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종말, 그리고 11년 후.』
“이런 괴물 같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부릅뜬 윌리엄이.
털썩.
쓰러졌다.
힘을 다한 그 육신은 한동안 꿈틀대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죽은 건 아니다.
다만 모든 힘을 소진하여 의식을 잃을 것뿐.
그건 단지 윌리엄의 상황이 아니었다.
그가 쓰러진 주변, 둥글게 원을 그리듯이 쓰러진 다수의 이들이 존재했다.
그 면면을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검성 윌리엄, 투귀 한영우, 독마 리우옌, 현자 율리우스 등, 현재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인 백의의 간부들이었다.
도대체 누가 있어서 그들을 궁지로 몰 수 있을까?
“크하하하하하하!”
콰르릉!
천둥이 울리는 듯한 광소(狂笑).
둥글게 쓰러진 중앙, 그곳을 지키고 있는 건 일남일녀였다.
『天魔』
흑색 장포, 그 뒤에 새겨진 천마라는 단어는 오직 한 사람만이 새길 수 있는 것.
오강 중 하나이자 가장 많은 각성자를 보유한 강호의 수장인 천마, 그의 표식이었다.
그런데 그도 정상은 아니다.
잘리고 찢어진 장포, 그리고 죄인과 같이 산발한 머리칼은 부분 부분이 회색으로 물들어 있다.
“말하지 않았느냐. 너희는 본좌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광소를 터뜨린 천마가 의기양양한 채 말했다.
그건 자만이나 오만함이 아니다.
홀로 검성을 비롯한 백의의 간부들을 모두 처리했으니 실력에서 비롯된 자신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 다양한 검이 수직으로 꽂힌 그곳은 검총(劍塚).
무림이라는 무대에서 발생한 시련인 ‘무림혈겁(武林血劫)’의 승자는 이대로 천마가 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저벅.
그에게 다가오는 이가 아직 한 명 남아 있었다.
“후우-”
후방의 병력, 천마의 친위대를 정리한 후 홀로 모습을 드러낸 그는 강존 윤찬.
“호오? 네 녀석은 강존이로군. 번번이 본좌의 계획을 방해한 시건방진 놈.”
“….”
윤찬은 대답하지 않았다.
번뜩이는 시선으로 주변을 훑었고.
‘죽지 않았다.’
동료들 모두가 죽지 않은 것을 깨닫곤 안도했다.
“동료들이 살아 있음에 안도하는 것이냐? 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다. 어차피 너도, 그리고 이곳의 모두가 본좌의 손에 죽을 테니까.”
오만하다 못해 광오하다.
하지만 홀로 이곳에 있는 백의의 간부들을 모두 쓰러뜨릴 실력이라면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아니. 녀석의 힘만이 아니지.’
윤찬은 천마의 뒤에 있는 여인을 응시했다.
천마와는 달리 백의를 입은 그녀는 투명할 정도의 하얀 피부를 가진 중년의 여성이었다.
‘신의 슈에리!’
신의.
영혼만 붙어 있다면 살릴 수 있다는, 의술이 극치에 다다른 이.
윤찬은 알고 있었다.
천마가 동료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건 그녀의 공이 지대하다는 것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신의의 침술은 원기마저 회복시킨다.
잠재력을 폭발시키기도 하고, 잘린 사지도 멀쩡하게 복구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가장 무서운 이유는.
‘영단(靈丹)의 제작.’
천마가 초반에 치고 나갈 수 있었던, 그리고 지금처럼 강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그녀는 각종 약초를 배합하여 영단이라는 신비한 힘이 담긴 단약을 제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영단이라는 게 참으로 신묘하다.
지친 원기를 회복하는 건 물론 때때로 아주 강력한 영단은 특성의 진화를 이뤄주기도 한다.
그러한 능력을 지닌 신의의 특혜를 몰아받은 천마다.
그가 지금의 위치까지 오는 건 어쩌면 당연히 정해진 수순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힘이 천마를 지탱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특성은 천마를 보호해주고 있었다.
