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사람이란 게 그렇다.
아예 없으면 모르지만, 한 번 손에 쥔 것에 대해서는 좀처럼 내려놓는 법이 없다.
특히 그게 권력이라면, 게다가 한 나라의 수장인 대통령의 직위라면?
누구라도 목숨이 끊기기 전까지는 내려놓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정면의 전상혁을 빤히 바라본다.
30대.
결코 많지 않은 나이다.
보통의 대한민국 남자라면 이제 막 군대 제대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나이.
그러나 그는 이 젊은 나이에, 이제 막 사회 초년생이 되어야 할 시기에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물론 그러한 분위기가 있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부패 정치의 끝, 사람들은 새로운 인재를 원했고, 하필 그 시기에 맞물린 게 전상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운이 좋다고 해서 모두가 다 뜻을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돌아오는 법.
내가 보기에 전상혁은 성공을 부를 만한 모든 게 준비된 사내였다.
게다가.
‘종말을 거치며 다양한 사람을 봐왔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이런 유형은 또 오랜만이네.’
내려놓기.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내려놓은 채, 다른 이들을 위한 때를 준비하는 자.
최후까지 생존했던 윌리엄이나 다른 동료들도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지 못했다.
그것을 유일하게 품었으며 실천한 건.
‘…대장.’
오직 대장뿐이었다.
이타심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간은 본디 선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이.
전상혁은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그 대장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들으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내 뜨거운 시선을 담담히 마주한 그가 다시금 말을 잇기 시작했다.
“하지만 윤찬 님이 말했던 종말, 그것이 실제로 다가오고 있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만이….”
잠시 말을 끊고서는 나를 비롯한 주위의 동료들을 한 차례 훑는다.
“…곧 시작될 지옥에서 인류가 최대한 많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테니 말입니다.”
반짝이는 눈빛, 그 시선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제가 그에 맞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예.”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콜로세움에서부터 느꼈습니다. 그만한 포부와 실력,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이는 윤찬 님뿐이라고. 그리고 그 생각은 길드의 수장들과 만난 지금은 더욱더 확고해졌습니다.”
길드 수장들과의 회동.
그것이 지금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다.
하긴.
다른 이들과 나를 저울질에 올려놓으면 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자랑 같아서 말하진 않았는데, 내가 좀 뛰어나야지.
전상혁 정도의 통찰력이 있는 인물이라면 그것을 꿰뚫어 봤을 테고.
“조금 뜻밖이긴 하군요.”
하지만 아직 한 가지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불쑥 찾아와서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해대고 있으니 말입니다.”
“뭐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뜻밖이라는 건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럼 어떤 부분이…?”
“당신이라면 누군가에게 대의를 맡기는 것보다 스스로 그것을 이루는 것을 선택할 거로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회귀 전에 그는 다른 유명한 각성자들과의 협력과 의탁을 배제한 채 홀로 정부를 이끌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왜 생각을 바꾸어 굽히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아!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콜로세움에서의 연설. 그것이 감명 깊었기 때문입니다.”
“감명?”
“예. 지금 윤찬 님은 충분히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힘이라.
확실히 힘이라면 충분하고도 넘친다.
검은달이라는 훼방꾼이 있긴 하지만, 지금 정도면 수위를 다툴 만한 전력이니까.
“어느 정도는 힘이 있다고 자부할 수 있죠.”
“그겁니다.”
뭐가?
“명색이 힘이 있는 자라면 콜로세움에서 마주쳤던 검은달,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하기 마련입니다.”
아!
그제야 전상혁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의미가 와닿았다.
“힘으로 억누르고 강제하는 것. 그건 검은달만이 아닙니다. 제가 지켜본 길드의 수장 모두가 그러한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아마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기 위해 길드의 수장들과 대화를 나눴을 테지만, 그게 실망으로 이어진 모양이다.
“하지만 윤찬 님은 그 논리에 지배당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종말에서 인류를 구하고자 하는 그 마음, 그것이 제 마음을 움직인 겁니다.”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하고자 했던 당시의 말.
아무래도 그것이 전상혁의 심금을 울린 것 같다.
‘이거 예상치 못한 대어가 걸렸는데?’
곧 시작될 종말에 대비하기 위해 떡밥을 뿌린 것뿐인데 생각 못 한 대어가 걸려버린 셈이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그 뜻을 알았으니 이젠 내가 물을 차례다.
“종말의 질서, 새로운 기준. 그 위대한 뜻을 이어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대통령이라는 직위?
그건 이미 허울만 좋은 명예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명색이 질서, 새로운 기준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에 따른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단지 대통령이라는 직위만을 생각하여 대충 내뱉는다?
그렇다면 아무리 진실의 눈을 개화한 각성자라 해도 실망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저는, 아니 우리는 그것에 대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짝!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 가벼운 박수와 함께.
끼이익.
문이 열리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수의 사람이 체육관 안에 발을 들였다.
조금 전부터 내 감각을 거슬리게 했던 이들.
“새롭게 개편한 중앙정보부 소속의 요원들입니다.”
마치 맞춘 것처럼 전장에 선글라스를 낀 그들은 중앙정보부 소속의 요원들이었다.
“비록 윤찬 님의 동료분들과 같은 정도의 전력은 아니지만, 나름 심혈을 기울여 발굴한 인재들입니다.”
