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96
“크어어억!”
그 와중에 다른 오크가 연거푸 공격을 해 온다. 시리스는 가뿐히 몸을 놀리며 공격의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연속으로 발차기를 날려 오크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퍼어억!
두 명의 오크가 뒤통수를 맞고 비틀댄다. 그들의 다리를 틸라가 도끼자루로 길게 쓸어 갔다. 훌렁 넘어지며 오크들이 신음을 흘렸다.
“으그그극!”
러스도 검을 놀리며 오크들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오러는 쓰지도 않았다. 그저 검집째로 오크들을 상대하며 하나 둘 두들겨 팰 뿐이다.
퍽퍽퍽퍽!
심지어 레펜하르트는 피하지도 않고 있었다.
“타카라!”
“크랏타!”
근성 가득한 오크들의 기합이 터지며 쇠망치와 돌도끼가 동시에 레펜하르트의 명치와 등을 후려갈긴다. 레펜하르트는 빙그레 웃으며 두 팔을 크게 벌렸다. 쇳덩이를 친 것 같은 손맛에 오크들이 입을 쩍 벌렸다. 아무리 투지를 불태우는 그들이라지만 이런 광경에서까지 경악을 숨길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맨몸으로 칼날 튕기는 묘기는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레펜하르트 일행은 스무 명이 넘는 오크들을 간단히 압도하고 있었다. 오러 유저인 레펜하르트와 러스는 말할 것도 없고, 시리스와 틸라도 일족 내에서 손꼽히는 전사다. 게다가 강력한 신관인 실란의 가호까지 받고 있었으니 상대가 될 리 없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과는 별개로 레펜하르트 일행은 감탄하고 있었다.
“굉장하군요, 오크들은.”
검집으로 오크들의 공격을 걷어 내며 러스가 뇌까렸다. 상대하는 오크 입장에서야 분통 터질 노릇이겠다만, 사실 그는 이 오크 전사들의 기량에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그가 속했던 테네스 기사단의 기사들과 비교해도 그리 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 일행의 실력이 너무 높은 것뿐이지, 사실 이들만 해도 어지간한 기사단과 맞서 싸울 강력한 병력으로 보였다.
레펜하르트가 동의하며 말했다.
“굉장하긴 굉장하지. 문제는 오크들에게 심각한 취약점이 있어서…….”
그때였다. 오크들이 일제히 분노의 외침을 터트렸다.
“크으으으!”
“크아아아!”
한참을 덤벼들어도 상처 하나 내지 못하자 다들 굴욕감에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어지간하면 역량의 차이를 실감하고 물러설 법도 하건만, 오히려 다들 생명을 도외시한 채 검을 휘둘러 대기 시작했다. 전사를 숭상하는 오크들에게, 상대가 사정 봐주는 이런 전투는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다들 눈에 독기가 올라 번들거렸다.
생사를 도외시하는 이들은 기량에 상관없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법이다. 특히나 이쪽은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시리스와 틸라의 움직임이 일순 흔들렸다. 그때, 갑자기 레펜하르트가 전신으로 칼날을 버텨 내며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모래여, 흘러라. 심연의 꿈이 되어라! 매스 슬립!”
양손으로 모래를 뿌리자 가루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 오크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순간 러스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엥?”
그토록 기세등등했던 스무 명의 오크들이 일제히 쓰러져 버린 것이다. 풀썩풀썩 쓰러지더니 바로 엎드려 얕은 숨을 내쉬기 시작한다. 레펜하르트가 시전한 2서클 광역 수면 주문, 매스 슬립의 효과였다.
실란이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아니, 뭐 이렇게 효과가 빨라?”
원래 슬립 주문은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 아니었다. 은밀하게, 상대가 눈치 못 채게 자연스럽게 졸음이 오게 하는 주문이다. 그걸 한창 전투 중에 구사하고, 또 그게 먹힌다고? 이쯤 되면 2서클 주문이 아니라 무슨 고위 마비 주문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슬립이란 거, 실전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주문 아니었나요?”
실란의 의문에 레펜하르트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오크들이 그토록 강력한 전투력을 지니고도 인간들에게 밀린 이유다.”
그렇다. 오크들은 마법 저항력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했던 것이다.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 정신력이 뛰어날 경우 집중을 통해 마법사의 정신계 주문에 저항할 수 있다. 하지만 오크는 태생적으로 그런 부분이 너무 취약했다. 아무리 강력한 전사라도 하찮은 하위 마법사의 정신계 마법에 농락당할 정도로.
“옛 시절에는 마법사가 워낙 귀해서 오크들도 별문제가 없었지만…….”
예전에는 마법의 존재 자체가 극히 귀했다. 아주 소수의 마법사만이 은밀히 비전을 전수하며 그 명맥을 이어 갔다. 하지만 마탑을 세우고 정식으로 마법사를 육성하게 된 지금 마법사는 예전만큼 귀한 존재가 아니었다. 여전히 귀하긴 했지만, 적어도 어지간한 백작 이상의 귀족이라면 가문마다 마법사 한둘쯤은 둘 수 있을 정도로 숫자가 불어난 것이다.
