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1
011화.
「…에서 일어난 총격전은 조직 폭력배 간의 세력 다툼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으며,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강력계에선 이번 총기 사건을 계기로 강력한….」
속보로 뜬 뉴스.
“역시 권력과 돈이 최고야!”
하지만 그 뉴스엔 알맹이가 쏙 빠져 있다.
가장 깊숙이 연루된 강철준과 내 이름이 쏙 빠져 있는 것이다.
10m마다 CCTV가 설치된 대한민국에서 녀석과 나를 특정하지 못하는 게 말이 되나.
그럼에도 뉴스(다른 모든 언론 매체도 마찬가지)에 보도되지 않은 것은 강회장의 힘이었다.
그 정도의 거물이 움직인다면 언론을 휘두르는 건 일도 아니다.
“앞으로 활동이 편해지겠어.”
아무리 강화라는 특성이 있어도 그것만으로 해결 못 할 일이 수두룩하다.
당장 이번 건만 봐도 그렇다.
건달들이야 어떻게 처리한다 해도 사후 처리가 문제였다.
만약 강회장이 손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쯤 철창에서 콩밥이나 먹고 있겠지.
법과 질서가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 현대에서 무력만으론 버텨 내기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굴지의 대기업 태왕 그룹의 강회장에게 빚을 두 개나 지워 뒀으니 앞으로의 활동이 탄탄대로다.
“보자….”
노트 위에 춤을 추는 펜.
슥슥슥.
새까맣게 적힌 건 이름.
미래, 1년 뒤 다가올 종말에서 활약할 이들의 명단이다.
처음엔 종말이 1년이나 남았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무려 1년이나 남았다.
그 말인즉 미래에서 명성을, 그리고 악명을 떨칠 이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첫 번째는 이 녀석이 될 수밖에 없다.
『박장일』
종말이 구원이라면서 그것을 앞당기려는 미치광이.
실제로 녀석 때문에 종말을 멈추려는 이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했다.
놈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박장일에 이어 동그라미를 친 이름.
『성예일』
교주에 의해 세뇌당한 성녀(聖女).
사실상 교주의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었던 그녀의 운명을 바꿔야만 한다.
띠리리리리!
기본 소리로 설정한 스마트폰의 벨이 울린다.
액정에 찍히는 이름은 호랑이.
저장해 놓은 강회장의 이름이었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요청했던 박장일. 찾은 것 같네.」
“이야. 부탁드린 게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말입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의 부탁이니 해야지.」
확실히 달라진 태도를 느낄 수 있다.
장뇌삼을 줬을 때까지만 해도 약간 신기한 애송이 정도로 생각했으나 이제는 다르다.
뭐랄까.
사업 파트너?
더는 아래가 아니라 동격의 상대를 대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걸 직접 전화까지 주시고. 아랫사람 시켜도 되는데 말입니다.”
「다시금 말하지만, 자네니까.」
“존중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그 사이비 교주, 아니 박장일의 소재지는 어딥니까?”
「입으로 말하기 그렇군. 메일로 그에 대한 자료를 보낼 테니 확인해 보게.」
고작 반나절.
하지만 강회장이 얻어낸 한 사람의 정보라는 건 반나절이라는 짧은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방대한 것이었다.
“호오?”
게다가 그 정보에는 추가로 요청했던 성예일의 것까지 아주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
지하철역.
가장 많은 유동 인구가 몰리는 장소 중 하나.
물론 유동 인구가 많다는 건 그만큼 많은 벌레가 꼬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낯빛이 상당히 안 좋으시네요. 조상신이….”
“도를 믿으십니까? 시간이 되신다면 저희와 함께….”
전형적인 사이비들의 포교 활동.
‘쯔쯔. 시대가 어느 시댄데 아직도 저런 구닥다리 멘트를.’
쪼옥-
지하철역이 한눈에 보이는 카페 안 창가.
따뜻한 난방이 흘러나오는 그곳에 앉아 구닥다리 포교 활동을 지켜보는 중이다.
대다수는 여자다.