그 말이 거짓으로 들리지 않는다.
‘성현진, 박문주, 게다가 정이연까지?’
십수 명에 달하는 인물 중 내 눈에 들어온 건 세 명이었다.
내 눈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그들이 회귀 전의 종말에서 그만한 족적을 남겼다는 뜻.
싸울아비 성현진.
금강역사 박문주.
백발마녀 정이연.
종말 중반까지 활약한, 깐깐한 내 기준에도 인재라 할 만한 특성을 개화한 인물들이었다.
만약 지금의 동료들이 아니라면 영입에 관심을 가질 법한,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이들인 셈이다.
그런 그들이 전상혁 휘하에, 그것도 중앙정보부의 요원이 되어 있을 줄이야.
“…진실의 눈을 사용했군요.”
“정답입니다.”
하긴, 진실의 눈을 사용한다면 강력한 특성의 각성자들을 미리 선별할 수 있을 테니.
‘그렇게 생각해 보니 전상혁이라는 인물이 반드시 필요하겠구나.’
비단 필요 인재의 영입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상대의 특성과 기벽, 그리고 내가 모르는 각종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적을 상대하기 수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베일에 싸인 신인과 금색 티켓을 차지했던 마지막 사람의 정체도 파악할 수 있을 테지.’
그 정보를 토대로 베일에 싸인 이들에 관한 신상을 특정할 수도 있다.
“종말에서 생존할, 그 지옥을 헤쳐 나갈 협력 관계를 원하십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협력 관계라.”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턱에 손을 가져감 몇 차례 쓰다듬는다.
그리곤.
“협력 관계라는 건 언제든 수틀리면 배신할 수 있는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닙니까?”
정치에 몸을 담은 그에게 있어서 협력은 그런 의미에 불과했나 보다.
“아니….”
내가 막 그 말에 반박하려고 했으나.
“한 식구!”
그의 강경한 어조가 그 말을 막았다.
“명색이 한 식구여야 마음이 편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잘했을 땐 서로 좋아해 주고, 못했을 땐 꾸짖으며 함께 나아갈 수 있지요.”
“….”
의외의 말이다.
말이 한 식구지 지금 전상혁이 말하고자 하는 건 복속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백의라는 단체를 창설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중앙정보부는 모두 백의에 소속되어 종말을, 그 지옥을 함께 헤쳐 나갈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그걸 본인이 말하고 있었다.
‘이게 말은 쉽지.’
그것을 결정하기까지 엄청난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현직 대통령 아닌가.
한 나라의 수장인 그가 누군가의 밑에, 휘하에 들어간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자신의 자유 의지로 말이다.
“좋습니다.”
그렇기에 나 또한 진심을 보여주었다.
“확실히 종말을 헤쳐 나가기 위해선 한 명보다는 여럿이 나을 테죠.”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다.
종말이 시작되기 전 백의의 몸집을 키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전상혁이, 그리고 그가 발굴한 인재들이 제 발로 굴러들어 온 것이다.
물론.
‘아직 조금 더 지켜봐야 할 테지만.’
당장 마음을 열 생각은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아무리 대의를 위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그가 뒤로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알 수 없으니 당분간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별다른 꿍꿍이 없이 정말 대의를 위한, 종말에서 인류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때 지금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식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하하!”
그리고 그런 내 의중을 파악한 듯 전상혁이 웃음을 토했다.
“물론 바로 식구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식구란 게 무엇입니까. 동고동락하는,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정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그리고 윤찬 님 측도 서로 알아가야 할 시간을 가져야겠지요.”
“지극히 동감하는 바입니다.”
먼저 속 시원하게 말해주니 나도 내 생각을 숨길 생각은 없다.
“그래서 말입니다. 제가 우리 모두에게 득이 될 만한 아주 좋은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좋은 소식이라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그가 입을 연다.
“일전, 콜로세움에서 모습을 드러낸 검은달을 기억하십니까?”
“검은달이라면 익숙한 이들이죠.”
“물론 좋은 관계가 아닐 테지요?”
“짐작하시는 대로입니다.”
“하하, 역시!”
고개를 끄덕인 전상혁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번 길드 수뇌부와의 회동 중 수상한 이를 발견했습니다.”
“수상한 이?”
“자신의 신분은 물론 나이, 특성, 기벽, 소속까지. 온통 모든 게 거짓으로 점철된 한 사람.”
누군가 진실의 눈이라는 전상혁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채 농간을 부린 것 같다.
“짐작하기로 그는 검은달 소속인 게 확실합니다.”
전상혁의 성향을 미루어 짐작했을 때 그것을 확신하게 된 계기까지야 알 필요는 없을 터.
“혹, 그가 어떤 특성과 기벽을 지녔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물었다.
혹여 정보가 될 만한 게 있다면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있을 테니까.
“그 특성은 변신. 그리고 기벽이라 하면 천변만화(千變萬化)였습니다.”
“…예?!”
나도 모르게 소릴 지르고 말았다.
특성 변신, 그것이야 평범하기 그지없는 특성이었지만.
‘천변만화?’
그 기벽이 나타내는 인물은 단 한 사람을 뜻한다.
‘환존(換尊)!’
그 정체와 죽음, 모든 게 베일에 싸여 있었던 의문의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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