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단 한 번도 쓰러진 적 없었던 거인이 쓰러졌다.
신윤찬.
비록 나이도 훨씬 어리지만, 강회장에게 있어서 윤찬은 좋은 동료이면서 리더였다.
어렸을 적 보았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거인.
모진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았던 거인은, 한 없이 넓어 보였던 그 등은 마침내 지면과 닿았다.
“윤찬!”
놀란 일행이 쓰러진 그를 돌보았다.
“진정해. 잠깐 의식을 잃은 것뿐이니.”
당황했다.
하지만 그는 강회장은 내색하지 않았다.
‘윤찬이 없는 지금 내가 이들을 이끌어야 한다.’
나이가 많아서?
아니.
오지랖 때문에?
그것도 아니다.
‘혹여 제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강회장님이 힘을 좀 쓰셔야 할 겁니다.’
마치 오늘 일을 예상이라도 한 듯 종종 그런 말을 하곤 했었다.
당시 침묵으로 대답을 회피하긴 했지만, 그 또한 알고 있었다.
그의 빈 자리를 그나마 채울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그 순간이 왔고, 강회장은 결정적 순간이 왔을 때 망설일 만큼 어리석은 이가 아니었다.
“예일, 빙빙, 그리고 슈에리.”
곧바로 세 사람을 부르며.
“윤찬 군의 상태를 봐주게.”
“알겠어요.”
아군의 치유를 담당하는 그들에게 윤찬을 맡긴 후.
“아무래도 주변 변화가 심상치 않아. 경계를 확실히 해야 할 것 같군.”
“예.”
치유 능력이 없는 인원.
그러니까 윌리엄과 영웅, 정도환과 리우옌은 호위를 서듯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져 사방을 경계했다.
“상태는 어떻지?”
더없이 진지한 얼굴을 한 슈에리에게 물었다.
“…기력이 쇠했어요.”
기력이 쇠했다.
그 어떤 말보다 좋지 않은 답이다.
“의식을 회복할 순 있나?”
“기력이 회복되면 자연스레 의식을 회복하게 될 거예요.”
“내 말은 그 시간을 단축할 수 있냐는 말일세.”
“…그건 힘들 것 같군요.”
“기력을 회복할 영단이라면 차고 넘칠 텐데?”
슈에리와 빙빙이 만든 단약 중에는 기력을 회복하는 것도 꽤 있었다.
하지만 그 말에도 슈에리는 고개를 저었다.
“마치 모든 기력을 다 태운 것만 같은, 처음 보는 현상이에요. 자연적으로 회복하는 게 아닌, 인위적인 도움은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그녀의 설명에 더는 재촉하지 않는다.
다만.
“의식을 회복할 시간은?”
“빨라도 하루. 꼬박 하루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으음….”
하루.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지금의 일행에게 그건 영겁의 시간과도 같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으니.
“별수 없지.”
불가능한 일에 매달릴 만큼 어리석은 이가 아니다.
기업을 운영했던 총수인 만큼 가능하지 않은 부분에 관해서는 빠르게 미련을 버렸다.
‘하루. 내가 그 빈자리를 채워야만 한다.’
뒤따르는 막중한 사명감.
더욱이 불안한 것은 이곳이 현실도 아닌, 시련의 한가운데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윤찬이 경고할 정도로 아주 어려운 시련이 일어나는 곳.
“누구냐!”
그의 상념을 깨우는 경호성.
황급히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갤 돌렸다.
영웅, 그가 자세를 취한 채 다가오는 누군가를 경계하고 있었다.
저벅.
묵직한 발걸음과 함께 다가오는 이.
‘크다.’
웬만해선 강회장은 누군가를 평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가오는 사내에 대해선 감상이란 걸 절로 할 수밖에 없었다.
2m가 훌쩍 넘어가는 장신.
그리고 그 거대한 몸을 가리고 있는 건 염소의 가죽으로 짐작되는 거적때기 하나뿐이었다.
손에 든 건 양의 뿔로 만든 듯한 길쭉한 창.
분명 차림은 허름하나.
