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사실 그건 약간의 모험이었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어차피 손해 볼 게 없기에 한번 해 보자는 의도였다.
그런데 그게 통했다.
그냥 통한 정도가 아니라 놀랍도록 효과가 만점인, 심지어 판이 커져 버리고 말았다.
“그럼, 이분이 그 풍백(風伯)이신가요?”
함께 걸음을 옮기던 웅녀, 그녀가 강회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환인을 말했던 것처럼 그녀는 풍백이라는 이름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그는 운사. 풍백은 바로 이쪽입니다.”
나름 생각을 지니고 있었던 영웅이 나를 가리켰다.
‘머리가 아주 안 돌아가는 편은 아니네.’
꽤 현명한 결정이다.
풍백은 우사와 운사의 위에 있는 이.
다른 누구보다 나와 의견 교환을 할 일이 많을 것이기에 제일 위의 직급으로 구분해 놓는 게 좋긴 할 것이다.
“아!”
고개를 끄덕이는 웅녀.
그렇게 거듭된 질문을 통해 나는 풍백, 강회장은 운사, 그리고 가만히 있던 정도환은 우사가 되어 버렸다.
아, 물론 나머지 윌리엄이나 예일 등등은 그냥 하늘에서 내려온 주민 1, 2가 되었고 말이다.
“정말 놀랍네요. 설마 그 고대의 예언의 실현될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뭔가 몽롱한 눈빛의 웅녀.
사실 그건 나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설마 예언이라는 게 존재했을 줄은.’
고대의 한반도, 그 중앙 태백산에 뿌리내린 거대한 나무 신단수에는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모를 깨진 비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하늘을 다스리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 풍백과 우사, 운사 등을 대동하여 강림하니. 마침내 한반도는 전쟁을 멈춘 채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웅녀가 알려 준 비석의 내용 중 일부였다.
‘이미 판이 준비되어 있었단 말이지.’
솔직히 이 계획을 구상할 때만 해도 될 대로 대라는 식이 강했다.
그런데 웬걸?
알고 보니 그것을 준비할 모든 무대가 다 마련되어 있었던 것.
“여기가 신단수예요.”
걸음을 멈춘 웅녀가 정면을 바라본다.
그 시선에 따라 자연스레 나와 일행의 시선도 그곳으로 옮겨졌는데.
“와!”
“오!”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정면, 그곳에 보이는 건 거대한 나무였다.
오랜 세월을 살았다는 게 느껴지는 거목이자 고목.
마치 하늘을 떠받들 듯 사방으로 뻗은 가지와 그곳을 장식한 나뭇잎.
새벽의 이슬이 맺힌 그것은 쏟아지는 햇볕을 반사하여 마치 황금빛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 웅족은 예로부터 신단수를 보호했어요. 언제고 이곳에 탐스러운 열매가 맺기를 기도하면서 말이죠.”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진 부족의 이념.
그중 신단수에 터를 잡은 웅족의 이념은 신단수를 보호하며 단 한 번도 열매를 맺지 못한 그곳에 과실이 열리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 방법을 아는 건 천인뿐이라 하였습니다.”
웅족인 그녀가 우리를 이렇게 환대하는 것 또한 그러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부디 어리석은 우리를 깨우쳐 주시고, 한반도에 평화를 이룩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부족의 목적 자체가 천인들의 등장과 부합하기에 환대를 넘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
“어….”
그녀의 맹목적인 태도에 오히려 놀란 영웅이 머뭇거린다.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그리고 그를 대신하여 운사인 강회장이 나섰다.
“한반도의 평화는 우리의 힘만으로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모두의 협조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곳이 평범한 곳이었다면 우리만으로 정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수인들이 판을 치는 세계.
당장 눈앞의 웅녀만 해도 나 이상의 힘을 지닌 강력한 전사가 아닌가.
우리의 전력으로 어떤 부족의 힘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모두를 압도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짐작하건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 웅녀 님과 같이 모두 호의적이진 않을 것 같은데, 제 말이 틀렸습니까?”
