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결국, 그것을 택했나?”
실망?
아니, 신인에게 전혀 그러한 감정이 묻어 나오지 않았다.
마치 예상한 듯, 당연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이 평정심을 유지했다.
“의외인가?”
그 기색을 읽은 신인이 물었다.
“…조금은.”
그가 정말 예전의 그 대장이라면, 과거의 일을 공유하는 존재라면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윤찬. 나는 수많은 시간의 시대를 방황했다.”
그럴 테지.
정확히 몇 번이나 시간을 이동했는지 모르겠지만.
‘저 정도의 감정의 마모라면 최소 수백 번.’
수백 번 동안 삶과 죽음, 그리고 종말을 지켜봤다면 이러한 평정심도 이해 간다.
단 한 번의 회귀를 한 내 감정의 마모 또한 만만치 않으니까.
“한 시간에서는 종말의 끝, 최후까지 가는 데 성공하기도 했었지. 그런데 윤찬, 내가 왜 그 시대에서 실패했는지 아느냐?”
“나는 모르지.”
“너.”
“…나?”
“그래. 너의 배신으로 종말을 막는 것에 실패하고 말았다.”
“….”
그건 꽤 충격적인 말이었다.
‘나로 인해 종말을 막지 못했다?’
아무리 다른 시간의 나라고 해도 기본적인 성향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로 인해 종말을 막지 못했다니.
거짓말?
아니.
그는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너를 죽였지. 지금의 나는 관계와 인연, 그 모든 것을 초월하였다.”
신인을 봤을 때 어떤 이질감을 느꼈었다.
처음에는 그게 뭔지 몰랐지만, 이제 확실히 알겠다.
‘초월에 근접했다.’
흔히 말하는 초월자.
신인은 모두가 그토록 바라던 탈인간의 경지에 들어서 있었다.
‘어쩌면 이미 그곳에 도달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초월자가 되면 현세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어떤 제한을 받게 된다.
그렇기에 초월자가 되는 것을 스스로 막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는 뜻은.
‘지금껏 상대해 보지 못한 강자.’
회귀 전이었다면 어떻게 비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겐, 우리에겐 무척 버거운 상대일 수밖에 없다.
“심장이 빨라졌군. 긴장한 거냐?”
바라보는 시선.
예전의 그 정 많은 대장의 모습과 똑같다.
하지만 눈빛, 그 눈빛에는 감정이라는 결여되어 있었다.
외형은 대장이지만, 그 알맹이는 내가 알던 과거의 대장이 아니다.
“뭐, 충분히 예상함 범주긴 하지.”
조금 긴장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두렵진 않다.
초월자?
얼마든지.
과거 무수히 많은 초월자를 베어 넘긴 내게 그들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고오오오-
전투의 고양감.
그로 인한 기세가 자연스레 뿜어져 나온다.
“너무 급하군. 아직 내 부하들과 통성명도 하지 않았을 텐데.”
스윽.
그건 가벼운 손짓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벌어진 일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
스스스스-
애써 끌어올린 고양감이 사라졌다.
‘…이 정도일 줄은.’
내 기세를 자신의 기세로 뒤덮어 소멸시켰다.
“….”
할 말이 없다.
그것만으로도 확연히 알 수 있다.
‘수준 차이는 확실하다.’
20년 넘게 종말을 헤쳐오며 쌓아온 업.
하지만 그 업은 수백 번의 시간을 이동하여 쌓은 신인의 업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고작 손짓 한 번에 사라질 정도니 말해 무엇할까.
“나와라.”
그렇게 신인은 자신의 뒤에 있는 이들을 불렀다.
여전히 후드로 전신을 가린 이들.
진리의 눈에도 어떠한 정보도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의 존재들.
스륵.
그리고 그들이 후드를 벗었다.
그 순간.
“넌…?!”
잔잔한 호수와 같던 내 마음의 평정심이 흔들렸다.
그럴 수밖에.
“…율리우스?”
놀랍게도 후드 벗은 이들 중 한 명, 그의 정체는 현자라 불렸던 율리우스였다.
‘어째서?’
진리의 서고로 입장한 나로 인해 녀석은 현자의 힘을 받을 수 없다.
그런데 왜지?
느껴진다.
과거와 같은 현자의 총기가.
그 특유의 기운은 속이려고 해도 속일 수 없는 것.
“오랜만…은 아닌가. 이 시대에서는 처음이니까.”
“뭐…?”
튀어나온 그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이다.
그 말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의문일 테지. 하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나는 신인의 은혜를 입어 모든 시간대의 내가 가지고 있었던 기억을 다 흡수했으니까.”
신인이 부여할 수 있는 건 특성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여러 시간대의 율리우스, 그가 가지고 있었던 기억을 모두 흡수한 것.
“당연히 지금의 너와 함께한 시간도 있지.”
그리고 그 기억 중에는 나와 함께한 시간도 있었다.
“윤찬. 포기해라.”
당황하는 내게 말한다.
“신인은 영겁의 시간 동안 종말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의 길을 발견할 수 있었지. 그건 고작 한 번의 실패를 거친 네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것.”
과거에는 내게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던 그 말.
적군에게는 뱀의 혀와 같았던 그것이 내 마음을 농락한다.
“네가 옳다고 판단하는 건 착각이다. 신인의 계획은 거스를 수 없는 것. 그러니 포기해라, 윤찬.”
확실히 악마의 혀다.
왜 과거 녀석을 상대했던 이들이 그토록 고통받았는지 알 것 같다.
그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심상이 흔들린다.
마치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게 잘못되었다는 것처럼, 아예 이념 자체를 뒤흔든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에 넘어가는 일은 없다.
“하지만 나는 지켜야 할 게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 선을 넘어가면 괴물, 미지와 같은 존재가 되는 거지. 바로 신인, 저 녀석과 너희들처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다.
