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7
“타아앗!”
그래도 명색이 칼 밥 먹고 산 용병이다 보니 레펜하르트의 빈틈을 발견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방어란 개념이 없는 봉술이니 당연했다. 덤벼든 용병 한 명이 레펜하르트의 옆구리를 강하게 찔렀다. 하지만…….
퉁!
강철 검이 튕겨져 휭휭 날아가 저만치 나무에 쿡 박히는 걸 보며 레펜하르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 이게 사람 몸뚱이냐? 정말 내 몸이지만 너무하네.’
애초에 현재 그의 육체는 그 자체로 방패. 무기를 들 정도로 약한 상대라면 방어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레펜하르트 본인도 기가 막힐 지경인데 당하는 입장에선 오죽할까? 옆구리로 칼 튕기는 진기 명기를 보며 용병들은 전의를 상실해 버렸다. 그리고 레펜하르트는 그들에게 자신이 2년간 몸소 겪어 온 경험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었다. 처절한 비명이 산속 가득 메아리쳤다.
“으악, 으악, 으아악!”
쉴 새 없이 손을 놀리며 레펜하르트가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왠지 제라드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걱정 마라, 죽지는 않는다.”
이 봉술의 대단한 점은 절대 상대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퍼퍼퍼퍽!
“죽지는 않을 거다. 죽지는.”
근육을 찢고 힘줄을 끊고 관절이 부러지고 뼈가 박살 나도…….
“절대 죽지는 않지.”
“으아아아악!”
생각해 보면 이만한 고문법도 없지 싶었다. 나중에 기회 되면 고문법으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동료들 전원이 순식간에 잘 다진 주물럭이 되어 버리자 그제야 브라이트도 눈앞의 이 청년이 보통 놈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으으, 네놈 이름을 밝혀라!”
“밝혀라?”
말투를 듣자 하니 아직 정신 못 차린 것 같다. 레펜하르트는 가볍게 몽둥이를 휘두르며 대뜸 브라이트의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빙글거리며 말했다.
“친구들 다 저 꼴 됐는데 너만 멀쩡하면 안 되겠지?”
브라이트에게도 짐 언브레이커블 특유의 타법 수련이 행해졌다. 그렇게 한 1분쯤 팼을까? 결국 나무 몽둥이가 부러져 버렸다. 오러로 몽둥이를 감싸 보호했다면 이 정도로 부러지지 않았겠지만, 아쉽게도 육체 자체를 단련하는 데 특화되어 있는 그의 오러는 다른 무문처럼 무기에 오러를 덧씌우거나 할 수는 없었다. 세상일엔 다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매질이 끝나자 그제야 브라이트가 신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사, 살려 주십쇼…….”
브라이트는 정신없이 빌고 또 빌었다. 이미 오크 노예를 잡아가야 한다는 생각 따윈 머리에 남아 있지도 않았다. 오로지 이 매타작 지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 모습에서 짙은 옛 향수를 느낀 레펜하르트는 쓴웃음을 지으며 손짓을 했다.
“꺼져.”
단순한 한마디였지만 브라이트 일행에겐 구원의 동아줄이다. 다들 정신없이 동료를 부축한 뒤 절뚝거리며 공터를 떠났다. 떠나가는 용병들의 모습을 보며 레펜하르트가 입맛을 다셨다.
‘이것 참, 패다 보니 은근히 재미있었는데 아쉽네. 나중에 제자 들여서 본격적으로 패 볼까?’
본인은 미처 못 느끼고 있었지만, 지금 그는 어느새 훌륭하게 짐 언브레이커블의 사상에 물들어 있었다.
☆ ☆ ☆
상황이 끝나자 오크 소년이 장막에서 걸어 나왔다. 소년은 경악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레펜하르트가 설마 이 정도로 강한 전사일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오크 소년이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은인이여, 이 생명이 끊어지는 날까지 오늘을 잊지 않겠소. 반드시 은혜를 갚을 것이오.”
오크 특유의 어조가 있다 보니 마치 원한을 갚겠다는 것처럼 살벌하게 들리긴 했지만, 진심인 것은 틀림없었다. 신경 쓰지 말라며 손을 내저은 뒤 레펜하르트가 물었다.
“상관없다. 갈 곳은 있나?”
오크 소년이 문득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이 모두 인간의 것이니 어찌 갈 곳이 있겠냐마는…….”
그러나 그 표정은 곧 강인한 의지로 바뀌었다.
“그래도 대륙은 넓으니 어딘가 이 한 몸 뉘일 곳이 있지 않겠소? 없다 해도 노예로 사느니 떠돌다 죽는 운명을 택할 것이오.”
초라한 차림에 상처투성이, 검 역시 녹슬어 있지만 오크 소년의 눈빛에는 전사의 긍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레펜하르트가 빙그레 웃었다.
“호기로운 녀석이군.”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라키드 산맥 너머 남동쪽으로 보름쯤 걸어가면 이름 없는 황무지가 나온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아 명칭도 붙지 않은 오지 중의 오지, 인간 아닌 종족이 시련의 땅이라 이름 붙인 곳이다.”
