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중국 안휘성 보저우.
빙빙의 전화를 받은 직후 진우의 포탈을 이용해 그곳으로 이동했다.
“와! 약재상이 엄청 많은데요?”
주변을 돌아보던 예일이 모처럼의 구경에 신난 듯 말한다.
그녀의 말처럼 길을 가는 내내 자리한 약재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약초 특유의 풀 내음, 한약 달이는 냄새 등이 온 거리에 퍼져 있었다.
“보저우는 화타의 고향이거든.”
보저우는 신의라 불렸던 화타의 고향.
그 유명세를 이용하여 약재상이 관광 상품화한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좋지 않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는 다른 이들에 비해 리우옌의 표정은 영 좋지 않다.
그럴 수밖에.
‘약초는 녀석에게 독과 다름없으니까.’
독을 내부에 쌓아 힘을 키우는 특성인 독마.
그런데 그것을 해독하거나 희석하는 약초는 녀석에게 독이나 다름없었다.
쉽게 말해 우리가 독을 보면 불쾌감과 공포를 느끼듯 리우옌은 그 반대의 약초에서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었다.
녀석에게 쭈욱 펼쳐진 약재상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될 순 없을 것이다.
“불쾌해도 조금만 참아. 우리의 목적지가 이곳이니까.”
불쾌한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의 목적지, 빙빙을 만나기로 한 장소가 이 약재상 중 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약재 있습니다!”
“한 번 먹으면 머리가 맑아지는….”
끈덕지게 달라붙는 호객을 피해 골목 어귀로 진입했다.
바깥보다 훨씬 조용하고 차분한, 관광이 아닌 진짜 약재를 팔기 위한 공간이었다.
한산한 그 골목길의 끝.
『화공(華公)』
약재상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은, 그리고 끄트머리에 자리한 곳이었다.
“어서 오세요.”
그리고 그곳에 우리를 반기는 이가 있다.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길게 떨어지는 소복을 입은 미녀.
‘빙빙,’
콜로세움에서 놀라운 활약을, 그리고 신의 특성을 선보였던 빙빙.
이곳 보저우의 약재상에 방문하게 된 건 그녀의 요청 때문이었다.
“안내할게요.”
가타부타 말없이 약재상 안으로 우릴 안내 했다.
“….”
물론 나도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통화를 통해 대강의 내용은 들었다.
이제 그 자세한 상황을 확인할 때였다.
“여기예요.”
약재상 안, 그 안에 마련된 방 안.
오싹!
좁은 그 공간 안은 싸늘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뭐야, 이 기운은?”
“심상치 않다.”
오죽하면 그 정도환마저 인상을 쓸까.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한기를 뚫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있는 건 반듯이 누운 사람이었다.
공손히 포갠 양손은 배꼽 위에, 대자로 누운 채 미동도 없다.
‘슈에리.’
익숙한 얼굴.
물론 회귀 전보다는 훨씬 젊어 보지이지만, 그것을 감안 해도 그녀는 분명 슈에리였다.
모종의 이유로 인해 천마의 곁을 지켰던, 그러다 끝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이.
‘딸을 지켜달라 했었지.’
천마에 의해 사지가 찢긴 그녀는 마지막 순간 내게 자신 딸을 부탁했다.
천마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걸 알면서도 그것이 딸을 구할 수 있는 길이었다며 속죄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다.
아픈 딸을 지켜준다면 그 보답으로 자신이 만든 최고의 영단, 아니 신단(神丹)을 준다는 조건과 함께.
하지만 그녀가 알려준 비밀 장소에 남아 있는 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폭사한 시체뿐.’
그것이 슈에리의 딸이었다는 걸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잔혹한 천마는 자신의 죽음과 함께 슈에리의 딸이 죽도록 안배를 해놓은 것이었다.
‘아마 그 딸이 빙빙이었겠지.’
이름이라도 언급되었으면 바로 알아챘을 테지만, 그렇지 못했다.
과거의 상념을 지우며 다시금 슈에리를 응시했다.
