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98
☆ ☆ ☆
모든 오크들은 전사로 타고 태어난다.
그런 오크들에게 무기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스스로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자신이자, 피를 나눈 가족이나 아내보다도 더욱 가까운, 영혼이 이어진 맹우인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오크 전사는 검의 영혼과 소통할 수 있었다. 전사의 손에서 단련된 무기는 전사의 영혼을 나누어 받으며, 위대한 무기가 되어 그 영혼을 빛낸다는 것이 오크들의 믿음이다. 그리고 그 무기의 영혼을 이끌어 내 함께 싸우는 것이 바로 오크들 특유의 비전인 스피리츠 웨폰이었다.
이름을 불러 검의 영혼을 끌어내는 스피리츠 웨폰을 구사한다는 것은 오크들 사이에서도 진정한 전사의 증명.
잘카토가 자랑스럽게 검을 들어 보이며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날 꺾지 않으면 검도 꺾이지 않으리!”
실로 전사다운 호쾌함이 가득한 외침, 호투의 의식을 관전하던 오크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오오오오!”
“크아아아아!”
한편 시리스는 인상을 쓴 채 잘카토를 살펴보고 있었다. 당황하지 말라며 레펜하르트가 조언을 던져 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래서 저게 뭔데?’
달랑 이름만 알려 주면 어쩌라고? 좀 더 실용적인 설명을 해 줘야 할 것 아닌가?
레펜하르트도 아차 했는지 바로 말을 이었다.
“그냥 검이 엄청나게 단단하고 예리해진다고 보면 돼!”
사실은 숙련된 오크 전사의 경우 스피리츠 웨폰을 구사하는 훨씬 더 다양한 용법이 있지만, 거기까지 설명하자면 여기서 자리 깔고 강의를 해야 할 판이다.
“아…….”
그리고 이 정도만으로도 시리스는 만족했다.
‘그러니까 틸라 양의 대지 공명처럼 오크들 특유의 기술 같은 거라 이거지?’
퍼포먼스에 좀 놀라긴 했지만 듣고 보니 그렇게 대단한 기술은 아니었다.
‘그냥 상대가 명검을 들었다고 치면 되는 거 아냐?’
뭐, 이름난 명검들 가격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경제적인 기술이라 하겠다만, 전투에 있어서 크게 좌우될 정도는 아닌 것이다. 틸라가 구사하는 근력 뻥튀기에 비하면 상당히 떨어지는 감이 있다.
안심한 시리스는 당황을 가라앉히고 재차 몸을 날렸다. 은백의 시미터가 화려한 검무를 추어 댔다.
“하압!”
“크오오오!
잘카토도 오크다운 고함을 내지르며 다시 검투에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코 닿을 거리까지 근접한 순간, 시리스가 갑자기 몸을 최대한 낮추며 수면 차기를 날렸다. 당연히 검이 날아들 것이라 생각한 잘카토가 당황해 쌍검을 낮게 휘둘러 공격을 막으려 했다.
‘걸렸어!’
눈을 빛내며 시리스가 무릎을 접어 걷어차던 발길질을 회수했다. 칼과 달리 발차기는 이렇게 중간에 접어 버릴 수가 있다. 아슬아슬하게 쌍검을 피해 낸 뒤 시리스는 곧바로 늘어뜨린 쌍검의 칼날 옆 부분을 강하게 밟았다.
“타앗!”
그렇게 쌍검의 움직임을 봉쇄하며 시리스가 몸을 날려 참격을 날렸다. 잘카토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밟힌 검에 연연하다간 목이 날아갈 판이다.
“큭!”
결국 잘카토는 검을 놓고 재빨리 뒤로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다.
‘이겼다!’
시리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전사가 무기를 손에서 놓았으니 이보다 더 확실한 패배가 어디 있겠는가? 그녀가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잘카토가 손을 뻗으며 오크어로 소리를 질렀다.
“나의 맹우여!”
그 순간, 바닥에 떨어져 있던 두 자루 검이 제멋대로 붕 날아오르더니 시리스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이건 뭐야!’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분명 굴러다니고 있던 검들이 스스로 허공에 떠서 내리쳐지는 것이다. 화들짝 놀라며 시리스가 허겁지겁 시미터를 들어 두 검을 쳐 냈다.
타탕!
연거푸 금속음이 울리며 그녀의 시미터가 교차한 쌍검과 마주해 소음을 뿌려 댄다. 시리스는 허공의 검을 강하게 밀쳐 냈다. 튕겨 나간 검들이 두둥실 떠다니며 잘카토에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아차 싶은 레펜하르트의 외침이 이어졌다.
