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마고?
처음 듣는 단어는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 머릿속에는 잊힌 과거와 모든 진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마고(麻姑) : 고대의 한반도 이전, 태고의 시대를 다스렸던 최초의 임금이며 반신의 경지에 다다른 유일한 존재.』
몇몇 설화에서는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악신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마고의 진정한 정체는 고대 이전의 한반도를 다스렸던 유일의 존재였다.
‘하지만 반신이 아닌 완전한 신이 되기 위해 벌인 살육과 학살로 인해 봉인을 당한.’
누가 그들을 봉인했는지에 관해서는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지 않았다.
다만 그 폐해를 참지 못한 일부 뜻있는 이들이 봉인하였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내용이 남아 있을 뿐.
“마고라면…?”
정보를 얻기 위해 의문을 표했다.
“과거의 왕, 이전 시대를 다스렸던 유일한 존재입니다.”
“녀석은 봉인 당한 게 아니었나?”
“예. 과거 억압당하던 우리를 가엽게 여긴 환인과 천인들 덕분에 지금의 한반도가 있을 수 있었죠.”
“그런데?”
“그 봉인이, 이 신단수가 서서히 힘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어?
그건 또 처음 듣는 말이었다.
신단수가 마고의 봉인이라고?
“신단수에 열매가 맺히는 날, 마고는 완전히 힘을 잃고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뜻이 담긴 말을 읊조린다.
“신단수 아래 보관된 석판, 그중 한 구절입니다. 물론 천인 분들은 모두 알고 있을 테지요.”
아니, 몰랐는데?
“….”
하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우리가 언급한 내용을 알고 있는지 시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신단수를 소중히 여기며 그 예언의 석판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으니까요.”
어딜 봐도 모르고 있는 건데, 오해해 준다면 좋지.
웅녀는 우리가 자신을 시험한다고 생각했는지 살포시 미소 지었다.
본디 진실을 감출 때가 더 값진 경우도 있는 법.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아, 그래? 그렇군. 아주 잘하고 있어.”
아마 그것이 굉장한 칭찬으로 들린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며 감사함을 전한 웅녀는.
“그리고 지금, 그 오랜 기다림을 끝낼 때가 왔습니다.”
신단수 아래 새겨진 비석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렇겠지.
그리고.
‘마고를 처치하는 것. 그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면 굳이 힘들게 돌아갈 필요는 없겠지.’
슬쩍 영웅을 응시했다.
본래는 녀석과 웅녀를 어떻게든 이어 줄 생각이었지만, 이번 시련의 목적은 따로 있었던 것 같다.
봉인된 마고.
태고의 한반도를 지배했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선사함으로써 이번 시련은 종료될 것이다.
“…그건 안 되겠는데?”
그리고 예상했던 훼방꾼이 나타났다.
산군.
녀석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영웅과 웅녀를 번갈아 바라본다.
“천인? 그래. 너희가 실력이 있다는 건 나도 인정하는 바야. 같잖게 방심이 어쩌느니 더는 말하지 않을게.”
웅녀의 말이 효과가 있었던 듯 내 실력을 인정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너희가 마고를 처치하게 가만히 지켜볼 순 없지.”
그건 뜻밖의 말이었다.
“마고를 처치하게 둘 수 없다? 너는 봉인을 원하지 않는 건가?”
“아니. 그 누구보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지. 놈은 과거의 폭군. 다시금 봉인을 풀고 나오게 된다면 한반도 전체가 위험할 테니까.”
“그런데?”
“말했잖아. 그 공을 네가 차지하게 둘 수 없다고.”
“산군….”
무언가 사정을 알고 있는 듯 웅녀가 산군을 안쓰럽게 바라본다.
“그런 동정의 시선 따윈 필요 없어. 나는 우리 가문의 오랜 숙원을 다할 생각이니까. 그리고 그 숙원을 남의 손에, 그것도 천인이라는 외지인의 손이라면 더더욱 사양이야.”
홱, 찬바람이 돌 정도로 냉정히 뒤돌아선다.
“너희도 태도를 확실히 밝히는 게 좋을 거야.”
그녀의 시선이 장내의 부족장들에게 향했다.
“지금껏 우리가 지켜 온 한반도의 미래를 외지인의 손에 떠넘길 것이냐, 아니면 우리가 정한 고대의 법칙에 따라 움직일 것인지.”
그 마지막 말을 전한 산군이 미련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
장내의 분위기는 더없이 냉담하다.
“산군의 말이 맞아요.”
“우리는 명예를 위해 지금껏 싸워 왔죠.”
“외지인에게 우리의 사명을 맡기지는 않겠어요.”
대다수 부족장이 산군과 함께 등을 돌렸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묘족, 토족, 록족 등 웅족과 함께 신단수의 사명을 받드는 것을 우선시하는 이들은 남았으나.
‘나름 힘 있는, 중요한 부족은 모두 나갔군.’
산군이 이끄는 호족을 필두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이들 대부분이 대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대체 그 사명이라는 게 뭐지?”
이젠 그냥 방랑자가 아니라 천인의 신분이기에 자연스레 하대했다.
“…마고를 쓰러뜨려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 그 막중한 사명입니다.”
응?
“뭐야. 그럼, 우리가 필요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건 환웅 님과 천인 분들이 나타나기 이전의 일입니다. 이제 예언의 분들이 나타났으니, 그건 과거의 일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과거의 일이라. 뭔가 마고를 막아야만 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은데.”
“…예. 마냥 천인 분들을 기다릴 수 없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지?”
“마고의 봉인이 약해지며 그녀가 한반도 전체에 저주를 내렸습니다.”
