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538
“오랜만에 뵙습니다, 형수님.”
그녀야말로 러스로 하여금 검제라는 새로운 칭호를 얻게 한 이.
안타레스 제국 황후, 검성 이니야 엘 에네밀러스였다.
“아유, 나 좀 봐. 손님 왔는데 아무 준비도 못 했네.”
이니야가 호들갑을 떨며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제가 며칠 일찍 왔으니까요. 신경 쓰지 마세요.”
대꾸하며 러스는 이니야가 널어놓은 빨래들을 힐끔거렸다. 아무래도 딱히 시중인 따윈 두지 않고 스스로 모든 살림을 하는 것 같았다. 거대한 제국의 황후, 위대한 검성의 지위,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은 소박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 깊은 산속까지 물자 날라서 2층 집을 세 채나 지은 시점에서 이미 소박함과는 거리가 먼 것 같지만, 하여튼 겉보기엔 그렇다는 소리다.
“자, 일단 앉아요. 아직 집 안은 청소가 덜 되어서…….”
얼굴을 붉히며 이니야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순식간에 얼음으로 된 근사한 티 테이블과 의자가 생겨났다. 오러 물질화의 권능이다. 새삼 감탄하며 러스가 얼음 의자에 앉았다.
‘실력은 여전하시네.’
그리고 한 번 더 감탄했다.
‘아니, 더 느셨군.’
얼음이 차갑지 않다. 얼음이라기보단 아름다운 수정으로 조각한 의자에 가까운 느낌이다. 단지 얼음을 생성하는 것을 넘어서 열 전환조차도 차단한 것이다.
‘으, 갈 길이 멀구먼.’
호승심을 느끼며 러스는 혀를 찼다. 역시 검성 자리 빼앗으려면 좀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뭐, 검제란 칭호도 싫은 건 아니지만 사내라면 응당 최고를 노리고 싶어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는 동안 안에 들어간 이니야가 간단한 다과와 차를 내왔다. 청소 안 된 집 안을 보일 바에야 그냥 마당에서 손님맞이를 할 셈인가 보다.
그런 이니야 뒤로 대여섯 살 정도의 귀여운 여자아이가 졸졸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보랏빛 머리에 검은 눈동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같이 귀엽게 생긴 아이였다. 귓바퀴가 뾰족한 것이 아이가 인간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엘프처럼 길지도, 드워프처럼 짧지도 않은 귀였다. 대충 중간 정도 느낌이랄까?
아이가 러스를 보더니 반색하며 달려왔다.
“러스 삼촌!”
러스도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렸다.
“이리 온, 위니스!”
도도도 달려온 아이가 발을 굴렸다. 단숨에 러스의 가슴팍까지 뛰어올라 폴싹 안긴다. 분명 귀엽고 훈훈한 광경이긴 했는데, 지금 저 아이는 자기 신장의 배가 넘는 높이를 쉽게도 뛰어올랐다.
‘……다섯 살짜리 애가 뭔 점프력이…….’
아이를 안은 러스가 이니야를 돌아보며 혀를 내둘렀다.
“역시 형님의 아이군요.”
“애가 자기 아빠를 많이 닮았죠.”
마냥 좋은 듯 이니야가 생글생글 웃었다. 러스는 속으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애가 2.3미터에 알찬 근육질인 아빠를 닮는다는 게 과연 좋은 건가?’
뭐, 지금 보니 이니야 눈에 콩깍지가 씌워져서 그렇지 실제론 엄마를 쏙 빼닮은 아이라 별문제는 없어 보인다. 엄마를 닮았어도 솔직히 서전트 점프 2미터는 우스울 테니까.
안타레스 제국 제1공주, 위니스 엘 에네밀러스 안타레스.
이 귀여운 꼬마 숙녀가 태어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당시 러스도 정말 자기 일처럼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단지 불만이라면 위니스란 이름이 너무 흔한, 제국의 공주에게 붙이기엔 좀 격이 맞지 않는 이름이라는 것인데…….
‘그 이름은 그이와 저의 소중한 인연에서 나온 것, 이 아이에게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에요.’
러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어쨌건 이유는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건장한 체구의 기사가 마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군요, 러스 경.”
이 깊은 산속에서도 기사답게 갑옷을 착용하고 있는 그를 보며 러스도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아스레일 경.”
제국 수호 기사 아스레일 폰 케이토.
비록 바포메트 슈트는 잃었지만 여전히 그는 안타레스 최강의 인간 오러 유저였다. 제라드와 레펜하르트는 인간의 범주로 안 치고, 러스는 테네스 가문으로 돌아갔으며, 나머지 오러 유저는 죄다 이종족이었으니 저 최강이란 단어가 과연 의미가 있냐 싶긴 하지만, 어쨌건 공식적으론 틀림없는 사실이다.
