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81
“주, 죽여!”
“마법을 완성하게 두지 마라!”
용병들이 사색이 되어 연거푸 검을 휘둘러 댔다. 물론 여전히 소용은 없었다. 뭔 놈의 몸뚱이가 전혀 칼이 들어가질 않는 것이다! 그때 먼저 주문을 완성시킨 클론토가 고함을 질렀다.
“……나, 위대한 불꽃을 사역하노라! 파이어 블래스터!”
한 줄기 불길이 사막의 열기를 가르고 레펜하르트에게 쏘아졌다. 용병들이 놀라며 사방으로 몸을 날렸다. 그 사이를 뚫고 불꽃의 기둥이 정확히 레펜하르트를 적중했다.
콰아앙!
대폭발이 일어났다. 자욱한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용병 중 한 명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주, 죽었나?”
그때였다. 검은 연기 사이로 두꺼운 팔뚝이 불쑥 튀어나왔다. 우락부락한 손가락이 기묘한 자세로 꺾여 있고, 그 사이로 푸른 전격이 파직거리며 맴돈다.
진중한 음성이 들려왔다.
“나가라, 천공의 아들이여. 내 적을 쳐라! 체인 라이트닝!”
콰쾅!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쳤다.
거대한 전격의 뱀이 연거푸 먹이를 삼킨다. 푸른 뇌전이 사방으로 방전하며 수십 명의 용병들을 연쇄적으로 치며 달렸다. 거대한 번개의 그물이 용병들의 머리 위를 덮친 듯한 광경이었다. 강렬한 전격이 순식간에 스무 명이 넘는 용병들을 후려갈기며 모래 위로 치달렸다. 끔찍한 비명이 아우성쳤다.
“으아아악!”
“크어어억!”
“아아아악!”
아비규환이었다.
4
고기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브라이트는 연신 눈을 껌벅였다.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
그의 발밑에는, 스무 명도 넘는 용병들이 검게 그을린 시체가 되어 누워 있었다. 살아남은 것은 브라이트와 크롬 시에서부터 함께한 원조 부하들뿐이었다. 레펜하르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미처 덤비지 못한 그들만이 저 악몽 같은 공격에서 간신히 벗어난 것이다.
등 뒤에서, 몰이해로 가득한 클론토의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뭐, 뭔가, 저건? 대체 어떻게 마법을 완성시킨 게야?”
상대가 마법 한 방으로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을 싹 죽여 버렸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고위 마법사의 주문이라면 이 정도 위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니까.
그래서 용병들 모두 필사적으로 주문을 방해하기 위해 덤벼들었다. 공격을 실패하지도 않았다. 열심히 찌르고 후려갈기고 베어 넘겼다. 제대로 모든 공격이 들어갔다. 그런데…….
“……저거 왜 칼 맞아도 안 죽어?”
클론토는 그저 눈만 연신 껌벅대고 있었다. 맨몸으로 칼 튕겨 내는 것도 기가 막힌데 저 괴물은 심지어 그의 마법, 파이어 블래스터마저도 맨몸으로 버텨 낸 것이다. 한 방이면 커다란 짐마차라도 단숨에 숯덩이로 만들 수 있는 그 강력한 주문을!
“…….”
뜨거운 태양 아래 차가운 침묵이 맴돌았다. 브라이트도 클론토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용병들도 모두 입만 쩍 벌린 채 레펜하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황이 지나치게 상식을 초월해 버려 잠시 사고가 정지된 것 같았다.
한편, 레펜하르트는 이런 강력한 마법을 선보이고도 뭐가 불만인지 연신 툴툴거리고 있었다.
“끙, 원래대로라면 싹 다 숯덩이가 되었어야 했는데…… 역시 마력 부족이 크네.”
게다가 시전 속도도 만족스럽지 않다. 주문 외우면서 칼침을 한 20~30대는 맞은 것 같았다. 전생에서는 체인 라이트닝 정도의 주문이라면 그냥 시동어 한 방으로 간단하게 시전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계속 엘류시온의 목소리 신세를 져야 할 것 같았다.
‘뭐, 그래도 예상했던 수준이긴 하군.’
주먹을 쥐며 그는 빙그레 웃었다. 어차피 튼튼한 몸뚱이 믿고 미친 척 질러 본 마법이었다. 자신이 아직 6서클 마법인 체인 라이트닝을 실전에서 쓸 수준이 아니란 것쯤은 레펜하르트 본인이 더 잘 아는 것이다.
간단한 시험이었다. 마력 연산과 충전에 있어서는 이놈의 싼 티 나는 테스론 헤드(?) 덕분에 영 부실하지만, 집중력이나 마력 제어 감각 등 영혼에 기인한 영역은 그대로 살아 있을 것이라는 게 그가 예상한 이론이었다. 하지만 모든 이론이 그렇듯, 실제로 증명하지 않는 한 그것은 가설일 뿐. 그동안 실전에서 마법을 써 보질 못해 살짝 불안했는데 시험해 보니 꽤나 훌륭하게 감각이 반응해 주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슬슬 다시 마법사 간판 걸어도 되겠는데?’
