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아직 육음과 칠음은 무리인가.’
전쟁을 종식시키는 칠음을 내려고 했다.
그러나.
휘이이이-
바람이 통과하는 소리만 들릴 뿐, 피리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유?
간단하다.
내가 육음이나 칠음을 낼 수 있을 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 음을 내기 위한 자격이란 건.
‘특성의 진화.’
현재 내 진화 상태로는 오음이 한계였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게 실망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와아아아아-”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가는 이들.
사기충천한 그들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와 같았다.
그리고.
콰앙!
5배가 넘는 인원 차이의 병력이 부딪쳤다.
보통은 인원수가 많은 러시아의 우세를 점칠 것이다.
그러나 펼쳐진 상황은 달랐다.
“아악-”
“끄으윽!”
연이어 울려 퍼지는 비명.
그 근원지는 전부 러시아 병력 쪽이었다.
그럴 수밖에.
“사, 사라져!”
“오지 마, 오지 말라고!”
환각을 보는 러시아 병력은 제대로 전투할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그건 오음이 만들어 낸 것.
대상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공포를 실체화하는 그 음에 저항하지 못한 이는 거의 전투 불능 상태.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발현한 오음에 저항할 이는 극소수였다.
‘드미트리를 비롯한 몇몇 간부를 제외하면 없다고 봐야겠지.’
공포라는 깊숙한 늪에서 허우적대는 그들을 처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익-”
이 순조로운 전투에 훼방을 놓는 이가 있다면 역시 드미트리.
콰콰콰콰쾅!
자신의 육신을 자유자재로 무기로 바꿀 수 있는 특전사의 특성을 활용하여 맹공을 퍼붓는다.
놈을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아군의 피해가 커질 게 분명하니.
팟-
곧장 녀석을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을 때.
삐이이이-
다시금 피리를 불었다.
이음과 오음을 내느라 상당히 지친 상태였지만, 어쩔 수 없다.
황룡을 상대하며 상당히 비싼 값을 지불했다.
지금 내게는 마땅히 적을 상대할 만한 무기가 없는 상태.
아, 물론 몇 가지 후보가 있긴 하지만, 강자를 상대하기에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렇기에 만파식적을 이용해 그 힘을 조금 이용할 생각이었다.
「…나를 불렀느냐.」
그와 함께 머릿속에 파고드는 누군가의 의지.
그것은 미지와 같은 위험한 존재가 아니다.
『일음(一音)으로 조상신을 깃들게 함』
하나의 구멍을 막아 완성한 그.
「예. 무신(武神),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일음을 통해 강림한 그 존재가 누구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래 봬도 진리의 서고에서 모든 진실과 정보를 파악한, 나름 현자의 영역에 닿았으니 말이다.
「내 힘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무신이라는 칭호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인지, 기꺼이 그 힘을 빌려준다.
그리고 그 순간.
웅웅웅!
몸속에서 샘솟는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한 힘의 전이가 아니다.
드득, 드드득-
뼈가 제멋대로 움직이며 육체가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어떠한 예고도 없이, 진통의 효과도 없이 시작된 변화.
살점이 터져 나가고, 뼈가 뒤틀리는 엄청난 고통이 동반되었지만.
“….”
아무런 신음도, 고통의 비명도 내지 않았다.
그간 겪어 온 것에 비하면 지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놀랍군. 강신(降神)의 고통을 소리 한번 내지 않고 버티다니.」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무신이 꽤 놀란 듯한 음성을 내었다.
이런 독종은 처음 봤다는 것처럼.
「뭐, 워낙 겪어 온 게 많아서 말이죠.」
별거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이 육신을….」
일음을 통한 강신.
그것은 선조의 영혼을 육체에 깃들게 하여 그들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뇨.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
나는 무신의 제의를 사양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무신, 당신의 역할을 힘을 빌려주는 것이지, 제 육신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서 말이죠.」
애당초 일음을 사용한 건 그의 힘을 끌어내기 위한 것, 내 육체를 멋대로 조종하게 두려는 게 아니었다.
