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에너지의 집합.
무기의 사용에 따라 쓰는 명칭이 다르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 흔히 권기(拳氣)라 부르는 그것은 종말이 발생하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일부 각성자만이 발현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지금 윤서영은 그것을 발현하고 있었다.
특성의 진화를 통한 단계의 해제에 구애받지 않는 투신이라는 특성의 장점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광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기의 사용을…?」
그것은 미지에게도 조금의 놀라움을 선사할 수 있을 정도의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나약한 인간, 그것도 그들이 부리는 망자 따위가 벌써 기를 다루다니.
그건 미지라는 존재의 예상 범위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다.
「유일의 힘인가?」
완전한 상태가 아니지만, 윤서영이 유일의 특성을 개화했음을 파악한 미지.
물론 그것이 어떠한 특성인지는 들여다보지 못했다.
「죽어!」
미지가 무슨 말을 지껄이든 지금의 윤서영에게 있어서 그는 죽여야 할 대상에 불과했다.
콰앙!
미지의 영역, 그 결계를 깨뜨릴 수 있는 권기를 두른 주먹이 다시금 마고의 육신을 향해 쇄도했다.
「….」
이미 미지의 영역은 깨졌다.
그렇기에 조금 전과 같이 공격을 무시하지 못한 채.
쩌억!
기괴하게 생겨난 입, 송곳니로 가득한 그것이 주먹을 집어삼키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으음?」
미지는 무력감이란 것을 느꼈다.
본체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이질적인 그 감각의 주체는.
「저주인가?」
육신을 감싼 이질적인 기운의 정체는 저주였다.
물론 그것을 행한 이는 정도환.
“아무래도 너를 보호하는 결계가 깨진 것 같군.”
윤서영이 발현한 권기가 미지의 영역을 깨뜨린 것을 확인했다.
조금 전까지는 그 영역으로 인해 저주와 같은 힘을 발현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미지에 닿을 수 있다.
그것을 느낀 정도환은 곧바로 저주를 발현했다.
그것도 일반 저주가 아니다.
네크로노미콘, 그곳에 서술된 저주의 이해를 통해 더욱더 증폭된 능력이었다.
미지의 영역으로 인해 보호를 받는 상태라면 모를까, 지금 미지는 무방비 상태였고 저주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재밌군.」
오랜만에 느껴 보는 무력감.
항상 위에서 아래를 바라봤던 미지는 오랜만에 흥미가 동했다.
「나는… 따분한 이야기를 싫어한다.」
미지는 관람객이다.
종말이라는 무대를 관람하며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먹는다.
그것이 영겁의 세월을 살아온 그들의 유일한 유흥이자 질서.
하지만 어디나 그렇듯 기존의 질서에 반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
「특히 이 종말이라는 시나리오는 따분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지.」
마고를 비정식 사도로 삼은 미지는 종말이라는 이야기를 싫어하는 부류 중 하나였다.
「마침 이 무대, 지켜보는 이도 없는 것 같으니….」
아직 종말이 실현되기 이전.
프롤로그에 불과한 부분을 지켜보는 존재는 많지 않다.
일탈을 치르기에 매우 적합한 무대라는 것이다.
「하압!」
수상쩍은 기운을 감지한 윤서영.
그녀가 쏜살같이 달려들어 마고를, 그를 지배한 미지를 공격하려 했다.
투웅-
그러나 알 수 없는 힘에 밀려나고 말았다.
「하아압!」
기합성을 내지르며 권기를 두른 주먹을 뻗었지만.
투웅!
오히려 조금 전보다 더욱더 심한 반발력으로 인해 팔이 찢어질 뻔했다.
「성급하구나. 극적인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선 변신 중에는 공격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중얼거린 미지의 주변.
스으으으-
그곳에 검녹색 안개가 펼쳐져 있다.
물론 그건 고유 영역이었다.
조금 전보다 더욱더 강력한, 기로도 깨뜨릴 수 없는 막강한 결계.
「이 지지부진한 이야기에 극적인 과정을 추가해 보자고.」
뿌득, 뿌드드득-
몸이 변화했다.