나름 만족하며 레펜하르트는 브라이트와 클론토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떨어진 시미터 곁에서 경계 자세를 취하고 있는 시리스가 보였다. 레펜하르트가 재차 수인을 맺으며 주문을 외웠다.
“나는 위대한 마나의 사역자, 그 힘을 빌려 뿌려진 것을 거두노라. 디스펠 매직.”
녹색 섬광이 손끝에서 쏘아져 떨어진 그녀의 시미터를 감쌌다. 시미터에 걸린 중량 증가 마법이 풀리며 원래의 무게로 돌아갔다. 시리스가 잽싸게 무기를 회수했다. 클론토가 경악해 중얼거렸다.
“어, 어떻게 내 마법을 저리 간단히?”
마법 해제 주문, 디스펠 매직은 비록 서클 자체는 그리 높지 않지만 상대 마법의 마력 패턴이나 술식, 흐름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가능한 마법이다. 저 젊은 마법사는 놀랍게도 50년 가까이 마법에 매진한 자신보다도 더 수준 높은 마법사였던 것이다. 주문 시전 속도나 체인 라이트닝의 위력을 보고 자신과 비슷한 급수라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큰 착오였는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물론 이는 사실 현재 레펜하르트의 경지가 꽤나 불균형스러워 생긴 일이지만, 클론토 입장에서 저기까지 알 리는 없다. 단숨에 자신의 주문을 날려 버리는 레펜하르트의 솜씨에 클론토는 바로 전의가 꺾였다.
그가 겁에 질려 소리쳤다.
“저 엘프들 때문에 이러는 거요? 그렇다면 드리겠소! 다 가지시오!”
그는 아직도 레펜하르트가 자신들이 가진 엘프들에게 욕심을 품고 습격해 왔다고 믿고 있었다. 뭐, 상황을 볼 때 그 이상의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브라이트도 그제야 정신이 든 듯 외쳤다.
“드,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네?”
아니, 그럼 왜 우리를? 도무지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아 브라이트가 입을 쩍 벌렸다. 레펜하르트가 안색을 굳히며 앞으로 나섰다.
문득 그가 물었다.
“몇이나 죽였지?”
브라이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희가 누굴 죽였다고 그러십니까?”
“몇이나 되는 엘프들을 죽였냐는 말이다.”
순간 브라이트 일행은 눈만 껌벅껌벅 하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니, 엘프를 몇이나 죽였는지를 왜 갑자기 물어본단 말인가? 브라이트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한, 마흔 마리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만…….”
혹시 자신들의 실력을 보고 부하로 삼으려나 싶어 숫자를 조금 뻥튀기하기도 했다. 살짝 자랑조차 섞인 그의 대꾸에 레펜하르트는 한숨을 쉬었다. 이젠 분노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순간 레펜하르트의 두 눈에서 섬뜩한 광채가 번뜩였다.
“그럼 이제 그들의 핏값을 받겠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브라이트의 머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퍼엉!
육편과 뇌수가 꽃잎처럼 사막의 모래 위로 흩날린다. 클론토와 다른 이들이 경악으로 눈을 부릅뜨는 순간, 레펜하르트의 몸뚱이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 ☆ ☆
요란한 폭음이 연거푸 울렸다. 황금빛 오러가 사방으로 비산하고 마법의 화염과 전격이 그 뒤를 이었다. 살의 가득한 레펜하르트가 전의를 잃은 이들을 격살하는 데 많은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다들 제대로 반항도 못해 보고 죽어 갈 뿐이다.
“아악!”
“으악!”
“으어어억!”
비명이 메아리치는 열사의 대지, 시야를 가득 메우는 대학살의 광경 속에서 클론토는 멍하니 서서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으으…….”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토록 매진해 왔던 위대한 마법의 언령들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로지 압도적인 공포만이 뇌리를 가득 메운다. 감히 반항하겠다는 생각 따윈 할 엄두도 나질 않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도대체…….”
용병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 간다. 저 잔혹한 자의 주먹에 스칠 때마다 피떡이 되어 사막 여기저기 널브러진다.
“……도대체 왜?”
이해할 수 없었다. 눈앞의 저 청년은 실로 엄청난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닳고 닳은 용병들을 아이처럼 다루는 권술에, 평생을 매진한 자신보다도 더 높은 경지의 마법이라니?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한 우물만 파도 모자랄 판에 전혀 다른 두 개의 분야를 모두 충족하다니, 그것도 저렇게 젊은 나이에!
‘저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이…….’