“….”
“….”
강회장을 비롯한 장내의 그 누구도 경계심을 버릴 수 없었다.
고오오오오-
자연스레 품어져 나오는 기도.
그것은 지금까지 겪었던 그 어떤 존재보다 대단한 것이었다.
윤찬과 함께 수많은 시련을 겪은 일행이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이렇게 압도적인 존재감을 부여한 이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신인보다 무겁다.’
조금 전 대면했던 신인, 초월자에 도달한 그보다 더 무거운 기도는 그들에게 경계심을 심어줄 수밖에 없었다.
「…변장한 거인들은 아니로군.」
경계심 때문일까.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그가 자리에 멈춰 선 채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음성이라는 건 뇌리에 직접 꽂히는, 의지와 같은 것이었다.
‘인간이 아니다.’’
그 순간 강회장은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에 허름한 몰골의 사내,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초월자!’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초월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 그래. 너희는 인간이야. 이 시대의 인간이 아닌….」
뭔가를 중얼대기 시작한다.
턱을 쓰다듬는가 싶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고심한 모습.
그것을 통해 강회장은 그가 얼마나 여유를 부리는지 알 수 있었다.
‘적인지 모를 상대를 두고 고심이라.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 자로군.’
왜 안 그럴까.
느껴지는 기세로 봐서는 당장 이곳에 있는 자신들을 죽일 정도로 엄청난데 말이다.
“당신은…누구십니까?”
그렇기에 조심하며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적인지 확실치 않다.
적이라면 어쩔 수 없이 맞서야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최대한 조심하며 살펴야 한다.
「나는 헤임달. 이곳 아스가르드를 지키는 파수병이다.」
적의가 없는 것인가.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순순히 밝혔다.
‘헤임달!’
용케 밖으로 내지 않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강회장.
비록 배움은 짧은 그였지만, 틈틈이 공부하였다.
하루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었던 강회장이 가장 좋아했던 건 각국의 신화.
특히 북유럽 신화를 좋아해 각종 번역본 및 원전마저 읽었다.
그런 그에게 헤임달은 무척 익숙한 이름일 수밖에 없었다.
‘비프뢰스트를 지키는 파수병. 세상의 모든 것을 지켜보는 감시자.’
인간 세계와 아스가르드, 두 세계를 연결하는 비프뢰스트를 지키는 파수병이자 경비를 책임지는 총괄 책임자가 바로 헤임달이라는 존재였다.
「나를 아는 눈치로군.」
그리고 헤임달은 강회장의 기색이 변하는 것을 눈치채곤 말을 이어갔다.
「예상했던 대로 다른 시간의 영역에서 온 인간들인가? 그렇다면 너희의 목적은….」
“이곳, 아스가르드를 라그나로크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윤찬이 어떠한 목적으로 왔는지 대강 들은 바 있었다.
신들의 황혼, 라그나로크라는 절망적인 시련이 일어나는 이 시대를 구하는 것.
그리고 헤임달은 그 종말에 대항하는 아스가르드, 아스 일족에 속하는 신이었다.
「…그렇군.」
어쩌면 허황될 수 있는 그 이야기에 헤임달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우리는 미지에게 조종을 당하고 있는 모양이로군.」
놀라운 사실.
그건 헤임달이 미지에 의해 조종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것이 거짓된 역사라는 것을 꿰뚫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실패했고, 너희는 이 거짓된 역사에 도전하기 위해 온 것일 터.」
“그렇습니다.”
「….」
화악!
헤임달의 눈에서 청광이 뿜어져 나왔다.
「확실히 평범한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힘. 너희들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하겠지.」
그건 의외의 반응이었다.
보통의 초월자라고 한다면 인간에게 무례하고, 그들을 경멸하는 게 보통 아닌가?
그러나 헤임달은 그들의 조막만 한 도움에 싫은 내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내가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이상한가?」
그리고 그 의문을 정확하게 꿰뚫은 헤임달이 다시금 물었다.
“조금은…그렇습니다.”
강회장이 솔직하게 말했고.