그래도 조금 전까지는 거대한 입이 달린 인간이라고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괴물!’
절로 그러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형체였다.
수십 개가 아니라 수백, 수천 개에 달하는 입으로 연결되어 있는 기괴한 생명체.
「나약한 존재여. 어디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탐식의 존재를 쓰러뜨려 보아라.」
그것은 마고가 그토록 원했던 사도(使徒)의 형태였다.
사실 사도라는 건 별것 아니다.
미지의 힘을 얼마만큼 받아들일 수 있느냐, 그 척도의 정점에 있는 존재인 것.
미지는 잊힌 역사에 머물러 있는 마고에게 사도의 권한을 행했고, 마침내 완벽한 사도의 형태로 변화할 수 있었다.
물론 그건 법칙과 질서에 위배되는 행위.
그러나 지금 이곳에 그것을 제재해야 할 관리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아직 종말도 시작하지 않은 무대를 관람하는 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마침내 사도로 화한 마고, 그리고 그것을 지배하는 미지.
「하압-」
그리고 그 미지를 향한 윤서영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퉁, 투웅-
그러나 번번이 그 영역조차 이겨내지 못한 채 튕겨 나간다.
애초에 법칙을 벗어난 순간, 그 힘은 지금의 정도환과 윤서영이 감당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흐음. 이건 필요 없으려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지가 말했고.
스르륵-
그의 의지와 함께 주변을 감싸고 있던 영역이 사라졌다.
「사도의 영역으로 끝난다면 그것만큼 지지부진한 이야기는 없을 테지.」
극적인 전개를 원하는 존재.
그렇기에 사도의 영역이라는 고유의 힘을 해제하였다.
그래야만 이야기가 좀 더 재밌을 테니까.
「어디 한번 날뛰어 봐라. 이 이야기가 여기서 그냥 끝나지 않도록.」
영역의 해제.
그것은 유흥을 즐기기 위한 약간의 장치.
「….」
“….”
윤서영도, 그리고 정도환도 알고 있었다.
상대가 여유를 부린다는 것을.
물론 그만한 여유를 부려도 되는 실력의 차이였다.
그것을 통감하고 있지만.
‘포기할 순 없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어렵사리 정말 이곳까지 달려왔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윤서영의 완전한 부활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건만.
“…나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으드득.
정도환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스으으으으-
그의 주변으로 유백색 안개와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기운이 윤서영에게 흡수되었고.
「꺄아아악!」
솟아나는 힘에 비명과도 같은 함성을 내지른다.
그것은 고통의 비명이 아니라 환희에 찬 것.
정도환이 품은 강력한 기운이, 네크로노미콘을 통해 습득한 ‘진화 소환’을 통한 강력한 힘의 전이로 인한 것.
웅웅웅-
그녀의 주먹을 감싼 권기가 더욱더 화하게, 그리고 강렬한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죽음의 인도자와 네크로노미콘의 합작으로 탄생한 전용 소환수는.
콰앙!
그대로 지면을 박차며 적에게 쇄도했다.
수천 개의 거대한 입으로 뭉쳐진 괴물을 향해서.
「어디 한번 발악해 보아라. 이 유흥을 더욱더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그 모든 행동은 미지에게 있어서 자극적인 기폭제에 불과했으니.
그는 원할 뿐이었다.
이 무대가, 이 이야기가 조금 더 극적인 전개가 될 수 있도록.
고통에 찬, 울분에 찬 인간의 부정을 탐식하기 위하여.
콰앙!
영역이 사라진 사도의 몸뚱이, 그곳에 윤서영의 주먹이 닿았다.
아니, 닿은 게 아니다.
콰득!
그녀의 팔은 수천 개에 달하는 입 중 하나에 먹히고 있었다.
만약 그대로 있는다면 팔이 아니라 몸 전체가 먹히고 말 터.
탓-
오른팔을 헌납한 그녀가 재빨리 몸을 튕겨 뒤로 물러났다.
콰득, 콰드득!
수백 개의 송곳니가 위 아래로 움직이며 팔을 씹는다.
꿀꺽-
마침내 잘근잘근 다져진 그것을 집어삼킨 미지는.
