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이 세상 모두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
율리우스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러할 것이다.
회귀의 순간, 모든 게 끝나는 그 순간에 거짓말을 할 녀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설령 그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해도 알 수 있다.
오싹!
오한이 드는 듯한 기분.
육감이 맹렬한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험하다고.
눈앞에 있는, 동네 할아버지와 같은 이 존재는 매우 위험한 존재라고 말이다.
육감을 얻은 이후 가장 위험한 신호를 보내오는 그 경고는 무시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자연스레 존대가 튀어나왔다.
“안녕 못하다면?”
생긴 것과는 달리 상당히 깐깐한 양반인 모양이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린 영감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순간.
“…주십시오.”
손을 내밀었다.
“뭘?”
“빗자루.”
“노인네의 빗자루를 강탈해 갈 셈이냐?”
“아니요.”
주변을 훑었다.
눈, 현자의 탑 주변을 어지럽게 만드는 하늘의 똥을 치울 작정이었다.
이 노인, 위험하기 그지없는 존재를 대신해서 말이다.
“그래도 꽤 눈치가 있는 녀석이로군.”
당연히 그래야 하는 듯 빗자루를 넘겨준다.
착, 손에 전해져 오는 감각.
‘차가워?’
분명 조금 전까지 노인이 쥐고 있었다.
그런데 빗자루에 온기가 없다.
‘사람이 아니란 건 확실하네.’
하나는 확신할 수 있다.
노인, 그는 비록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싸악, 싸악-
하지만 아무런 티도 내지 않은 채 묵묵히 빗자루질을 시작했다.
이걸로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존재의 환심을 살 수 있다면 얼마든지….
“흐음?!”
…하지만 이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빗자루는 차갑기만 한 게 아니었다.
‘무슨 무게가?!’
무겁다.
신체 강화를 두 번 거친 내게도 버거울 정도의 엄청난 무게였다.
간신히 버틸 수 있지만.
부들부들.
한계에 다다른 무게로 인해 몸이 떨린다.
이걸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다는 말이지?
“달라고 해서 줬더니 뭐 하는 거야?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고.”
재촉하지 않아도 움직이려 했다.
이것이 일종의 시험이라는 걸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싸악-
한 차례, 빗자루가 눈길을 쓸었다.
‘절묘하네. 어쩌면 이렇게 한계에 딱 맞게 무게를 조절할 수 있지?’
빗자루의 무게가 참으로 절묘하다.
뭐랄까.
마치 내 한계 수준을 알고 그에 맞춰 딱 준비했다고 생각될 정도.
상대 힘의 한계를 알고 준비를 해놓는다?
‘확실히 율리우스의 말처럼 뭔가 대단한 존재인 건 분명한 것 같네.’
새삼 그 사실을 머리에 새겼다.
하지만.
“이거 원. 죽도 제대로 먹질 못했나. 뭐 이렇게 비실비실해. 그렇게 시원찮게 할 거면 도로 줘. 내가 하려니까.”
혀를 차며 가까이 다가와 양손을 내민다.
만약 여기서 노인에게 빗자루를 넘겨준다면?
‘현자의 탑에 오를 수 없겠지.’
그것을 알기에.
“아닙니다.”
완강히 거부했다.
“그럼 제대로 힘을 써서 팍팍. 어엉?”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린 노인의 말에.
“예.”
군말 없이.
싸악, 싸악-
빗자루질을 시작했다.
“그래. 이제야 좀 제대로 일을 하는구만.”
사서, 그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제길!’
나는 죽을 맛이었다.
사서의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딱 내 몸 한계에 맞춰 제작된 듯한 빗자루질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처럼 계속 육체를 괴롭혔다.
내가 평범한 각성자, 얼마 전에야 겨우 특성을 개화한 이였다면 이미 포기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꽈드득.
이가 부서지도록 꽉 물었다.
