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예?”
나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되물을 필요 없다. 들은 그대로니까.”
“아니, 지금 미지의 존재가 되어 뭐라고…?”
아무리 내가 종말을 20년간 헤쳐온, 지옥을 경험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건 스케일이 다르다.
“세상을 집어삼켰다.”
“에이본이라는 사람, 아니 초월자가 말입니까?”
“지금은 미지의 존재이긴 하지만, 한때는 그도 너와 같은 인간의 범주에 들어가는 존재였지.”
“그런데 세상을 삼켰다는 말이죠?”
“그렇다.”
“….”
할 말이 없다.
종말을 끝낸 이라 한다면 보통 구원자를 떠올리기 쉽다.
그 힘든 여정을 마친 이가 왜?
어째서 힘겹게 세상을 구해 놓고 그것을 집어삼켰을까?
“…그 결말을 알고 싶습니다.”
당연히 에이본이라는 자, 종말을 막아 낸 그에 대한 결말이 궁금했지만.
“불가.”
어림없지.
“네가 특전을 얻어 역사에서 잊힌, 미지가 지워 버린 사실에 접근한 권리를 얻었지만, 그 이상은 불가하다.”
“어째서입니까?”
“미지에 의해 접근이 금지되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분명 언급을….”
“실수다.”
실수라 말하는 이의 표정이 너무 당당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에이본, 그리고 종말을 막은 이들에 관한 것 자체의 언급이 금지되어 있지.”
이것 봐라?
분명 ‘들’이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에이본이라는 자 이외에도 종말을 막은 이들이 더 남아 있다는 말이다.
‘실수? 아니. 이 양반, 일부러 언급했다.’
언뜻 들어서는 실수인 것 같다.
하지만 실수라고 말하는 이의 태도가 당당하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다.
심지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게, 어딜 봐도 일부로 언급한 게 분명하다.
‘미지가 언급을 금지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꺼냈다는 건, 이 양반의 지위와 명예가 상당하다는 건데.’
그리고 또 한 가지 유추할 수 있는 사실.
그건 사서의 지위였다.
그가 그냥 초월적 존재인지, 아니면 미지에 속하는 존재인지 확실한 건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의 지위가 단순한 사서에 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미지가 언급을 금지한 이야기를 이토록 태연하게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율리우스가 말했던 위대한 존재.
아마도 녀석은 어떠한 계기를 통해 사서의 정체를 짐작한 게 분명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라. 내 정체에 대해 짐작이나 할 수 있는지.”
하지만 그마저도 간파당하고 말았다.
“….”
머리를 긁적이며 새삼 눈앞의 존재가 보통의 노인이 아니라는 걸 상기했다.
“그래서.”
물론 그가 아무리 대단한 존재라 해도 물음에 망설임은 없다.
“그 금지된 이야기가, 실수가 나오게 된 이유가 뭡니까?”
별안간 나온 에이본에 관한 이야기.
특전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의 출저를 물었고.
“네가 받을 특전, 그것이 에이본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혹시…?”
“짐작하는 그대로다. 네가 얻을 특전은 에이본이 지녔던, 그 이후로 누구도 각성하지 못했던 그의 고유 특성이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에이본이라는 자, 그가 지닌 특성은 현자라 생각했다.
하지만 말을 들어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현자? 그럴 리가! 그따위 나약한 특성으로는 이 무대의 종장에 오를 수 없지.”
듣는 율리우스 기분 나쁘게.
나름 최후까지 생존하며 종말의 마지막을 장식했는데 말이다.
“에이본. 그가 지녔던 진정한 특성, 그 힘이란 건 삼라만상의 본질을 꿰뚫는 눈. 바로 진리의 눈이다.”
“….”
“응? 어째 반응이 영 좋지 않은데?”
그리고 그 반응을 확인한 사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본다.
“그게 뭔가, 진실의 눈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말입니다.”
“진실의 눈? 껄껄껄껄!”
내 말에 요란한 웃음을 토한다.
“그 눈은 짝퉁이다.”
“…예?”