“….”
강회장의 날카로운 질문에 웅녀는 쉬이 답하지 못했다.
침묵은 곧 긍정의 의미.
‘웅족이야 신단수를 모시는 종족이니 그렇다치고, 나머지는 우릴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을 테지.’
특히 호족.
웅족과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겨루고 있는 그들이라면 갑작스레 나타난 가짜 천인, 우리에 대한 호감을 지니긴 어려울 것이다.
“…예. 일단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 말을 흐린다.
그녀도 지금 봉착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잠깐의 침묵을 지키며 자리를 지켰다.
현재 있는 곳은 신단수 아래 마련되어 있는 원형의 돌상.
회의를 위해 마련된 이 자리는 한반도에 중요한 안건이 있을 때마다 각 부족장이 모이도록 안배된 곳이었다.
물론.
‘지금껏 단 한 번도 족장들이 모인 적은 없지만.’
각 부족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타 부족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적이라 할 수 있으니 이들 부족이 모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천인을 가장한 우리가, 고대의 예언에 적힌 이들이 나타났으니 단 한 번도 없었던 부족장들의 모임이 성사된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기다림이 지루해질 무렵.
저벅.
장내에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었다.
“….”
여인들이었다.
하나같이 빼어난 미모를 지닌 그들은.
“왼쪽부터 낭족의 부족장 이랑, 사족의 부족장 사여….”
영웅의 귓가에 속삭이며 그들 하나하나의 출신과 이름을 알려 주었다.
“….”
물론 녀석은 웅녀가 전해 주는 정보보다는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그 행위에 대해서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여간 숫기 없기는.’
고작 여자와 귓속말을 나눴다고 저렇게 얼굴이 빨개져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배역을 잘못 고른 게 아닐까 심이 염려된다.
거침없이 다가온 각 부족장의 시선은 웅녀의 옆, 영웅에게 향했다.
상석, 당연히 그곳에 앉은 영웅이 회의를 소집한 이유라는 것을 깨달은 탓이다.
“이쪽이… 천인?”
“흠. 별로 대단치 않아 보이는데.”
“역시 예언은 거짓이었나.”
다들 생긴 건 곱상한, 천상의 미녀가 따로 없지만, 그 안은 오랜 전쟁을 치른 전사들이었다.
보통 생각하는 우락부락한 사내가 아닌, 언뜻 보기엔 평범한 그 모습에 실망한 듯 조금 무례할 수 있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무례하군요!”
그리고 그 말에 화를 낸 건 당사자인 영웅이 아니라 웅녀였다.
“이분은 예언에서 언급한, 하늘을 다스리는 환인의 아들 환웅. 무례한 언사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웅녀는 신단수를 모시는 이.
당연히 예언의 인물에 대한 무례한 언사를 용납하지 않았다.
단지 말뿐이었다면 그것이 위협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오오오오-
그녀가 뿜어 대는 엄청난 기세는 폭풍처럼 장내를 순식간에 장악하였다.
“….”
한 부족을 이끄는 부족장들의 안색을 굳어 버리게 할 정도로.
“예.”
“무례한 언사를 사과드리겠습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웅녀의 기세에 굴복한 그들은 꾸벅 고개를 숙여 사과하며 자리에 착석했다.
‘확실히 서열이 잡혀 있는 모양이네.’
낭족, 사족, 묘족 등 그들은 웅녀의 한마디에 꼼짝하지 못했다.
비록 지금이 호족과 웅족, 두 부족만이 대립하는 시대는 아니라 해도 대강 서열이 정리된 시점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정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웅족이 지금의 한반도를 대표하는 부족이라는 건 아니다.
정작 주인공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으허허허헝!”
아마도 녀석도 양반은 되지 못하는 듯하다.
포효.
장내의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마력이 담긴 포효를 터뜨린 존재가 신단수에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나도 모르게 작은 감탄사가 나왔다.
