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산군이 원하는 바는 분명했다.
실력의 증명.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고대의 한반도, 그곳을 지배하는 건 힘의 논리였으니까.
동물의 세계처럼 약육강식이라는 절대적인 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여기서 걸리는 게 있다면 영웅은 놈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회귀 전에야 생존한 이들 중 100명 안에도 꼽힐 만한 실력자였지만, 지금은.
‘잘해야 1분을 버틸까.’
그건 과소평가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영웅을 잘 알고 있기에 부풀려서 설정한 값이다.
산군은 강자였다.
과연 고대의 한반도, 그곳을 휘어잡을 정도의 힘을 지닌 최강자 중 하나.
『산군
성별 : 여
나이 : 250
성향 : 혼돈(악)
소속 : 호족
…
특성 : 수인(호랑이)
특성 진화 : 5단계』
그건 진리의 눈을 통해 보이는 지표만 봐도 알 수 있다.
‘특성 진화가 다섯 단계면 상대도 안 되지.’
아무리 영웅이 권왕이라는 희귀한 특성을 각성했다고 해도, 또 내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3단계 진화에서 오는 힘의 차이는 감당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무엄하다!”
산군의 폭발적인 기세를 뚫으며 나섰다.
“어딜 지상의 수인 따위가 천인, 그것도 환인의 아들에게 도전하려 하느냐!”
적당한 명분이다.
위대한 이, 환웅에게 도전하기 위해서는 그의 수하인 풍백을 거쳐야 한다는 명분 말이다.
“흥! 잔챙이 주제에.”
하지만 녀석은 내가 안중에 없는 듯.
스윽-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육체의 잔상조차 남지 않는 쾌속의 영역.
과연 육신의 발달만큼은 최상위권에 속하는 특성다운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그 움직임은 분명 내 육안을 속였다.
그러나.
‘온다!’
육감이 말하고 있었다.
좌측, 그곳을 향해 적이 쇄도하고 있다고.
그렇기에 망설이지 않고 이상한 띠의 검을.
『신속의 검』
휘익!
신속의 힘을 부여하여 휘둘렀다.
카앙!
장내에 울려 퍼지는 소음과 함께.
찌릿!
손아귀를 찢는 듯한 반발력이 전해졌다.
“막아?”
그곳에는 주먹을 쥔 산군이 있었다.
‘맨주먹.’
검과 부딪힌 게 주먹이라는 사실이 놀랍지는 않다.
수련을 거듭하게 된다면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주먹도 쇠보다 더 단단해질 수 있으니까.
250년 동안 단련한 산군이라면, 특히 수인의 진화를 5단계나 이룬 녀석이라면 그러한 영역에 도달하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테지.
문제는.
주륵.
찢어진 손아귀에서 새어 나오는 피였다.
단 한 번.
그 일격으로 인해 충격을 느끼다 못해 손아귀가 찢어져 피로 번들거렸다.
저런 무지막지한 주먹을 맨몸으로 받는다면 뼈가 으스러져 즉사하고 말 것이다.
“그냥 잔챙이는 아니라 이거지?”
조금 전과 달리 조금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낸다.
“….”
그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확실히 실력의 차이가 나네.’
과연 고대의 한반도를 지배했던 부족의 지배자.
일격이었지만, 그 실력을 가늠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녀석은 분명 지금의 나보다 강하다.
하긴, 특성의 진화 단계에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니 상대가 안 되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그렇게 우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잠깐의 대치 시간을 이용하여 붉게 달아오른 모루를 꺼냈다.
“진짜는 아직 시작도 안 했거든.”
모루를 얻기 전이었다면 이것으로 내 패배를 직감했을 테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전용 보구. 그것의 유무는 불리한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정도.
까앙!
힘껏 모루를 쳤다.
처음 그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츠츠츠!
내가 가진 보구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 큰 변화는 아니다.
은은한 빛, 그것이 이상한 띠의 검을 비롯한 각종 보구를 감쌌다.
외형적으로 보자면 작은 변화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봤을 때 그건 작은 변화가 아니었다.