설마 여기서 짝퉁이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진리의 눈. 그것이야말로 본질을 꿰뚫는 유일한 눈이며 에이본이라는 나약한 인간이 종말의 종장에 오를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강력한 특성이니라!”
그렇게 말하는 사서는 뭔가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뭐랄까.
마치 그것이 자신의 업적인 것처럼 들떠 있다고 해야 하나?
아무래도.
‘에이본과 뭔가 관련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이렇게 대놓고 뭔가 단서를 던져 주는데 깊게 들어갈 수 없으니, 그것도 참 괴로운 일이다.
“어쨌든 그 짝퉁 눈과 비교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율리우스도 그렇지만, 이 말도 전상혁이 들었으면 꽤 기뻐했을 것 같다.
“예. 확실히 진리의 눈이라는 게 훨씬 뛰어난 특성이라는 건 인지했습니다.”
“그렇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힘이지. 어딜 진실의 눈 따위를. 껄껄껄껄껄!”
한창 기분 좋은 웃음을 토하던 사서.
“그리고 그 특성이 특전, 그러니까 제가 받을 힘이라는 거겠죠?”
그를 향해 물었다.
“그러하다. 현자의 탑, 이 안에 있는 모든 지식을 간파한 네게 주어지는 아주 훌륭한 보상인 셈이지.”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천지를 뒤엎을 만한 힘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힘보다 더 나은 게 있으니까.’
진실의 눈이 바로 그러한 종류고.
만약 그 특성을 가진 전상혁이 아니었다면 환존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때로는 역발상의 힘보다 사람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힘이 더 필요한 법.
진리의 눈 또한 그러한 심리와 정보와 관련된 힘일 것이다.
“어디 보자.”
손에 쥔 책, 에이본의 서를 한 번 쓰다듬는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자. 받아라.”
그 단순한 행위를 끝으로 책을 건넨다.
“….”
얼떨결에 그것을 받았다.
“그렇게 멍청한 표정 지을 필요 없다. 봉인되어 있던 서를 해금했으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책을 펼쳤고, 그 순간 그간 보이지 않았던 내용이, 하나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삼라만상의 창조주, 위대한 존재의 눈. 아아- 아버지의 은총이라!』
뭔가 대단한 내용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이게….”
막 물음을 토해 내려던 입이 멈춘다.
지이이이잉-
에이본의 서, 그 안에 깃들어 있던 힘이, 그 특성이 내게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감정사의 눈을 지니고 있더구나. 그것이 진리의 눈과 합쳐져 아주 재밌는 특성으로 진화하였다.”
재밌는 특성.
그 말의 진의를 깨닫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윤찬의 심마
성별 : 남
나이 : 19
성향 : 혼돈(중립)
소속 : 無
…
특성 : 무한의 강화사
특성 진화 : 無』
놀랍게도 특성을 발휘한 순간, 게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정보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물론 그건 감정사의 눈을 터득한 내게 무척 익숙한 현상이다.
다만.
‘사람의 정보가 보인다고?’
대상이 물건이나 보구가 아닌 사람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능력이 발휘되면 대상의 성별과 나이, 심지어 특성의 유무와 그 진화 단계까지 상세히 알 수 있었다.
아마 전상혁의 진실의 눈 또한 이와 비슷한 능력일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보다 더욱더 상세한 정보, 특성이나 진화의 단계까지 알 수 있다는 것.
‘잠깐?’
그렇다는 뜻은.
“….”
물끄러미 사서를 응시했다.
그가 말한 대로 이 진리의 눈이라는 게 모든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것이라면 그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
성별 : ???
나이 : ???
성향 : 혼돈
소속 : 미지
이명 : 눈이 먼, 아둔한 자
…
특성 : ???
특성 진화 : ???』
거의 모든 칸이 물음표로 표시되어 있었다.
다만 몇 가지 예외가 있으니.
‘역시!’
짐작했던 대로 그는 미지에 속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이명.
‘눈이 먼, 아둔한 자?’
특이하다.
보통 이명이라는 건 이름을 대신하여 널리 쓰이는 것.
