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71
푸른 블레이드 오러가 백열하며 러스의 어깨 위로 살기가 피어오른다. 레펜하르트가 정색을 하며 외쳤다.
“러스! 살기를 거두어라!”
“네? 하지만 형님…….”
당황하는 러스를 뒤로 물린 채 레펜하르트가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전신을 훤히 드러내는 그의 모습에 드워프들이 놀라며 활시위를 당긴다. 십여 대의 화살이 그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레펜하르트는 전혀 공격을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의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표현하기 위해 두 손을 위로 들기까지 했다.
팅팅팅팅~!
날아간 화살이 모조리 튕겨 나간다. 오러고 뭐고 아무것도 쓰지 않았지만, 단련된 레펜하르트의 육체는 고작 평범한 화살 정도로는 흠집도 나지 않는 것이다. 드워프들이 경악하며 웅성거렸다.
“괴물이다!”
“화살이 통하지 않아!”
“심지어 대놓고 화살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과시하면서 우릴 조롱하고 있어!”
‘아니, 그게 아닌데…….’
레펜하르트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항복한답시고 손들었더니 오히려 드워프들의 표정이 더더욱 살기등등해졌다. 더 이상 시간 끌면 무슨 소리 나올지 몰라, 그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진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대지의 아들들이여! 들어 주시오! 우리는 그대들의 적이 아니오!”
드워프들의 살기가 눈에 띄게 꺾였다. 다들 당황하며 서로를 향해 눈빛을 교차했다. 레펜하르트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드워프 무리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덩치 좋은 중년 드워프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인간인 그대가 우리들의 적이 아니란 말인가?”
여전히 두 손을 든 채 레펜하르트가 대답했다.
“그렇소!”
확실했다. 눈앞의 저 침입자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중년 드워프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다가,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그대는 누구인가? 왜 이곳에 왔는가?”
순간 레펜하르트의 표정이 굳었다. 누구냐고? 왜 이곳에 왔냐고? 물론 대답할 말은 있다. 하지만 그 말은…….
‘아으, 내 입으로 말하기엔 너무 쪽팔린데 이거…….’
그래도 여기서 피 안 보려면 외칠 수밖에 없다. 애써 마음을 다잡고 레펜하르트가 다시 외쳤다.
“나는 그대들의 구원자! 알 포트의 신탁 속 인물이오!”
드워프들의 표정이 일거에 변했다. 더 이상의 살기는 없었다. 다들 눈을 휘둥그레 뜨고 레펜하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일행들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물론 드워프들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우와, 레펜 씨, 제 얼굴이 다 화끈거려요. 그 대사 대체 뭐예요?”
“시, 시끄러! 나라고 좋아서 이런 말 한 줄 알아?”
막상 해 놓고 보니 정말 낯부끄러운 대사다. 레펜하르트는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애써 시선을 외면했다. 그리고 드워프들을 향해 다시 외쳤다.
“스틸해머 일족의 인도에 따라 이곳 그랜드 포지에 대신관 마켈린을 만나러 왔소!”
뒤에서 계속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던 러스가 혀를 찼다.
“아니, 형님. 아무리 그래 봤자 이들이 우리 말을 믿어 줄 리가…….”
말이 채 끝나기도 무섭게 드워프들이 무기를 거두었다. 일제히 검을 검집 안으로 넣더니 다들 반색을 하며 외쳐 댄다.
“오오! 구원자시다!”
“일족의 구원자께서 오셨구려!”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아니, 근데 왜 멀쩡한 정문 놔두고 이런 곳에서 나타나셨대?”
조금 전의 살기는 온데간데없고, 다들 얼굴 가득 환대의 미소를 띠며 우르르 일행들에게 몰려들었다. 실란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와, 뭔 태도가 저렇게 손바닥 뒤집듯 바뀐대?”
☆ ☆ ☆
그랜드 포지는 세텔라드 산맥 지하 30미터에 위치한 지하 도시였다. 직경이 2킬로미터에 달하고 높이는 최하 30미터에서 최대 50미터까지 이르는 거대한 동굴 안에 수많은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도시를 관통하는 두 줄기 강에는 강물 대신 끓는 온천수가 흘러 사방에 자욱한 수증기를 피운다. 도시 천장에는 100미터 거리마다 거대한 지열석이 박혀 빛과 열을 제공하고 있었다. 비록 지상의 한낮만은 못하지만, 적어도 사물을 구별하는 데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광량이었다.
레펜하르트 일행은 한 중년 드워프의 인도에 따라 그랜드 포지 중앙의 도로 위를 걷고 있었다. 제일 먼저 화살 날리라 소리쳤던 바로 그 드워프였다. 자신을 풀바트라 소개한 드워프는 그랜드 포지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마치 관광 가이드처럼 도시를 소개하고 있었다.