안타레스 제국은 그에게 황제를 수호하는 수호 기사라는 지위를 하사했다. 참으로 명예로운 지위였고, 동시에 순 명예뿐인 지위였다.
솔직히 아스레일더러 누굴 지키라고?
황제는 권왕이고 황후는 검성이다. 뭔 일 터지면 아스레일이 살려 달라고 저 부부에게 달려가야 할 판이다.
그런데 공주, 위니스가 태어났다. 아스레일 입장에선 드디어 진실로 지킬 수 있는 상대를 만난 것이다. 황궁 시절 내내 그는 위니스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지금도 이니야와 위니스를 따라 이 깊은 산속에 와 있었다.
“아스레일 경!”
위니스가 러스 품에서 내려와 졸래졸래 아스레일에게 가 안겼다. 흐뭇한 얼굴로 공주를 안으며 아스레일은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나의 공주님. 당신만은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킬 겁니다.”
왜냐면 저 양반들은 아스레일의 목숨 따위 별로 필요 없기 때문이지.
“……?”
어린아이에겐 이해하기 힘든 푸념이리라. 그 모습에 러스는 실소했다. 그러다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형님께선?”
때마침 건물 뒤쪽 공터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악!”
아직 앳된 소년의 비명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처절한지, 돼지 멱을 따도 저리 심금을 울리진 않을 것 같다.
“으갸갸갸갸갹!”
하지만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심지어 어린 위니스조차도 그 비명에 신경 쓰지 않았다. 다들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곳인가요?”
“저건 제라드 님이고요.”
고개를 저으며 이니야가 대답했다.
“그이는 도망간 제자 잡으러 갔어요.”
☆ ☆ ☆
깊은 산속, 울창한 수풀 사이로 한 소년이 달린다. 대략 열서너 살 정도 되었을까? 아직 얼굴에 앳된 기색이 역력한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몸은 전혀 달랐다.
어지간한 성인 남자와 맞먹는 큰 키에 전신이 두꺼운 근육질, 양손엔 굳은살이 가득하고 팔이며 다리 근육, 복근은 이게 사람 몸인지 돌인지 구별이 안 갈 지경이다. 8등신의 완벽하게 균형 잡힌 몸, 그야말로 무武를 추구하는 이들의 이상적인 육체라 하겠다.
“헉헉헉!”
소년은 도망치고 있었다. 표정엔 다급함이 가득하고 전신은 땀범벅이다. 단련된 육체가 바위를 거침없이 뛰어넘고 수풀을 수수깡처럼 가른다.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그제야 소년이 잠시 뜀박질을 멈췄다. 정신없이 뒤를 돌아보더니 얼굴 가득 환희의 빛을 띤다.
“됐어! 성공했어!”
자유다! 드디어 벗어났다!
그때였다.
“제자야, 어디 가니?”
어느새 길 앞에서 거구의 30대 사내가 바위에 앉아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컥! 사, 사부!”
소년은 공포에 질렸다. 저 거구의 사내야말로 소년의 사부, 안타레스 제국 황제이자 당대 짐 언브레이커블의 계승자이며 세계 제2의 무투가, 권왕 레펜하르트 왈드 안타레스였다.
“한 두어 달 도망 안 가더니 결국 또 시도했느냐? 쯧쯧.”
뱀 앞의 개구리 신세가 된 근육질 소년을 보며 레펜하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제자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 역시 제라드 밑에서 수행하며 얼마나 도망치고 싶어 했던가?
하지만 결국 경지에 오르면 이 소년도 레펜하르트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다. 레펜하르트 자신도 그랬으니까.
‘그때까진 억지로라도 제자를 상승의 경지로 이끄는 것이 사부의 책임인 법!’
제라드는 그에게 그저 강철의 육체만 준 것이 아니다. 인류의 신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를 관철하는, 강철의 의지 역시 주었다.
아, 이 얼마나 크나큰 사부의 은혜란 말인가!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
“돌아가자꾸나.”
레펜하르트가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주저하던 소년이 뭔가 결심했는지 진지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후우, 이보시오. 그대에게 할 말이 있소.”
“해 보아라.”
“난 사실 이 시대의 사람이 아니오. 난 사실 머나먼 미래에서…… 꽥!”
슬프게도 소년의 말은 채 이어지지도 못했다. 어느새 소년 뒤로 돌아간 레펜하르트가 목덜미를 움켜쥐고 새끼 고양이처럼 들어 올린 탓이다.
“그건 왕년에 내가 써먹었다. 딴거 떠올려라.”