의아해하는 오크 소년을 향해 그가 말을 이었다.
“그곳으로 가거라. 그곳에 숨어 사는 오크들이 있다 들었다. 푸른 곰 부족이다.”
오크 소년의 표정이 눈에 띠게 밝아졌다. 아직 노예가 아닌 동족이 남아 있었던가? 희망에 차 기뻐하던 소년이 갑자기 진지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레펜하르트가 동요하며 물었다.
“전사가 함부로 고개를 숙여도 되는가?”
가슴에 손을 얹는 것은 경의를 표하는 것, 하지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절대적 굴복을 의미한다.
소년의 말투가 다시 바뀌었다.
“그대는 나를 구해 주고 새롭게 길까지 열어 주었습니다. 이제 그대는 나의 멘토이니, 기회가 된다면 그대를 위해 검을 들겠습니다.”
오크들의 문화로 멘토는 인생의 지도자, 공경하는 자라는 의미가 있다. 인간의 ‘주인’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개념인데, 철저히 복종하지만 결코 긍지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점이 노예와는 달랐다. 인간으로 치면 군주와 기사 관계랄까?
하여튼 최상의 예의를 갖췄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경우에 어긋나지도 않는다. 살짝 감동하는 레펜하르트를 향해 오크 소년이 정중히 물었다.
“은인의 이름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난…….”
레펜하르트는 잠시 주저했다. 그는 원래 델피아의 마탑에서 받은 성인 윈스톤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새로운 생이 펼쳐졌으니…….
“내 이름은 레펜하르트. 레펜하르트 왈드 안타레스다.”
룬어로 왈드 안타레스는 안타레스의 통치자란 의미. 그는 이제부터 저것을 자신의 성으로 쓰기로 결심했다. 그가 걸어야 할 길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레펜하르트 왈드 안타레스. 그 이름, 잊지 않겠소.”
오크 소년이 어색한 인간 발음으로 레펜하르트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리고 발길을 돌리며 작별을 고했다.
“그럼 이만.”
“아, 잘 가게.”
일단 마음먹으면 주저하지 않는다. 오크 소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동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다 말고 문득 레펜하르트가 외쳤다.
“아, 참! 그대의 이름은?”
생각해 보니 소년의 이름도 묻지 않았다. 멀어져 가며 오크 소년이 소리쳐 답했다.
“나는 크로타의 아들이자 라트의 도끼를 물려받은 자, 타시드라 하오!”
“엉?”
순간 레펜하르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쩐지 아까부터 이상하게 마음에 들고 어색하지도 않다 했더니!
“저 녀석, 타시드였어?”
그의 사천왕 중 하나였던 오크 대전사 타시드.
푸른 곰 부족의 족장이었고 결국 모든 오크들의 대족장이었던 사내.
레펜하르트는 멍하게 오크 소년이 사라진 숲 속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어느새 숲 저편으로 맹렬히 뛰어가고 있었다.
그가 알려 준 길, 그가 가야 할 동족들을 향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달려간다.
“신기한 인연이네.”
운명의 힘을 새삼 느끼며 레펜하르트는 의아해했다. 혹시 왕년 테스론도 타시드를 만났던 걸까? 하지만 그의 성정을 생각하면 어린 오크를 발견하고 도와주었을 리가 없다. 아마도 레펜하르트가 이 자리를 택함으로서 운명이 꼬인 것 같았다. 사실 이 자리는 무술을 수련하는 데는 그리 유용하지 않으니까. 그는 어디까지나 마법 수련을 위해 이 폭포 옆 공터를 택했다.
하여튼 신기했다.
“하하하…….”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그리움이 밀려든다. 당장이라도 저 소년의 뒤를 쫓아 그를 붙잡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지.’
그의 충실한 부하이자 친우는 지금 자신의 운명을 걷고 있다. 그 길을 방해해선 안 된다. 다행히 그가 알려 준 푸른 곰 부족은 타시드가 원래 있었던 장소, 크게 운명을 뒤틀진 않았을 것이다.
멀어지는 타시드의 기척을 느끼며 레펜하르트는 아련하게 중얼거렸다.
“언젠가 다시 만나자꾸나. 나의 친우, 나의 형제, 용맹한 전사의 후예여.”
4
타시드와의 기이한 인연이 있고서 또다시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산속은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소복이 쌓인 눈이 모든 것을 덮고 그 위로 칼날 같은 겨울바람이 사납게 휘몰아친다. 두껍게 얼어붙은 산속의 호숫가, 입김마저 얼어 버릴 것 같은 그 매서운 추위 속에서 두 남자가 손 속을 나누고 있었다.
“받아 보아라, 제자야!”
거구의 근육질 노인이 웅혼한 정권을 내지른다.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하지만 일반인이 보기엔 충분히 거구인 근육질 청년이 정권을 피하며 팔꿈치를 올려 친다.
“이 정도쯤이야!”
