이 채찍처럼 흐느적거리더니 이내 레펜하르트의 전신을 감싸 묶었다. 얼마나 부여된 마력이 방대한지 스파이럴 가드와 충돌하면서도 끊어지지 않을 정도다.
“윽! 크윽!”
버둥거리는 레펜하르트를 보며 세이어가 빙그레 웃었다. 그의 오른손에 폭염이 이글거렸다.
“드디어 붙잡았구나.”
지략은 레펜하르트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이어가 비록 임기응변이 약하다지만, 그래도 일만 이천 년을 살아온 강대한 고대의 마법사다. 이런 함정조차 못 팔 거라 여겼다면 너무 무시한 처사다.
“쓰러져라, 인간의 마법사여.”
막 세이어가 폭염 마법을 날리려던 차였다. 갑자기 좌측에서 러스의 음성이 들렸다.
“허공검, 인피니티!”
“……!”
화들짝 놀라 세이어는 레펜하르트를 버린 채 바로 10여 미터 뒤로 이동했다. 다른 건 몰라도 러스의 허공검은 세이어에게도 치명적이니 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몸을 뺀 뒤 세이어가 표정을 기묘하게 일그러트렸다.
“음?”
아무 일 없었다. 보이는 것은 그저 저만치, 허공검 특유의 발도세를 취한 러스뿐이었다.
“허세였나?”
멋쩍어하며 러스가 대꾸했다.
“미안하군, 허공검이란 게 그렇게 펑펑 날릴 만큼 만만한 기술이 아닌지라…….”
그 틈에 레펜하르트가 함정에서 빠져나왔다. 목을 매만지며 그가 혀를 내둘렀다.
“휴우, 러스에게 미리 일러두길 잘했네.”
레펜하르트는 세이어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 세이어를 무시한다는 건 생쥐가 코끼리를 보며 ‘코끼리 따위 덩치만 크고 느려 터졌으니 하나도 겁낼 거 없어!’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온갖 계략과 전술로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어찌 감히 무시할 수 있을까?
당연히, 동료가 위급할 시 저런 식으로 사기를 치라고 미리 일러두고 연습까지 시킨 것이다.
“잘했다, 러스!”
칭찬하며 레펜하르트는 다시 몸을 뺐다. 그리고 재차 소리 질렀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B안으로 가자!”
“예, 형님!”
또다시 일행이 세이어에게 덤벼들었다. 무수한 오러와 주술, 정령력과 마법이 오가고 폭발이 일어나며 전당이 요동을 친다. 세이어가 진지한 얼굴로 눈을 빛냈다.
“그럼 일단 하나씩 처리해 볼까…….”
굳이 일행을 한꺼번에 날리는 것이 아니라, 방어에 신경 쓰면서 각개격파를 노린다. 신을 자처하는 자가 할 법한 전략은 아니지만, 이미 세이어는 충분히 이들을 인정하고 있었다.
“아케인 그립!”
결국 마법의 족쇄에 제일 느린 시리스가 붙잡혔다. 확실히 처리하기 위해 세이어가 마력을 집중시켰다.
“우선 하나.”
그때였다.
“허공검, 인피니티!”
러스가 또 발도 자세를 취하며 소리 지른다. 인상을 쓰며 세이어가 시리스를 놓고 또 뒤로 물러났다. 물론 이번에도 실제 허공검은 날아오지도 않았다.
“또 허세냐…….”
이번엔 세이어가 카를을 노렸다. 몰린 카를에게 최후의 일격을 꽂아 넣으려는 순간…….
“허공검, 인피니티!”
“또?”
다음은 아틸카가 과녁이었다. 차분히 사방의 날파리를 견제하며 아틸카의 사지를 얽매는 순간…….
“허공검, 인피니티!”
“야이, 씨…….”
결국 위대한 인류의 신으로부터 사춘기 소년 같은 욕설마저 흘러나오고 말았다. 분명 허세임을 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몸을 빼지 않을 수가 없다. 세이어가 치를 떨었다.
‘뭐야? 저게 오히려 레펜하르트, 저자보다 더 위험하지 않나?’
상황을 지켜보며 레펜하르트가 쾌재를 흘렸다.
“그럼, 저건 피해야지? 큭큭, 네놈이라고 별 수 있겠어?”
전생의 레펜하르트도 저 허세 허공검, 줄여서 허세검에 상당히 고생했다. 허세란 걸 뻔히 알아도 당하는 입장에선 몸을 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 진짜면 어쩌라고? 무릇 자기 목숨이란 건 함부로 도박에 거는 법이 아니다.
‘다행히 당시의 사이러스는 존경받는 검성답게 자존심이 드높아 어쩌다 저런 식의 허세를 부릴 뿐이어서 용케 버텼었지.’
반면, 이미 배신의 기사란 칭호마저 붙은 지금의 러스가 지킬 자존심이 뭐가 있겠나? 아주 작정하고 허세검을 날린다.
“허공검, 인피니티!”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허무하게 공간을 울렸다.
“나 원 참…….”
혀를 차며 세이어는 또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인상을 썼다.
“그럼 네놈부터 처리해 주마.”
원래 이니야와 러스는 워낙 동작이 빨라 세이어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 있었다. 하지만 이리된 이상 러스부터 처리하는 게 최우선이다.
세이어가 러스를 향해 날아들며 마력을 집중시켰다. 일단 일대일 상황이 되면 러스가 아무리 날고뛰어도 당연히 세이어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땐 레펜하르트가 세이어를 노린다.
“허점!”