아무리 천마라는 존재가 강하다고 해도 백의의 간부들 또한 만만치 않다.
아니, 이 정도 인원의 차이라면 쓰러졌어야 하는 건 천마인 게 분명하다.
그런데 신의의 존재가, 그녀가 천마를 치료해 준 덕분에 그 모든 게 역전되고 말았다.
파파파팟!
천마의 전신에 꽂히기 시작한 침.
육신의 중요 혈을 자극하여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있었다.
그녀가 천마의 옆에 붙어 있는 이 괴물은 지치지 않는다.
“당장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수명을 낭비한 셈이냐?”
하지만 윤찬은 천마의 상태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대혈을 자극하는 신의의 수법은 분명 고명하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그 증거는 회색으로 물든 머리칼이다.
아무리 침술과 영단이 대단하다고 해도 그것이 만능은 아니다.
지금 신의가 펼치고 있는 침술은 선천진기(先天眞氣)를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인간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어떻게 보면 생명 에너지라 할 수 있는 것.
그것을 격발하면서 놈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어차피 죽으면 모든 게 끝. 본좌는 여기서 살아남아 지금 소모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얻어낼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종말에서 생명을 늘릴 방법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수명마저 버린 판단을 했다면 아무리 윤찬이 강존의 위에 있는 강자라고 해도 천마를 감당할 순 없다.
지금의 천마는 십존을 안중에 두지 않는 강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마, 네 녀석의 악행도 여기서 끝이다!”
장내에 울리는 웅후한 외침.
파앗!
그와 함께 장내에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었다.
“네 놈들은…?”
줄곧 광오함을 내비치던 천마의 눈가에 그늘이 졌다.
그럴 수밖에.
모습을 드러낸 이들, 그들은 무림에서 이름을 날린 최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검선(劍仙) 독고진.
신승(神僧) 법현.
도왕(刀王) 팽도혁.
걸개(乞丐) 홍로염.
본래는 무림혈겁에 뛰어들지 않을 이들이었다.
그러나 윤찬의 끈질긴 설득과 구애, 그리고 선물 공세(?)에 결국은 은거를 깨고 모습을 드러냈다.
“가짜 천마여. 내 비록 은거한 상태로 무림의 일에 개입하지 않으려 했으나 그 오만방자함이 도를 넘었으니.”
“아미타불! 무림의 존속을 위하여 그대를 제압할 수밖에 없음을 헤아려 주시오.”
“쯧. 요즘은 개나 소나 다 천마지. 아주 가짜가 판을 친단 말이야.”
“끌끌. 도왕, 너무 그렇게 면박 주지 마시오. 어차피 가짜는 곧 사라지게 될 터이니.”
무림에서 천마의 위치라는 건 가짜였다.
그리고 그건 천마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놈들-”
콰르르르릉!
기세를 담은 그 외침이 장내에 울려 퍼졌지만.
“….”
누구 하나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 있는 네 명은 전대에 천하제일로 불렸던 고수들.
자칭 천마라 칭하는 그의 기세에 주눅들 일은 없었다.
“무림에 혈겁을 일으킨 죄. 달게 받아라!”
먼저 손을 쓴 건 독고진이었다.
스윽.
그가 손을 들자.
웅웅웅!
주변에 꽂혀 있던 수백 자루의 검이 돌연 가늘게 진동하더니 공중에 뜬 상태가 되었다.
기를 연결하여 검을 부리는 이기어검술.
그것도 한두 자루도 아니고 수백 자루의 검을 동시에 부리는 지고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가라!”
검선의 손길에 따라.
슈와아아악!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각 방위를 점한 검이 천마를 향해 쇄도했다.
하나의 검에 실린 위력만 해도 능히 태산을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
그런데 그것이 수백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천마라고 해도 검선의 공격을 버텨낼 재간이 없다.
“슈에리!”
급박한 그 순간, 천마는 신의의 이름을 외쳤다.
“하, 하지만….”
망설이는 듯한 모습.
“빨리!”
“….”