“이곳은 제련 장인들이 모인 대장간 구역입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살림집이 모여 있는 거주 구역이 나올 겁니다.”
다들 갓 도시 올라온 촌놈들처럼, 사방을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실란이 혀를 내둘렀다.
“우와, 대체 어떻게 이런 것들을 만든 걸까요?”
시리스도 동감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드워프들이 손재주가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심지어는 같은 드워프인 틸라조차도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하긴, 도시 올라온 촌놈이라는 정의에 가장 적합한 것은 그녀일 것이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말 굉장하군요, 그랜드 포지는…….”
새삼 일족에 대한 자긍심이 가슴 벅차게 피어오른다. 대부분의 엘프와 오크들은 이미 모든 문화와 전통을 잊었지만 드워프들은 아직도 이 정도의 문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러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뇌까렸다.
“이해할 수 없군. 이 정도의 대역사가 가능하려면 아무리 드워프들이라 해도 엄청난 인원이 필요할 텐데…….”
그만한 인원이 이 험한 오지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오지라는 것은 살기 힘들기에 오지라 불리는 것이다. 이 정도 대규모 건축이 가능할 정도의 드워프들이 과연 이 세텔라드 산맥 깊숙한 곳에서 제대로 생활이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이 정도 규모라면 왜 노예로 살아가는 동족들을 구하려 하지 않는 거지?”
“헤에, 러스 씨도 슬슬 드워프들이 노예로 살아가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나 보죠?”
“응? 그게 무슨 소리지, 실란?”
“그러지 않고서야 그런 의문을 가질 리가 없으니까요.”
“으음…….”
놀리는 듯한 실란의 말에 러스는 신음을 흘렸다. 아무리 고정관념에 딱 박힌 러스라도 이런 엄청난 광경을 보니 패러다임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말에 풀바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이 그랜드 포지는 우리들이 건설한 게 아닙니다.”
원래 그랜드 포지는 은의 시대 유적, 즉 던전이었다. 그것을 이곳까지 쫓겨 온 드워프들이 수많은 희생을 내며 탐사를 거듭하고 내부를 개조한 끝에 자신들의 거주지로 삼은 것이다.
실제로 대륙에는, 이미 탐사될 대로 탐사되어 버려진 유적들도 상당히 많다. 대다수는 그럴 경우 유적의 마력 코어를 잃어 이공간으로 사라져 버리지만 개중에는 이렇게 현실에 남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
보통은 인간이 부수거나 개조해 다른 용도의 건물로 쓰곤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그라임 왕국 왕성 델 그라임이었다. 원래 던전이었던 곳을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그라임 왕국 초대 국왕 델 그라임이 완벽하게 탐사한 뒤 지하를 개조하고 지상에 성을 올려 왕성으로 삼은 것이다.
러스가 헛웃음을 흘렸다.
“아, 어쩐지…….”
이 정도 도시를 직접 건축하려면 어마어마한 숫자의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안에 있는 것을 몰아내고 개조하는 데는 비교적 소수의 인원으로도 되는 것이다. 그 정도면 노예 종족인 드워프라도 가능할 것 같았다. 애초에 손재주 하나는 좋은 놈들이었으니.
그때 레펜하르트가 그의 착각을 바로잡아 주었다.
“그렇지만 이곳이 은의 시대에도 드워프들의 도시였던 것은 분명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형님?”
레펜하르트가 길가에 있는 건물들을 가리켰다.
“문턱이 낮잖아.”
러스는 바로 알아들었다. 단순히 문턱이 낮은 정도가 아니다. 낮은 문턱, 낮은 천장, 그리고 지나치게 짧은 계단과 낮은 손잡이까지. 모든 면에서 인간을 위해 지어진 것임이 아님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도시 곳곳에 장식되어 있는 저 드워프 석상과 동상들은 누가 뭐래도 이 도시가 드워프의 도시임을 증명해 준다.
“즉, 은의 시대에는 드워프들이 자기만의 도시를 세울 만큼 번영하고 있었다는 소리지. 노예로 타고난 종족이라면 불가능한 이야기였겠지?”
“으음…….”
러스는 신음을 흘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레펜하르트의 말이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리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뿌리 깊은 인식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 생활 구역에 도착한 뒤, 풀바트가 일행을 한 가옥으로 안내했다. 안에서 중년 드워프 여인이 나와 그를 맞이한다. 여인에게 뭐라 말을 건넨 뒤 풀바트가 일행에게 말했다.
“일단 이곳에서 묵으시지요. 우선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다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풀바트가 내준 가옥은 근처 가옥에 비하면 상당히 큰 편에 속했지만 그래 봤자 드워프 기준이었다.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며 러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개구멍 들어가는 기분이군.’