그 선을 넘어버린다면 지금 인류를 가축으로 여기는 미지와 다를 바 없다.
‘미지. 놈들 또한 과거에는 우리와 같은 필멸자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거듭되는 시련에 그런 괴물과 같은 존재로 변했을지 모른다.
인간이 아닌 괴물이 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미지가 원하는 결말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여전히 인간에 머물렀다.
괴물이 되어 세상을 구하는 것보다는 인간으로서 생존하고 싶었기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
설득을, 아니 심상을 흔드는 것을 포기한다.
대신.
스륵, 스르륵.
옆에 나란히 선 이들의 정체를 밝혔다.
“….”
그리고 충격적인 광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르코, 올리비아, 얀센….”
뜻밖의 인물들은 율리우스만이 아니었다.
최후의 칠인.
칠성이라 불렸던 과거의 동료들이 그곳에 있었다.
근육질의 백인, 벨기에 국적의 얀센.
고깔모자와 같은 보랏빛 모자를 쓴 영국의 올리비아.
기나긴 창을 꼬나쥔, 날렵한 몸을 가진 브라질의 마르코.
좀처럼 찾지 못했던 과거의 동료들, 그들은 신인의 부하가 되어 있었다.
“안녕.”
“오랜만이다.”
“…반가워.”
놀라는 나와는 달리 담담히 인사한다.
놀라운 건 그들만이 아니다.
차례대로 후드를 벗는 이들.
비록 진리의 눈이 발동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내 예감이 말해주고 있다.
‘권왕, 검왕, 성녀, 독마….’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
그건 바로 윌리엄이나 영웅, 그들이 지닌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인을 제외한 10명.
그들은 회귀 전 세계를 풍미했던 가장 강력한 10개의 특성을 가진 이들이었다.
“어때? 우리 검은달의 간부들을 본 소감이.”
“….”
할 말이 없다.
과거의 동료들이 적으로 나타났는데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게다가.
‘수준이 다르다.’
신인부터 시작해 검은달의 간부, 그들 모두 엄청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왜 안 그럴까.
신인을 통해 유일의 특성은 물론 여러 시대의 기억을 모두 흡수했는데.
쉽게 말해 나와 같은 회귀자가 11명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신인 하나만 해도 상대하기 벅찬데, 그게 11명이라니.
“이건 마지막 기회다.”
할 말을 잃은 내게 들려오는 신인의 음성.
“나와 손을 잡자, 윤찬.”
그리고 뜻밖의 제안을 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죽일 생각이 아니었던가?
“너는 지금껏 내가 보아온 그 어느 시대의 윤찬보다 더 강렬한 의지를 지닌, 참으로 아까운 인재다. 종말을 막기 위해서는, 나아가 미지의 계획을 부수기 위해서는 너와 같은 인재가 꼭 필요하단 말이다.”
미지의 계획이라.
하긴 다양한 시간대, 그리고 나보다 더 많은 실패를 반복했을 테니 미지의 계획을 알고 있을 테지.
‘그래, 그렇지.’
그 순간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왔다.
솔직히 말해 나는 내가 무척 선택받은, 특별한 인간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게 종말을 끝까지 경험했으며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나는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 왔다.
오직 나만이 미지의 계획을 부술 수 있을 거라는 오만도 함께.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보다 더 많은 실패를 겪으며, 그 위기와 시련을 헤쳐온 신인이 있다.
비록 깎이고 깎여 삐뚤어지긴 했지만, 그 역시 미지의 계획을 부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함께 힘을 합치면 좋겠지.’
확실히 신인의 말처럼 둘이, 두 세력이 힘을 합친다면 천군만마를 얻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안.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그 일은 이루어질 수 없다.
괴물을 막기 위해 괴물이 된다?
그건 지금의 나는 용납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리고.
‘그것이 미지가 바라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놈들을 막는다.’
어쩐지 그것이야말로 미지가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다.
“어리석은!”
최후의 거절에 신인이 감정을 드러내 보였다.
아마 그의 눈에 비친 나는 어리석은, 고집만 센 바보에 불과할 것이다.
정작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자신은 생각하지도 못한 채.
“너는 그 어리석은 결정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어차피 그럴 목적으로 왔잖아. 뭐, 새삼스럽게.”
신인이나 나나, 서로 같은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
종말 전 맞이할 최후의 시련.
일부 선택된 이들만이 도전할 수 있는 그 시련의 보상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스윽.
신인의 손이 떨어졌다.
그것은 공격의 신호.
이제 조금 있으면 지금의 우리는 상대하기 힘든 괴물들이 날뛰게 될 것이다.
‘그렇게는 안 되지.’
예상한 범주 이상의 힘을 지닌 이들.
지금의 우리로 그들을 상대하는 건 무리다.
아무리 내가 긍정적인 마인드로 무장하고 있어도 그건 알고 있다.
그렇다면 포기 상태인가?
‘전혀.’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 시련은 반드시 우리의 차지가 되어야만 한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강화』
그렇기에 강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강화가 아니다.
무한의 강화사만이 펼칠 수 있는, 오직 자신만을 강화할 수 있는 특별한 강화.
『한계 강화』
육신은 물론 특성마저 한계 이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강화였다.
부우웅!
그와 함께 엄청난 힘이 육신에 깃든다.
물론 그건 영구적인 건 아니다.
일순간 힘을 한계 이상으로 늘려주지만, 나중에 엄청난 후폭풍이 찾아온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삐이이이이-
급하게 꺼낸 피리, 만파식적을 이용해 날카로운 소릴 낸다.
내 손가락은 일곱 개의 구멍을 모두 막은 상태였고, 그것은 곧 지금까지 발휘하지 못했던 칠음의 발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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