그런데 그의 이명은 눈이 먼, 아둔한 자였다.
어딜 봐도 널리 쓰일 만한 말이 아니었다.
“쯔쯔. 아무리 진리의 눈이라 해도 인류에 부여된 축복인 이상 간파할 수 없는 것도 있으니.”
내 의도를 눈치챈 그가 혀를 차며.
“자, 이것으로 되었다.”
다시금 작별의 인사를 전했다.
“설마 네 녀석과 이렇게 빠르게 만나게 될 줄은. 이거 원,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라 함부로 말을 내뱉을 수 없겠구나. 껄껄껄.”
요란하게 웃어 젖힌 그의 모습이.
스르르-
사라져 간다.
조금 전, 처음 내게 작별을 고했을 때처럼.
그렇게 그가 완전히 모습을 감췄을 때.
“….”
「….」
그 공간에 남은 건 나와 심마뿐이었다.
“작별의 시간이네.”
108년.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녀석과 머물렀다.
아무리 내가 냉혹하고 감정이 닳은 냉혈한이라고 해도 그 정도 시간이면 정이 들 수밖에.
그것도 아무도 없이, 오직 둘만 있었다면 더더욱이.
「자신 있냐?」
“뭐가?”
「뭐긴 뭐야. 종말을, 이 미친 세상을 종식할 자신.」
그건 매번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물음이었다.
끝낼 수 있을까?
미지라는 존재가 개입한 이 게임을?
“그건… 해 봐야 알겠지.”
끝낸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그게 솔직한 내 대답이었다.
「그래, 그렇겠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머리를 긁적인다.
「우리 사이에 거창한 이별은 필요 없을 테고.」
잠깐 무언가 생각에 잠기는 듯한 심마.
표정만 봐도 알겠다.
뭔가 아주 중대한 고민 중이라는 것을.
이윽고 결심한 듯 입술을 깨물며.
「나도 네 미친 짓에 동참하련다.」
“어?”
그리고 그건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이었다.
「왜? 내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궁금해?」
아마 얼마 전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알고 있다.
놈은 내게 동화되었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와 감정을 교류했으며, 혼돈에서 파생된 존재는 어느새 중립이라는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알잖아.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 사실상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종말을 끝내는 일.
누군가 그것을 해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더욱더 충격적인 사실은.
‘구원자는 스스로 세계를 삼켰다.’
그로 인한 극심한 혼란이 찾아왔다.
그런 와중에 종말을 끝낸다?
확실하게 자신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돕겠다고. 그래도 나름 그간 정이 많이 들어서.」
“….”
녀석의 돕겠다는 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빤했다.
“…하나가 될 셈이냐?”
심마.
그건 본디 나에게서 파생된, 나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
본래 그들의 목적이라는 건 실체를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놈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게 동화된 녀석은 그러한 본질에서 벗어났다.
「우리 사이에 이런 작은 선물 정도는 허용해도 되잖아?」
그리고 그게 놈의 작별 인사였다.
스스스스-
마치 안개와도 같이 변한 녀석의 형체가 완전히 사라진다.
그건 단순한 소멸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느껴진다.
내 안에 깃든 녀석의 흔적이.
심마라는 건 그간 가지고 있었던 불안과 공포 등 모든 부정적인 생각이 만들어 낸 것.
하지만 그것을 이겨 낸, 마침내 그것을 품은 나는 또 하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정기신(精氣神)의 합일.
마음속 불안마저 극복한 지금의 나는 진정한 평정이라는 것을 이루었다.
그것은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는 명경지수(明鏡止水)의 경지.
초월의 영역에 다다를 수 있는 한 단계의 진화였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힘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심마를 다스렸다고 해서 그게 무력이 강해졌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다만 불안과 공포에서 해방된, 정신적인 의미에서의 진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현자의 탑, 모든 책을 읽어 버려 그 모든 게 사라져 버린 휑한 공간을 한차례 응시했다.
그리고.
저벅.
이내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그곳을 빠져나가 다시금 세상으로 나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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