“아, 맞다. 가끔 검이 지가 알아서 날아다니기도 해!”
아무리 냉정한 시리스라도 저 소리를 듣고 나니 열불이 뻗치지 않을 수 없다.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쏙 빼먹다니?
“인간아! 그것부터 말했어야지!”
하도 기가 막혀 버럭 소리를 지른 뒤 시리스는 애써 숨을 골랐다. 잘카토가 허공에 뜬 두 자루 검을 재차 쥐며 감탄사를 건넸다.
“진짜 대단하다, 엘프 전사. 친구와 함께 싸워야 할 줄은 몰랐다.”
냉정을 되찾은 시리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하긴, 명색이 한 종족의 비전인데 무기 성능 올리는 정도로 끝날 리가 없지.”
잘카토의 공격이 이어졌다. 연신 반격하며 시리스는 진땀을 흘렸다. 쌍검을 교묘히 휘두르는 그 수법은 아까와 같았지만, 그 사이사이 상식 밖의 기술이 이어지고 있었다. 검을 휘두르다 말고 갑자기 허공에 놓아버리고 좌측을 공격하면 그사이 공중에 뜬 검이 그녀의 우측을 향해 날아드는 식이다.
“끄응…….”
연거푸 뒤로 밀리며 시리스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도 상대하기 힘든 잘카타였는데, 이젠 검 하나가 따로 놀며 엉뚱한 데로 날아오고 있으니 도무지 승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떠다니는 검 쪽은 움직임이 지극히 단순하다는 것이었다. 잘카토의 손에 들린 검이 예리한 궤도로 날아들며 급소를 노리는데 비해, 비검飛劍쪽은 문외한이 휘두르는 것처럼 기초적인 동작밖에 하질 못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진작 승패가 갈렸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딱히 현 상황을 타개할 방책이 없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이대로 패배를 인정해야 하나?’
어차피 이 호투의 의식은 상대를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잘카토로 하여금 전력을 다하게 만들었으니 이쯤에서 손 털어도 충분히 전사로 인정은 받겠지만…….
‘그래도 지는 건 싫어!’
시리스는 이를 악물었다. 겉으로는 냉정한 척 굴지만, 사실 그녀는 꽤나 호승심이 강한 성격이었다. 상대가 레펜하르트나 러스 같은 오러 유저라면 아예 경지가 다르니 패배해도 어쩔 수 없다 하겠지만, 기량 면에서 큰 차이도 없는데 종족적인 특성 때문에 패배하는 것은 너무 억울했다.
‘가만, 종족 특성?’
문득 시리스의 눈이 빛났다. 상대, 잘카토는 오크 특유의 비전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엘프들에겐 특유의 비전이 없는 건가?
아니었다.
“에잇!”
뭔가 떠오른 듯 그녀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반짝였다. 시리스가 기합을 외치며 공중으로 높게 몸을 띄웠다. 엘프다운 도약력으로, 그녀의 신형이 잘카토의 머리 위를 한참 지나 하늘 높이 떠올랐다.
“으응?”
잘카토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상대의 움직임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잘 싸우다 말고 갑자기 웬 헛짓거리?’
상대보다 높은 위치를 점유하는 것은 분명 전투에 있어 유리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뭐든지 정도가 있는 법이다. 저렇게 높게 뛰어 봐야 허공에 발판이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제 움직임만 제한될 뿐인 것이다. 전투의 무리에서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는 짓이다.
‘이겼군.’
마음을 놓으며 잘카토는 스피리츠 웨폰을 발동, 두 검을 움직여 허공으로 내던졌다.
“가라! 맹우여!”
그때였다. 갑자기 부드러운, 감미롭기까지 한 목소리가 잘카토의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나의 친구 사라나, 우정의 이름으로 당신을 불러요…….”
노랫가락 같은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한 줄기 바람이 불어 허공에 응집된다. 대기의 흐름이 어지러이 얽히며 귀여운 소녀의 형상을 일구어 낸다.
관전하고 있던 레펜하르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바람의 정령, 사라나?”
단하임 일족을 떠난 이래 시리스가 틈만 나면 정령술 수행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은 레펜하르트도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마법을 가르칠 틈이 안 생겨 살짝 불만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벌써 정령 구현이 가능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을 줄은 몰랐다.
‘아무리 니힐렌의 조력이 있었다지만, 상당한 진도인데?’
소환된 바람의 정령, 사라나가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며 신비로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불렀나요? 내 친구 세렌디…….”
그렇게 막 우아하게 말을 이으려던 찰나였다.
푹!
시리스가 정령의 머리를 짓밟아 버렸다!