소년이 절망의 표정을 지었다. 문득 레펜하르트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런데 난 진짜였잖아?’
유심히 자신의 제자를 바라본다. 당연히 도망가려고 한 소리란 건 알지만 스스로의 사례도 있으니…….
‘……아니겠지?’
그러나 레펜하르트는 이내 신경을 껐다.
‘알맹이가 뭔 상관이냐? 몸뚱이만 튼튼하면 됐지.’
제자를 든 채 레펜하르트는 몸을 날렸다. 근육질 거구가 깃털처럼 가볍게 산길을 주파한다. 소년이 허공에 매달려 연신 발을 동동거렸다. 성인만 한 체구의 소년이었지만 2.3미터의 거구인 그에 비하면 어린애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렇다.
결국 레펜하르트의 신장은 2.3미터에 도달했다.
영혼은 육체에 영향을 주고 육체는 영혼에 영향을 주는 법이라 지금 레펜하르트는 완전히 검은 머리에 흑요석 같은 눈동자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도 이 키만큼은 죽어도 영혼의 영향을 안 받는다! 지고의 마왕, 그 거대한 영혼을 깔끔히 무시하고 제 혼자 무럭무럭 자라서 결국 원래 덩치가 되어 버렸다!
‘역시 이 육체가 괜히 사부에게 선택된 게 아니란 말이지.’
레펜하르트가 공터로 돌아왔다. 그리고 제자를 바닥에 휙 던지며 말했다.
“사부, 잡아 왔어요.”
공터엔 레펜하르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근육질 노인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을 본 소년이 처절하게 소리쳤다.
“태사부님! 살려 주세요!”
물론 노인은 소년의 소원 따위 들어줄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세계 최강의 무투가, 레펜하르트의 사부인 권황 제라드인 것이다. 오히려 어서 손짓을 하며 서두르기까지 한다.
“늦었구나. 어서 옆에 묶어라.”
소년 입에 재갈이 물렸다. 재 반항할 틈도 없이 착착 나무 말뚝에 묶인다. 이미 옆 나무 말뚝에는 비슷한 또래의 다른 소년 하나가 묶여 있었다. 도망쳤던 소년 못지않게 우람한 덩치였다.
묶여 있던 소년이 그를 보며 슬픈 눈빛을 보냈다.
‘사제! 결국 붙잡혔구나!’
‘사형! 사형도 도망 못 쳤군요.’
눈빛을 교환하며 소년들은 절망에 빠졌다. 레펜하르트가 팔을 걷어붙이며 대나무 몽둥이를 들었다.
“자, 그럼 수련을 마저 하자꾸나.”
질 좋은 할라인산 죽봉이 사정없이 두 소년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소리 없는 비명이 메아리쳤다.
‘으아아악!
‘사람 살려!’
안타레스 제국을 건국하고 2년 뒤, 레펜하르트는 마침내 짐 언브레이커블에 합당한 ‘짐승 같은 놈’을 찾아냈다. 그리고 1년 뒤 ‘더 짐승 같은 놈’도 발견했다.
역대 권왕들이 몇십 년이나 걸렸던 일을 고작 3년 만에 해낸 이유가 있었다. 그는 무식하게 발품 팔아 가며 후계자를 찾아다니지 않았다.
“어느 세월에 두 놈이나 찾으라고? 차라리 그 시간에 후계자 찾는 마법을 개발하고 말겠다!”
2년에 걸친 연구 끝에 세계수를 토대로 한 대륙 전역 서치 아티팩트, ‘레펜하르트의 눈’이 완성되었다. 거기에 짐 언브레이커블의 자격 수치를 넣고 돌려서 3년 만에 둘이나 되는 후계자를 찾아낸 것이다.
‘솔직히 이 방식이면 최소 두 자리는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자격 조건에 맞는 애들이 없단 말이지.’
짐 언브레이커블의 자질은 단순히 재능만이 아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재능이 개화하며 타이밍이 맞아 줘야 한다. 나이는 10대 초반, 그보다 어리면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파악이 힘들고 그보다 나이가 많으면 자질이 있다 해도 시기가 늦다.
괜히 역대 권왕들이 후계자 찾느라 그 난리를 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대로 한 명씩이라도 찾은 쪽이 기적에 가까운 것이다.
하여튼, 레펜하르트는 훌륭히 제라드의 명을 지켰다. 이제 이 두 제자를 당대의 권왕으로 키우기만 하면 평생의 숙원도 벗게 된다.
“무인이라면 응당 자신의 약한 부분을 단련해 극복해야 하는 법!”