아무래도 남자보단 여자가 접근하기 쉬울 테고, 또한 젊은 남정네들을 홀릴 수 있으니 당연한 선택이다.
그리고 내가 찾고 있는 것도 여자이긴 하다.
그런데 쟤도 아니고, 쟤도 아니다.
‘여기도 글렀나.’
인근에서 출몰(?)한다는 정보를 듣고 근처 지하철 및 유동 인구가 몰리는 지역을 돌아다니는 중인데, 좀처럼 성과는 없다.
이렇게 오래 걸리는 줄 알았으면 강회장이 사람 푼다고 했을 때 그냥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둘 걸 그랬나.
‘그랬다간 강회장의 신뢰를 얻을 수 없을 테지.’
태왕 그룹이라는 태산의 정점이 내게 관심을 보이는 건 내가 그만큼의 능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 하나 못 찾겠다고 힘을 빌려 달라고 한다?
대번에 실망하여 그 신뢰는 깨지고 말 거다.
필요한 부탁 이외에는 요청하지 않는 게 좋다.
어디까지나 강회장과 나는 사업 파트너.
그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조폭 100여 명을 정리한 것과 같은 발군의 능력을 보여야만 한다.
“어?”
그 순간 보이는 익숙한 얼굴.
머뭇머뭇, 사람들을 향해 다가가 말을 걸어 보려 하지만 정작 말을 거는 본인이 주저하는데 누가 그걸 상대하려 할까.
‘이야, 풋풋하네, 풋풋해.’
후에 성녀라 불리는 이의 풋풋한 시절이 되게 낯설다.
그도 그럴 게 손짓 한 번으로 바다를 갈라 버리는 초월적인 힘을 발휘했던 이다.
그런 인외(人外)의 존재가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해 머뭇거리다니.
쪼오오옥-
추운 겨울,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원샷 때리며 카페를 나왔다.
최대한 티 나지 않게.
“….”
괜히 주변을 서성거리며 그녀의 레이더에 걸릴 수 있도록 티를 냈다.
“….”
그런데 안 온다.
아니, 조금 전까지는 시도라도 하더니 내겐 말을 붙일 기색도 없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빨리 오라고.
여기 싱싱한 호구 한 마리 있으니까 빨리 물고 가라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 때문일까.
“…저기요.”
마침내 다가온 성예일.
무슨 샴푸를 썼는지 가까이 다가오기 무섭게 머리칼에서부터 은은한 향이 풍겨온다.
이제 20살.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새내기다.
미래에서 보았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와 같은 풋풋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예.”
너무 기다린 티가 났던 걸까?
움찔 놀란 듯 살짝 뒷걸음질 친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 입술을 질끈 깨물고서는.
“제, 제가 대학교 과제로 설문 조사를 하려고 하는데….”
어휴, 이 사람아.
그렇게 불안하게 눈알을 좌우로 굴리면 해 주려고 했던 사람도 안 해 주겠다.
왜 미인상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대차게 까였는지, 대화를 나눠 본 순간 확실히 알겠다.
“아, 대학교 과제요. 추운 날씨에 수고하시네요. 그럼 가까운 카페라도 가서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예?”
아이고!
급한 나머지 상대가 칠 대사를 먼저 쳐 버렸다.
“아니, 날씨도 춥고 하니까….”
“….”
어째 눈빛이 변태를 바라보는 듯하다.
“…싫으면 말고요.”
“아, 아니에요. 마침 제가 하려던 말이어서.”
“그래요? 그럼 잘됐네요. 가실까요?”
“예? 예, 예.”
얼떨결에 동행을 승낙한 그녀와 함께 조금 전 나왔던 카페로 들어갔다.
“뭐 드실래요? 아아, 따아?”
“…아아요.”
“이야. 이렇게 추운 날 아아라니. 얼죽아시구나? 저도 얼죽아인데. 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종업원에게 아아 2잔을 주문하고서는, 조금 전까지 내가 앉았던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해야 하는 설문이 뭡니까?”
곧장 본론을 꺼냈다.
“어, 그게 저기….”