「오만하구나. 나는 척준경. 고려를 지배하였던 무신이니라!」
무신 척준경.
고려를, 그 시대를 지배했던 절대적인 존재.
그 특유의 검법인 곡사검은 일검을 막아 낸 이가 드물 정도로 절대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굉장하기도 하고.’
강신이 일어나면서 그의 검법이 머릿속에 주입되었다.
그 검법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 하지만 종말을 막지 못했지요.」
「….」
고려는 신라와 달리 종말을 막지 못했다.
심지어 무신 척준경, 그의 힘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다른 이들이 힘을 쓰지 못한 게 패인이었다.
「하지만 전 다릅니다. 앞으로 다가올 종말, 그리고 미지를 막을 자.」
이전 생에선 종말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반드시 종말을 막아 내고, 미지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것이다.
고작해야 종말의 끝에도 도달하지 못한, 허울만 좋은 무신이 내 육신의 지배권을 갖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당신의 역할을 힘을 빌려주는 것, 그 이상이 될 순 없습니다.」
「…알겠다.」
의외로 이 자존심 강한 척준경은 금방 수긍했다.
강신을 통해 내 내면을 들여다보았기에 깨달은 것이다.
내가 어떠한 경험을 했는지,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한번 지켜보마. 너의 그 말이 오만인지 아니면 실력에 기인한 자신감인지를.」
「예.」
그건 순간의 인정일뿐, 결국 실력을 보이지 못한다면 실망한 무신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야만 한다.
‘곡사검법이라….’
머릿속에 주입된 궤적.
그것은 고려를 지배하였던 척준경의 독문 검법인 곡사검법이었다.
검으로 태산마저 갈라 버렸다는 그 절세의 검법을 이해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게 강신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온 경험, 그리고 그것을 펼치기 위한 육신마저도 재구성되었으니까.
게다가.
‘진리의 서고를 다녀온 이후로 습득력이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거든.’
비록 현자라는 특성 자체를 습득한 건 아니지만, 진리의 눈을 개안한 이후로 내 습득력은 놀라우리만큼 발전했다.
그렇기에 척준경에게 육신의 지배를 넘겨주지 않은 것이다.
그가 지배하는 것보다 나 스스로 육신을 움직이는 게 훨씬 더 강할 게 틀림없으므로.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그가 이룬 경지의 힘.
‘어디.’
손을 뻗는다.
그 순간.
웅웅웅!
기, 본래는 무형인 것을 유형화하여 형체를 만든다.
찰나의 순간 완성된 건 환한 빛을 내뿜는 검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우우웅!
쌍검.
곡사검법은 두 개의 검을 이용하여 변화무쌍한 검로를 이끌어 내는 검법.
‘확실히 대단하네.’
곡사검법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별다른 무기가 필요치 않다는 점이다.
기로 검을 창조하여 그것을 이용해 검법을 펼치기 때문.
“이 새끼-”
막 검을 완성한 그 순간.
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며 다가오는 이.
그는 바로 아군을 향해 열심히 포격해 대던 드미트리였다.
뒤늦게 나를 발견한 놈이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기 시작한 것.
그 속도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쾌속의 영역.
양손에 생성된 건 거대한 방패.
속력을 이용하여 그대로 나를 밀어 버릴 속셈인 것이다.
‘그렇다면.’
멧돼지처럼 저돌적으로 돌격해 오는 상대를 맞이해 줘야겠지.
스윽.
위에서 아래로, 그저 수직으로 검을 내리그었다.
콰앙!
일어나는 폭발음.
물론 그 근원지는 드미트리가 양손에 쥔 방패였다.
분명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내 검격은 공간을 넘어 드미트리의 방패를 공격했다.
어떻게?
「곡사검은 공간을 가르는 검이니.」
곡사검의 특징 때문이었다.
기로 유형화한 이 검은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다.
분명 검이 닿지 않는 거리에도 검이 닿는 건 물론 예상치 못한 각도와 거리에서 검격이 날아온다.