“저주?”
“네.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에게 내린 강력한 저주를….”
말하는 투나 격한 감정을 봤을 땐 아주 강력한 저주인 게 분명하다.
“…아이들이 수인화 할 수 없는 저주를 말이에요.”
“….”
그 말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때요?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저주죠. 어떻게 수인화를 할 수 없다니. 나약한 인간 상태로만 살아갈 걸 생각하니, 흑.”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웅녀.
“흑흑!”
“불쌍한 아이들….”
심지어 주변의 부족장들 모두가 찔끔 눈물을 보였다.
‘그래.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입장의 차이는 있겠지.’
지금 인류와 달리 이들은 수인화를 저주라 여기지 않았다.
인간 형태는 나약하며, 수인화를 이뤘을 때만 진정한 모습이라고.
어쩌면 마고가 지배했던 태고에는 그러한 수인들이 지배하던 시대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주(?)를 거쳐 지금의 인류가 나타났을 테고.’
물론 그게 진실된 역사인지는 모른다.
다만 고대, 그리고 태고에는 수인들이 일상처럼 살아갔다는 건 확실했다.
“나약한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그 일에 대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했고, 결국 그것이 마고의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오래된 봉인이 약해졌고, 그 틈을 이용하여 저주를 내렸음을. 그리고 그를 처리하지 않으면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영원토록 저주받을 것임을.”
“그래서 그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마고에 맞섰나?”
“네.”
“그럼 간단한 거 아닌가? 서로 힘을 합쳐 마고를 처리하면 되는 거잖아.”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음.
아무래도 내부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끼어 있는 것 같은데.
“마고를 봉인한 신단수 뿌리,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100년에 단 한 명. 오직 한 명만이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죠.”
“….”
이건 예상치 못한 전개인데?
“…100년마다 딱 한 명?”
“네. 그리고 지금이 그 100년째예요.”
사실 내게 중요한 건 100년이라는 긴 시간이 아니다.
‘…딱 한 명?’
마고를 처치하는 데 도전할 수 있는 건 단 한 명뿐.
그러니까 지금의 전력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쯧. 이거 또 일이 어렵게 꼬이는데.’
물론 아직 확정 짓기엔 이르다.
웅녀의 이야기를 더 들어 볼 필요성이 있었다.
“그럼, 그 명예를 위해 산군은 자신이 마고를 처치하겠다고 하는 건가?”
“네. 정확히는 명예라기보다는 복수에 가까울 테죠.”
“복수?”
“어머니에 대한 복수.”
“…어머니라면…?”
“마고의 저주를 확인한 이후 전 부족이 지금과 같이 모여 대회의를 진행했어요. 각자 머리를 맞대어 내린 결론은 서로 전쟁을 벌여 최후의 승자가 된 부족, 그곳의 대표가 신단수의 뿌리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 단순 무식한 것들의 생각이란 건 무척 간단했다.
부족 간 전쟁을 벌여 거기서 최후에 우승한 이들, 그 부족의 대표가 신단수의 뿌리로 향한다는 것.
“100년 전, 최후 승자 부족이 되어 마고에게 도전한 건 산군의 어머니였어요.”
아!
단번에 이해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산군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왜 그토록 마고를 쓰러뜨리기 위한 일에 몰두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믿고 따랐던 어머니의 복수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그 끝이 진창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뭔가 안쓰러워하는 웅녀.
“뭐, 간단한 거 아냐?”
심각한 장내의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어떤 게 말이죠?”
“산군을 비롯한 타 부족은 우릴, 천인을 인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오랜 전통에 따라 전쟁에 나서서 그 승자를 가려 신단수의 뿌리로 향하는 이를 결정하겠다는 거잖아.”
“예. 일단은 그런 셈이죠.”
“그럼, 그 장단에 맞춰 줘야지.”
“…네?”
“간단하잖아. 신단수의 뿌리로 향하는, 마고를 처치할 수 있는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다. 그리고 우승하여 모두가 인정하는 자격을 증명한다. 어때, 간단하지?”
“….”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
그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웅녀를 비롯한 나머지 부족장들은 그리 간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이다.
*
처음에는 어이없어했다.
그러나 웅녀는, 그리고 웅족과 뜻을 함께한 부족들은 마고를 쓰러뜨릴 명예의 전쟁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나마 다행한 사실은 우리의 편을 들어준 게 웅족이라는 사실이다.
호족과 함께 한반도를 대표하는 두 개의 부족 중 하나.
한때는 최고였던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강경한 호족, 산군에게 밀려 2인자의 자리에 있는 그들의 지지는 꽤 중요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 묘족, 록족, 토족, 돈족 등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 부족의 힘은 강하지 않으나 꽤 많은 부족의 지지를 얻었다는 건 그만큼 우리, 천인이라는 존재의 위상을 높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대로 부족들을 설득하여 부족 간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모두가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우, 웅녀님!”
전쟁 상황 중 마을 주변을 정찰하는 임무를 맡은 척후병이 다급히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현재 이 막사는 천인을 비롯한 웅녀, 그리고 부족의 중요 인사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
그런데도 그가 이곳으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는 건 일의 위급함을 알려 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죠?”
그것을 파악한 웅녀의 다급한 질문에.
“호, 호족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음. 역시 그렇군요.”
호족의 공격?
그건 이미 예상한 바였다.
하지만 이어진 척후병의 말은 장내를 꽤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호족만이 아닙니다. 취족, 사족, 낭족 등이 동맹을 맺은 것 같습니다!”
“!!”
아무래도 산군은 마고를 쓰러뜨리는 자신의 명예를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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