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아스가르드.
가장 강력한 시대를 대표하는 이름.
탈인(脫人)의 경지에 도달하여 마침내 초월적인 능력을 얻게 된 그들은 아스가르드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되어 미지에 대항했다.
결과?
물론 거짓된 역사가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들 또한 미지라는 거대한 힘에 저항하지 못하였다.
라그나로크.
신들의 황혼이라 불리는 그 종말을 견뎌 내지 못한 채 무너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과거 이들을 종말로 이끌었던 그 시험의 무대가 다시금 재현되려 하고 있었다.
「덤벼라! 오만한 애쉬르 일족이여!」
「너희들의 그 오만한 콧대를 꺾어주마!」
「신들의 황혼이 시작될 것이다!」
자신이 넘치는 듯 오딘과 신들을 도발하는 거인족.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 운명의 흐름이 어디로 가는지 이미 아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련으로 구현된 거짓된 역사에 묶인 이들은 그것이 거짓인지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초월의 영역에 도달한 그들은 자신들이 어떠한 운명으로 묶여 있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그건 거인들뿐만 아니라 아스가르드의 신들도 마찬가지.
태연한 듯 보이지만, 무언가 초탈한 듯한 그 표정에서 이 싸움의 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인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룰을 좀 변경하도록 하지.」
현명한 오딘은 예정된 운명을 벗어나기 위한 발악을 시작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지?」
실눈을 뜬 로키가 오딘을 바라본다.
의형제였던 그는 오딘의 음험함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돌발행동을 보이자 지극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라그나로크에서 초월의 영역에 도달한 자들은 배제하겠다.」
「뭣이?!」
깜짝 놀라는 로키와 거인족.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초월의 영역에 도달한 이들을 배제하겠다는 건 신족과 거인족, 라그나로크의 주역이 빠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 안 되는 게 아니다.」
로키가 반발했지만, 오딘의 말이 더 빨랐다.
「이번 라그나로크에서 활약해야 할 이들은 필멸자.」
한쪽만 남은 오딘의 오른쪽 눈이 강회장과 그 일행에게 향했다.
「이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이 신성한 결투에 나설 것이다.」
그건 장내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형님!」
근육질의 사내, 지저분하게 턱수염을 기른 토르가 반발했다.
콰르릉!
그의 분노로 인해 사방에서 천둥 벼락이 쳤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따위 필멸자들에게 결투를 맡긴다뇨!」
의형인 오딘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토르였지만, 이번만큼은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필멸자 따위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긴다니. 이 무슨 가당치도 않은 말이란 말인가!’
한때 인간이었던 그.
하지만 지금 초월의 영역에 도달한 그는 우월함에 빠져 있었다.
게다가 전투광이다.
이 신성한 결투를 필멸자 따위에게 양보할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자중해라.」
오딘의 조용한 말.
「아니요. 자중할 수 없습니다. 이건….」
「토르!」
쿵!
분명 그것은 몸을 지탱할 때 쓰는 지팡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면을 한 번 내리찍자.
고오오오오-
조금 전까지 지팡이였던 그건 붉은색 불길한 기운을 흘리는 창이 되어 있었다.
『궁니르』
그 붉은 기운의 창이야말로 오딘을 상징하는 무기이자 반드시 적을 관통하는 창 궁니르였다.
「….」
궁니르를 꺼낸 것을 확인한 토르가 입을 다물었다.
거짓된 전승에서는 토르가 훨씬 강력한, 전투의 신이라고 칭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오딘의 힘은 여기 모인 모든 신들을 압도하고도 남는 것.
전쟁의 신.
그 명예의 자리를 차지한 오딘의 분노는 감히 토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농담하는 건가?」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로키가 끼어들었다.
「로키, 내가 지금 농담을 지껄이는 것으로 보이느냐?」
궁니르를 든 오딘에게서 가공할 만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춤하는 토르와 달리 로키는.
「그게 아니라면 이게 무슨 짓이지?」
그 기세를 태연히 받아 내고 있었다.
잠깐 오딘의 눈가에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미지의 힘을 받아들였구나!’
현명한 오딘은 로키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미지.
