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
환존.
그는 펼쳐지고 있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상대가 절대의 무력을 가지고 있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서?
아니.
그랬으면 지금처럼 당황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상대의 능력을 복사하는 그의 능력.
분명 그건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력하긴 하지만, 세상에는 그보다 강한 사람이 수두룩했다.
당장 신인만 해도 감히 그가 넘볼 수 없는 존재 아닌가.
고작해야 흉내만 내는 그에게 ‘한계’라는 건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한계를, 자신의 주제를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뭐랄까.
‘처절함.’
그건 처절함의 전투였다.
“….”
물끄러미 상대를 바라본다.
얼음과 화염의 검.
마검사의 특성을 통해 생성된 그 파괴적인 검으로 인해 상대의 몸에는 파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았다.
보통은 그 고통과 공포로 인해 움직임이 둔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는, 눈앞에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흐읍!”
짧은 기합성.
쉬이익!
그와 함께 쇄도하는 주먹.
쩌저적!
그것을 막기 위한 물의 검이 냉기를 흩뿌렸다.
그러나.
쩌엉!
분명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맨주먹은 날카로운, 그리고 한기가 깃든 물의 검을 그대로 튕겨 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니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을 테지.
잠깐의 상념을 거뒀다.
오래 생각하기엔 상황이 다급했고, 상대는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척.
보폭을 크게 하여 순식간에 품 안으로 파고든다.
이게 참 무섭다.
아주 잠깐, 찰나에 불과한 순간의 틈만 있어도 파고드는 돌파력.
그리고.
쌔애액!
대기를 가르며 쇄도하는 주먹.
그냥 맨주먹에 불과할 뿐이지만, 환존은 알고 있었다.
그 주먹은 세상 그 무엇보다 단단하다는 것을.
‘저장이 다 담지 못한다.’
그가 가진, 아니 그보다는 신인이 가진 특성 중 하나인 저장.
세상의 모든 걸 저장할 수 있는 이 특성을 통해 지금까지 받은 모든 피와 충격을 저장해 두었다.
하지만 그게 무한은 아니다.
이제 3단계에 불과한 저장의 용량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퍼억!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복부에 꽂힌 주먹, 그 충격을 가득찬 저장의 용기에 담았다.
“크윽….”
꽉 차 버려 다 담을 수 없는 충격이 육신을 지배한다.
화륵!
하지만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대로 불의 검을 휘둘렀다.
이 정도 충격에 굴복하면 상대는?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피해를 받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까앙!
하지만 불의 검이 상대의 육신을 베는 일은 없었다.
정확한 타점을 노리는 주먹이 다시금 불의 검을 튕겨 냈기 때문이다.
팟!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마자 순간이동을 발현했다.
마술과도 같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진 환존.
그것으로 상대의 공격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쉬이익!
눈앞, 그가 어디로 이동하지 예측이라도 한 듯 정확히 그 자리에 선 상대의 주먹이 쇄도하고 있었다.
순간이동이 다급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좋은 회피기인 건 맞다.
다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그건 순간이동 된 이후 1초.
그 1초의 시간 동안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정확히 간파한 듯(물론 간파하고 있다고 해서 순간이동의 위치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 자리에 선 상대가 주먹을 뻗는다.
용량이 꽉 차 버려 저장에도 담을 수 없는 상태.
꽈득!
환존은 이를 꽉 물었다.
상대의 주먹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고통을 감당할 준비가 필요했다.
이를 꽉 깨물고 몸에 힘을 주며 다가오는 충격에 대비하려 했지만.
뻐억!
“켁!”
볼썽사나운 신음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이건?’
주먹이라고?
몇 톤에 해당하는 둔기가, 아니 숫제 차에 치인 충격이다.
그건 그냥 주먹이라 부를 만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한 방이 아니다.
복부에 허용한 주먹, 그것으로 인해 몸이 굳은 순간을 노린.
퍼퍽, 퍼퍼퍼퍽!
연타가 이어졌다.
조금 전 그를 공중에 들어 올렸던 것과 같은 연타.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전과 다르다.
마치 뼛속에 박히는 듯한, 하나하나가 급소를 가격하는 살의의 연타.
‘빠져나가야….’
위험하다.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나약한 육신은 금방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순간이동은 사용했고, 그 딜레이가 있었다.
이 순간을 빠져나갈 방법이 있나?
신인이라면 가능했을 터다.
그는, 위대한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특성을 사용할 수 있는 선택받은 이였으니까.
하지만 환존은 아니다.
그는 흉내쟁이에 불과했고, 그와 달리 모든 특성을 완벽하게 다룰 수는 없었다.
윤찬이 예측한 것처럼 제한된 몇 개의 특성을 사용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지금 사용한 특성이 그 제한된 특성의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있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특성이.
그는 곧장 그것을 발현했다.
지이잉-
그의 앞에 거울과 같은 얇은 막이 생겨났다.
“….”
하지만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환존이 무슨 일을 벌이건 관계 없다는 듯이.
퍽!
예의 그 살의가 깃든 연타를 계속할 뿐이었다.
하지만.
“큽!”
낮은 신음을 터뜨린다.
‘그렇지!’
그 순간, 고통이 피어오르는 상황 속에서도 쾌재하는 환존.
『반사』
특성 반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특성의 효과는 간단하다.
자신이 입은 피해 일부를 공격자에게 이전한다.
현재 3단계 특성 진화를 이룬 반사의 반사율은 30%.
그리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이나 사실 그렇지 않다.
공격하면 나도 피해를 받는다.
