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종말, 그리고 20년 후』
강회된 회귀의 돌.
그것을 깨뜨리는 것으로 사내, 윤찬은 또 한 번의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캬아아아아아-」
당장에라도 세상을 삼킬 듯한, 엄청난 위엄이 서린 괴성을 토하는 베헤모스로부터 도피할 수 있다.
하지만 윤찬은 망설였다.
“….”
여전히 회귀의 돌을 손에 쥔 채 주저앉은 동료들과 시선을 마주했다.
“…다시 생각해 봐.”
시선이 고정된 곳은 부러진 검을 든 금발의 사내 윌리엄과 균열이 간 단안경을 쓴 율리우스, 두 사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보다는 너희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알잖아. 내가 사람을 이끄는 데 소질이 없는 거.”
윤찬은 자기 객관화가 무척 잘된 사람이었다.
자기 주제를 매우 잘 알고 있었기에, 윌리엄이나 율리우스와 같이 모두를 이끌 만한 재목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이 회귀에 어울리는 인물인지를.
“너희가 회귀하게 되면 인류를, 그 모든 이들을 이끌고 종말에 대비할 수 있을 거야.”
“….”
윤찬의 말에 윌리엄의 눈가에는 언뜻 고민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왜 그렇지 않을까.
아무리 20년 동안 종말을 경험했어도, 생과 사에 초탈했다고 해도 사람이다.
새로운 삶, 기회, 그것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아니라 이미 초월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 마지막 말이 뇌리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하지만 잠깐 고민하는 윌리엄과는 달리 율리우스에게는 그러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건 확고한 결의.
“말했잖아. 종말에 대비하는 게 꼭 인류를 이끄는 길만이 아니라고.”
“하지만….”
“윤찬. 너는 강화사에 불과한 특성으로 지금까지 생존했어. 물론 나중에서야 무한의 강화사라는 특성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도 기벽을 얻지 못했으면 발현되지 않았을 거잖아? 결과적으로 보자면 너는 한낱 강화사에 불과한 특성으로 종말을 버텨 온 거야.”
강화사 특성을 개화한 이들은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 종말의 후반, 아니 중반까지 살아남은 이는 극소수였다.
그러나 윤찬은 후반도 아니고 종말의 끝, 최후까지 남았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그 질긴 생명력. 그리고 요행까지. 종말을 대비하기 위해선 인류를 이끌 자질이 아니라 지독한 생명력이 필요해. 언제,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를 휘감은 뱀을 처치하여 회귀의 돌을 얻은 순간, 이미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모두 끝냈었다.
회귀, 어떻게 상황 변화가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그 기회를 잡는 건 윤찬이어야만 한다고.
“그러니까 망설이지 마. 지금 네가 망설이고 있는 건 우리의 결정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
꽈악.
윤찬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악마처럼 그렇게 자꾸 유혹하지 말라고. 나도 사람인지라 자꾸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면 흔들리거든.”
그건 윤찬을 위한 말이 아니었다.
윌리엄, 실제로 흔들리고 있는 그를 배려한 말이었다.
“….”
율리우스의 그 말에 고민의 흔적이 사라진다.
불현듯 찾아온 심마는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아, 그리고!”
뭔가 생각난 듯 말을 잇기 시작하는 율리우스.
“지난번에 말한 거 있지.”
“…지난번이라면?”
“현자의 탑.”
“아!”
그제야 잊고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본래는 나를 데려가 달라고 했었잖아.”
“그랬지.”
“그런데 생각을 바꿨어.”
“어?”
“알잖아.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보기 싫은 거. 다음 생의 내가 또 진리에 다가서는 걸 생각해 보니 끔찍이 싫더라고. 그러니까 네가, 윤찬 네가 나를 대신해서 현자의 탑에 올라가 줘.”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알아. 현자 율리우스. 지금의 나는 사라지겠지.”
율리우스의 현자 특성은 전조와 함께 개화한 게 아니다.
