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볼숭 가문.
먼 과거 오딘은 아이를 낳길 원하는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어 볼숭이라는 이름의 사내 아이를 점지해 주었다.
이 아이는 신의 왕, 오딘의 피를 이은 존재답게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고, 그 후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용사가 태어났고, 그중에서도 역대급 재능을 인정받은 것이 바로 시구드르였다.
시조인 볼숭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은 희대의 영웅.
그런 그가 오딘이 아닌 거인족의 용사로 나섰다는 건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시구르드. 어찌하여….」
오딘이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오자.
“닥치시오!”
분노한 시구르드의 고함이 메아리쳤다.
“당신이, 당신이 내게 내린 시련을 눈치채지 못할 줄 알았나?”
그리 말하는 시구르드의 눈에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당신이 시련이라고 내린 그 고난으로 인해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잃었다. 당장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가엾은 아이들을!”
시구르드는 차기 발할라의 용사가 될 영웅이었다.
그렇기에 오딘은 그의 성장을 위한 시련을 내렸다.
그것은 참으로 가혹하여 그의 사랑하는 모든 것을 빼앗았다.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이제 막 태어난 자식들마저.
오딘은 그 모든 시련을 딛고 일어나 사람의 정을 끊은 진정한 영웅이 되길 바랐지만, 그건 욕심이었다.
“나는 너희의, 신족의 용사가 되길 거부한다. 나는 나의 의지로 거인족의 용사가 되어 너희를 심판할 것이다.”
그것이 오딘이 내린 시련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때야 그들의 충복을 자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럴 일은 없다.
“….”
「….」
시구르드와 로키, 둘의 시성이 허공에서 짧게 얽혔다.
「로키, 네 놈이!」
그 순간 오딘은 깨달을 수 있었다.
비밀이 되어야 할 그 모든 시련을 말해 준 게 로키라는 사실을 말이다.
「당연히 알아야지. 지금껏 자신이 당했던 그 모든 고통이 사실은 모두 계획되어 있는 것임을.」
비록 오딘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던 로키였지만, 그렇다고 그게 패배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건 아니다.
시구르드를 포함한 다수의 영웅을 포섭한 만큼, 필멸자의 대결도 그들은 압승할 것이다.
그리고.
고오오오!
시구르드 또한 이번 결투의 승리를 위하여 고양감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오딘에게 당했던 그 모든 고통을 돌려주기 위한 각오.
그 각오는 이전의 시구드르를 넘어선, 굉장한 힘을 발휘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으음….」
「이 정도의 기세라니.」
그 사나운 기세에 신들마저도 꽤 놀라워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건 상대도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어찌하면 좋은가!」
상대적으로 연약해 보이는 예일, 그녀를 향한 걱정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신의 은총을 받는 성녀라 해도 시구르드와 같이 각성한 영웅을 상대하는 건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걱정 마세요.」
모두의 걱정에 나선 건 황금 사과를 든 이둔이었다.
생명의 여신.
그녀는 여전히 여유 가득한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지켜보도록 하지.」
모종의 이유를 알고 있던 오딘 또한 지켜보자는 말로 결론을 냈고.
「….」
두 신의 의미심장한 대화에 신들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그걸로 걱정이 종식되진 않는다.
다만 무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애초에 신성한 결투에 나갈 이를 선택할 이상 번복할 순 없다.
아무리 초월의 영역에 이른 신들이라 해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저벅.
미드가르드를 대표하는 용사의 가문 볼숭, 그곳에서 역대급 재능을 인정받은 시구르드.
그리고 반대편에는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듯 가녀린 예일이 나섰다.
누가 봐도 그 승리를 점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렇기에.
「포기해라.」
시구르드는 예일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네가 신을 모시는 무녀라는 건 알겠다. 그러나 그 힘은 내게 닿지 못한다.」
비록 거인의 편에 서긴 했지만, 그는 인간이다.
같은 인간을 죽이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마음을 다치셨군요.”