「그것 참 별미로구나!」
예상치 못한 맛에 감탄하며 말했다.
그저 시체라고 생각한 그것이 이토록 맛있다니.
그건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현세의 무언가를 먹어서 그런건가?
미지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더, 더 다오. 네 녀석의 풍미가 나를 자극하는구나.」
주르륵-
맛을 본 미지의 본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탐식을 행하는 자.
한번 맛을 본 본능이 무서울 정도로 의지를 집어삼켰다.
스으으.
아래에 달린 입, 그 송곳니를 다리처럼 움직여 윤서영을 향해 접근한다.
그 모습은 뭐랄까.
수백 개의 다리를 놀려 이동하는 그리마와 같은 모습.
하지만 그 속도라는 건 정도환의 힘을 전이 받은 윤서영에게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찰나.
콰득!
어느새 뒤로 돌아온 적의 움직임을 간파하지 못한 채 왼쪽 팔이 뜯기고 말았다.
「흡!」
양팔을 뜯긴 윤서영, 그녀가 재빨리 물러나려 했지만.
콰득, 콰드득!
어느새 그녀의 다리를 물어 버린 미지의 입이 그것을 삼켰다.
「맛있다, 정말 맛있구나!」
쿵!
양팔과 다리, 사지를 잃어버린 윤서영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서영아!”
그것을 지켜보던 정도환이 안타까움에 부르짖었다.
물론 그 육신이란 건 시체의 일부를 이어 붙인 것에 불과하나 지금은 윤서영의 온전한 육신이었다.
손녀가 형편없이 당하는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정도환의 심정은 피가 끓는 듯한 기분일 수밖에 없었다.
“이놈-”
분노한 정도환.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없었다.
콰드득!
그저 윤서영을 집어삼키는 미지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비명을 발할 수밖에.
‘착오였나?’
강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현재의 기준에서 정도환과 윤서영은 논외의 존재인 건 분명했다.
윤찬이나 일행이 도달하지 못한 특성의 진화 5단계를 달성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윤서영은 투신이라 특성을 개화했고, 미지들의 선물 공세를 통해 완벽한 육체를 구성했다.
그러나 그 강함이란 건 제한된 강함이었다.
미지가 준비한 질서와 법칙을 따랐을 경우에만 동반되는 것.
그 법칙을 벗어난 예외, 지금과 같은 미지의 사도가 등장한 경우라면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울분을 토하는 와중에도 머리는 돌아간다.
이대로 손녀의 죽음을 바라만 볼 것인가?
과거 사고로 죽은 딸과 손녀를 바라봤을 때처럼.
‘…그와 같은 일을 또 겪을 순 없다.’
피눈물을 흘렸던 당시와 같은 심정을 겪을 바에는 이대로 혀를 깨물고 죽고 말 것이다.
생각해라.
방법을 생각해라.
이 죽음의 공간을 벗어날 방법을.
‘…없다.’
하지만 그런 게 존재할 턱이 있나.
지금 보인 것은 정도환의 전력.
전력을 발휘하고도 이토록 쉽게 파훼될 정도라면 미지의 사도는 그가 상대할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애초에 그건 법칙을 벗어난 미지의 예외적인 행동이긴 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 수습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가 이 난제에 고뇌하고 있을 무렵.
「…바치 비라지-」
뇌속에 파고드는 어떠한 의지.
아니, 그건 의지라기 보다는 암시에 가까운 것이었다.
처음 네크로노미콘을 펼쳤을 때 마주했던 미지가 남긴 기억의 파편.
「…위기에 처했을 때 이 주문을 반대로 외쳐라. 바치 비라지. 그리하면 위대한 옛 존재가 강림하게 될지니.」
이것을 떠올린 건 우연인가?
아니면 이 순간을 모두 계획하고 있던 것일까?
하지만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그의 손녀는, 윤서영은 다시금 죽음에 이르고 말리라.
“…지라비….”
바치 비라지.
막 그 주문을 거꾸로 외우려던 그 순간.
화아아악-
그의 품속, 항상 보관하고 있던 네크로노미콘이 전에 없던 엄청난 빛을 발하기 시작하여 장내를 집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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