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청와대 국무회의실.
“쯧!”
넓은 타원형의 회의 탁자, 그곳 자리 하나를 차지한 사내가 별안간 혀를 찬다.
“귀찮게 사람을 오라 가라야.”
불만으로 인상을 찡그리는 사내.
찢어진 눈과 뭉툭한 코, 일견하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그의 앞에는 명패가 자리하고 있었다.
『화랑 길드장 심석우』
길드.
각성의 의식과 함께 전 세계에 나타난 각성자들, 그들의 힘을 하나로 묶은 단체를 의미한다.
지금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사내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길드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화랑 길드의 수장인 심석우였다.
본래는 배달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가던,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그였으나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특성의 개화.
그것도 쾌검(快劍)이라는 나름 강력한 특성을 개화한 그는 지긋지긋한 배달 일에서 벗어나 각성자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이후로는 탄탄대로였다.
마치 지금까지의 불행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나갔고, 심지어 특별한 이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그 콜로세움에도 참가했다.
그것을 통해 어느 정도의 명성을 얻어 지금의 화랑 길드의 수장이 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선견지명이었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지, 남들과 달리 이 변화를 기회로 여긴 심석우는 매번 고심해서 움직였다.
실제로 그것이 성과를 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 움직인 탓에 화랑이라는 길드를 날로 커져만 가 지금은 십대 길드 안에 들 정도로 강성해졌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본래는 고위 관료들만 입장할 수 있는 국무회의실, 그곳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처음에는 좀 긴장하긴 했지만, 뭐 별거 없더라고.’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틀 전, 그는 이곳 국무회의실을 처음으로 방문했었다.
당시는 조금 긴장하기도 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만나야 할 대상이 현직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고 해도 대통령이다.
얼마 전의 그는 감히 쳐다볼 수 없는 높으신 분 말이다.
그렇기에 긴장도 하고 말도 제대로 못 했는데, 웬걸?
‘씨바. 별거 아니더라고.’
대통령?
별거 아니었다.
한없이 높은 분이라 생각했던 대통령은 그들에게 굽신거렸다.
물론 대놓고 굽신거린 건 아니다.
하지만 분위기라는 게 있지 않은가.
대통령은 그와 자리한 이들을 조심스레 대했고, 또한 계속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한 행동은 심석우라는 사내를, 얼마 전까지 소시민에 불과했던 그를 변화시켰다.
“협력은 분명 없을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말이야.”
큰 소릴 땅땅 친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십대 길드 중 하나인 화랑 길드의 수장이니까.
“….”
그리 말하며 슬쩍 눈치를 본다.
이 자리에는 그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천외천 길드장 전성훈』
『신비 길드장 함소연』
『제로 길드장 김제윤』
…
등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십대 길드의 수장 모두가 모여 있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보란 듯이 큰 소릴 치는 것이다.
나는 청와대 안에서도 큰 소릴 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너희들보다 대범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
물론 그 행동에 반응하는 이들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십대 길드는 무슨. 그냥 팔대 길드가 적당하지.’
비록 같은 십대 길드로 묶여 있다곤 하나 여기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심석우 혼자뿐이었다.
천외천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길드.
최근에는 십대 길드로 묶여 있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팔대 길드로 불렸었다.
그러나 최근 왕성한 활동, 그리고 무분별한 각성자 영입으로 몸집을 불린 화랑과 ‘은월(隱月)’이 추가되었을 뿐.
부르기 좋아하는 이들이 십대 길드라 지칭하지, 정작 거기에 속한 이들은 화랑과 은월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특히.
‘별 같잖은 게.’
‘어디서 굴러먹던 건지도 모를 뼈다귀가.’
‘하여간 품격이 없어.’
조용히 있는 은월의 수장인 강은우와 달리 요란하기 그지없는 심석우에 대한 불만은 상당했다.
그건 뭐랄까.
덩치가 작은 개가 사납게 짖는 것과 같은 불편함이었다.
그것이 허세라는 걸 빤히 알고 있기에 심석우의 행동이 같잖게 느껴질 뿐이었다.
“아니, 사람을 모아 놓고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그러한 수장들의 생각을 알 리 없는 심석우가 다시금 분통을 터뜨린다.
그리고.
“이거, 죄송합니다.”
마치 맞춘 것처럼 때마침 울려 퍼지는 음성과 함께 한 사람이 회의실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도 중요한 자리라고 편한 복장이 아닌 갈색 정장을 선택한 전상혁.
그가 검은 정장과 선글라스를 낀 사내의 호위를 받으며 입장했다.
“먼저 공사다망한 분들을 모셔 놓고 기다리게 한 점, 사죄를 드립니다. 급히 처리해야 할 용무가 있어서 말입니다. 아시겠지만, 요즘 세상이 급변하고 있어서 이거 쉽지 않군요. 하필이면 임기 초부터 이런 일이 발생하니 원, 정신을 차릴 수 있어야 말이지요. 하하하하!”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한 농담.
“….”
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불만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미 일전, 그 한 번의 만남을 통해 입장이 좁혀질 수 없는 주제가 될 것을 모두 알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릴 왜 부른 겁니까?”
역시 나서기를 좋아하는 이, 심석우가 말했다.