초월의 영역에 도달한 그들도 여전히 근원에 다가가지 못한, 그야말로 미지의 존재.
그들의 힘이 로키에게 깃들어 있음을 말이다.
로키만이 아니다.
콰아아아아!
수르트, 흐림, 트림 등 각 거인족을 대표하는 이들에게서도 똑같은 미지의 힘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놈들과 맞서 싸운다면 예정된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미지의 힘.
그건 초월의 영역에 도달한 오딘과 신족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상대 또한 초월의 영역에 도달한 존재.
그런 존재에게 미지의 힘마저 전해졌으니 예정된 결투를 하게 된다면 패배는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수를 쓴 것이다.
이 거짓된 역사에 찾아온, 예정된 운명에 속하지 않은 이들.
필멸자들에게 운명을 맡겨 보기로 하였다.
「우리가 받아들이기 싫다면?」
로키가 아니었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수르트가 끼어들며 오딘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는다.
「….」
오딘은 그런 수르트를 한 차례 바라보며.
「겁을 먹었다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다.」
그저 한마디를 꺼냈을 뿐이다.
「겁이라고?」
그 순간 발끈하는 수르트.
「누가 겁을 먹었단 말이냐!」
화르르륵!
그의 몸에서 발산되는 열기가 더욱더 강해졌다.
당장에라도 아스가르드 전체를 태울 듯한 백화가 넘실댄다.
「….」
그러곤 날카로운 시선으로 강회장과 일행을 훑는다.
‘참으로 나약한 존재가 아닌가!’
필멸자.
자신들, 그리고 오딘과 신족에 비하면 개미와 다를 바 없는 존재.
그런 이들에게 신성한 결투를 맡기는 게 마음에 들진 않지만.
‘무슨 수작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번에는 당하지 않는다.’
미지의 힘을 통해 적의 능력을 파악하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건 수르트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함께 있는 이들 모두 마찬가지.
그들은 이미 강회장과 일행의 능력을 파악한 뒤였다.
「이 중요한 자리를 맡기는 게 그리 성에 차진 않을 뿐. 허나 오딘, 네가 사정한다면 예외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그렇다고 오딘의 수작에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은 없었다.
라그나로크는 누군가의 독단적인 판단이 아닌, 신족과 거인이 서로 합의해야 하는 무대.
일방적인 룰 변경은 있을 수 없다.
결국, 부탁해야 하는 건 오딘이었고, 수르트는 그 점을 이용하여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
오만하기 그지없는, 흘리츠키얄프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신들의 왕에게 말이다.
「부탁하지. 이번 라그라로크의 룰을 변경하고자 하는데, 들어줄 수 있겠는가?」
고고하기만 하던 오딘의 고개가 꺾였다.
「으하하하하하!」
그리고 그 꺾인 자존심을 보며 수르트는 광기 어린 웃음을 토했다.
이 얼마나 훌륭한 광경이란 말인가.
그 고고하던, 모든 것을 아래로 내려다보던 신들의 왕이 부탁을 위해 고개를 숙였다.
「형님!」
「왕이시여!」
그리고 거기에 더해 비통에 젖은 신들의 모습이라니.
이보다 더한 광경은 평생 없을 것이라 자신할 수 있다.
「좋다! 그렇게 부탁한다니 들어줄 수밖에 없겠지.」
「수르트!」
하지만 로키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그는 황급히 결정을 내리는 수르트의 결정에 불만이 있는 듯.
「오딘의 수작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그가 고개를 숙일 정도면….」
「시끄럽다!」
하지만 그 지적에 수르트는 도리어 화를 낼 뿐이었다.
「이건 나와 오딘이 결정할 사항.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
그 광경을 통해 로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라그나로크를 위해 거인족에게 합류했으나 사실상 그들에게도 어울리지 못했다.
그건 로키의 성장과도 연관이 있다.
거인족으로 태어났으나 신족과 함께 생활한, 그리고 자신의 출생을 안 이후 거인족에게 돌아갔으나 그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라그나로크와 같은 대이변이 없었다면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그냥 떠돌이로 살았어야 할 운명.
「크르-」
「사아아-」
하지만 그도 혼자는 아니었다.