그리고 예일은 상처 난 영웅의 마음을 파악하였다.
“당신의 그 상처 난 마음, 제가 치유해 드리겠어요.”
그건 거절의 의미.
이 결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참으로 어리석구나.」
한낱 아녀자에 불과한 이의 오기에 시구드르는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신을 모시는 무녀.
보통의 상대가 아닌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상대가 자시이다.
볼숭 가문의 역대급 천재.
볼숭 가문이라 하면 위대한 용사를 수도 없이 배출했던 가문.
그리고 시구드르는 가문 내에서도 역대급 재능, 천재라 불리며 희대의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사실상 미드가르드 내에선 적수가 없는, 그야말로 무적의 사내인 것.
「끝까지 그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저벅.
원진의 중앙에 나란히 선 채로 서로를 바라본다.
「양측의 용사가 모두 준비된 것 같군.」
갑작스레 들려오는 음성.
그와 함께 갑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왔다.
스스스스-
갑작스레 몰아닥친 안개.
그것이 한데 뭉쳐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다.
「미미르!」
「미미르!」
마치 다비드상을 연상케 하는 선이 굵은 거인.
놀라운 점은 그 거인의 몸통은 없고 오직 얼굴만 떠다니고 있다는 점이다.
‘현자 미미르!’
신화에 대해 모르는 다른 일행과 달리 강회장은 그의 정체를 짐작하였다.
현자 미미르.
세계수 위드그라실 뿌리 아래 솟아난 지혜의 샘을 지키며 그 샘의 물을 먹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과 진리를 얻었다고 알려진 이.
본래의 출신은 거인족이지만, 신족, 정확히는 오딘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신비한 존재였다.
한 전승에 의하면 오딘이 신들의 왕에 오르게 된 것도 그의 조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
하지만 거짓된 역사에서 알려 준 것과 달리 미미르는 오딘을 포함한 신족도, 그리고 거인족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중립의 존재였다.
「나는 신성한 결투, 라그나로크를 주관하는 자. 양측의 용사는 앞으로 나서라.」
지혜의 샘을 지키며 그곳을 관리하는 미미르의 역할이라는 건 라그라로크, 신성한 결투의 심판이었다.
「모든 무기, 그리고 능력을 사용을 허한다. 이 결투에서 허용되지 않는 건 외부의 간섭.」
신성한 결투에서는 모든 게 허용된다.
단, 외부의 간섭을 제외하면 말이다.
「신과 거인, 그 누구도 이번 결투에 개입할 수 없다. 만약 누군가 부정한 방법을 쓰게 된다면….」
미미르의 눈이 퍼렇게 물들었고.
지이이잉-
그곳에서 쏟아져 나온 광선이.
쾅!
거대한 바위 하나를 그대로 소멸시켰다.
「….」
「….」
그 위력을 본 신족, 그리고 거인족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바위를 부수는 일?
손만 까닥해도 가능한, 너무도 쉬운 일이다.
하지만 조금 전 사라진 바위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
존재의 소멸.
그것은 초월의 영역에 이른 그들도 해낼 수 없는, 오직 미미르만이 가능한 영역의 일이었다.
「내 경고가 제대로 전해진 것 같으니, 지금부터….」
지이이잉-
마치 시작을 알리는 축포처럼 미미르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광선으로 경기는 시작되었다.
「….」
자세를 고쳐 잡으며 언제든 나아갈 준비를 마친 시구르드.
“검은 뽑지 않는 건가요?”
시구르드는 허리에 찬 검을 뽑지 않았다.
어딜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검을 뽑지 않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던 예일의 물음.
「아녀자를 상대로 흉기를 꺼내 들 순 없지.」
“그런가요?”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아아-
예일의 주위로 환한 빛이, 엄청난 황금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으읍!」
그건 미드가르드 최고의 영웅인 시구르드의 시야를 방해할 정도였다.