공간을 가르는 검이라는 말이 괜한 게 아닌 듯 거리에 상관없는, 그야말로 자유자재의 검을 구사할 수 있는 것.
“으아아아-”
하지만 드미트리, 흡사 불곰과 같은 녀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철컥철컥.
자신의 육신 주위를 장갑차처럼 변화시켜 견고한 방어막을 형성한 후.
콰아아아아-
달려온다.
거센 그 돌격을 막지 못한다면 내 육신은 엄청난 충격에 의해 걸레 조각이 될 것이다.
휙.
그렇기에 검을 긋는다.
콰앙!
마치 춤을 추듯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손을 어지러이 휘젓는다.
콰쾅, 콰콰콰쾅!
내 손짓은 검격이 되어 드미트리의 철옹성을 가격했다.
그러나 튼튼하다.
말 그대로 철옹성처럼 놈의 장갑은 좀처럼 벗겨질 생각을 하질 않았다.
단단해?
그렇다면 그것을 부술 만큼 더 두드리면 그만이다.
‘그려라.’
검의 궤적을.
콰콰콰쾅!
‘펼쳐라.’
머릿속에 그려 두었던 이상의 검을.
덩실덩실.
처음에는 어설펐다.
하지만 그건 분명 검무(劍舞)였다.
「맙소사!」
척준경조차 놀랄 정도의 깊은 깨달음이 깃든 영역.
동작 하나하나에 실리는 업의 무게는 척준경조차 헤아릴 수 없이 깊은 것.
콰앙!
그리고 영역은 불가능과 같았던 드미트리의 철옹성을 벗겨 내는 데 성공했다.
“크아악!”
곡사검에 의해 놈의 장갑 중 일부가 벗겨졌다.
주륵.
검격에 의해 베인 상처에서 핏물이 새어 나온다.
하지만 이내.
츠츠츠츠-
놈은 특성을 발현하여 벗겨진 장갑을 복구하였다.
그러나.
콰앙!
나의 검무 또한 끝나지 않았다.
복구한다면 다시금 파괴하면 그만이다.
콰앙, 콰쾅, 콰콰콰쾅!
내 춤사위가 만든 검격이 놈의 장갑을 계속해서 두드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뚝.
저돌적으로 돌진해 오던 드미트리, 마침내 놈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 거리는 건 불과 1m.
“하아-”
놈의 숨결이 내게 닿을 수 있을 만한 거리였다.
“…그 검법은…?”
아무렇지 않게 묻는 그 말에.
“곡사검법.”
유창한 러시아어로 대답해 주었다.
“곡사.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투투툭!
조금 전까지 놈을 보호하고 있었던 장갑이 모두 벗겨졌다.
물론 그건 녀석의 의지가 아니라 내가 펼친 곡사검법으로 인해 일어난 것.
단지 장갑이 벗겨진 것만이 아니라.
푸화확!
놈의 육신에 새겨지는 상흔.
조금 전 펼친 곡사검법은 놈의 장갑을 넘어 그 육신에 치명상을 남겨 놓았다.
“….”
아마 보통의 각성자였다면 이미 육신이 조각 나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드미트리.
과연 러시아 병력을 지배한 수장답게 떨어지려는 육신을 간신히 부여잡은 채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네 녀석의 승리다.”
짝짝-
놈은 태연하게 손뼉을 치며 나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리고.
툭.
갈라진 육신이 지면에 떨어진다.
후두두두둑-
수백, 아니 수천 조각으로 나뉜 육신이 마침내 허물어졌다.
“아아-”
“드, 드미트리 님이!”
“이럴 수가!”
그리고 그러한 광경은 적군에게는 무력감을.
“와아아아-”
“놈이 죽었다!”
“이대로 밀어붙여!”
아군에게는 엄청난 용기와 사기의 증진을 발생시켰다.
“…끝이다.”
그 순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수장, 드미트리가 무너진 이상 러시아 병력에 희망은 없다고.
“후퇴!”
“전원 후퇴하라!”
그리고 내 확신을 증명하듯 퇴각 명령이 떨어진 러시아 병력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도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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