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도망치는 그들을 쫓진 않았다.
내 목표는 적의 궤멸이 아니라.
‘신인을 처치해 검은달을 와해하는 것.’
지금이야 적으로 만났지만, 종말에서 인류는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한 명의 각성자도 소중한 마당에 괜한 적개심에 사로잡혀 사람들을 죽인다?
그건 미지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꼴이다.
서로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싸우다 보면 결국, 예전과 같은 진창에 휘말리고 말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병력의 퇴각을 지켜만 보았다.
물론.
‘다음에도 적이 되어 나타날 테지.’
이렇게 도망친 병력은 다음에 다시금 적으로 마주치게 될 것이다.
이게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이렇게 사정을 봐주는데,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지.’
그게 반복되다 보면 결국 지치게 되는 건 우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가리를 부수는 수밖에.’
유일한 방법이라면 검은달의 대가리, 신인과 그를 따르는 간부들을 처리하는 것이다.
대가리가 사라진 검은달은 뿔뿔이 흩어지게 될 테고, 이념과 신념은 희석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굳이 백의에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
다만 삐뚤어진 신념으로 종말을 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나의 최종 목표였다.
하지만 어떻게?
정체조차 아직 파악하지 못한, 베일에 싸여 있는 신인과 간부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간단하지.’
종말이 한 발짝 다가왔다.
그냥 감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종말이 시작될 것이다.
이 같은 확신을 가진 이유는.
“….”
머리 위, 하늘을 바라본다.
대낮이다.
당연히 해가 중천에 떠 있었지만.
“어? 그러고 보니 달이….”
태양의 반대편, 너무도 선명하게 떠 있는 달을 볼 수 있다.
물론 낮에도 달을 볼 수 있다.
다만 그 선명도가 흐릿하기 마련인데, 지금의 달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슈퍼문처럼 거대한 달이 대낮에도 그 모습을 공고히 하고 있었다.
‘태양과 달. 그 두 개의 충돌과 함께 종말은 시작된다.’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테지만, 태양과 달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두 개의 별이 충돌하게 되면 혹독한 겨울과 함께 종말이 시작될 것이다.
‘이 정도 거리라면 적어도 3일 안쪽.’
장담한다.
3일 안에 종말이 시작될 것임을.
그리고 종말이 시작되기 전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그리고 그건.
‘신인, 놈도 알고 있을 테지.’
어쩌면 나와 같은 회귀를 거쳤을 신인이라면 지금 일어날 일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을 터.
그 중요성을 생각해 보면 수하들을 보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직접 움직일 게 분명하다.
“진우.”
약간의 휴식 후 진우를 불렀다.
“예, 예.”
얼른 다가오는 녀석.
“좌표는 준비됐지?”
“예. 아까 말했던 건 잘 기억하고 있어요.”
좌표.
그곳은 종말 전, 가장 거대한 사건이 일어날 장소.
그 중요성을 녀석 또한 알고 있을 테니 반드시 그곳에서 마주치게 될 것이다.
“가자.”
그 한마디에.
“….”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조금 전, 러시아 병력과 맞서 싸울 때와는 비교되는 표정과 긴장감.
왜 그렇지 않을까.
이제 곧 마주칠 이들은 지금까지 상대해 온 적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자들.
어쩌면 이번 일로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었다.
“오랜만에 화끈하게 싸워 볼 수 있겠네.”
“컨디션은… 나쁘지 않아.”
하지만 그건 전투에 돌입하기 전 적당한 긴장이었다.
오히려 그간 쌓아 온 실력을 발휘할 기회라고 생각한 듯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전력이지.’
새삼 동료들을 훑었다.
본격적으로 기를 다룰 수 있게 되어 폭발적인 특성의 성장을 이룬 윌리엄과 영웅.
각기 3단계에 머물러 있던 그들의 특성은 2단계가 성장하여 5단계로 진화했다.
게다가.
‘벌써 그것을 뛰어넘을 조짐이 보인다는 거.’