얼굴을 쪼개 버릴 듯한 강렬한 엘보 블로우를 가볍게 피하며 노인이 껄껄 웃었다. 이 추위에도 불구, 둘 다 상의는 걸치지도 않은 채 가벼운 반바지만 입은 차림이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절로 돋는 모습이었지만 정작 두 사람의 전신은 땀으로 얼룩져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제법이구나!”
감탄사를 외치며 노인, 제라드가 다시 손끝을 세워 제자의 옆구리를 찔러 갔다. 늑골을 부수고 내장을 헤집을 가공할 일격이었다. 저런 걸 부담 없이 날리다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사생결단을 내야 할 철천지원수 사이처럼 보이리라.
“헉! 너무한 거 아닙니까, 사부?”
하지만 엄살을 피우면서도 청년, 레펜하르트는 슬쩍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 공격을 흘려 냈다. 그리고 재차 몸을 날려 단숨에 다섯 발의 킥을 제라드의 전신에 꽂았다.
퍼퍼퍼퍼퍽!
요란한 타격음이 울리며 제라드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허점을 놓치지 않고 레펜하르트는 바로 근접전을 시도, 사정없이 펀치와 킥을 쏟아냈다. 제라드도 가뿐히 공격들을 걷어 내며 반격해 갔다.
“타아앗!”
“허업!”
두 근육질 사제師弟들은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팽팽한 대결을 벌였다. 어느새 둘 다 전신에 눈부신 황금빛 오러를 감싼 상태였다. 주먹과 발길질이 오가며 그 여파만으로 땅이 파헤쳐져 서리 낀 흙더미가 여기저기 나부낀다. 오러를 각성한 지 슬슬 4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레펜하르트는 오러를 쓰는 제라드와 대련이 가능할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성장해 있었다.
“좋다, 아주 좋아!”
제라드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레펜하르트를 가르친 지 어느새 10년째, 그의 제자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무투가가 되어 주었다. 뭐, 정확히는 테스론을 한 4년 가르치고 그다음에 레펜하르트를 6년 정도 가르친 것이니 살짝 착각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어차피 그에게 제자라 함은 ‘튼튼한 몸뚱이’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딱히 문제는 없다.
“이것도 받아 보아라, 레펜하르트!”
이제 제라드도 자신의 제자를 레펜하르트라고 부르고 있었다.
애가 하도 맞다가 머리가 어떻게 된 건지, 자꾸 자신이 테스론이 아니라 레펜하르트라고 우겼던 것이다. 소중한 제자가 저리도 원하니 그는 흔쾌히 제자의 이름을 레펜하르트로 고쳐 불러 주었다. 이 당대의 권왕께서는, 육체만 튼튼하면 정신은 좀 오락가락해도 된다는 마초적인 대범함을 지니고 있었다.
“흐읍!”
숨을 들이쉬며 제라드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리고 굵직한 음성을 내뱉었다.
“기격탄氣擊彈!”
순간 황금의 오러가 노인의 주먹에 집중되더니 대포처럼 쏘아졌다. 날아오는 기격탄을 본 레펜하르트의 눈빛이 순간 빛났다. 그가 양팔을 들어 전신을 방어했다. 동시에 오러가 치솟아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온몸을 감쌌다.
콰앙!
제라드가 쏜 기격탄이 회전하는 오러에 튕겨 저만치 날아가 대폭발을 일으켰다. 얼어붙어 돌처럼 단단해진 땅이 움푹 파이는 것이 이 기격탄의 위력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흩날리는 파편 속에서 제라드가 웃으며 두 손을 내렸다.
“스파이럴 가드가 경지에 올랐구나.”
히죽 웃으며 레펜하르트도 자세를 풀었다. 대련을 마치고 몸을 푸는 제자를 보며 제라드가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구나, 상당히 늘었어. 그런데…….”
문득 제라드가 눈을 흘기며 레펜하르트의 전신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탄식했다.
“어째 아직도 이리 작단 말이냐?”
순간 레펜하르트는 헛웃음을 흘렸다. 현재 그의 신장은 1.9미터가 살짝 넘은 상태다. 작기는 개뿔? 전생의 육체에 비하면 머리 하나는 더 크다.
하지만 제라드는 짐 언브레이커블의 문도라면 응당 2미터는 기본으로 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의 신장은 2.5미터고 레펜하르트가 전생에 만났던 테스론도 2.3미터는 넘었었다.
“가르쳐 준 호흡법은 제대로 하고 있느냐? 밥도 제대로 챙겨 먹이는데 어째서 이리도 안 크는지 모르겠구나.”
자고로 무인, 특히나 권사에게 있어 육체 사이즈 또한 전투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니만큼 짐 언브레이커블에는 육체 성장을 촉진시키는 특유의 호흡법과 오러 운용법이 있었다. 레펜하르트가 오러를 깨우친 지 어언 4년이 넘었으니 못해도 지금쯤 2미터는 훌쩍 넘었어야 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제라드를 향해 레펜하르트가 죄송스러운 태도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체질적인 문제인 듯합니다, 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