모두 검은색 머리칼인 데 반해 그녀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닮은 붉은 머리칼이었다.
앞서 모습을 보인 부족장들이 미녀였듯 그녀 또한 미녀였다.
하지만 뭐랄까.
그녀는 다른 부족장들과는 다른, 어떤 야성미를 풍기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위험한.’
마치 포식자를 바라보는 듯한, 그런 위험한 매력이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그 일련의 광경으로 그녀가 누군지 확신할 수 있었다.
“산군. 호족의 부족장 산군이에요.”
지금까지완 달리 조금 긴장한 듯 웅녀가 말했다.
‘그렇겠지. 비록 미래엔 지배 종족이 될 테지만, 지금은 밀리는 상황이니까.’
고대의 한반도, 그곳을 대표하는 건 웅족이 아니라 호족이었다.
그건 바짝 긴장한 웅녀, 그리고 여유로워 보이는 산군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흐음.”
그녀는 다른 부족장들과 마찬가지로 영웅을 일견하고는.
“….”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웅녀와 가장 먼 곳에 자리했다.
산군을 마지막으로 한반도에 있는 모든 부족의 부족장이 모인 셈.
“…다들 제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그렇기에 준비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단수에 새겨진 고대의 예언에 따라 마침내 천인들이, 환인의 아드님이신 환웅 님이 지상으로 강림하였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영웅에게 꽂힌다.
“….”
부족장, 아름다운 여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영웅은 태연한 척했지만.
꽈악!
두 주먹을 꽉 움켜쥐며 긴장을 숨겼다.
“모두가 바라 왔던 평화의 날이, 신단수에 과실이 맺히는….”
“잠깐!”
하지만 웅녀의 말은 훼방꾼으로 인해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래도 예의를 지키는 듯 손을 치켜든 산군, 그녀가 이의를 제기했다.
“천인? 환인? 환웅? 도대체 저들의 무엇을 믿고?”
모든 걸 덜컥 믿어 버린 웅녀와 달리 산군은 의심했다.
‘의심이 아니라 지적인가?’
그건 의심이 아니다.
설령 우리가 진짜 천인이라고 해도 놈은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다.
산군이, 호족이 바라는 건 평화가 아닐 테니까.
“감히! 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고대의 예언을 무시하는….”
“다짜고짜 나타나서 내가 천인이다. 그렇게 말하면 믿는 게 바보 아닌가.”
“…그들이 직접 환인을 언급했어요. 그리고 어느 부족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환인이야 당연히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니 언급할 수 있겠지. 게다가 소속이 없어? 그냥 떠돌이 신세가 아니고?”
“….”
“쯧쯧. 웅녀. 너는 다 좋은데 그 믿음이 문제야. 능력은 좋은데 너무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단 말이야.”
신단수를 지키는, 그 열매를 맺게 하려는 소명의 부족.
평소 그 울타리에 갇힌 웅녀를 가엾게 여긴 산군이 계속 말을 이어 간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리 복잡하지 않아.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천인? 그래, 좋아. 어디 그분들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어?”
산군이 원하는 건 실력의 증명.
“정말 이 사람이 예언에 나온 천인이라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그에 걸맞은 실력을 지니고 있을 테니까.”
그 뜨거운 눈빛이 영웅에게 향한다.
“물론 상대는 나. 이 산군이 부족을 대표하는 것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없을 테지?”
주위를 둘러보는 그 행위에.
“….”
아무도 별말을 하지 못했다.
산군이라 하면 웅족과 함께 한반도를 대표하는 두 부족 중 하나.
솔직히 말하면 최강의 부족이라 할 수 있으니 그곳의 부족장이 대표로 나서는 것에 불만이 있을 턱이 없었다.
“자, 환인의 아들이 환웅이시여. 어디 한번 그 대단한 실력을 보여 주시렵니까?”
영웅의 실력을 직접 확인하고자 몸을 일으키는 산군.
콰아아아아-
그 사나운 기세가 장내를 집어삼킬 것처럼 매섭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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