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감정사의 눈을 발현했다.
그러나.
『???』
보이진 않는다.
또 다른 나, 심마가 착용한 검과 갑옷이 무엇인지.
아마도 정상적인 무구가 아니기에 감정사의 눈이 발현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듯, 놈이 착용한 보구도 마찬가지다.
‘용왕의 분노, 간장과 막야.’
그 이름은 물론 효과까지 확실히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것은 내가 회귀 전, 마지막 날 사용했던 보구인데 말이다.
『확실히 강력한 보구긴 하지. 지금 네가 착용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놈이 말한 대로다.
이상한 띠의 검, 그게 상급 보구에 속한다고 해도 눈앞의 것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왜냐하면 용왕의 분노와 간장과 막야는.
‘특급.’
특급에 달하는 보구이기 때문이다.
특급이라는 건 최상급의 위, 현존하는 보구의 등급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굉장한 물건이다.
그것을 상급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
마치 반딧불과 달빛을 비교하는 것과 같다.
「잘 아네.」
그리고 심마는 이러한 내 마음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어디 보구뿐일까. 내 지금 상태에 대해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네가 더 잘 알잖아.」
“다섯 번의 전신 강화. 그리고 여덟 단계의 특성 진화.”
「정답!」
고작 두 번의 전신 강화를 거친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육신, 게다가 8단계의 특성 진화까지.
현 상태에 있어서 놈은 괴물이다.
아마 세상에 등장한다면 홀로 검은달이고 뭐고 모두를 엎어 버릴 만큼의.
「지금의 나를, 너 따위가 상대할 수 있을까?」
아무리 내가 낙천적이고 한없이 긍정적인 놈이라 해도 불가능.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쯧.”
가볍게 혀를 찼다.
「왜?」
여전히 조소와 같은 뒤틀린 미소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
“네 수작이 너무 빤해서.”
「수작? 내가? 너 따위를 상대로?」
“그렇게 강하면 왜 진즉 손을 쓰지 않았지?”
「그야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서지. 나약하기 그지없는 널 바라보는 게 내 유희이기도 하니까.」
“웃기고 있네.”
또 다른 나이기에 잘 안다.
놈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내 마음을 흔들려는 심산이겠지.”
「네 마음을? 귀찮게 왜?」
“그래야 네가 강해질 수 있으니까.”
이 심마 녀석이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다.
“내가 너를 회귀 전의 나로 인식해야 하니까.”
「….」
드디어 자신만만하던 그 미소가 조금은 굳었다.
“어때? 정곡을 찔렸지?”
심마, 놈은 일련의 대화를 통해 사전 작업을 펼치고 있었다.
바로 놈을 회귀 전의 나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놈은 실체가 아니다.
내 기억의 일부, 혼란이 빚어낸 그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놈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놈의 힘은 달라진다.
지금처럼 종말 전의 나로 인식하게 된다면 더없이 강력한 각성자가 될 수 있을 테지만.
“미안하지만, 내가 그리 단순한 녀석이 아니라서.”
종말이라는 지옥을, 산전수전을 다 겪은 몸이다.
이까짓 심마 따위의 수작에 넘어갈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종말의 나? 아니. 나는 너를 그렇게 인지하고 있지 않아.”
그렇기에 마음을 고쳐 잡는다.
눈앞의 존재, 즉 심마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집중을 통해 상념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만들며 하나의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조금 전, 무한 강화사의 회귀일지를 읽으며 떠올렸던 당시의 모습을.
츠츠츠츠!
그와 함께 변화가 일어났다.
용왕의 분노, 그리고 간장과 막야가 사라졌다.
그것을 대신한 검은색 패딩과 청바지, 그리고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가방뿐이었다.
“막 회귀했을 당시의 나.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
아무런 힘이 없는, 엄청 약했을 당시의 상태로 돌아간 놈은 할 말을 잃은 듯 그렇게 멍하니 나를 응시하기만 했다.
「하하….」
그리곤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속이 뻥 뚫릴 정도의 통쾌한 웃음을 말이다.
「이야, 이거 완전히 당해 버렸네.」
힘을 잃은 녀석은 눈가의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역시 나야. 그래, 이래야 신윤찬이지. 종말을, 그 지옥을 20년 넘게 버텨 온 무한 강화사!」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일개 강화사다.
그 강화사가 20년 넘게 종말에서 살아남았다는 건 웬만한 끈기와 정신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
적어도 내게 놈의 수작은, 정신을 건드리는 건 턱도 없다는 말이다.
“그걸 아는 녀석이 수작을 부렸어?”
「아, 미안. 나도 나를 가끔 못 믿을 때가 있거든.」
“그건 인정.”
역시 나다.
나를 못 믿는 것 또한 내 특징 중 하나니까.
「그럼, 이만 작별을 고하도록 할까?」
“….”
자신의 운명을 깨달은 듯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은 채 소멸을 기다린다.
그럴 수밖에.
지금 놈의 상태라고 한다면 아무런 능력이 없는, 고작해야 낮은 강화가 가능한 회귀 전의 상태이니까.
내가 손만 까닥해도 놈이 죽는다고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나는 또 다른 나를 소멸시킬 생각이 없다.
「…어?」
그건 의외였던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이건 또 무슨 신박한 소리야?」
“굳이 소멸시킬 필요가 있냐고.”
「너,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다시 알려 줄게. 나 심마야. 네 마음속 혼란인 탄생시킨 불안정한 존재. 언제든 네 불안을 키워 먹고 커져 너를 죽일 그런 존재라고.」
맞는 말이다.
심마라는 건 본디 마음속 불안이 만들어 낸 허상.
악으로 뭉쳐진 존재이기에 공생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심심하잖아.”
나는 현자의 탑, 진리의 서고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최대한 오래 있어야겠지.’