거대한 얼굴을 들이밀며 몸을 비비는 늑대 펜리르와 혀를 날름거리는 요르문간드.
「아버지….」
그리고 죽음의 처녀 헬.
로키가 낳은 세 자식이 그의 곁에서 위로의 손길을 건넸다.
「….」
그 광경을 바라보던 오딘이 고갤 돌렸다.
「이제 합의가 된 건가?」
수르트, 거인들의 왕을 향한 말.
「그렇다, 오딘이여. 그대가 원하는 대로 이번 라그나로크는 필멸자들에게 맡겨질 것이다.」
비록 고개를 숙이는 굴욕을 겪긴 했지만, 결과는 오딘이 원하는 대로 되었다.
「이제 신성한 결투에 나설 이들을 정해라.」
라그나로크는 총 5번의 결투를 통해 과반 승리, 즉 5번 중 3번의 승리를 가져가는 쪽이 운명을 결정하는 방식을 취한다.
본래는 수르트나 토르와 같은 초월자들이 나서서 결투를 벌여야 할 테지만, 오딘의 꿍꿍이를 통해 그 방식이 변경되었다.
초월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 필멸자들에 한한 결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노련한 자여.」
오딘이 강회장을 응시했다.
「그대가 정하라.」
강회장의 노련함을 꿰뚫어 본 오딘의 제의에.
“예.”
사양하지 않았다.
아무리 모든 걸 꿰뚫어 보는 혜안이 있어도 결국, 그것을 경험해 본 강회장의 눈을 따라갈 순 없다.
그리고 강회장은 생각할 것도 없이 결투에 나갈 이를 지목했다.
“예일.”
“…네.”
“나서야 할 때가 온 것 같군.”
“….”
그 선택에 예일은 아무런 덧붙이는 말 없이 앞으로 나섰다.
놀라운 사실은.
“….”
이에 대해 그 누구도 반발하지 않는단 점이었다.
선봉이라 하면 앞으로의 기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자리.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예일의 성녀 특성은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성녀란 특성은 전투적인, 공격력 보다는 지원과 방어에 특화된 특성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자존심 강한 영웅이나 윌리엄도 아무 말이 없다.
마치 예일이 나가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과연!」
그리고 오딘은 그러한 강회장의 선택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일이 지닌 힘의 근원.
그것을 파악한 듯 한쪽으로 시선을 줬고, 그곳에서 웃고 있는 한 여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황금 사과를 든 여신 이둔.
생명의 여신이기도 한 그녀는 예일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신의 힘을 빌리는 무녀인가?」
그리고 둥글게 원진을 짠 결투장, 그곳의 중앙으로 오는 예일을 본 로키 또한 그 힘의 근원을 파악한 뒤였다.
「나름 최고의 수를 빼 들었군. 허나….」
비록 바뀐 결투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이 곧 패배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건 아니다.
로키는 철저하다.
이번 라그나로크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고, 그것은 싸움에 참전하는 필멸자들도 마찬가지.
인간들의 세계인 미드가르드를 뻔질나게 드나들던 그는 불의 신인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수많은 영웅을 회유했다.
난쟁이들이 만든 보구, 그것을 이용한 유혹은 한낱 인간이 떨쳐 낼 수 없는 것.
그렇게 수많은 영웅이 라그나로크 때 자신의 편에 서겠다고 약속했으며, 여기 그 영웅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싸워라 용사여. 네가 가진 힘을 다시금 세상에 보여 줄 때가 왔노라!」
수르트의 말에 곧장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서는 이.
철컹!
황금색 갑옷으로 무장한 그는 건장한 체격, 그리고 황금빛 머리칼을 자랑하는 미남자였다.
「으음….」
「네가 어떻게!」
그리고 그를 본 신들은 침음성을 삼켰다.
심지어.
「….」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오딘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시구르드….」
거인족에 선 사내, 그는 바로 오딘의 피를 이은 볼숭 가문의 전사인 시구르드였기 때문이다.
뛰어난 전사를 배출한 가문 내에서도 역대급 재능, 그리고 힘을 자랑하는 전설의 용사.
그가 오딘과 신족을 배신한 채 거인족의 용사로 나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