“꽥!”
실로 인간미 넘치는 비명이 저 신비로운 바람의 정령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렇게 시리스는 사라나를 발판 삼아 허공에서 다시 몸을 날렸다. 떨어지는 궤도를 예측하고 검을 던졌던 잘카토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어어?”
단숨에 잘카토의 등 뒤로 떨어진 시리스가 그의 목덜미에 검을 겨눴다.
“체크메이트!”
자칼토가 신음을 흘리며 패배를 인정했다. 스탈라가 손을 들어 올리며 우렁차게 외쳤다.
“이방인이 승리하였다!”
일행에게로 돌아오는 시리스를 향해 실란이 호들갑을 떨어댔다.
“괜찮아, 시리스? 혹시 다친 덴 없고?”
“멀쩡해요, 실란.”
레펜하르트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수고했어, 시리스.”
“네, 레펜하르트 님.”
반겨 주는 동료들을 향해 시리스는 빙그레 웃었다. 틸라가 문득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런데 그거 막 밟아도 돼요? 어째 삐친 것 같던데…….”
틸라는 똑똑히 보았던 것이다. 소환되자마자 봉변당한 바람의 정령, 사라나가 연신 뭔가를 구시렁대며 흐릿하게 사라지는 광경을.
“표정이 왕창 구겨진 게, 아무래도 좋은 감정 가진 것 같지는 않던데요?”
시리스가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레펜하르트가 걱정 말라며 부연 설명을 붙였다.
“정령은 순수한 존재, 자연의 근원에 닿은 존재들이야. 인간들처럼 사소한 일을 일일이 기억하는 존재가 아니거든.”
즉, 어차피 다음에 소환될 때쯤엔 이번에 있었던 일은 싹 잊었을 것이라는 소리다. 러스가 입을 쩍 벌리며 중얼거렸다.
“……붕어 대가리냐?”
신비롭다는 정령에 대한 이미지가 대폭 감소하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정령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시리스도 속으로는 내심 반성하고 있었다.
“에휴, 다음에는 이러지 말아야지…….”
나직한 그녀의 혼잣말에 레펜하르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의 정령을 ‘밟아 가며’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몸을 놀리는 것이 바로 전생의 그녀가 가장 애용하는 전법이었다는 걸.
‘나중에는 동시에 12개체를 소환해서 밟고 다니기도 했었지, 아마?’
정령을 저리 막 대하고도 7대 정령술을 몽땅 마스터한 걸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그랬다.
‘하긴, 나중에는 바람의 정령들이 손으로 받쳐 주곤 했으니 별로 기분 나쁠 건 없었겠다.’
하도 밟히다 보니 나중엔 바람의 정령들도 알아서 두 손으로 그녀의 발판을 마련해 주는 지경까지 갔던 것이다. 그걸 보며 정령들이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은 틀린 속설이 아닐까 학술적인 고민을 한 적도 있다.
‘하여튼 시리스 쟤도…… 평소엔 엄청 예의 바른데 일단 친해지면 은근 막 대하는 구석이 있단 말이지.’
레펜하르트가 자신을 멀뚱멀뚱 바라보자 시리스가 왜 그러냐는 듯 눈을 흘긴다. 고개를 저으며 레펜하르트는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서 스탈라가 다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호투의 의식, 두 번째 결투를 진행하겠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자, 나오라!”
오크어는 모르지만 다들 분위기만으로 스탈라가 뭐라 하는지 대충 눈치 챌 수 있었다. 틸라가 자신의 배틀 액스를 움켜쥐며 웃었다.
“으차! 이번엔 제 차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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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라는 아쉽게도 패배했다.
딱히 그녀의 기량이 모자라서는 아니었다. 틸라도 초반에는 오크 전사와 호각을 이루며 뛰어난 무위를 선보였다. 문제는 오크 전사가 스피리츠 웨폰을 구사하기 시작한 다음부터였다.
틸라와 싸운 상대는 거대한 한 자루 해머를 다루고 있었는데, 주로 체술로써 상대를 압박하다가 틈이 보이면 그 거대한 해머로 필살의 일격을 날리는 수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 오크 전사가 해머에 깃든 혼을 끌어내기 시작하자 양상이 달라졌다. 스스로 날아다니는 해머의 일격 사이로 오크 전사는 맨손 체술을 구사, 틸라를 정신없이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기술적인 면이 뛰어난 시리스는 상대가 양방향에서 공세를 퍼부어도 감당할 만한 기량이 있었지만, 파워로 밀어붙여 상대가 기술을 발휘하기 전에 끝내는 방식인 틸라의 전법은 아무래도 상성이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