‘내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겠다는 건데. 그건 착오라고 말해주고 싶네. 종말을 20년 넘게 버텨온 내 인내는 한계가 없거든.’
시험?
얼마든지 응해주지.
설령 그게 육체가 부서지는 거라 해도 아랑곳하지 않을 테니까.
싸악, 싸악-
계속 쓸었다.
“이거, 왜 이렇게 빗자루질이 시원치 않아. 눈길이 탑 주변에 날리잖아. 더 팍팍!”
10분이 지났을 때도 여전히 노인의 잔소리는 여전했고.
싹, 싸악-
“에잉, 쯔쯧!”
30분이 지났을 땐 혀를 차는 소리로 바뀌었다.
싸악-
2시간이 지났을 때.
“흐음.”
잔소리, 혹은 볼멘소리는 사라졌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났을 때.
“…독한 놈.”
사서의 입에서 독하다는 소리가 나왔다.
“되었다!”
그것이 신호였다.
스르르-
빗자루의 무게가, 온몸을 압박하던 그것이 사라졌다.
“하악, 하악-”
녹초가 된 몸으로 노인을 바라봤다.
종말을 견뎌온 내 정신은, 그 무한한 인내심은 여전했으나 육체는 그렇지 않다.
땀으로 샤워한 것처럼 온몸이 식은땀에 절어버렸고.
주륵-
눈과 코, 그리고 입에서는 연신 수분이 새어 나왔다.
그건 인내심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다.
육체라는 건 고통에 솔직한 법이니까.
어떻게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독하다 독해. 그걸 반나절 동안 하고 있냐?”
“하악….”
미친 새끼.
정작 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목구멍까지 튀어나온 말을 삼켰다.
아니, 애초에 말할 수 없었다.
입술이 바짝 말라 말이라는 걸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땀을 흘려 몸 안에 있는 수분이 모두 말라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딱!
노인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어?”
한계에 도전한 육체의 고통이 사라졌다.
마치 그 모든 게 환상이었던 것처럼.
‘아니, 환상이 아니었다.’
환상과 같은 종류에 당할 정도로 내 정신이 나약하지 않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모든 일은, 그 육체의 노동은 진짜였다.
그렇다는 건.
‘완전 치유!’
사서로 의심되는 노인이 사용한 게 완전 치유라는 걸 의미한다.
그건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은, 초월자의 권능 중 하나.
“본래는 들일 생각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지.”
여전히 펴지지 않은 인상.
원래도 깐깐한 노인네 같지만, 아무리 봐도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분명하다.
“마음에 들 턱이 없지.”
그리고 속마음을 정확히 읽혔다.
‘이런!’
깜빡했다.
초월자들 앞에서는 함부로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걸.
“누군들 법칙을 뒤튼 놈을 좋아할 수 있을까.”
“….”
그 또한 바포메트와 같이 내가 법칙을 뒤틀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너 하나로 인해 세계의 질서가 흔들렸어. 어휴, 그걸 복구하는 게….”
어떤 사실을 말하려 했으나.
“…내가 말을 말아야지. 에휴.”
무언갈 눈치챈 듯 말을 아낀다.
‘질서의 복구?’
하지만 흘리듯 말한 그건 가벼이 넘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법칙을 뒤튼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아니라, 그것을 복구하는 일에 대한 불만.
세계의 질서를 관장할 정도의 존재라 한다면.
꿀꺽.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이거, 어쩌면 율리우스가 말한 것보다 더 대단한 존재가 눈앞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놈 봐라?”
기합이 팍 들어간 내 모습에 눈을 부라리는 노인.
“뭘 그렇게 힘을 주고 있어. 어차피 이번 만남을 끝으로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텐데.”
“…예?”
“다신 만날 일이 없다고.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한 존재든 앞으로 너와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긴장할 필요가 없다, 이 말이야.”
“…어떻게 그리 단정하십니까?”