준비한 말은 있을 거다.
하지만 아직 실전 경험(?)이 없다 보니 머릿속에서 뒤죽박죽되어 제대로 나오지 않겠지.
‘정보대로네. 아직 사이비에 가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
강회장이 보낸 메일에서 봤던 대로다.
그녀는 사이비에 몸담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건 굉장한 수확이다.
교주에게 세뇌된 상태였다면 그만큼 정상으로 되돌리기 힘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상태라면, 이지를 상실하지 않은 지금이라면 그 작업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지.’
이대로 직진이다.
“할 말이 없죠?”
“…예?”
“몇 번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왔을 텐데 막상 사람을 직접 대하니 준비했던 말이 뒤죽박죽 엉키고, 뭘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쥐구멍에 숨고 싶고.”
“….”
당황하여 눈을 동그랗게 뜬다.
“…누, 누구세요?”
“누구긴요. 당신을 지옥에서 꺼내줄 사람이죠.”
드륵!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죄송합니다. 먼저 일어나야….”
“도와 달라고 말해요.”
뒤돌아서려던 그녀의 동작이 멈춘다.
“병약한 동생의 치유 목적으로 찾게 된 구원교. 동생을 바라보며 그곳에 전 재산을 바쳤고, 거기에 더해 부모님의 강요로 인한 종교 가담. 그렇게 시작된 포교 활동. 포교에 실패할 때마다 늘어나는 벌금. 아마 그 금액이 수억에 이르렀다죠?”
메일에 상세하게 적힌 성예일의 슬픈 가정사다.
희귀병을 앓는 동생을 치유하기 위해 부모 모두 구원교라는 사이비에 빠져 그곳에 전 재산을 헌금했다.
처음에는 재산만 바치면 치료된다고 했을 거다.
하지만 정성이 부족하다는 둥, 아직 구원을 받기엔 선행을 더 쌓아야 한다면 어지간히 가스라이팅을 해 댔겠지.
남들이 보기엔 무슨 그런 멍청한 행동이 있나 싶지만, 간절한 사람이 종교를 찾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어떻게든 동생의 목숨을 지켜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삐뚤어진 결과를 낳았다.
사이비가 무서운 이유가 그거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정신에 침투하게 되므로.
그렇게 세뇌된 부모는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자신의 딸을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일이라 해도.’
이 절망적인 상황을 알면서도 벗어날 수 없다.
부모와 병약한 동생, 그들이 인질로 잡혀 있으니 구원교가, 교주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대체 누구세요? 왜 제게 접근한 거죠? 목적이 뭐예요?”
쏟아지는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하다.
“말했잖아요. 당신을 지옥에서 구해줄 꺼내 줄 사람이라고.”
말에 진심을 담았다.
그리고 그게 꽤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그게 정말 가능한가요?”
덜덜.
몸이 떨린다.
한창 멋 부리고, 캠퍼스에서의 낭만을 꿈꿔야 할 여린 여인은 동생을 돌봐야 하는 누나, 부모의 강요와 그 빚을 대신해서 갚아야 할 가장이 되었다.
그 짐을,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얼마나 괴로웠을까.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손길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그녀는 타인의 도움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저를 이 시궁창 속에서 정말 꺼내줄 수 있나요?”
떨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툭.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며 쓰다듬듯 가볍게 머리칼을 헝클었다.
“그간 고생 많았다.”
그건 고등학생 신윤찬의 말이 아니다.
20년 동안 종말을 겪어온, 누구보다 그녀의 노고를 아는 종말의 신윤찬이 건네는 노고의 말이었다.
“흐어엉!”
허물어지듯 바닥에 주저앉는 성예일.
뚝, 뚜욱.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계속해서 지면을 적신다.
“도, 도와줘요. 저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제발, 제발….”
빗장이 벗겨지고 나서야 가녀린 진심이 나왔다.
병약한 동생으로 인해 일찍 철이 들어야 했던 아이는 지금 처음으로 자신의 진심을 마주하며 서러운 감정을 터뜨리고 있었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