「만약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그리했을 테지.」
헤임달은 모두가 예상하는 것처럼 인간을 경멸하는 수준까진 아니어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건 초월의 영역에 이른 이들에게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특성.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너희는 능력과 잠재력이 있다. 조금만 더 정진한다면 나와 같은 초월의 영역에도 이를 수 있을 테지.」
한때는 헤임달도 인간이었다.
하지만 정진하고 정진하여 마침내 초월의 영역에 이르렀다.
인간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건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
비교적 인간에게 호의적인 그였기에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가자.」
그리곤 곧장 앞장선다.
“어디를 가십니까?”
호의가 있다는 건 알지만, 맹목적으로 그 뒤를 따를 순 없는 노릇.
「발할라. 왕좌가 놓인 궁전으로 너희를 인도할 것이다.」
발할라.
이들을 다스리는 신 중 신이 기거하는 곳.
그리고.
‘라그나로크를 대비하기 위한 용사들을 육성하는 곳.’
먼 곳에서부터 보이는 웅장한 천공의 성.
헤임달은 일행을 그곳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
저벅.
황금색 양털 카펫이 깔린 길을 걸어간다.
“….”
그 어떤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는 일행이었지만, 지금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걸어가는 길의 양옆.
「….」
그곳에 도열 한 이들의 면면이 너무도 화려했기 때문이다.
초월자, 즉 신이다.
‘보르, 바르, 로픈과 쇼픈….’
원전을 읽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는 지혜와 맹약의 여신, 그리고 상냥함과 감각의 여신을 시작으로.
‘…발리, 이둔, 시프….’
비교적 많이 알려진 복수의 신, 생명의 여신, 그리고 로키의 아내이기도 한 금발의 여신.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었다.
왕좌에 가장 가까운 곳.
그곳에는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엄청난 기세를 뿜어대는 강력한 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티르, 토르, 프리그, 발드르, 헤르모드.’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신화에서 주로 언급되는 막강한 신들.
하지만 상념은 거기서 멈춰야만 했다.
「꿇어라.」
앞으로 나아가던 중 들린 음성에.
쿵!
강회장을 비롯한 모두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크으으-”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라.」
뇌리에 울리는 신비한 음성에 고개가 절로 올라간다.
그리고 볼 수 있는 것.
‘오딘!’
왕좌 흘리츠키얄프에 앉은 노인.
왼쪽 눈을 검은 안대로 가린, 날개를 형상화한 투구를 쓴 그는 바로 아스가드르의 정점인 오딘이었다.
「너희가 헤임달이 말한 인간들인가? 라그나로크를 막기 위해 거짓된 역사에 도달한?」
콰아아아아-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온다.
그건 오딘만의 것이 아니다.
쿠쿠쿠쿠쿠쿠!
장내를 짓누르는 기운이 신들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시험이로구나!’
그 순간 강회장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이 일종의 시험이라는 것을.
여기서 굴복해 버린다면 시작도 하기 전에 시련이 끝난다는 것을.
‘윤찬 군이라면 태연하게 해냈을 테지.’
하지만 지금 윤찬은 의식을 잃은 상태다.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손님을 위한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그의 도움을 바랄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 강회장이 그 빈자리를 채워야만 한다.
그그그극!
내리누르는 무게, 신들의 무게를 억지로 밀어낸 강회장이 몸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 일이 쉬울 턱이 있나.
의도한 존재의 무게는 더없이 무겁기만 했다.
그렇기에 그는 하나의 능력을 발휘했다.
환존, 그의 능력을 흡수하여 얻은 변신.
그리고 그는 그 변신의 능력을 통해 자신이 아는 가장 강력한 존재.
스스스스.
윤찬으로 변하였다.
『강화』
자신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강화의 힘으로 육체와 특성을 강화한 후.
벌떡!
몸을 일으킨다.
“강성현, 여기 모인 귀빈들에게 인사를 올립니다!”
내리누르는 무게를 벗겨낸 강회장은 비굴하지 않은, 그리고 매우 정중한 인사로 그들의 시험을 보란 듯이 이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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