아무래도 그는 먼저 말한다는 것 자체에 묘한 우월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지난번과 같습니다. 정부와 길드가 서로 협력하여….”
“그 건이라면 이미 이야기가 끝난 것 아닌가요?”
지금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신비의 길드장 함소연이 입을 열었다.
“길드는 정부에 협력하여 무분별한 범죄를 저지르는 각성자들을 색출, 처단에 나선다.”
그것이 지난 회의의 안건이었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범죄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이미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있었고, 곧 무정부 상태의 혼돈이 야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법과 질서의 기준이 되는 곳이 어디인가.
바로 정부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고자 길드와의 협력을 요청했다.
다만.
“요지는 좋아요. 하지만 그 보상에 대해 타협안이 마련되지 않았을 텐데요.”
사실 요지 자체에 의문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이들이나 길드원들 또한 범죄자들의 목표가 될 수 있을 테니, 그 위협을 제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
문제는 보상이었다.
범죄자들이라고 한다면 나름 강력한 특성을 개화한 각성자들을 의미한다.
그들을 상대하고자 한다면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하는 건 물론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희생을 감수할 만한 보상이 있다면 그것이 상쇄될 수 있겠으나.
“우리의 요구 조건을 정부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제로 길드의 길드장 김제윤이었다.
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희생을 감내할 만한 보상.
지난 회의 때는 그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길드가 요구한 게 고대의 파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각 길드는 고대의 파편을 찾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것을 모아 강력한 기벽을 완성, 그것이 곧 길드의 전력이 되기 때문이다.
“고대의 파편이라. 하지만 그걸 보상으로 내어 주기가 힘든 게 사실입니다.”
전상혁이 난색을 보였다.
고대의 파편?
그게 좋은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보상으로 줄 수 없다.
수요는 많은 데 공급할 데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구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보상으로 줄 수 있겠는가.
“그래서 협상이 결렬되지 않았습니까. 정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고, 우리는 범죄자를 잡을 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고.”
현재 세계 각국에서 길드가 나타나고 있다.
그 치열한 경쟁에서 치고 나가려면 어떻게든 힘을 비축해야만 하는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 범죄자들과 싸워 전력이 감소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과 같이 선두에 설 수 없는, 뒤처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중얼거리는 듯한 음성.
그 주인공은 천외천 길드의 수장인 전성훈이었다.
표정이 없는, 언뜻 보기에도 매우 차가워 보이는 30대의 그는.
‘전성훈!’
‘역시 범상치 않아.’
모두가 인정하는 강자였다.
그도 그럴 게 천외천 길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였다.
십대 길드니 팔대 길드니 떠들어도 어쨌든 최고는 그와 천외천 길드였던 것.
그렇기에 그가 내뱉는 한마디는 무게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범죄자들을 정리하는 게 의미가 있겠습니까?”
종말.
아직 그것이 온다고 증명된 바는 없다.
하지만 콜로세움, 그곳에서 종말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밝혀졌다.
물론 믿고 말고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대다수는 종말이라는 것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 그 종말이 어떠한 변화와 상황을 불러올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기존의 질서와 법칙이 무너질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 생각하는 범죄? 어쩌면 그때는 그것이 당연히 여겨질지도 모르죠.”
흔히 범죄라고 하는 건 현대에 적용된 법을 어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법이라는 게 종말에도 소용이 있을까?
아니, 당장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 그것이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만약 정부에서 우리가 원하는 보상을 지급하겠다고 한다면 법이 무엇이든 나설 용의가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굳이 희생을 감수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일에 대한 보수.
그것은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절대의 법칙과 같은 것.
그렇기에 분명히 말했다.
“고대의 파편을 마련해 주겠다면 협력에 응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면 더는 이 자리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의 말에 길드장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다시금 말을 잇는 전성훈.
“고대의 파편을 보상으로 줄 생각이 있습니까?”
그 차가운 눈빛이 전상혁을 향했고.
“…안타깝게도 그러진 못할 것 같습니다.”
안 하는 게 아니다.
못하는 것이다.
길드라는 강력한 단체의 힘으로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것을 정부가 어떻게 구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협상은 결렬입니다.”
전성훈,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드르륵.
마찬가지로 나머지 길드장들 또한 몸을 일으켰다.
“거참, 바빠 죽겠는데 오라 가라 하지 좀 마쇼. 예?”
전성훈의 위세에 기가 죽어 있던 심석우는 그 반발 심리로 전상혁을 위협했다.
대통령을 위협할 수 있는 자.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앉아.”
뜻밖의 음성에 눈을 동그랗게 떠야만 했다.
“…뭐?”
비단 심석우만이 아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나가려던 길드장 모두의 시선이 소리의 근원지, 전상혁의 옆을 지키는 보디가드에게 향했다.
“앉으라고.”
“이런 씨….”
화를 참지 못한 심석우가 막 손을 쓰려 할 때.
콰콰콰콰콰콰콰!
마치 폭풍이 이는 듯한 절대적인 기세가 사내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어, 어…?”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는 심석우.
게다가.
털썩.
그만의 일이 아니다.
김제윤, 함소연을 비롯해.
쿵!
그 전성훈마저 기세에 굴복하여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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