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동맹이란 말인가요?”
동맹.
고대의 한반도에선 낯선 단어일 수밖에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씨족으로 이루어진 부족이었기에 배타적일 수밖에 없었고, 언강생심 타 부족 간의 동맹 및 연합은 그들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웬걸?
이러한 기존의 법칙을 뒤엎고, 가장 배척적이었던 산군이 동맹을 맺어 웅족의 영역을 향해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현명한 웅녀도 이러한 예외 상황에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동맹이라. 확실한가?”
정보는 확실해야 하기에 다시금 물었다.
“예, 예. 각 부족의 깃발을 합쳐 하나의 상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깃발을 하나로 합하여 하나의 깃발로 통일했다면.
“동맹이 맞네.”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설마 자존심 강한 산군이 동맹을 맺을 줄은….”
웅녀도 거기까진 예상하지 못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예상을 뒤엎는 일.
확실히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다.
‘우리와 웅족에게 지지를 보낸 이들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의 차이지.’
물론 우리에게도 지지를 보낸 부족이 존재한다.
그러나 동맹도 아니고 지지다.
뜻을 합쳐 함께 싸우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기에 언제든 발을 뺄 수 있다.
게다가.
‘상대는 나름 힘 좀 쓰는 부족인데 반해 우리는.’
호족과 동맹을 맺은 이들의 면면은 한반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력한 부족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뒤에서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나약한 부족.
하물며 동맹도 아니니 전쟁을 벌이게 된다면 패배는 분명하다.
“…일이 점점 꼬여 가는 느낌이네요.”
신중한 성격의 웅녀도 지금 상황에선 비관적인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글쎄.”
물론 나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여기 계신 환인의 아드님인 환웅 님께서 그것을 신경 쓸 것 같은가?”
비록 애초의 목적은 틀어졌지만, 여전히 영웅은 환인의 아들인 환웅이었다.
물론 나도 그를 모시는 풍백이었고.
“동맹? 신경 쓸 것 없다. 어차피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도 너희, 어리석은 야만인들을 모두 굴복시키기 위한 목적이 컸으니.”
의외의 사실?
아니,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바였다.
물론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야 동맹이란 것에 낯설 테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만 하지.’
종말을 헤쳐 나가며 느낀 바는 ‘항상 최악의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라는 점이었다.
여기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테지.
여기선 이렇게까지 악화되지 않을 거야.
개뿔.
항상 불안하게 생각한 그 일이 현실이 되곤 했다.
그래서 습관처럼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어색한 동맹 형성.
이미 그것을 예상에 둔 바였다.
“두려움에 떨 것 없다. 어차피 이 모든 일은 환웅 님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일련의 일에 불과하니까.”
내 말에.
“….”
웅녀를 비롯한 장내의 시선이 영웅에게 모인다.
‘자, 여기서 한마디!’
미리 입을 맞추진 않았지만, 그 정도 눈치는 있던 영웅.
“하하, 하하하!”
돌연 호탕한 웃음을 토해 낸다.
물론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어색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터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웃는 그 여유에 다들 놀란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산군의 움직임은 이미 예상했던바.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오히려 녀석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환인의 아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떠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오오!”
“환웅이시여!”
“하늘의 아들이시여!”
“비탄에 빠진 지상을 구원해 주십시오!”
그 여유로움에 감화된 듯 엎드려 절을 하는 이들.
물론 웅녀는 그들과 같은 행동을 보이진 않았지만.
‘갔네, 갔어.’
영웅에게 깊은 동경을 표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그러면 저희가 어찌하면 될까요.”
환웅을 향해 물었고.
“….”
환웅, 아니 영웅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사실 연기만 할 뿐이지, 정작 아는 건 하나도 없으니 당연하지.
“달리 준비할 건 없다. 그저 평소대로 전쟁을 준비하면 된다. 그리하면 보게 될 것이다. 우리 천인이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 말이다.”
“예. 분부대로.”
내 명령에 곧장 막사를 빠져나간 웅녀가 분주하게 주변을 향해 명령을 하달하기 시작했다.
“야!”
우리를 제외한 모두가 막사 밖으로 나갔을 때야 다급히 입을 여는 영웅.
“왜.”
“괜찮아?”
“뭐가?”
“아니, 산군과 동맹 말이야.”
“괜찮지. 안 괜찮으면 여기서 죽으려고.”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 정말 그들을 압도할 수 있는 게 맞아? 전에 보니까 산군에게도 꽤 고전했던 것 같은데.”
“오. 확실히 보는 눈이 늘었다. 내가 고전한 것도 다 알고?”
“그건 보는 눈이 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 세 살짜리 꼬맹이가 봐도 네가 고전했다는 건 다 알고 있을걸.”
“그렇다. 윤찬. 위급했다.”
윌리엄이 끼어들며 말에 양념을 쳤다.
“뭐, 그래. 확실히 고전하긴 했지. 놈의 말처럼 방심하지 않았다면 꽤 불리한 전투가 됐을 테니까.”
물론 패배는 안중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 산군과 강력한 부족들이 동맹을 맺었잖아. 승리할 수야 있다고 쳐도 지금 말했던 것처럼 압도적인 승리가 아니라면 조금 상황이 곤란하지 않아?”
뱉어 놓은 말이 있다.
만약 힘겹게 승리를 거두게 된다면 전쟁에서 승리해도 웅녀나 다른 부족의 의심 어린 시선을 받게 될 것이다.
“당연히 압도해야지. 놈들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니까 그게 가능하냐는 거지. 여기 수인들 생각보다 강력하던 것 같은데.”
“맞아요. 특히 수인화 했을 때의 그 육체 능력은 정말 와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예일 또한 산군의 육체 능력에 감탄한 듯 입을 벌렸다.