이 기묘한 현상으로 인해 동작을 망설이게 되는, 그리고 빈틈이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
환존은 그 빈틈을 노려 이 자리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
분명 그건 좋은 전략이었다.
상대가 평범한 각성자였다면 말이다.
퍽!
주먹이 쇄도한다.
망설임?
두려움?
그런 건 일절 들어 있지 않다.
여전히 상대를 죽이겠다는, 환존을 향한 살의로 가득하다.
처음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반사라는 특성을 잘 모를 테니까.
그렇기에 환존은 최대한 급소를 보호해 가며 적의 공격을 막아 내려 했지만.
퍼퍼퍼퍼퍽!
“크으윽!”
공격에 쉼이 없었다.
그럴 리가!
분명 반사는 제대로 발현되었고, 상대의 몸에 그 충격의 흔적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어떻게 동작에 망설임이 없는 거지?
“….”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뜬 환존이 눈앞의 적을 바라본다.
녹아내린 피부, 곳곳에 핀 검은 반점, 그리고 자신이 준 피해로 인해 생겨난 시퍼런 멍까지.
형편없다.
그 몰골은 그야말로 형편없는, 패자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환존의 눈에 상대는, 윤찬은 그렇게 비치지 않았다.
그건 뭐랄까.
“…투신(鬪神).”
그래, 투신.
싸움을 위해 태어난 존재.
마치 전투를 즐기는 듯한 뒤틀린 미소, 그리고 살의가 깃든 필살의 일격.
그 모습은 분명 신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투신을 닮아 있었다.
‘내가 상정한 것 이상….’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한반도를 정복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그를, 신윤찬을 조심하라는 신인의 당부를 들었지만, 사실 그리 염려하진 않았다.
그는 환존이었으니까.
신인의 특성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웬걸?
신인이 경고했던 대로 상대는 그의 예상을 훨씬 벗어나는, 아주 위험한 인물이었다.
‘강화사 따위가 아니다. 이 자는 분명….’
수많은 전투와 전쟁터를 오고 간 용사.
만약 그를 일개 강화사 따위로 생각한다면 모두가 그와 같은 결말을 맞이하고 말리라.
바로 패배라는 결과를 말이다.
“끄헉!”
관자놀이에 꽂히는 주먹, 그 마지막 비명을 내뱉은 환존이 쓰러졌다.
*
“아이고 삭신이야.”
자리에 주저앉은 채 볼멘 소리를 냈다.
“…정말 형편없이 당했네요.”
옆에 앉아 치유를 발현하는 예일.
“매번 이런 전투를 겪고 있는 건가요?”
몸 곳곳에 침을 꽂는 빙빙.
하하하.
이거 참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고작 전투 한 번 치렀다고 성녀와 신의가 들러붙어 집중적으로 돌봐주다니 말이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또 이런 호사를 누려 볼까.
“뭐가 좋아서 이렇게 이죽이죽 웃어 대죠?”
분명 그건 중국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를 느낀 예일은.
“몰라요. 미쳤나 봐요.”
정확히 그 말에 답변했고, 빙빙 또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뭐, 녀석들이 뭐라고 하던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니까.
덕분에 녹아내린 피부와 파괴의 반점 등, 그 모든 상처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 녀석, 상당했나 봐?”
근처에 다가온 영웅, 녀석이 쓰러진 환존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 흉내 내기에 불과했어도 명색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환존.
확실히 강력한 적이었다.
지금껏 상대했던 그 어떤 상대보다 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놈은 신인이라는 사상 초유의 괴물이 사용하는 능력을 흉내 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 신인. 그 사람 그렇게 강하다?”
윌리엄의 물음에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봐. 수백 개, 어쩌면 수천 개가 넘는 특성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 그것도 그 모든 특성을 3단계 이상 진화했다면 어떨 것 같아?”
“…인정한다. 신인. 그는 강하다.”
당장 신인이 나타나 위협을 가한다고 생각하면.
‘백이면 백 패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놈을 이길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불굴의 전투고 나발이고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까.
그나마 비등비등한 환존과의 전투였기에 그 빈틈을 엿볼 수 있었다.
‘쯧. 그래도 1년 동안은 여유가 있을 줄 알았더니 그 녀석 덕분에 뭘 할 새가 없네.’
종말이 다가오는 것보다 신인이라는 놈이 가하는 압박이 더욱더 위협적이다.
좀처럼 가만히 있질 못하게 하는, 그 위용으로 인해 다급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일단 당장 급한 놈은 제압했고.’
쓰러진 환존.
육신에 가해진 충격으로 인해 놈은 당분간 의식을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죽음에 이르고 말 테지.
물론 그럴 생각은 없다.
‘일단 뽑아 먹을 건 다 뽑아 먹어야 하거든.’
변신, 상대의 모습과 특성마저 흉내낼 수 있는 진귀한 특성은 물론 놈이 지닌 정보까지.
어쩌면 이번 기회를 통해 신인이라는 흑막을 향해 조금은 더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전에.
“….”
시선을 돌렸다.
덜덜덜.
구석, 그곳에서 불안함에 몸을 떨고 있는 아홉 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 전만 해도 의기양양한, 세상을 다 가진 듯 자신감을 뽐내던 대한민국 대형길드의 길드장들이었다.
아무리 멍청하다 해도 조금 전 펼쳐진 일련의 전투를 통해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나와의, 그리고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과의 격차를.
그렇기에 몸을 떠는 것이다.
조금 전, 자신들이 벌인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후회하면서.
“우리, 할 이야기가 많지?”
친근하게 미소를 짓는 그 말에.
“….”
“….”
아홉 명 전원의 얼굴이 똥 씹은 것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