『특수 강화 : 능력의 보석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제한이 사라짐.』
모루로 인한 특수 강화.
그 특수한 능력으로 인해 이상한 띠의 검, 그곳에 박힌 능력의 보석을 사용하는 모든 제한이 사라졌다.
대표적으로 보자면.
『정오의 힘』
시간은 어스름한 새벽녘이었지만, 정오의 힘이 발현되어 근력이 강화되었다.
게다가.
『광전사』
『승리의 왕』
『수호자』
등등, 한 번에 세 개 이상을 사용할 수 없는 능력의 보석을 단번에 발휘할 수 있게 된 것.
하지만 모루의 능력은 그게 끝이 아니다.
까앙!
다시금 울려 퍼지는 맑은 쇳소리와 함께.
“으음?!”
깜짝 놀라는 산군.
그럴 수밖에.
놈의 착용한 각종 보구는 물론.
‘육신의 능력마저 하락하니까.’
이것이 헤파이스토스의 모루, 무한의 강화사만이 다룰 수 있는 전용 보구의 위력이었다.
‘물론 지금보다 더 강화된 상태라면 진화의 단계마저 낮출 수 있지만.’
하지만 아직 그 능력까지 사용할 수 없다.
특성의 진화 단계까지 낮추기 위해서는 현자의 돌 이상의 재료가 필요한 ‘고강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그 영역에 도달할 수 없지만, 이것만으로도 괜찮다.
아니, 충분하다.
“네 녀석. 내게 무슨 짓을…?”
“쯧. 어리석은 지상의 존재여. 이것이 바로 천인의 힘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건 천인의 힘 같은 게 아닌, 순전한 템빨이었지만, 녀석이 그걸 눈치챌 염려는 없었다.
오히려.
“….”
정말 천인의 신비한 힘이라고 생각하는 듯 눈을 가늘게 뜰 뿐이었다.
“대충 실력은 봤으니, 이제 진지하게 가 봐야지?”
“감히!”
자존심이 상한 듯 다시금 몸을 움직인다.
그러나.
‘보인다, 이 자식아!’
조금 전까지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던 그 움직임이, 궤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오의 힘, 광전사, 게다가 승리의 왕까지 더해진 지금의 내 능력이라는 건 5단계 진화를 이룬 산군과 대등한 정도.
아, 물론 놈의 육체 능력이 하락됐기에 비빌 수 있는 것이긴 하다.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놈과 지금의 내 육체 상대는 동일.
그렇다면 남은 건?
‘육신을 다루는 이의 경험과 실력의 차이.’
보통은 산군이 앞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 한창인 고대의 한반도를, 그 전쟁터를 200년 이상 경험했으니.
그러나 그것이 내겐 통용되지 않는다.
무려 20년.
비록 기간은 짧으나 이곳 전쟁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지옥을 경험한, 그리고 살아남은 내 경험이란 건 놈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이었으니까.
쐐애액!
엄청난 힘이 담긴 주먹이 맹렬한 속도로 쇄도한다.
굳이 육감이라는 능력에 기대어 그 궤적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
스윽-
자연스레 몸이 움직인다.
위기에 반응하는 그 속도는 의지가 생기는 순간 몸이 움직이는, 그 절정의 경지에 닿았을 정도.
팟!
그 공격을 회피함과 동시에 반격이 이루어졌다.
그야말로 공방의 일체.
“헙!”
그리고 산군은 그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헛바람을 삼키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건 페이크.
한 걸음, 크게 보폭을 걸어가 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
공격을 피해 뒤로 물러나려던 놈이 눈을 크게 뜬다.
“늦었어!”
그것이 페이크라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러나 전장에서 그 한 번의 속임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놈이, 산군이 모를 턱이 있나.
쉬익!
전력이 실린 이상한 띠의 검, 정말 놈을 없앨 생각으로 힘차게 그 검을 휘둘렀다.
카카칵!
그러나 전력이 실린 검은 놈의 육신을 베지 못했다.
호랑이로 변한 놈의 단단한 거죽을 뚫지 못한 탓이다.
“크헝헝헝!”
수인화, 마침내 그 강력한 특성을 펼친 녀석이 포효했다.