그의 조국인 독일, 방크 산에서 생겨난 현자의 탑에 올라 진리를 얻어 각성하게 된 것.
그렇기에 윤찬이 현자의 탑에 들어서게 된다면 율리우스라는 인물은, 지금의 현자는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뭐?”
하지만 율리우스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 이 난리를 피우는 게 뭐 때문이지?”
“그야 종말을 대비하고 인류를 구하려는….”
“그래, 그거야! 현자 율리우스가 사라지더라도 네가 그 진리를 얻어 종말에 대비한다면 그게 더 목적에 가까운 길이 아닐까?”
“….”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하지만 진리에 한 발짝 다가간 율리우스는 그 욕심을 꽤 버린 상태였다.
“그러니까 네가 현자의 탑에 올라가 줘. 회귀를 경험한 네가 진리에 다가서게 되면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을, 그리고 종말에 대한 대비가 확실히 될 테니까.”
윤찬의 머리를 비상하지 않다.
하지만 회귀를 경험했기에 지능이란 건 경험 앞에서 무의미해진다.
만약 윤찬이 진리를 얻게 된다면?
‘잊힌 역사를, 거짓된 그 이야기의 진실을 알게 된다면 네게 아주 큰 힘이 될 테니까.’
그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비밀.
사실 율리우스는 모두에게 진리의 대해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진실’에는 ‘금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현자의 탑에서 얻은 진실을 이야기하려고 해도 사람들은, 동료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설혹 이해했다고 한다면 더 큰 일이다.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은 죽음을 낳게 되니까.’
실제로 그는 진실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것을 이해한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눈앞에 나타난 결과?
그건 죽음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한 이는 머리가 터져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그 죽음을 겪고 난 이후 율리우스는 단 한 번도 진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만약 그 진실을 회귀자인 윤찬이 알게 된다면 어떨까?
‘현자 율리우스가 사라지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에 도달할 수 있겠지.’
그래서 다른 세상의 자신을 포기했다.
윤찬이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 종말에 대비하는 것에 더 도움이 될 것을 알기에.
“이번에 이렇게 개고생을 했는데, 그쪽 세계의 나는 조금 편하게 있어도 되지 않겠어? 그러니까 현자의 탑은, 그 진리는 네가 좀 가져가라.”
귀찮은 듯 툭 내뱉고 있지만, 그 안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이는 없다.
“너….”
“어휴, 씨발. 너는 무슨. 괜히 분위기 잡지 말자고.”
평소에는 욕 한 번 한 적 없는 율리우스의 거친 발언에.
“하하-”
“이 새끼, 욕 찰진 거 봐라?”
“뭐야. 욕이라고. 나도 욕은 빠질 수 없지. 개씨발!”
분위기가 한결 풀렸다.
“그러니까 이제 분위기 그만 잡고 가자. 나도 그만 쉬고 싶거든.”
다른 이들에 비해 멀쩡해 보이는 외형.
그러나 율리우스의 내부는 레비아탄의 독기에 의해 모두 녹아내린 상태였다.
지금까지 쌓아 온 업, 그 힘이 아니었다면 진즉 시체가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하지만 더는 버틸 여력이 없었다.
물론 죽기 전에 회귀의 돌을 사용할 만한 에너지를 방출해야만 한다.
지이이잉-
자신의 생명, 그 모든 에너지를 회귀의 돌에 담는다.
씨익.
그리고 웃었다.
“만나서 엿 같았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윤찬은 고개를 숙였다.
뚝-
지면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액체.
그것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 율리우스라는 친구를 위한 우정의 눈물이었다.
*
추크슈피체 산.
해발 3,000m에 달하는 이 거대한 산은 알프스 산맥의 일부이다.
보통은 그 어마어마한 높이에 압도되어 등반하는 게 쉽지 않을 테지만.
지이잉.
대규모 포탈이라는 특성을 이용한다면 너무도 쉽게, 대한민국이라는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도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다.
“….”
주변,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감상했다.
산소가 희박한 높이, 머리 위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태양, 그리고 새하얗게 물든 주변.