“확실히….”
쉽지 않은 상대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대규모 전쟁이잖아. 내가 지금껏 살면서 많은 전투를 경험해 봤거든. 그런데 대규모 전쟁만큼 쉬운 건 없더라.”
그건 괜한 자신감이 아니다.
종말을 헤쳐 오며 겪었던 수백, 수천 번의 전투.
그중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전투에서 난 패한 적이 없었다.
그건 지금, 강력한 동맹을 형성한 산군과의 전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험한 산길이 이어지는 태백산의 유일한 평지.
휘이이잉-
한차례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그곳에 모인 이들에게 서늘한 기운을 전해 준다.
꿀꺽!
긴장된 듯 마른침을 삼킨다.
극도로 긴장한, 마른침을 삼키는 대부분은 웅족 사람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건 너무….”
누군가 신음처럼 내뱉는 말.
그 말에 모든 심경이 들어 있었다.
정면, 그곳에는 엄청난 수의 인원이 모여 있었다.
웅족의 족히 10배는 되어 보이는 그 수는 호족과 취족, 사족, 낭족, 비족 등 한반도에서도 꽤 이름을 알린 강력한 부족의 연합이었다.
“….”
산군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한반도를 지배하였던 웅족.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어디에 있지?”
주변을 둘러보던 나의 물음에.
“…발을 뺐습니다.”
침울하게 답하는 웅녀.
조금 전 우리에게 지지를 보냈던 이들의 협조를 요청했었다.
처음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녀석들이지만, 지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럴 테지.”
일찍이 예상했다.
그들이 지지를 보낸 건 전쟁이 없는 평화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당연히 발을 뺄 수밖에.
“설령 도움을 준다고 해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건 거짓말이다.
대규모 전쟁에서 인원수만큼 절박한 건 없다.
그들이 만약 위기를 불사하고 도움을 줬더라면 이번 전쟁을 더욱더 쉽게 끝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아니. 적어도 가만히 있기라도 했으면 도움이 됐을 테지.’
정작 문제는 그보다 더 거대했다.
“웅족은 들어라!”
콰르릉-
장내에 울리는 거대한 음성.
마치 호랑이의 포효 같은 그건 당연히 산군의 것이었다.
선두, 가장 앞에 선 이 강단 있는 여인은 배에 힘을 주어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과거에 얽매인 한심한 족속들이여. 너희는 외지인에 불과한 이들의 도움을 바랄 테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크!
예언에 나온 천인을 철저하게 외지인으로 취급하며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있었다.
뇌에 근육만 가득 찬 줄 알았더니 선동 실력이 제법이다.
“우리의 일은 우리 스스로 해결한다. 언제부터 우리가 남의 도움에 기댔지?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해왔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그것에 반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닥쳐요!”
화가 난 웅녀가 반박한다.
“과거 천인은 고통받는 우리를 위해 기꺼이 마고라는 거대한 존재를 봉인해 주었어요. 그 고마움을 기록하고 감사해하는 건 당연한 일. 역사를 잊는 이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 지금 산군, 당신에게 말해 주고 싶군요.”
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
웅녀도 제법 말을 받아칠 줄 안다.
“하하하하하하하!”
여인답지 않은, 그 미모에 어울리지 않는 호탕한 웃음.
“우리는 현재를 살 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천인이라는 예언의 존재가 아니라 내부의 결속이다. 자, 보아라!”
산군이 손짓하자 병력이 좌우로 갈라지며 그 뒤에 숨겨져 있었던 비밀이 드러났다.
“이, 이익!”
그 광경을 본 웅녀가 분노를 표출했다.
왜냐?
그곳에 있는 건 조금 전까지 우리를 지지한다고 말했던 부족장들과 그 부족원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정녕…!”
“그렇게 열을 낼 필요 없다. 이들이 원하는 건 평화.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했을 뿐이니까.”
일리 있는 말이다.
평화를 원하기에 가장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힘이 있는 편에 붙었다.
한마디로 얌체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이제 하나가 되었다. 자, 이제 마고를 쓰러뜨리는 일에 가장 방해되는 이들이 누구지?”
“….”
산군의 말에 웅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확실히 지금 마고를 쓰러뜨리는 대업에 가장 방해가 되는 건 웅족과 천인인 우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말이 빚어낸 파장은 결코, 작은 게 아니었다
웅성웅성.
소란이 일었다.
평소라면 웅녀의 지휘하에 침묵하고 있어야 할 웅족의 소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동요하고 있군.’
동요였다.
산군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곤, 천인이라는 존재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산군은 그러한 동요를 꽤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고.
“기회를 주겠다.”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건 너희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다. 확인되지도 않은 과거의 일에 얽매일 것인지, 아니면 당장 눈앞에 있는 목적과 결과를 위해 하나가 될 것인지. 지금 선택해라. 지금 이 순간 이후에는 번복할 수 없을 테니 명심하는 게 좋을 거다.”
그렇지 않아도 동요하고 있는 웅족 내부에 거대한 결손이 발생했다.
심지어 몇몇 이들은 주변 눈치를 보며 호족 쪽으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맙소사!”
그와 같은 광경을 확인한 웅녀가 경악하며 한탄했다.
아마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산군이 원하는 대로 고대의 한반도가 하나 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미안.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은데.”
놈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둘 순 없지.
“어리석은 야만인들아. 아직도 천인의 힘을, 그 거대한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한 너희들에게 친히 하늘의 뜻을 가르쳐 주마.”
다시금 꺼낸 붉게 달아오른 모루.
헤파이스토스의 모루는 개인일 때보다 이렇게 대규모 인원이 모인 전쟁에서 빛을 발한다.
까앙!
그리고 그 모루가 불똥을 튀며 맑은 금속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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