신장 192센티미터인 레펜하르트나 180센티미터인 러스는 말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시리스조차도 문턱을 넘기 위해 허리를 굽혀야 했다. 엘프답게 그녀는 소녀의 나이지만 이미 17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이었으니까.
아, 물론 실란은 우울해하며 허리 쭉 펴고 들어갔다.
“나, 나도 허리를 굽히고 싶다…….”
틸라가 피식 웃으며 실란 뒤를 따랐다. 적당히 방 여기저기에 짐을 풀자 풀바트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지금 대신관께 연락을 취했습니다. 변변치 않지만 허기라도 채우면서 조금만 기다려 주시구려.”
그렇잖아도 마물들의 습격으로 변변한 더운 음식 한번 못 먹어 본 일행이다. 다들 기대하는 가운데 중년 드워프 여인이 커다란 쟁반을 들고 왔다.
식사로 나온 것은 순무와 감자를 넣고 끓인 수프와 정체불명의 삶은 고기였다. 일족의 구원자 일행에게 대접하는 음식으로 치기엔 지나치게 검소하지 않은가 싶지만, 드워프들이 오지 중의 오지에 숨어사는 처지임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정성을 들여 대접한 것이 분명하리라. 다들 순수하게 고마워하며 숟가락을 떴다.
삶은 고기를 한입 베어 문 실란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이거 무슨 고기예요?”
뭐랄까, 묘하게 질기고 노린내가 난달까. 딱히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솔직히 맛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 풀바트가 자랑스레 대답했다.
“바실리스크의 간을 삶은 것입니다.”
다들 안색이 굳었다. 바실리스크? 그 몬스터의 내장이었단 말인가?
순간적으로 실란과 러스가 비위가 뚝 떨어진다는 표정을 지었다. 포크를 들었던 시리스도 은근슬쩍 눈치를 보며 고기 담긴 접시를 슬쩍 밀었다.
“에, 엘프는 원래 채식 위주예요, 호호.”
“어제까지만 해도 육포 잘만 씹더니…… 아얏!”
옆구리를 꼬집힌 실란이 울상을 지으며 레펜하르트를 바라보았다. 물론 제라드 밑에서 온갖 악식은 다 먹어 본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고깃덩이를 으적으적 잘도 씹고 있었다.
“먹을 만한데. 다들 왜 그래?”
맛은 둘째 치고 몬스터의 고기라는데 먹을 마음 드는 이가 누가 있겠나? 모두가 불편한 얼굴을 하자 풀바트가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맛은 좀 그래도 상당히 귀한 물건입니다. 몸에도 좋고.”
“어디에 좋은데요?”
“음…….”
갑자기 풀바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이게…… 남자에게 참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구려…….”
“오옷!”
“헉?”
러스와 실란이 눈을 빛냈다. 인간이건 드워프건, 남자라면 이건 먹지 않을 수 없다! 종족을 초월한 동질감을 느끼며 둘 다 열심히 바실리스크 간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틸라와 시리스가 입술을 삐죽였다.
“하여튼 남자들이란.”
“짐승들.”
“러스 씨야 그렇다 치고 실란까지 그럴 줄은 몰랐어요.”
“나도 곧 근육질의 몸매가 될 테니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죠.”
뭘 미리 준비하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준비성 투철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덕분에 분위기가 급 훈훈해졌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러스조차도 ‘드워프, 생각보다 괜찮은 친구들이군!’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즐거운(?) 식사를 마치자 밖에서 젊은 드워프 한 명이 들어왔다.
“풀바트 아저씨, 대신관께서 구원자 분을 중앙탑으로 모시라 하십니다.”
기다렸다는 듯 레펜하르트가 몸을 일으켰다.
“그럼 갔다 오지. 다들 여기서 쉬고 있어.”
☆ ☆ ☆
그랜드 포지의 중심, 천장과 종유석처럼 연결된 커다란 탑이 바로 알 포트의 대신관 마켈린이 거하는 곳이었다. 탑 아래까지 안내하더니 젊은 드워프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럼 이 계단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탑을 올려다보며 레펜하르트가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부터는 아무도 못 드나드는 모양이군. 하긴, 대신관이 거하는 곳이면 일종의 성역…….”
“아뇨, 그냥 올라가기 귀찮아서 그러는 건데요.”
“…….”
생각해 보니 드워프란 종자들, 원래 이랬다. 헛웃음을 흘린 뒤 레펜하르트는 계단을 올라갔다. 탑 위쪽에 도착하니 사방이 갈색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나왔다. 벽과 기둥에 온갖 그림이 새겨져 있고 가운데엔 금과 청동으로 장식한 커다란 제단이 놓여 있었다.
그 제단 앞에서 늙디늙은 드워프가 레펜하르트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