수백 년에 걸쳐서 점점 인간은 마법의 힘을 키워 갔다. 부족 단위로 흩어져 살던 오크들도 점점 마법병단을 내세운 인간들에게 패해 그 세력이 약해졌다. 그리고 현 시대에는 대부분의 오크들이 노예 신세가 된 것이다.
레펜하르트의 설명에 실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아무리 강력한 전사라 해도 별로 쓸모가 없는 것 아닌가요?”
레펜하르트가 고개를 저었다.
“실란, 네가 만약 간단한 정신계 방어 가호 주문을 이들에게 걸어 주었다고 생각해 봐.”
그러자 실란이 표정이 기묘해졌다.
“어, 확실히…….”
정신계 수호 주문은 그리 고난이도의 주문이 아니었다. 실란 정도라면 아예 장시간 유지 가능한 수호 부적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오크들의 약점은 분명 심각한 것이지만, 그것은 오크 자체의 문제일 뿐 다른 종족이 아주 조금만 도와줘도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녀석들은 전사도 아니야.”
이어진 레펜하르트의 말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토록 뛰어난 실력을 지닌 오크들이 전사도 아니라고?
“푸른 곰 부족의 진정한 전사들은 부락을 수호하고, 양이나 염소를 치며 식량을 지키고 습격해 오는 마물들을 사냥한다. 아직 전사가 되지 못한 오크들만 이렇게 황야를 떠돌며 순찰을 하지. 그러면서 기량을 높여 전사의 자격을 얻는 거다.”
인간의 상식과는 거꾸로 된 것 같지만, 이들의 생활을 생각하면 또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러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실력이…… 전사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어쨌든 상황이 끝났으니 레펜하르트 일행은 다시 말들을 모았다. 잠든 오크들은 그냥 이렇게 놔두기로 했다. 어차피 평소에도 황야를 떠돌다 아무데서나 잠드는 이들이다. 이런 곳에서 한두 시간 정도 잠들어 있다고 해서 큰 변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비 주문이 아니라 그냥 수면 주문이니까, 몬스터라도 나타나면 금방 깨어날 거야. 그 정도 단련은 다들 되어 있으니.”
그리고 레펜하르트 일행은 오크들이 깨지 않게 조심조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잠든 오크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멀어지자 다시 말에 오르며 레펜하르트가 동쪽을 바라보았다.
“이리로 죽 가면 푸른 곰 부족의 야영지가 나올 거다. 지금 시기라면 그곳에 있을 테니까.”
☆ ☆ ☆
레펜하르트 일행은 푸른 곰 부족의 봄 야영지까지 가지 못했다. 그 전에 이미 한 무리의 오크들이 그들을 마중 나온 탓이었다.
아우우우우!
오크들을 태운 다이어울프들의 울부짖음이 초원의 하늘을 가득 울린다. 황량한 대지 위로 투지가 피어오른다. 말들이 공포에 질려 발을 굴린다. 말들을 달래며 레펜하르트 일행은 재빨리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눈앞의 오크들을 바라보았다. 러스가 자기도 모르게 칼자루에 손을 가져가며 신음을 흘렸다.
“맙소사…….”
저들을 보니 왜 아까 그 오크들이 전사가 아니라고 했는지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냥 서 있는 것을 보기만 해도 그 오크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숫자는 열댓 명에 불과했지만 하나하나가 강인한 기세를 뿜어내는 전사들이다.
그 사이로 거구의 오크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전신을 회색빛 망토로 감싸고, 머리까지 두건을 써 두 눈동자만 보이는 오크였다.
오크가 입을 열고 우렁차게 외쳤다.
“이곳은 우리의 땅! 인간은 오지 못한다!”
제법 또렷한 공용어였다. 음성에 담긴 카리스마에 전율하면서도 러스는 문득 의아해했다. 어째 목소리 톤이 좀 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레펜하르트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양손을 들어 보였다.
“고결한 전사의 영혼들이여!”
순간 살기를 내뿜던 오크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저 불청객의 입에서 그들의 언어가 흘러나온 것이다.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 같던 기세가 이내 누그러졌다. 오크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레펜하르트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역시 이종족을 상대할 때, 그들의 언어를 아는 것은 효용 가치가 대단히 크다. 일단 자신들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적의가 반은 수그러드는 것이다. 레펜하르트가 전생에서 괜히 그토록 열심히 이종족의 언어를 배운 것이 아니다. 뭐, 전생의 그는 워낙 천재라 열심히 배웠다기보다는 대충 석 달쯤 머무르면 자동으로 현지인 수준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지만.
레펜하르트가 오크어로 외침을 이었다.
“그대들과 친분을 쌓고자 이곳에 왔소이다!”
“……친분이라고?”
거구의 오크 여인, 스탈라는 당황했다. 그녀의 삶 속에서 오크와 인간의 관계는 언제나 단순명료했다.
인간이 나타나면 싸운다. 그리고 죽이거나 죽음당한다. 그것이 전부.
인간이 먼저 손을 내미는 상황은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상황 판단이 되질 않았다.
그녀가 고함을 지르며 공용어로 대꾸했다.