딱히 캘러미티 혼을 준비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레펜하르트가 덤벼 온다는 사실 자체가 충분히 경계 대상이다. 결국 세이어는 표적을 레펜하르트로 바꿨다. 그 틈에 러스가 무사히 사정권 밖으로 빠져나갔다. 한차례 격돌 후, 스파이럴 가드를 두른 채 레펜하르트도 다시 거리를 벌렸다. 주위를 둘러보며 세이어가 물었다.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나설 생각이었나?”
레펜하르트가 대꾸했다.
“예전엔 러스가 완성되지 않아 전법을 전부 써먹을 수가 없었거든.”
원래부터 알렉스 일행의 전법은 테스론의 캘러미티 혼과 사이러스의 허공검, 두 필살의 일격을 번갈아 투입하며 서로를 보완해 전황을 이끄는 방식이었다. 위협적인 공격이 하나뿐이었다면 레펜하르트 상대로 알렉스 일행이 그토록 오래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군, 역시 준비 없이 움직이지 않는 자인가…….”
☆ ☆ ☆
전투가 이어진다. 공세를 가하고, 타이밍 맞춰 물러서며 계속 세이어를 압박한다. 세이어도 그때마다 강력한 마법으로 반격했지만, 다들 용케 몸을 빼내고 있었다. 위험한 순간마다 터지는 러스의 허세검(?) 덕분이었다.
“허공검, 인피니티!”
어찌 보면 진짜 허공검보다도 저게 더 위력적이다. 진짜 허공검은 막대한 오러를 소모하니 몇 번 쓰지도 못하는 반면, 허세검은 그냥 악만 쓰면 된다. 체력 소모가 전혀 없으니 무한대로 구사할 수 있고, 그때마다 세이어는 무조건 피할 수밖에 없다. 막말로 지금 러스는 옆에서 칼 쥔 채 소리만 질러도 충분히 제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
‘대단하네, 러스 경.’
검을 겨눈 채 이니야는 러스를 힐끔거렸다. 보아하니 타시드도 그녀와 비슷한 눈으로 친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슷한 경지에 비슷한 깨달음을 얻은 세 사람, 그러나 러스와 달리 이니야나 타시드는 세이어에게 위협을 가할 수 없었다. 능력보다는 상성의 문제였다.
이니야의 깨달음, 서리 여왕의 지배는 마법사 상대론 궁합이 좋지 않다. 오러는 상대의 위력을 막지만 마력장은 상대의 기운을 막는다. 오러와 달리 마법사의 방어장은 냉기의 침투를 완벽히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선 이니야의 궁극기라도, 끽해야 마력장 위에 서리 끼게 하는 게 전부다.
타시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간 동결의 검은 러스의 허공검조차도 막아 내지만 역시 공격보단 방어에 치중된 능력이라 세이어의 마력장을 부수기엔 부족했다.
오직 러스만이, 그의 허공검만이 세이어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분명 이니야가 더 강한데도 지금 이 순간은 러스가 공격의 핵심인 것이다.
‘아니, 진짜 놀라운 건 레펜하르트 님이지.’
러스의 허세검은 물론 대단하지만 이니야나 타시드 정도 오러 유저에겐 통하지 않는다. 오러의 기세로 저게 허공검인지 허세검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으니까. 상대가 마법사이기에 통용되는 작전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작전을 세워,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이 레펜하르트다. 애초에 이 전법의 본질은 마법사의 약점을 공략하는 방식이다. 상대의 방심과 무지를 노리는 기책만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아, 역시 대단한 분이야!’
새삼 흠모의 정이 깊어져 이니야는 얼굴을 붉혔다. 사실 이건 죄다 알렉스 아이디어 표절이니 전혀 칭찬할 게 없겠지만, 원래 콩깍지는 세상만사를 전부 합리화시키는 법이다.
어쨌거나, 톱니바퀴처럼 연계해 가며 레펜하르트 일행은 계속 세이어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미 이 전법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세이어는 딱히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밀리던 세이어가 문득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철저히 마법사를 노리고 만든 전술이구나.”
결국 이리되면 남는 것은 어느 쪽이 먼저 지치느냐의 인내심 대결, 그리고 아카식 드라이브가 침묵했으니 세이어의 힘도 더 이상 무한이 아니다.
“그래, 지금의 그대는 신성을 잃은 고대의 마법사일 뿐이지.”
이미 세이어는 정신력도 집중력도 상당히 떨어졌다. 절호의 기회다.
“깔끔하게 그 모가지를 뽑아 주마!”
전신에 황금의 광휘를 건 채 레펜하르트가 땅을 박차며 돌진했다.
“권마합신!”
전신 마력을 증폭시켜 오러와 합일한다. 그 넘쳐흐르는 힘을 모두 주먹에 담는다. 그리고 상대의 방어장에 내리꽂는다!
“타아아앗!”
콰콰쾅!
단 일격에 세이어의 방어장이 절반 이상 박살 나 버렸다. 레펜하르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다. 강대한 마력은 그대로되, 그 마력을 운용하는 정신은 평소만 못하다.
“끝이다, 세이어!”
최후의 일격을 위해 레펜하르트가 허리춤으로 주먹을 가져갔다. 오러 고리가 떠올라 주먹 위로 중첩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세이어가 고개를 저었다.
“인간의 마법사여, 그 말은 틀리구나.”
순간 레펜하르트는 의아해했다. 틀리다고? 설마 신성을 잃지 않았다는 소린가?
인류의 신이 웃었다.
“마법사일 뿐이라는 것.”
갑자기 거대한 암흑이 일어나 레펜하르트의 눈앞을 덮쳤다. 그 어떤 마력 흐름도 시동 언령도 없었다. 그야말로 아무런 전조 없이 일어나 막대한 충격으로 전신을 강타한다!
콰아아앙!
레펜하르트의 거구가 순간 뒤로 날아갔다. 폭음과 함께 광풍이 전당 가득 불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커어어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