잔혹하게 매질하며 레펜하르트는 우렁차게 외쳤다. 그 속엔 짐 언브레이커블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부서지지 않는, 완벽한 불굴의 육체를 만들어라!”
한때는 ‘이 미친 무문, 인류의 미래를 위해 대를 끊어야 하는 게 아닐까?’라며 고민한 적도 있는 레펜하르트다. 하지만 지금 하는 짓을 보면 대를 끊긴커녕 널리 세상에 알려 인간을 해롭게 할 작정인 것 같았다.
괜히 유유상종, 근묵자흑이란 고사성어가 있는 게 아니다. 전생의 마왕은 이제 훌륭한 짐 언브레이커블의 후계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완벽한 육체에 완벽한 정신이 깃든다!”
애들을 두들기며 레펜하르트는 느긋하게 짐 언브레이커블의 가르침, 한때 그가 제라드로부터 들었던 말을 반복했다. 여기에 살짝 어레인지가 붙었는데, 육체 말고 정신 역시 강조하는 부분이 그것이었다.
레펜하르트는 단순히 짐 언브레이커블의 무술만을 소년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다. 원래 짐 언브레이커블은 마법과 오러의 합일에서 출발했으니, 그 전통을 되살릴 생각이었다.
낮에는 죽도록 무술을 수행하고 밤에는 마법을 연마한다. 엘류시온의 목소리를 수면 학습용으로 개조해 꿈속에서도 마법 수행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예전 권왕들은 밤에 잠이라도 푹 잤지, 레펜하르트의 제자들은 밤새도록 꿈속에서 마법 수행을 병행하며 나날이 피폐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쇠와 같다. 쇠도 인간의 육체도 정신도,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점점 더 강해지고 단단해지기 마련이다.”
레펜하르트는 제자들이 망가질까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세심하게 모든 점을 고려해 선별한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이라면 그 어떠한 가혹한 수행도 이겨 내고 훌륭한 차기 권왕이 될 수 있었다.
“너희는 내가 고른 제자들이다! 야수의 육체와 현자의 두뇌를 지닌, 진정한 초인이 될 수 있다!”
레펜하르트가 호탕하게 소리쳤다. 묶인 소년들이 재갈을 통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 댄다.
‘아, 그러니까 그런 거 되기 싫다고!’
‘누가 그런 거 만들어 달랬냐고!’
물론 소년들의 발악은 가볍게 씹혔다. 옆에서 흐뭇한 눈으로 레펜하르트와 제자들을 보던 제라드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얘들 둘이 같이 하산하면 칭호가 어찌 되나?”
이제까지야 짐 언브레이커블에 권황과 권왕, 둘 이상의 명칭이 필요 없었다. 워낙 수가 적었으니까.
“일권왕? 이권왕?”
“무슨 비밀요원 1, 2호도 아니고 그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럼 소권왕, 대권왕?”
“무슨 식당 가서 요리 소 자, 대 자 시키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내 호칭도 요상해지는구나. 레펜하르트 네 녀석이야 권황으로 불리겠지만 난 그럼 뭐가 되나?”
왕보다 높은 게 황제다. 그럼 황제보다 높은 건?
“무신, 권신, 뭐 많지 않겠어요? 원하시는 거 있음 말씀해 주세요. 카를 시켜서 몰래 퍼뜨리게.”
“됐다. 사람들이 알아서 부르겠지. 생각해 보면 알 게 뭐냐?”
하긴 그렇다. 알 게 뭐냐?
제라드와 떠드는 와중에도 레펜하르트의 손은 놀고 있지 않았다. 얼마나 두들겨 팼는지, 악에 받친 아이들이 턱 힘만으로 두꺼운 재갈을 물어뜯고 고함을 지를 정도였다.
“이 악마들아! 차라리 죽여라!”
“사, 사람 살려어어어어!”
레펜하르트는 기뻐했다. 벌써 이빨로 재갈을 끊을 정도라니, 보통 자질이 아니었다. 기꺼이 이 ‘사랑스러운’ 제자들을 위해 더더욱 수행에 박차를 가한다.
평생 꿈꾸던 소원도 이루었다. 이제 세상은 더 이상 그가 사랑하는 이들을 노예로 여기지 않는다.
평생의 적도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을 어지럽히는 인류의 신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평생의 행복도 얻었다.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 수많은 소중한 동료들이 곁에 있었다.
이제 남은 숙원은 하나뿐.
레펜하르트의 손 속이 더욱 매서워졌다. 뉘엿뉘엿 저무는 초여름의 햇살 아래, 짐 언브레이커블의 오랜 가르침이 산속 가득 메아리쳤다.
“믿어라! 인간에게 한계는 없다! 너희들의 육체는 강철이 될 수 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