기를 응축하는 단계, 일명 강기(强氣)의 영역에 도달한 조짐도 보이고 있었다.
이같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은.
‘경쟁, 라이벌 의식이 크게 한몫했지.’
둘은 친하다.
그리고 친한 만큼 서로에게 라이벌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잠까지 줄여 가며 수련에 열중이었고, 누군가 조금 앞서기라도 한다면 그것이 자극제가 되어 더욱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되는 것.
적당한 경쟁의식을 통해 서로의 발전을 도모하는, 이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도환과 성예일, 그리고 리우옌.
세 사람에 대해선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네크로노미콘에 깃든 미지의 도움을 통해 한계 이상의 힘에 도달한 죽음의 인도자.
미지와의 접촉으로 인해 그 의중을 의심하기도 했었지만, 다행히 삐뚤어지는 일은 없었다.
미지의 유혹을 이겨 낸 만큼 그는 앞으로 있을 대전쟁에 큰 도움이 될 만한 인물이 될 것이 분명하다.
실력?
실력으로만 보자면 더욱더 나무랄 게 없고.
그리고 리우옌.
완전한 독인을 이뤄 낸 녀석은 무형지독의 힘을 100% 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조금 전 녀석이 조금의 힘만 발휘했어도.
‘그 병력을 궤멸하는 건 일도 아니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녀석의 힘을 봉인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내 목적이란 건 이 전쟁의 승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의 수뇌부를 쳐 검은달, 삐뚤어진 신념을 가진 이 단체를 해산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전투에서 녀석은, 엄청난 살상력을 지닌 리우옌은 뒤로 빠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녀석의 살상력은 말도 안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생명을 죽이는 일.
그것 하나로 보자면 나를 넘어서 일행 중 제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싸움에서 녀석의 전력이 발휘된다.’
여러모로 기대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독마, 리우옌이란 인물이었다.
그리고 성예일.
초월자의 선택을 받은 그녀의 힘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우려되는 건….’
초월자, 즉 신이라 불리는 존재의 의중이다.
신이란 존재를 변덕이 심하다.
지금이야 힘을 빌려주고 있지만, 또 어떤 변덕을 부릴지.
특히 예일을 선택한 그는.
‘여러모로 조심해야 할 존재니까.’
강력하지만, 그만큼 어떤 변덕을 부릴지 알 수 없는 존재.
특히 우려되는 건 이번에 가야 할 곳, 그곳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알 수 있겠지. 녀석이 예일을 선택한 이유를, 그리고 그 의중을.’
걱정되는 바가 아예 없진 않지만, 오히려 잘됐다 싶다.
이번 기회를 통해 걱정과 우려를 날릴 수 있을 테니까.
이외에도 이들의 성장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신의 특성의 둘, 슈에리와 빙빙.
그리고 포탈을 이용하여 모든 공간의 제한을 없애 버린 진우까지.
모두 필요하고 소중한 동료들이다.
하지만 이들 중 가장 성장한 이를 꼽으라면 단연 한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강회장.’
특성의 흡수 그리고 부여라는 유일의 특성을 타고난 이.
다가올 종말에서 활약할 것을 짐작하여 치매를 치료하였던 그는 이번에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다.
그 급작스러운 성장에 힘입어 이번 일을 계획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준비는… 완료되었다.’
여기서 더 준비할 건 없다.
“포탈을 열어.”
“예.”
조금 전 알려 준 좌표를 떠올린 진우가 특성을 발현했다.
웅웅웅!
공간이 찢겨 나가며 거대한 차원의 문, 포탈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을 부탁합니다.”
본격적으로 포탈에 들어가기 전 타오와 암존에게 당부했다.
“걱정 마십시오, 은인.”
“적들이 절대 침입하지 못하도록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암존과 타오도 함께 간다면 좋겠지만, 이곳도 안전하지는 않다.
언제 적들이 들이닥칠지 알 수 없기에 최후의 보루, 화산과 당문은 남겨 둘 수밖에 없다.
