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어쩐지, 너무 아무것도 없더라.”
진리의 서고라고 불리기엔 반복된 과거의 역사만 가득했다.
명색이 진리라 하면 과거의 나열된 역사만이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파악할 수 있어야지.
그리고 지금 심마가 손에 든 것, 그게 아마도 그 단서가 될 가능성이 높은 유일한 물건일 것이다.
「그런데….」
사락.
책장을 넘기는 심마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이거 내용이 이상한데?」
“뭐가?”
엄청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면 저런 반응을 보일 리 없다.
덩달아 심각해져 물었다.
「아무것도 안 보여.」
“뭐?”
「백지야. 모든 페이지가.」
“….”
백지라.
이건 또 의외의 말인데?
현자의 탑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읽어 특전을 얻었는데 그게 백지라고?
“줘봐.”
녀석에게서 책을 가져왔다.
확실히.
“…백지네.”
백지였다.
아무런 내용이 적혀 있지 않은, 그저 하얀 종이만 보이는.
‘장난인가?’
순간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미지라는 이들의 존재 가치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녀석들이 하는 일이라곤 인간을 괴롭혀 그 부정적인 에너지를 탐식하는 거니까.
그런 부분을 고려해 보면 지금의 상황도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종말과 같이 엄청난 수의 부정 에너지를 수집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하나를 위해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다고?
아무리 미지가 할 짓 없는, 방구석에서 배만 벅벅 긁어대는 놈들이라 할지라도 좀처럼 나서지 않는 그 성향을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된다.
‘…뭔가 있다.’
백지를 보이게 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게 틀림없다.
「호오? 그럴싸한 생각인데?」
그리고 심마 또한 이에 동의하는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미지라는 그 고약한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생각해 낼 법한 방법이야. 어디 보자….」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녀석.
「예로부터 백지를 보이게 하는 여러 방법이 있단 말이지. 물에 젖게 하거나 양초를 문지르거나 최후의 방법으로는 불에 던져버리는….」
“아니. 그건 됐고.”
이 새끼가 어디서 수작을.
다른 건 몰라도 힘들게 얻은 특전을 불에 태울 순 없다.
그래서 그것을 제외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았다.
물을 묻히고.
양초를 문지르고.
햇빛에 비춰보고.
고대로부터 행해왔던, 암호를 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안 되네?”
「그러게.」
도무지 백지에서 글씨를 보게 할 방법은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말하지 마.”
「…내가 뭘 말하려고 했는데?」
“그거.”
「뭐?」
“그냥 백지 아니냐고 말하려고 했잖아.”
「…어. 진짜 그런 거라면?」
“….”
아무리 할 짓 없는 미지라 해도 그런 장난을 칠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세상에는 별 미친놈이 다 있으니까.’
어쩌면 미지 중에서도 할 짓 없는 녀석이 이런 일을 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러한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니야. 아닐 거야.”
하지만 애써 그 가능성을 무시했다.
비참하니까.
백지에서 글씨를 보기 위해 온갖 난리를 피운 조금 전의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질 테니까 말이다.
“우리가 시도해 보지 않은 게 뭐가 있더라. 아니다. 일단 처음부터 다시 해보자. 혹시 빼먹은 게 있을 수 있으니까.”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일.
하지만 남는 게 시간이었다.
현실과는 시간의 개념이 완전히 다른 이 공간이기 때문에 시도할 만한 가치는 있다.
혹여 빼먹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제일 처음, 물을 적시는 행위를 막 하려는 그때.
“뭐하냐?”
“뭐하긴….”
딴지를 거는 심마를 향해 막 불만을 내뱉으려던 때였다.
「….」
말을 내뱉은 건 심마가 아니었다.
녀석은 그저 긴장한 눈으로 한 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연스레 녀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뭐 하고 있는지, 묻지 않느냐.”
그곳에는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
정확히는 뭔지 모를 초월적인 존재.
‘사서!’
오래 전(?) 대면했던 존재인 노인, 현자의 탑 사서였다.
그가 한심하다는 듯 나와 심마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다.
“…암호를 해독하는 중입니다만?”
“암호?”
“예. 이게 아무런 글씨도 없는 백지라서 말이죠.”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글귀를 확인하기 위해 물에 적시고, 양초를 바르고, 온갖 지랄을 다 하고 있단 말이지?”
“지랄까지는 아닙니다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예예.”
“쯧.”
한심한 눈빛은 이내 경멸로 바뀌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그렇게 바퀴벌레 보듯 보는 건 좀.
“그런데…우리가 볼 일은 다시는 없을 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상대가 위대한 존재라는 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을 참을 수가 없다.
분명 그는 헤어지기 전 우리가 다시 볼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왜?
“…그러게 말이다.”
오히려 되묻는다.
“설마 인간 중에 현자의 탑을 모두 읽어내는 미친놈이 있을 줄은.”
하긴.
내가 좀 미치긴 했지.
물론 긍정적인 의미로 말이다.
“뭐, 남는 게 시간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남는 게 시간이어도 탑 안에 있는 모든 책을 읽을 정도의 미친놈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습니까? 그리 힘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힘든 일이다.”
“가만히 앉아 책을 읽는 게 말입니까?”
“…아무래도 네 녀석, 시간의 개념이 없는 것 같은데, 여기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고 있느냐?”
“글쎄요. 한 10년?”
표정을 살짝 찡그린다.
“20년?”
여전히 주름진 미간은 펴지지 않는다.
“설마 30년은 아니겠죠?”
“…100년.”
어라?