그 율리우스도 일주일을 버티지 못한 채 도망 나온 곳.
적막한, 공기마저 탁한 이곳에서 홀로 버티는 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말벗이 있다면 어떨까?
물론 그게 내 심마, 불안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게 조금 찝찝하긴 해도.
‘없는 것보단 낫잖아?’
괜한 허상을 만들어 인격이 분리되느니 이렇게 현자의 탑이 만들어 준 친구(?)를 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하참. 내가 너라서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
기가 막힌 듯 혀를 차며 어깨를 으쓱한다.
「넌 정말… 미친 새끼야.」
“극찬 고맙다.”
「극찬은 무슨. 그래서 내가, 네 심마가 말벗이 되어 주면 되는 거냐?」
“뭐, 그렇지. 심심한데 말벗도 해 주고 같이 머리를 굴려도 되고.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심마 네가 조금만 도와주면 그래도 기한을 조금 당길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널? 도와? 왜? 심마인데?」
“심마라고 해도 어차피 내 일부잖아. 서로 돕고 사는 사회인데, 야박하게 왜 그럴까.”
「…미친 새끼, 진짜 완전 미친 새끼….」
“극찬 그만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일 해 봐야지?”
「어련하겠냐. 알아서 해라. 나는 네가 틈을 보이는 대로 널 죽이는 데 집중할 테니까.」
“편하신 대로.”
하지만 녀석이 목적을 달성하는 일은 없을 거다.
이 심심하기 그지없는 공간의 말벗, 그 역할에 충실하게 테니까.
*
현자의 탑, 진리의 서고라 불리는 곳.
처음 율리스에게 그곳에 대해 들었을 때는 뭔가 대단한, 단번에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공간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막상 대면하게 된 그곳에 있는 건 책이었다.
책, 책, 책!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진실과 역사가 담겨 있기에 그것을 진리라 부른 것이다.
한마디로 양으로 때려 부어 진리를 얻으라는, 아주 단순 무식한 곳이었다.
하지만 내가 필요한 건 그곳에 있는 모든 정보였고, 별다른 밥법이 없었다.
요행을 바라지 않은 채 진리의 서고에 꽂힌 모든 책을 하나하나 읽어 나갔다.
지금껏 있었던 모든 종말의 역사.
그렇게 수많은 역사와 진실을 읽으면서 발견한 사실.
의외로 라그나뢰크 이외에도 몇 번의 종말을 막은 전적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지.’
주어진 시련, 그러니까 시나리오까지는 막았다.
하지만 정작 주어진 마지막, 알려지지 않은 마지막 시련은 실패했다.
어쩐 일인지 모르겠지만, 남은 이들은 모두 싸웠고, 결국 서로를 죽여 종말을 끝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이곳에 온 이유였다.
알려지지 않은 마지막 시련, 그 비밀을 파헤쳐 종말을 막을 대비를 해야만 한다.
그런데.
“빌어먹을!”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올림포스』
그건 우리들에게 그리스 신화로 알려진 올림포스에 관한, 그들이 종말에 대비한 이야기였다.
그들 또한 종말을 막는 데 성공했지만.
‘또 마지막 시련에 관련된 이야기는 없네.’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감을 잡을 수 없다.
그나마 짐작할 수 있는 건 수백만 권을 읽었다는 것이고, 이곳의 시간으로는 몇 년이 흘렀다는 것.
그런데도 마지막 시련, 그것과 관련해서는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하나 있지.’
모두가, 종말을 막을 정도로 대단했던 이들도 그것을 이겨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종말을 헤쳐 온 동료가 서로를 죽이는데, 그걸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도대체 뭘까.’
수백만 권에 달하는(어쩌면 수천만 권일지도) 진실을 읽었지만, 여전히 답을 얻지 못했다.
아마 홀로 이곳에 있었다면 그 답답함에 심마가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아, 정정.
심마는 따로 있다.
“역시 모르겠지?”
뚱한 시선으로 한 곳을 바라봤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마찬가지로 뚱한 표정의 나, 아니 심마가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쯧. 같이 답을 구하자고 옆에 앉혀 놨더니 뭐 하는 것도 없고.”
「…너 여전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 심마야. 네가 잘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녀석은 본능(?)대로 나를 어떻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애초에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약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고, 놈은 내 정신력을 침범할 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
결국 심마와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고,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 버리고 말았다.
지금처럼 말은 툴툴 대도 어떻게든 그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책을 펼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정이 들었는지 알 수 있다.
「그래도 목표는 달성했네.」
“아아, 그렇지.”
비록 마지막 시련에 관한 것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최초의 목적은 달성했다.
「징한 놈. 설마 이곳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을 줄이야.」
몇 년, 아니 몇십 년이 걸렸는지 모른다.
마침내 나는 현자의 탑에 있는 모든 진실을 다 읽었다.
“그러면 뭐 하겠냐. 정작 가장 중요한 건 알아내지 못했는데.”
오히려 그게 더 절망이다.
책이 남아 있었다면 뭔가 알아낼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을 텐데, 이제는 영락없이 그 방법을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뭐, 할 만큼 했으니… 잠깐?」
심마, 녀석이 돌연 눈을 크게 뜨며 심각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왜…?”
막 의문을 전하려던 찰나, 나도 확인할 수 있었다.
츠츠츠츠!
조금 전 읽은 올림포스, 파란색 이었던 책의 표지가 검게 바뀌고 있단 것을.
표지의 색만이 아니다.
표지에 기록된 글씨가 바뀌고 있었다.
『미지의 성전 – ??? 서』
그 순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진리의 서고가 존재하는 이유.
모든 책을 읽은, 진실을 모두 파악한 이에게 주어지는 한 가지 특전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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