‘고맙다, 율리우스.’
그 아름다운 광경에 먼저 생각나는 건 율리우스였다.
녀석이 전이해 준 정보 중에는 세계의 모든 좌표가 있었고, 그것을 통해 이렇게 쉽게 산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우와!”
하지만 나와 달리 그 절경에 놀라는 진우를 바라보며.
“놀라긴. 그만 돌아가.”
파리 쫓듯 손을 휘휘 저었다.
이번 현자의 탑은 동료들과 공유할 시련이 아니다.
온전히 내가, 나만이 감당해야 하는 것.
그렇기에 동료들을 모두 배제한 채 진우와 함께 이곳에 온 것이다.
아, 물론 녀석도 곧 돌아가야 할 테지만.
“예예.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습니까. 보물 챙기면 좀 나눠 주는 걸 잊지 마시고.”
여전히 보물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한 볼을 부풀린 녀석이.
지이잉!
곧 포탈을 열고 사라졌다.
내가 연락하게 되면 다시금 포탈을 열고 이곳으로 마중을 나올 테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그럼.”
일단 주변을 살폈다.
‘주민들 말로는 산 정상, 거대한 탑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고 했지.’
분명 그건 현자의 탑이 나타났다는 증거.
‘하여간 꼼꼼하다니까. 어떻게 인근 산을 다 뒤질 생각을 하다니.’
이 정보를 얻게 된 건 강회장의 꼼꼼함 때문이었다.
내가 알던 것과 시기가 달라졌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장소는 의외였다.
‘율리우스는 우연히 등반하게 된 방크 산에서 현자의 탑을 발견했다고 했지.’
마치 주입하듯 그 이야기를 자주 했었기에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의 상황, 시간, 그리고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전부.
그러나 그 기억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되어 버렸다.
현자의 탑이 방크 산이 아니라 이곳 추크슈피체 산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혹시 몰라 독일의 산 전부에 인원을 파견해 놓은 강회장의 선견지명이 아니었다면 이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넘어갈 뻔했다.
‘특히 신인과 검은달 녀석에게 빼앗긴다면.’
부르르.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현자 특성은 단순히 잊힌 역사를 알게 되는 것만이 아니라 지식의 보고다.
칼보다 펜이 더 강하다는 말이 있듯 놈들의 손에 그 지식이 들어간다면.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지.’
그렇기에 반드시 현자의 탑, 그 진리의 서고는 내가 차지해야만 한다.
“현자의 탑이 다시 나타나기까지 기다려야만 하니까….”
그게 며칠이 될지 알 수 없다.
율리우스의 정보에 의하면 1시간이 될 수도 있고, 하루가, 아니면 10일이 될 수도 있다고 했으니까.
급할 필요는 없다.
일단은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어라?”
그런데 웬걸?
츠츠츠츠!
육감에 잡히는 이질감.
그것은 특정한 힘의 작용, 그것도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이 나타났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현자의 탑?!”
놀랍게도 그리 멀지 않은 곳, 내 시선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하얀 탑이었다.
그러나 다시금 바라봤을 때 그건 흑, 아니 다시 백이었다가 적, 청 등 다양한 색으로 바뀌었다.
‘현자의 탑이 분명하다.’
색의 변화.
그건 율리우스가 내게 설명했던 현상과 똑같았다.
저벅.
눈길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현자의 탑이 불과 10m 거리 안쪽까지 도달했을 때.
사악, 사악.
확인할 수 있었다.
낡은 빗자루로 주변의 눈을 쓸고 있는 초라한 행색의 노인을 말이다.
“이거, 영 반갑지 않은 손님이 도착했군.”
나를 보며 인상을 찡그리는 노인.
그를 본 순간 율리우스의 경고를 떠올릴 수 있었다.
‘사서. 그 깐깐한 노인네를 주의하는 게 좋을 거야. 그는 네가, 아니 세상 모두가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대한 존재니까.’
거듭 경고하는 그 말이 귓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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