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세상에….’
율리우스가 전한 말, 그리고 전이된 정보를 통해 현자의 탑이 어떠한 곳인지 대강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마주하게 된 그 공간은 뭐랄까.
압도.
그래, 압도되었다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공간, 그곳에 진열된 책장과 책.
그야말로 무한한 공간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과연 네 녀석은 이곳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넌지시 건네는 사서의 물음.
‘율리우스가 얼마를 버텼다고 했지?’
기억을 떠올려 본다.
‘일주일.’
녀석은 일주일을 버텼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앉아서 책만 읽으면 되는데, 일주일을 버티기가 어렵나?
어렵다.
‘진실은 때론 잔혹한 법이니까.’
현자의 탑 내부에 마련된 진실은 일반인이 감당하기 쉽지 않은 종류다.
그 율리우스가 진실을 대면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이곳을 나온 것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당시의 율리우스는 종말 마지막, 최후까지 살아남았던 녀석이 아니긴 하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종말의 끝까지 살아남았던 그때와 똑같지.’
그렇기에 율리우스 때처럼 일주일 만에 손을 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주 자신만만하군.”
여전히 뚱한 시선의 사서.
“하긴, 법칙을 비틀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여전히 내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자신하지 않는 게 좋을걸. 어쩌면 그것이 네 녀석의 약점이 될 수 있으니까.”
“그게 무슨…?”
막 의문을 표하려던 때였다.
스스스-
마치 신기루처럼 노인의 형체가 투명하게 변하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디 한번 잘해 보라고. 껄껄껄껄-」
마침내 완전히 사라진 사서.
“….”
잠깐 그가 사라진 자리를 응시했다.
‘하여간 똥고집 노인네 같으니, 사람 궁금하게만 만들고 사라지네?’
그것이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돌이키기엔 늦었다.
의미심장한 사서의 마지막 말이 걸리긴 하지만.
‘정면 돌파 하는 수밖에.’
약간의 찝찝함, 그것을 애써 무시한 채 무한히 펼쳐진 책장의 미로를 향해 걸음을 디뎠다.
*
『…인어공주는 끝까지 저항하였지만, 마녀의 마지막 마법을 견뎌 내지 못한 채 물방울이 되어 장렬히 산화하고 말았다.』
턱!
마지막 문구를 끝으로 책을 덮었다.
“…이게 과거 있었던 종말의 한 페이지란 말이지.”
꼬박 하루.
그동안 수백 권에 달하는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읽었다.
기존, 그러니까 거짓과 암시를 위해 만들어진 인어공주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진실의 역사는 가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과거 인어공주가 종말에 대항했던 것에 관한 이야기.’
우리가 알던 것처럼 인어공주라는 건 왕자와의 슬픈 이야기, 동화, 그런 게 아니었다.
본래의 역사, 즉 진실은 종말에 대항했던 인어공주라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종말은 이번에만 시행된 게 아니다. 과거부터 쭉, 문명을 바꿔 오면서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비단 인어공주만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 신화, 전설 등, 대부분의 이야기는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 거짓이 말하고자 하는 건 ‘기만’.
과거의 종말인 줄도 모르고 거짓에 동화된 인류는 그것을 학습하며 또한 하나의 문화로 즐겼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미지는 이 멍청한 인류를 마음껏 비웃으며 여흥을 즐기는 것이다.
“…빌어먹을!”
절로 욕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가 되는 것도 모른 채 하나의 이야기로, 문화로 즐기고 있었다니.
하지만 애써 분을 삭였다.
여기서 흥분해 봐야 내게 좋을 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후우, 후우-”
뜨거워진 머리를 심호흡을 하며 식힌다.
그리고 조금 전 읽은, 인어공주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했다.
‘인어공주는 마녀라는 시련을 넘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것이 거짓으로 전승되어 지금의 인어공주라는 이야기가 되었지.’
그렇다면 달리 생각해 볼까.
만약 내가 종말을 막아 내지 못한다면?
‘윤찬이라는 강화사가 괴물들을 당해 내지 못한 채 죽는, 또 하나의 동화나 신화가 될 테지.’
마치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거짓된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렇게 둘 순 없지.”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의 인류가, 그리고 이번 종말에서 일어나는 일이 거짓으로 전승되는 일을 막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위해 사전 자료 조사 중이다.
‘과거의 종말을 조사하다 보면 단서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 기간은 무척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이곳, 현자의 탑에서 머무는 시간과 현실의 시간은 어긋나 있으니까.
‘율리우스가 일주일을 머무는 동안 현실의 시간은 1초 정도가 지났던가?’
그것도 상당히 어긋나 있기에 내가 이곳에 1년을 머문다 해도 현실의 시간은 1분이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마음 놓고 이곳에 푹 눌러앉을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때까지.
“….”
인어공주, 그 이야기의 마지막 권을 책자에 꽂아 넣었다.
다음 읽어 볼 건.
『신데렐라』
바로 신데렐라.
그 제목을 확인한 직후 곧장 책을 펼쳤다.
거짓으로 점철된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30일까지는 계산한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귀찮아서 그만뒀다.
짐작하기로는 반년?
아마 그 정도 시간이 흐르지 않았을까.
그동안 나는 수만 권에 달하는 책을 읽었다.
인어공주, 신데렐라, 백설공주, 빨간망토, 헨젤과 그레텔, 선녀와 나무꾼, 설녀, 그리스 신화, 단군 신화 등등, 각국의 동화와 전설, 그리고 신화 등이었다.
물론 여기서 읽은 건 단순한 동화와 신화가 아니었다.