천마의 재촉에 그녀는 품속에 지니고 있던 주머니를 풀어 그곳에 있는 영단을 꺼냈다.
으적으적.
그것을 받아든 천마가 수십 개에 달하는 영단을 모두 씹었고.
푸욱!
머리, 정수리 부근에 엄청난 침을 꽂아 넣었다.
그 순간.
부우욱-
천마의 몸을 감싸고 있던 흑색 장포가 찢어졌다.
그 사이로 드러난 건 엄청나게 발달한 근육.
“크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른 천마.
잠혈을 격발하여 엄청난 힘을 얻은 대신 이성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불행을 낳았다.
촤아악!
“끄윽!”
이성을 잃은 천마는 눈앞에 있는 신의를, 슈에리의 육신을 찢어발겼다.
“아-”
부릅뜬 두 눈에 가득 담긴 건 원한이 아니라 안타까움이었다.
“이놈-”
그 끔찍한 광경에 분노한 검선의 검의 더욱더 위력을 담았다.
그러나.
쾅, 콰콰쾅!
모든 잠혈을 격발한, 잠재력을 폭발시킨 천마는 그 검을 모두 맨손으로 받아냈다.
“허-”
“생명까지 격발한 건가?”
“조심하시오!”
조금 전까지는 천마를 안중에 두지 않던 이들이 긴장한 듯 서로에게 경고를 전했다.
“크아아아아악!”
힘을 주체하지 못한 천마가 자신의 가슴을 마구 두드린다.
“….”
그 모습을 잠깐 응시하던 윤찬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제 말을 들어주세요.”
뻐끔거리며 겨우 말을 잇는 슈에리.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간절함이 느껴지는 그 말에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와 대화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천마.
영단과 침술로 잠재력, 생명력까지 모두 격발한 그 괴물을 처리해야만 한다.
까앙-
어느새 꺼내든 모루를 들어 망치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화아악!
네 명의 전대 고수가 손에 든 무기에서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
사실 그건 도박 수였다.
회귀 전 신의 특성을 개화했던 슈에리.
비록 지금은 그게 빙빙에게 옮겨갔지만, 무언가 연관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래서 회귀 전의 신의였던 슈에리의 이름을 언급했고, 그녀가 이 미끼를 물기를 바랐다.
그러나 3일 동안 연락이 없어 그것이 실패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본론만 말할게요.」
“예. 그게 제가 바라는 바이기도 하죠.”
피차 시간이 많은 건 아니다.
본론만 이야기해서 빠르게 서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지.
「슈에리.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역시, 미끼를 제대로 물었다.
“흠. 어떻게 알고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 이름을 댄 것만으로 내게 연락을 취했다?
그렇다면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맞아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혹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슈에리, 그녀와 관련한 것으로.”
기색을 읽고서는 찔러보았다.
「네. 도움이 필요해요.」
역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돕죠. 물론 그에 대한 대가도 있어야 하겠지만.”
내심 그 대가에 대해서는 정해둔 바가 있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부탁할게요.」
잠시 숨을 돌린 그녀.
아마도 내가 슈에리의 문제를 알고 있다는 것이 믿음을 준 모양이다.
아니면 콜로세움에서 벌인 일, 그것이 영향을 줬을 수도 있고.
어찌 됐든 그녀가 내게 의지한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이다.
「제발, 제발 우리 엄마를 치료해 주세요.」
엄마를 치료해 달라?
슈에리를 이야기하는 도중 나온 갑작스러운 이야기.
그렇다는 건 단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 엄마. 슈에리가 죽어가고 있어요. 흑흑.」
그제야 확실히 알게 된 사실.
‘회귀 전의 신의, 슈에리가 모종의 이유로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딸인 빙빙이 신의 특성을 물려받은 상태고.
그건 내가 모르는 사건.
“위치를 이야기 해주세요. 지금 당장 달려갈 테니까.”
하지만 망설일 이유가 없다.
신의, 내 강화 특성과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킬 그 특성의 각성자를 얻을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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