환한 빛에 잠깐 눈을 감은 후 다시금 떴을 때.
「허!」
그가 볼 수 있었던 가녀린 여인이 아니었다.
금빛 기운으로 뭉쳐진 날개와 황금빛 갑주를 착용한 여전사.
「발키르?」
그건 바로 여전사 발키르였다.
오딘에 의해 창조된 그들은 라그나로크를 대비하기 위한 위대한 전사들이었다.
그 역할은 미드가르드의 영웅들을 발할라로 이끌고 그들을 종말에 대비하여 훈련하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영웅들을 훈련할 정도의 엄청난 무력을 보유한 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브륀힐드라는 발할라를 겪어 본 시구르드였기에 그 무력에 대해선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건 바로 그 발키르였다.
‘과연!’
그리고 강회장, 그는 변신한 예일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알고 있었다.
예일의 능력에 엄청나 발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망설이지 않고 예일이라는 카드를 선봉에 세웠다.
그녀의 뛰어난 능력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작하는 것과 그것을 직접 본 건 또 다른 영역이었다.
콰아아아아!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도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그건 이미 인간의 것이라 부르기엔 너무도 강력했다.
초월의 영역까진 아니어도 충분히 그 근처에 도달한, 완전한 발키르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계속 봐 주세요. 당신의 여유를 통해 저는 승리할 테니.”
여전사 발키르로 변신한 예일은.
펄럭!
그 금빛 날개를 한 번 펄럭였다.
콰아아아-
일진광풍이 일었고.
스윽.
눈 깜짝할 사이 시구르드에게 도달한 예일의 손이 움직였다.
쉬이익!
그녀의 손에 쥐어진 황금빛 창이 시구르드의 심장을 꿰뚫기 위해 나아갔다.
「헙!」
경기할 수 없는 움직임.
그 경이로운 공격에 깜짝 놀란 시구르드가 몸을 뒤로 뺐다.
그러나.
쉬이익!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궤적이 꺾이며 그대로 시구르드의 심장을 관통하였다.
카앙!
그러나 반드시 관통했어야 할 그녀의 창은 심장을 꿰뚫지 못했다.
지이잉!
어느새 손에 들린 황금빛 검이 창의 날카로움으로부터 시구르드를 보호했기 때문이다.
「그람!」
그리고 그것을 본 오딘이 소리쳤다.
황금빛 광채를 뽐내는 그 검의 정체는 성검 그람.
오래전 그가 시구르드의 아비인 시그문드를 위해 내려 준 것이기도 하다.
‘분명 회수하였거늘.’
하지만 그람은 파괴되었다.
시구르드의 마지막 시련과 함께 산산이 부서진 검을 확인했건만 어째서?
「로키….」
물론 그것을 복구한 게 누군지, 굳이 찾지 않아도 빤하다.
로키.
불의 신이자 난쟁이들을 다스리는 이.
그라면 난쟁이들을 재촉하여 그람을 복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과하마.」
예일의 창을 막아 낸 시구르드가 입을 열었다.
「겉모습에 혹하였다. 하지만 너는 내가 만나 본 영웅들, 아니 그들보다 더욱더 대단한 업을 쌓은 전사.」
이 순간, 시구르드는 자책하고 있었다.
상대는 죽음을 불사하며 전투에 임했다.
그런데 자신은 어떤가.
나약한 인간의 정에 이끌려, 그 겉모습에 혹하여 패배를 권유했다.
‘참으로 못났구나.’
영웅이란 무릇 상대가 여인이라 해도 그 승부를 피하지 않는 법.
깨달음을 얻은 그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나, 시구르드! 그대에게 정식으로 결투를 요청하는 바이오!」
그 목소리의 떨림과 긴장은 평생의 호적수를 만난 것과 같은 감정을 싣고 있었다.
“좋아요. 한번 제대로 어울려 보죠.”
조금 전의 무례는 잊었다.
예일은 시구르드라는 영웅의 결투를 정식으로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