“네가 사는 세계의 시간으로 따지면 족히 108년이 지났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는 무슨. 현자의 탑 안에 소장된 책이 몇 권인지 알고 있느냐?”
“글쎄요. 대략 수십만 권은….”
“108만 권이다.”
“….”
“너는 108년 동안 정확히 108만 건의 진실을 읽은 것이다.”
와, 전혀 몰랐다.
꽤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108만 권을 읽었을 줄은.
그렇게 생각해 보니 미친놈이 맞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책만 108년을 읽고 있었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녀석이로군.”
“제가 별종이긴 합니다.”
“그냥 별종이 아니다. 이 공간에 대한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을 정도의 정신력이라니. 아무리 법칙을 비틀었다고 해도 이건 범주를 한참 벗어나는 일이거늘.”
내게 하는 말이 아니다.
마치 뭔가 생각할 게 있다는 듯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런데 왜 답은 해주지 않는 겁니까?”
물론 그가 어떤 생각이든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중요한 건 조금 전 내 물음.
“무엇을?”
“우리가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실제로 그래야만 했고. 하지만 지금은 예외다.”
“왜입니까?”
“네가 ???의 서를 얻었으니까.”
음?
분명 그는 내게 이 책에 대해 말했다.
그런데 그게 이상한, 해석할 수 없는 언어로 들렸다.
‘아직 내가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라 이거겠지?’
이러한 현상은 종말을 진행하면서 종종 겪은 바 있다.
물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순 없다.
이런 현상이 증명하는 건 내가 미지의 비밀에 한발 접근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네가 이곳에 있는 모든 책을 읽어 진리를 얻을 자격을 증명했으니 사서인 내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아!”
그제야 눈앞의 노인, 사서가 나타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암호를 해독하는 게 아니었구나!’
조금 전 행동, 물과 양초 등의 암호 해독은 말 그대로 생쇼에 불과했다.
책에 문제가 있으면 사서를 찾으면 그만.
한 마디로 멍청했다.
아, 물론.
‘사서를 부를 방법이 있었어야지!’
헤어질 때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장담하던 그를 부를 방법이 없었으니까.
덕분에 시간을 조금 허비하긴 했지만, 크게 상관없는 일이다.
이제 눈앞의 결과에 주목해야 할 때.
“줘 보아라.”
“여깄습니다.”
손을 내미는 그 행동에 곧장 미지의 성전을 넘겼다.
“네 녀석. 법칙을 뒤틀었을 테니 현자의 탑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겠지?”
그의 물음에.
“현자 특성입니다.”
곧장 답했다.
현자의 탑에서 일정 기간 이상 머무르게 되면 유일 특성 중 하나인 현자를 각성하게 된다.
물론 그건 이중 특성이 허용되는, 기존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도 허용이 되는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
그렇기에 내가 직접 이곳을 찾았다.
그 현자 특성을 차지하기 위해.
“그래. 현자라는 특성이지. 허나 너는 예외의 조건을 달성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사서의 말은 내가 예상한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을 말하고 있었다.
“이것은 현자의 탑 안에 있는 역사와 진실을 모두 파헤친 이에게 주어지는 특전.”
그가 가볍게 손을 휘젓자.
스스스-
놀랍게도 물음표로 표시되어 있던, 지금의 내가 읽을 수 없는 글귀가 해석되기 시작했다.
『미지의 성전 – 에이본의 서』
에이본?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인물이다.
“궁금한가?”
내 속마음을 꿰뚫은 그가 물었다.
“예.”
그래서 솔직하게 답했다.
미지의 성전이라는 것을 기록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분명 아주 중요한 인물이 분명한데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든 진실을 파헤친 나도 파악하지 못하는 인물이라면 더더욱이.’
108만 권에 달하는 책, 그 역사와 진실에서도 나와 있지 않은 인물이었다.
사실상 지금의 내게 낯선 인물이라 함은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현자의 탑, 이 역사관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예외의 인물이다.”
“어째서입니까.”
“그것은 미지에게 있어서 치욕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본래 모든 역사라는 게 그렇듯 치욕적인 부분은 각색되거나 삭제되기 마련이지.”
치욕?
미지에게 치욕이랄 게 있나?
세상 모든 것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그 거대한 존재들에게.
“유일한 한 가지 길이 있지.”
“…설마?”
문득 떠오르는 것.
하지만 그건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네 예상이 정확하다. 에이본, 그는 미지에게 있어서 가장 치욕적인 일, 종말을 막아낸 이 중 하나.”
“미친!”
나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종말을 막았다니.
지금껏 모든 인류가, 문명이 그 일에 실패한 게 아니었던가?
“끌끌. 그럴 턱이 있느냐. 본디 모든 일이라는 건 성공과 실패가 있어야 하는 법. 아무리 미지가 행하는 일이라 해도 완벽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으니.”
“그러면 그는 어떻게 됐습니까? 종말을 막아냈다면 뭔가 다른 결말이 있지 않습니까?”
정말 종말을 막아냈다면 그는 어떻게 됐지?
그가 속했던 문명은?
그리고 이후의 일은?
“흠. 그렇지. 아무래도 에필로그가 궁금할 수밖에 없을 테지.”
본편 이후, 그러니까 에필로그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일으키는 요인이었다.
“그는….”
마치 궁금증을 유발하는 듯 잠깐 말을 삼킨 사서는.
“…너희가 말하는 신이 되었다.”
충격적인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초월적 존재. 즉, 너희가 말하는 미지가 되어 자신의 세계를 집어삼키고 말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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