“흐읍!”
“으으-”
정신을 갉아먹는 포효에 다들 신음했으나.
“어림없지!”
고작해야 호랑이의 포효 따위가 내 정신을 침범할 순 없다.
아랑곳하지 않은 채.
카앙!
검을 휘둘렀고, 역시나 튕겨 나왔다.
거죽이 단단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크헝!”
타격이 없는 건 아니었다.
놈은 내 공격에 충격을 받고서는 주춤 뒤로 물러났다.
카앙, 카앙!
물러나는 놈을 끈질기게 붙잡으며 계속 공격을 가했다.
한번 내게 온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심산.
‘여기서 놈을 정리한다.’
아무리 봐도 산군, 이 녀석은 이번 시련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놈을 여기서 처치한다면 영웅과 웅녀의 혼인 등 그 모든 일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카앙, 카앙!
맹공을 가했다.
어처구니없이 싸움의 주도권을 빼앗긴 산군은 분명 그대로 죽었어야만 했다.
“그만!”
하지만 한 가지 변수, 갑작스레 싸움에 끼어든 웅녀로 인해 그 미래는 실현되지 못했다.
“쯧!”
앞을 막아선 웅녀를 보며 검을 거뒀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산군을 죽이고 싶었지만.
‘웅녀와 척을 질 순 없으니까.’
이 시련의 핵심인 웅녀와 척을 진다는 건 임무를 실패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녀라면 내가 한발 양보하는 수밖에.
“크헝헝!”
분노한 산군이 달려들려 하지만.
“산군!”
노한 웅녀의 외침과 함께.
“제가 당신의 목숨을 구했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도 그런 태도를 유지할 건가요?”
“….”
그 자리에 멈춰선 채 침묵하던 산군이.
츠츠츠.
수인화를 풀었다.
엄청난 덩치의 백두산 호랑이에서 예의 그 미녀로 돌아온 산군의 분노한 눈길이 내게 향한다.
“방심했을 뿐이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면 저딴 놈….”
“당신이 방심을 논하다니. 이 치열한 전쟁터에서 방심한 사람이 잘못 아닌가요? 설령 그 방심으로 인해 목숨을 잃어도 원망하지 말라고 말하던 게 당신이었을 텐데요.”
“….”
할 말이 없는지 침묵한다.
“산군, 당신은 이 싸움에서 패했어요. 그리고 그건 천인이라는 존재의 능력을 보여 준 것이기도 하죠.”
“….”
패자는 말이 없는 법.
여전히 침묵하던 산군이 털썩 자리에 앉았다.
“…자, 다들 보셨을 거예요.”
좌중을 둘러본 웅녀가 지체되었던 회의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천인의 실력을. 그 신비한 힘을.”
그 신비한 힘이라는 건 내 모루를 뜻하는 것일 테지.
‘산군을 죽이지 못한 건 아쉽긴 하지만.’
웅녀의 호의를, 그리고 다른 부족장들의 환심을 샀다면 그것으로 만족.
“하물며 그 능력을 보인 건 환인의 아드님이 아닌 그분의 수하인 풍백 님입니다. 여기 환웅, 이분의 능력은 예언에서 말했던 대로 천지를 가를 수 있을 정도가 분명할 터!”
“…어, 음….”
웅녀의 극찬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긴장하는 영웅.
“크…흡!”
“키킥….”
그리고 그것이 못내 재밌다는 듯 실소를 금치 못하는 윌리엄과 예일.
쯧!
연기에 몰입을 해야지.
아무래도 저 둘은 나중에 따로 불러서 한 소릴 하든가 해야겠다.
“그러니 이제 모두 전쟁을 멈추고 환웅 님의 휘하에 모여 마지막 대적을 상대해야 할 것입니다.”
음?
대적?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웅족과 호족, 두 부족 간의 전쟁만 막으면 되는 것 아니었어?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예상치 못한 웅녀의 말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내 의문과는 상관없이 웅녀는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신단수를 갉아먹는 과거의 왕, 마고(麻姑)를 저지해 주십시오!”
그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번 시련의 최종 목표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