‘죽었….’
처음에는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아-”
들린다.
그녀가 숨을 쉬는 소리가.
산소를 들이마신 배가 부풀었다 줄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니 정상적으로 호흡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참 기현상이다.
‘차가워.’
몸이 차갑다.
이 정도면 뭐 얼음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냉골이었다.
심장?
당연히 뛰지 않는다.
피부는 차갑게 식었고, 심장박동 또한 없는 데 멀쩡히 숨은 쉬고 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육체는 죽었으나 혼백이 남아 있다.’
그건 내가 본 적 없는 경우였다.
그러나 율리우스가 심어준 정보는 이 현상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종종 있다.
육체는 죽었으나 과도한 집념이 남아 혼백이 세상에 머무르는 경우가.
그 혼백이 일으킨 영향으로 육신의 주위는 엄청난 한기가 몰아치는 등의 현상이 일어난다.
“빙빙.”
이제 17살, 생각한 것보다 더 어린 그녀를 불렀다.
“무슨 일이 있었지? 이야기해 줄 수 있겠어?”
아무래도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이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
슬픔을 삼키듯 잠깐 입을 앙다문 그녀가.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무척 아팠어요.”
알고 있다.
신의 특성을 각성한 슈에리도 고치지 못할 정도의 불치병이었을 것이다.
뭐, 그것이 어떤 병이든 중요한 건 아니고.
“엄마는 아픈 절 위해 스스로 희생…하신 것 같아요.”
그러면서 품을 뒤적거려 구겨진 종이를 꺼냈다.
그곳에 기록되어 있는 건.
『선천이식(先天移植)』
자신의 선천진기, 생명력을 이식하는 방법이었다.
“하-”
그 대법을 보는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모든 생명력을 전해주고 가사 상태가 된 건가?’
본래는 살아 있었을 터다.
그러나 강제로 생명력을 이식하는, 금단의 대법을 실행하는 바람에 인과율의 법칙을 비틀어버렸다.
그녀의 혼은 여전히 육체에 남아 있으나 육체 자체는 죽어버렸기에 이러한 괴현상이 벌어진 것.
“…어때요? 치료할 수 있을까요?”
은근히 묻는 말.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 건가?’
큰 기대는 없어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선천이식을 통해 슈에리의 신의 특성을 계승했다.
그녀의 상태를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을 터다.
신의 특성으로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괴질.
그것을 고칠 거라는 기대가 크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그냥 희망이라는 것을 품을 수 있는 순간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통해 잠깐이라도 이 슬픔과 죄책감을 잊을 수 없는 순간이 필요한 것이다.
‘회귀 전, 슈에리가 그러했듯이.’
슈에리 또한 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천마에게 복종했다.
그녀 자체의 심성은 선한 편이었으나 딸을 살리기 위한 일이라며 그 악행을 도왔다.
약간의 희망.
천마라면 종말에서 어떻게든 생존하여 딸을 치료할 수 있는 어떤 단서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모녀의 운명이 기구하네.’
그 기구한 운명에 가벼이 혀를 차며.
“방법?”
“예.”
“확실히 어려운, 아니 괴질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지. 육체는 죽었는데 혼백이 남은 경우니까.”
“…증세를 아시는군요?”
꽤 놀란 듯한 얼굴.
“증세를 아는 거야 어렵지 않지. 다만 이걸 치유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일 뿐.”
“치유는, 치유는…가능할까요?”
힘이 없는 그 말에.
“가능하지.”
“역시…예, 예?!”
“역시라니. 기대를 한 거야, 만 거야.”
“아니, 그게…이게 고칠 수 없는, 그러니까 그게….”
횡설수설이다.
아마 예상했던 답변이 나오지 않아 당황한 것 같다.
미안하다, 고칠 수 없다.
그런 답변을 예상했을 텐데, 고칠 수 있다고 하니 당황할 수밖에.
“백 퍼센트 확답은 아니지만, 고칠 만한 방법이 있긴 하지.”
“그게 뭐죠?”