괜한 마음에 되물었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알고 이것이 마지막 만남이라 확정을 짓는 거지?
“껄껄껄.”
약간의 반항적인 내 태도에 노인이 웃었다.
어라?
오히려 이렇게 막 나가는 걸 좋아하는 거 아냐?
“아서라. 괜히 반항했다간 정말 뒈지는 수가 있으니까.”
확실히 못을 박는 걸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네가 나를 다시금 만나는 일은 시나리오에 없으니까.”
“…시나리오 말입니까?”
이게 무슨 영화도 아니고.
갑자기 시나리오 타령이지?
“쯔쯔. 너같이 나약하고 하찮은 게 무얼 알겠느냐. 뭐, 이야기해 주고 싶은 건 산더미처럼 많지만, 그럴 순 없지. 아무리 내가 입이 싼 노인네라 해도 명색이 질서에 묶인 몸이니.”
“더 해주셔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 노인네, 무언갈 많이 알고 있다.
어쩌면 종말이라는 이 게임이 시작된 근원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아서라. 진실을 들어봐야 그건 네가 이해하지 못할 것. 일찍 비명횡사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굳이 묻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분명 입이 싼 퇴물에 불과하니까.”
“….”
그 말에 더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진실을 밝히면 죽음에 이른다.
‘율리우스도 그렇게 말했었지.’
진리의 서고에서 얻은 진실, 그것을 밝혔을 때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사실에 죽음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그렇다는 건 이 사서 또한 율리우스처럼.
“진리? 진실? 잊힌 역사?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그것보다 더욱더 중요한 사실이지.”
“예. 그렇다면 듣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괜한 호기심에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녀석, 눈치는 꽤 빠른 모양이로군. 그 점은 꽤 마음에 들어.”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이 아니야. 그만큼 속이 시커멓다는 의미니까.”
아무리 봐도 병 주고 약 주는 게 보통 입담이 아니다.
“…한 가지만은 분명히 말해줄 수 있지.”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 잠깐 말을 멈췄던 그가 다시금 이어간다.
“네가 나를 다시금 만나기 위해선 끝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
끝이라.
“…끝이라면?”
“종말. 이 시나리오의 최종장을 끝내야만 나를 다시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왜지?
왜 종말을 끝내면 이 존재를, 현자의 탑을 지키는 그를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걸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지금 네가 가진 사고(思考)로 내 말의 의미를 깨닫는 건 무리이니까. 쉽게 말하자면 그거지. 애시당초 네가 종말을 끝낼 만한 시나리오는 준비되어 있지 않으니 김칫국 마시지 말라는 것.”
“….”
글쎄.
그 말을 들으니까 오히려 오기가 생기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종말을 끝내야겠다는 오기 말이다.
“껄껄껄.”
내 생각을 읽은 듯 다시금 특유의 웃음을 토하는 노인.
“따라오거라.”
다짜고짜 안내를 시작한다.
현자의 탑, 그 미지의 입구에 발을 들인 순간.
“허!”
나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소릴 내고 말았다.
마치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 책장. 그곳에 무수히 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뭐랄까.
세상의 모든 책이 그곳에 다 담겨 있는 듯한, 그야말로 무한히 많은 책장과 책이 만든 공간이었다.
“이것이 바로 네 녀석들이 말하는 현자의 탑, 달리 말하면 진리의 서고다. 말 그대로 진리를 얻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기도 하지.”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물론 진리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따라붙겠지만 말이야.”
진리.
그건 누군가에 의해 임의로 조작된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것.
잊힌 역사와 거짓을 파헤칠 수 있으며.
‘종말과 관련된 진실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똑똑한 율리우스도 진리를 얻지는 못했다.
다만 진리에 준하는 지식을 얻었을 뿐이다.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제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한번 벗어난다면 다시는 접근할 수 없지.”
머무르는 데 제한 시간은 없지만, 더는 버텨내지 못한 채 밖을 나가게 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현자의 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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