종말에 대항했던, 결국 종말을 막지 못했던 잊힌 역사.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새드 엔딩이었다.
당연하지.
종말을 막지 못했기에 그들은 거짓의 일부가 되었고, 지금의 인류에 전승되었으니까.
하지만 하나, 종말을 막는 것에 근접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라그나뢰크』
인류에는 북유럽 신화로 전승되는 이야기.
놀랍게도 진리의 서고에 마련된 이 진실의 역사는 종말에 거의 근접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라그나뢰크, 미지의 사도가 된 로키와 요르문간드, 펜리르, 헬을 물리친 발드르, 발리, 비다르, 마그니, 모디에 관한 이야기.’
당시의 종말, 라그나뢰크를 막아 낸 다섯 명.
하지만 그들이 미지의 손길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이후에 치러진 마지막 시련에서 그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종말은 막았으나 마지막, 미지의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시련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정보는 없었다.
다만.
『발드르, 발리, 비다르, 마그니, 모디는 서로를 향한 적의를 드러냈다. 그들은 몇 날 며칠을 싸웠고, 그렇게 서로의 심장에 차가운 날붙이를 드리우며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어떤 이유에선지 서로를 향해 칼날을 들이댄 그들은 종말이 아니라 믿었던 동료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그 시련의 내용에 답이 있을 테지만.’
일부러 그 사실을 감춰 뒀으니 알 턱이 있나.
다만 여기서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설령 종말을 막아 냈다고 해서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
‘아니. 어쩌면 그 마지막 시련이라는 것도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지.’
종말과 그것을 막아 내야 하는 이들.
그것은 질서이자 법칙이다.
하지만 미지라는 존재들은 얼마든지 그것에 예외를 발생시킬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은 종말을 끝내지 못하도록 온갖 예외와 변수를 발생시킬 수 있다.
지금 보고 있는 내용이 그중 하나일 테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종말은 막아 낼 수 없는 게 아닐까?
어쩌면 지금의 내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왜 이곳에서 이렇게 심력을 소모하고 있지.
심마(心魔).
그것이 미혹이라는 것을 알지만, 불현듯 찾아온 혼란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건…?”
마치 운명처럼 눈앞에 나타난 것.
그건 수백, 수천 권에 달하는 다른 이야기와는 달리 수십 권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제목만 봐도 심신이 흔들릴 만큼의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무한 강화사의 회귀일지』
그것은 바로 나에 관한, 종말을 막아 내는 신윤찬의 이야기가 쓰인 책이었다.
“….”
홀린 듯 내용을 펼쳤다.
『눈을 떴다.
“….”
흐릿한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주변을 둘러봤다.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슈아앙!
도로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자동차.
쉬이이익-
그리고 요란한 소릴 내며 정류장에 정차하는 버스였다.
아마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바로 눈앞에 빨간색 신호동, 그리고 횡단보도가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정겹네.”
누군가는 삭막하다고 생각할 도시의 풍경.
하지만 지금의 내게 그 광경은 오랜만에 찾은 고향과 같다.
코에서 물씬 느껴지는 매연 냄새, 멀미가 날 것 같은 그 냄새조차도.
하지만 상념에 빠져 있을 새가 없다.
이제 곧 종말이, 세계를 뒤바꿀 대격변이 찾아올 테니까.
대격변, 종말, 흔히 말하는 아포칼립스의 시작.
난 정해진 운명의 경로를 틀기 위해 과거로 돌아왔다.
동료들의 희생, 그것으로 얻은 기회를 통해서 말이다.』
내가 회귀했던 날, 그날의 일이 담긴 내용.
분명했다.
그건 나에 대한 이야기.
아니, 정확히는 이번 인류가 종말을 막아 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실패하는 건가?’
혼란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혼란이라는 건 심마를, 심마는 허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진리의 서고가 위험한 이유기도 하다.
저벅-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안녕?」
정면, 그곳에 낯선 사내가 서 있다.
낯설다?
그러한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면의 사내만큼 익숙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
“…나?”
그래.
그건 나였다.
닳아버린 감정으로 인해 무심한 얼굴, 그늘이 느껴지는 눈동자, 그리고 조소하는 듯 뒤틀린 입가.
언제부턴가 거울을 보지 않아 낯설기만 한 그 모습은 분명 나였다.
「짐작하고 있겠지만, 나는 네가 만든 허상, 즉 심마라고 할 수 있지. 본래는 그냥 혼란한 감정으로 끝났어야 할 일이지만, 너도 잘 알잖아. 진리의 서고에서 그러한 심마가 무엇을 만들어 낼지.」
진리의 서고는 여러모로 뒤틀린 공간이다.
그곳에서의 심마는 환영을 만들고, 환영은 곧 실체가 되었다.
「알지? 이 심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나를 쓰러뜨려야만 한다는 것.」
“…그럴 테지.”
진리의 서고가 마련한 함정에 당해 버렸다.
그런데 이게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다.
누군들 이러한 상황에서 혼란을, 심마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뭐, 얼마든지 쓰러뜨리면 그만.’
물론 쉽지 않은 승부일 것이다.
상대는 나와 같은 능력을 지닌, 또 하나의 나였으니까.
하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방해가 되는 건 쓰러뜨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야.」
또 다른 나, 심마가 뒤틀린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 순간.
츠츠츠츠!
놈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비늘을 엮어 만든 용린갑(龍鱗甲), 그리고 손에 든 흑백의 검.
“…빌어먹을!”
그건 지금의 내가 아니라 종말의 마지막을 진행하였던 나.
「어때? 이제 얼마나 엿 된 건지 짐작할 수 있겠지?」
지금의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전력을 가진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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