“예. 믿겠습니다.”
그들에 대한 믿음은 확실하다.
신인이나 간부들이 들이닥치지 않는 이상 그들이 막지 못할 병력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저벅.
그들에게 믿음의 시선을 보낸 후 한 걸음.
슈우우우!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공간을 뛰어넘는 익숙한 감각이 잠깐 느껴졌고, 주변 사물이 빠른 속도로 변했다.
그렇게 잠깐.
주변 사물이 완전히 자리 잡았을 때 볼 수 있었던 건.
휘이이잉-
한기를 품은 북풍의 바람, 그리고 온통 하얗게 물든 세상이었다.
노르웨이.
북유럽에서도 북쪽 끝에 위치한 나라.
우리가 도착한 곳은 북극해가 펼쳐진 절벽의 끝이었다.
“….”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위태한 절벽의 끝, 그곳에 보이는 건 혹독한 추위에도 여전히 생명을 머금고 있는 녹색 식물이 보인다.
‘겨우살이.’
혹독한 추위에도 여전히 작고 가녀린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그건 겨우살이나무다.
물론 단순한 겨우살이는 아니다.
사박.
하얗게 물든 눈길을 헤치며 절벽 끝으로 다가가.
뚝.
겨우살이나무의 가지 하나를 끊었다.
‘다른 흔적은 없군.’
가지가 손상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 놈들은 도착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럼 더 잘됐지.’
먼저 도착했다면 가지를 꺾었을 터.
하지만 손상의 흔적이 없는 것을 보니 내가 먼저 도착한 것 같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놈들과 부딪치지 않고, 먼저 그곳으로 갈 수 있다면 선점하게 되는 셈이니까.
“얼른….”
이제 이 가지를 이용하여 종말 전 마지막 시련을 향해….
사박.
막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을 무렵 들려오는 소리.
“여기서 보게 되는군.”
변조된 음성.
하지만 낯익은 그 음성의 근원지를 향해 고갤 돌리자.
“…신인.”
볼 수 있었다.
검은 후드로 온몸을 가린 이, 검은달의 표식인 달 모양의 배지를 왼쪽 가슴에 달고 있는 10명을.
“뭘 몰랐다는 듯이 말해. 여기에 올 걸 다 알고 있었잖아?”
마치 이 만남이 우연인 듯 말하는 녀석의 말에 반박했다.
“굳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떠들 필요가 없으니까.”
잠깐의 대화.
그사이 신인의 뒤에 선 이들을 빠르게 살폈다.
하지만.
『???』
진리의 눈으로도 그들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진리의 눈이로군. 하지만 소용없다. 그 힘이 만능은 아니니.”
놀랍게도 신인은 진리의 눈에 대해 알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의문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고오오오오-
비록 진리의 눈으로 상태를 확인할 수 없지만, 자연스레 뿜어져 나오는 기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지난번보다 훨씬 성장했다는 것을.
‘성장한 건 우리만이 아니었네.’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성장?
물론 할 수 있지.
하지만 시간이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고, 심지어 5차 특성까지 이뤘던 이들이었다.
본래 일정 영역에 닿으면 그다음 영역에 올라가기는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해 보면 지금 그들의 성장은 말도 안 된다.
‘최소 6차.’
우리의 성장도 일반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인데, 그들의 성장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영역이다.
“아무래도 여기서 길었던 인연을 끝내야 할 것 같군.”
뭔가 뜻 모를 소릴 중얼거린 신인은.
스윽.
갑작스레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그 순간 나는 볼 수 있었다.
“…다, 당신은?!”
“오랜만이다. 윤찬.”
강회장으로 예상했던 신인.
하지만 그는 강회장이 아니었다.
턱을 덥수룩하게 기른 중년인.
“…대장….”
회귀 전 큰 은혜를 입은, 이번 생에서도 오래도록 찾아 헤맸던, 하지만 종적을 찾지 못했던 대장.
그가 신인이라는 가면을 벗은 채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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