그리고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도대체 왜 우리를 저렇게까지 죽이려 하는 건가?’
“커억!”
몇 남지 않은 용병 중 하나가 또다시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갔다. 시체를 뒤로 던지는 레펜하르트의 두 눈은 일렁이는 불길을 담고 있었다. 저 두 눈에 피어오른 것은 틀림없는 증오의 빛.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엄청난 증오를 받을 만한 짓을 한 기억이 없는 것이다.
마지막 용병 하나를 처리한 레펜하르트가 클론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심 마법에 대비하고 있었지만, 저 마법사는 모든 용병들이 시체가 될 때까지도 넋 나간 얼굴로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하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 몰리고도 제대로 주문을 시전할 수 있을 정도의 정신력과 집중력을 지닌 자라면 저 나이에 고작 6서클에 머물러 있었을 리가 없을 테니까.
레펜하르트가 몸을 날려 클론토의 코앞까지 쇄도했다. 불쑥 손을 뻗어 가느다란 마법사의 목을 움켜쥔다. 이제 가볍게 힘을 주기만 해도 이 수수깡 같은 목은 단숨에 부러져 나가리라.
“잘 가라.”
막 손아귀에 힘을 주려던 찰나였다.
“자, 잠깐만!”
클론토가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외마디 고함을 질렀다. 레펜하르트의 입가에 짙은 조소가 떠올랐다.
“목숨을 구걸하는 건가?”
엘프들의 목숨은 가차 없이 앗아 간 이들이 자신의 목숨은 그래도 귀하단 말이지? 경멸을 담아 레펜하르트가 클론토의 목을 조르려던 참이었다.
클론토가 남은 힘을 끌어모아 외침을 이었다.
“대체 왜 죽는 지나 알려 주시오!”
“……하?”
레펜하르트는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손아귀의 힘도 살짝 빠졌다.
‘역시 마법사…….’
평소라면 상대도 하지 않고 바로 목을 졸랐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마법사였다.
마법사란 호기심에 살고 죽는 생물, 이자 역시 자신의 목숨이 걸린 와중에서조차 생명의 위협보다는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다는 쪽이 더 중한 것이다. 레펜하르트 역시 경지에 올랐던 마법사였다. 그 심정은 누구보다도 절실히 이해할 수 있다.
‘그래, 최소한 죽는 이유만큼은 알려 줘도 되겠지.’
살짝 힘을 풀며 레펜하르트가 천천히 대꾸했다.
“아까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죽어간 엘프들의 핏값을 받겠다고.”
아니나 다를까, 클론토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무슨 미친 소리인가 하는 얼굴이었다. 뭐, 그동안 지겹게 보아 온 것이라 별 감흥은 없지만.
하지만 역시 마법사라 그런지 다른 놈들과는 조금 반응이 다르다.
“……그 엘프들 사이에 혹시 인간이 있었소?”
혹시 이 청년의 지인이 그들의 전투에 휘말려 죽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자의 분노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클론토의 상식선에서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일이었다.
하지만 레펜하르트는 가차 없이 그의 질문을 부정했다.
“난 분명 엘프들의 핏값을 받겠다고 했다.”
“그럼 정말로 엘프를 죽였다는 이유로 이런 짓을 저질렀단 말이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소?”
억울하기 그지없다는 목소리로 클론토가 언성을 높였다. 레펜하르트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세상에는 이런 ‘법’이 아직 없겠지. 하지만 ‘법’이 없다 해서 엘프들이 저렇게 죽어 가도 되는 존재들은 아니다!”
순간 레펜하르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엘프들을 죽이며 느끼지도 못했던 거냐? 그들이 진정 짐승이었나?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하는 그들을 살해하면서도 아무 느낌도 받지 못했나?”
클론토가 표정을 구겼다.
“당신, 미쳤군……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해서 그럼 그놈들을 사람 취급하란 말이오?”
“욕망 때문에 날뛰는 네놈들보다는 훨씬 사람답다고 본다. 그대는 마법사겠지. 그렇다면 알고 있을 터.”
싸늘한 어조로 레펜하르트가 질문을 던졌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클론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목에 와 닿는 악력이 더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여기서 함부로 대답하면 바로 목이 꺾일 것이 분명했다.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요.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함을 아는 이성을 지니고 스스로의 자아조차 의심하며, 본능을 넘어선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보이지 않는 죽음이 다가옴을 두려워하는 이가 바로 사람이오.”
마법사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 배웠던 철학적인 대답이다. 레펜하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대체 엘프가 저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단 하나라도 있나?”
이를 갈며 클론토가 빠르게 대꾸했다.
“인간 중에서도 사람답지 않은 이들은 많소. 인간 중에서도 자신의 죄로 인해 노예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소. 심지어 엘프는 노예로 타고난 종족이오. 그대는 노예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