“인간은 잘 속인다! 나는 믿지 않는다!”
레펜하르트가 오크어로 외침을 받았다.
“알고 있소! 그렇기에 그대들에게 우리의 신뢰를 보이고자 하오!”
‘알고 있다고?’
스탈라는 도저히 이해 못 하겠다는 얼굴로 눈앞의 침입자를 바라보았다. 음성이며 태도에서 전혀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상대는 아무래도 진심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인간은 간교하니 이 정도로 신뢰할 수 없지만…….
“무슨 수작인가, 인간! 그대는…….”
공용어로 외치다가 스탈라는 문득 웃었다. 생각해 보니 상황이 웃겼다. 저 인간은 능숙하게 오크어로 말하고 있는데 정작 오크인 그녀는 인간의 언어로 대답하고 있다니?
말하다 말고 스탈라가 오크어로 언어를 바꿨다.
“그대는 마치 우리들을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소.”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하며 레펜하르트는 스탈라를 똑바로 응시했다. 명백하게 적의가 사라진 상대의 눈동자를 보며 그는 속으로 흐뭇해했다.
‘일단 대화는 통한 것 같군.’
원래대로라면 이 황야의 오크들이 인간과 대화 따위를 나눌 리가 없다. 보이는 즉시 칼부터 들이대야 정상인 것이다. 조금 전 만났던 오크 스카우터들처럼.
저들이 오크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전사라는 것이 오히려 득이 되었다. 스스로의 강함에 자신이 있는 진정한 전사들이기에 상대가 오크어를 하는 걸 보고 당황할 정도의 여유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가 되었다 뿐이다. 오크들은 여전히 레펜하르트 일행을 경계하고 있었다. 조금만 분위기가 이상해져도 바로 무기를 휘두를 태세인 것은 여전하다. 레펜하르트가 조심스레 앞으로 나오며 말을 이었다.
“고결한 전사여, 우리들의 신뢰를 증명할 기회를 줄 수 있겠소?”
스탈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무리 오크들이 인간을 증오한다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단순하고 호쾌한 종족이었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니 무턱대고 적의를 일으키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눈앞의 인간은 축복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들의 언어를 저토록 능숙하게 구사하며, 저토록 정중하게 요청하는 상대를 이유 없이 내치는 것은 결코 전사의 도리가 아니었다.
스탈라의 어조가 누그러졌다.
“말해 보시게. 어떻게 자신들을 증명할 것인지.”
동시에 궁금하기도 했다. 대체 인간인 저들이, 오크인 자신들에게 무슨 수단으로 신뢰를 증명할 수 있을지.
레펜하르트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진정한 전사는 검으로 그 영혼을 빛내는 법. 우리의 진실됨을 증명하기 위해 호투好鬪의 의식을 제안하는 바이오.”
호투의 의식.
이것은 원래 오크 부족끼리 교류를 가질 때 흔히 벌어지는 의식이었다.
강자를 숭상하는 오크들은 서로의 기량을 겨루며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서로의 혼이 담긴 무기를 맞부딪침으로써 서로의 영혼이 통하며 진실로 상대와 교류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크들은 부족 단위로 교류를 가질 때 각 부족의 전사들끼리 서로 검을 나누어 상대의 신뢰를 측정하곤 했다.
비열한 자는 결코 강해질 수 없다!
그러므로 강한 자는 믿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오크들의 믿음인 것이다. 인간이 보기엔 참으로 단순 무식한 사고방식이겠지만, 적어도 이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문제는…… 저들이 과연 인간을 상대로도 호투의 의식을 인정할 것이냐인데…….’
내심 초조해하며 레펜하르트는 오크들을 바라보았다. 호투의 의식은 오크들의 풍습, 과연 이걸 이종족과의 관계에서도 인정할지는 확신이 없었는데…….
“호투의 의식이라니!”
“인간이 위대한 전통을 알고 있구먼!”
“대모님! 받아들입시다!”
역시 저들은 오크였다. 애당초 그렇게 깊이 생각하는 종족이 아닌 것이다. 레펜하르트의 제안에 표정이 일변하며 적의가 싹 사라지고 흥미 가득한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기 시작한다.
“인간 주제에 호방함을 알고 있군!”
“아무렴! 진정한 대화는 칼날이 부딪칠 때만 이루어질 수 있는 법이지!”
……기대 이상으로 신이 난 분위기다. 그저 상대가 자신들의 전통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호감도가 팍 올라간 모양이었다. 역시 오크들이 괜히 단순 무식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틸라며 시리스가 혀를 찼다.
“……다, 단순해!”
“역시 오크네요.”
그때였다. 스탈라가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오크들 사이의 술렁거림이 싹 사라졌다. 그녀가 레펜하르트를 진지한 눈빛으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레펜하르트는 속으로 침을 삼켰다. 아무리 오크들이 호응해 준다 해도, 눈앞의 이 오크가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스탈라가 말했다.
“인간이 위대한 전통을 알고 있군.”
“인연이 닿아서.”
내심 초조해하면서도 레펜하르트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문득 스탈라가 피식 웃었다.
“이름을 물어도 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