그게 뭐든, 설사 지옥에 가는 일이라 해도 당장 찾아갈 듯한 기세다.
“뭐긴 뭐야.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신의를 찾아가야지.”
“…신의?”
의문이 가득한 얼굴이다.
신의라면 자신이다.
그런데 신의를 찾아가다니 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게 들릴까.
“너 같은 애송이 신의 말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칭송되어온 신의.”
“…아!”
그제야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친다.
“화타!”
“그래. 진정한 신의를 찾아가야지.”
마침 허창에서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였다.
화타의 묘가 있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일의 배후.
‘진정한 신의만이 슈에리를 고칠 수 있을 테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진정한 신의 화타.
그를 데려올 수 있다면 이 괴질을 치료하는 게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
좁은 탁자 위.
탁!
두 사람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검은 로브로 전신을 가린 그들의 가슴에는 검은달을 상징하는 배지가 달려 있다.
그것도 거의 달 모양이 보이지 않는 형태.
그것은 두 사람이 검은달에 소속된 간부 중에서도 최고위의 간부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탁!
차를 움직여 구석의 상을 먹어 치운 사내.
“최근 신인 님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십니다.”
사내는 신인의 심기를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의 최측근.
“알고 있습니다. 최근 일어난 임무에서 번번이 실패했으니.”
상이 먹혀 위기에 몰린 사내.
그는 골똘히 생각하는 척하며 마를 움직여 상대의 상을 먹었다.
“흐-”
나름 흡족한 수였을까.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으나.
“섣부른 판단이었습니다.”
졸 뒤에 숨겨둔 포, 그것이 움직여 순식간에 왕을 잡아먹을 발판을 만들었다.
“장군입니다.”
“허, 이런!”
외통수다.
포를 피하자니 상대의 차가 움직이고, 차를 피하자니 포를 막을 방법이 없다.
“제가…졌습니다.”
승부욕이 강한 그가 몸을 살짝 떨었다.
“내기에선 제가 이겼군요.”
“…그래서 하실 말이라는 게?”
장기는 부탁을 들어주는 내기 조건으로 행해진 것.
“이 이상의 실패는 용납하기가 힘들 겁니다. 그러니 부디 심혈을 기울여 이번 임무를 완수해 주심이 어떠신지.”
그건 은근한 명령이었다.
비록 내기에서 이긴 사내가 조금 윗선에 있다곤 하나 십천(十天)이라 불리는 그들은 서로를 대우할 수밖에 없는 구조.
지금과 같은 부탁은 어떻게 보면 강경한 명령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흠. 뭐, 내기에 졌으니.”
펄럭-
마침내 로브를 벗은 사내.
칠흑처럼 새까만 머리칼, 부리부리한 눈, 그리고 하늘을 향해 쭉 뻗은 눈썹.
그야말로 쾌남의 정석임을 보여주는, 강인한 인상의 사내였다.
고오오오!
가만히 있어도 주위로 뿜어져 나오는 검은 기운이 천마기(天魔氣)가 불꽃을 일으키며 주변을 살라 먹는다.
압도.
아마 다른 평범한 각성자가 주위에 있었다면 그 기세를 견디지 못한 채 졸도하고 말았을 것이다.
뭐랄까.
그는 마치 한 마리 검은 학처럼 고고한, 그리고 절대자의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내 전력을 다하여 놈들을 끝장내 보겠습니다.”
길게 떨어지는 흑색 장포의 뒤에는 天魔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천마.
회귀 전 강호라는 오강 중 하나를 이끌었던 절대자 중 하나.
하지만 지금은 검은달에 소속되어 신인의 휘하 십천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저벅, 저벅.
그가 발걸음을 재촉하며 밖으로 나간다.
“….”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내는.
‘이걸로 그간의 골칫거리는 해결한 셈이로군.’
틱.
상대의 왕, 그것을 옆으로 튕겨버렸다.
천마가 나선 이상 이번 임무, 허창에서의 결전은 허무한 결말을 맞게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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