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영웅 시구르드.
그는 강했다.
미드가르드에는 상대가 없다는 그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성검 그람이 쥐어졌다.
그건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준 격.
서걱!
예일의 황금빛 창이 두부처럼 잘렸다.
“….”
좀처럼 믿기 힘든 일.
발키르가 되어 구현된 창은 오딘이 직접 하사한 것.
그 무엇으로도 벨 수 없는 특별한 금속으로 만든 전투의 창이 잘려 나간 것이다.
「으음. 더욱더 예리해졌구나!」
그와 같은 변화에 오딘 또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람은 시구르드의 아비인 시그문드에게 오딘이 직접 하사한 검이다.
당연히 그 위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시구르드가 쥔 그람은 그가 알고 있던 본래의 그람과는 조금 달랐다.
더욱더 날카로웠으며, 또한 살기가 짙다.
로키와 난쟁이들이 성검을 개조하여 살상력을 높인 것.
더는 그건 성검이라 불릴 만한 게 아니었다.
「발뭉. 큰 슬픔이 깃든 검이로다.」
오딘은 그 검을 그람이라 부르지 않았다.
발뭉.
큰 슬픔이란 뜻을 지닌 마검임을 선언했다.
단지 명칭을 바꿨을 뿐이지만.
지이이이잉-
존재를 얻은 그람은, 아니 발뭉의 형태가 변하였다.
성검 그람과 똑같은 형태였던 그건 점차 어그러지기 시작하여 핏빛 살의를 발산하는 마검이 되었다.
유일급 보구 발뭉.
그것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마검 발뭉이라.」
「이거 어렵게 되었는걸.」
「하필이면….」
물론 그건 신족에겐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저 강렬한 살의를 뿜어대는 검을 쥔 시구르드를 이길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
설령 그게 전투의 영혼을 이끄는 발키르라 해도 패색이 짙을 수밖에 없다.
「…조금 더 지켜보시죠.」
벌써 패배를 직감한 신들을 향한 말.
그 장본인은 바로 이둔이었다.
「이둔.」
줄곧 궁금하 게 있었던 토르, 그가 이둔을 향해 입을 열었다.
「줄곧 저 인간 여자를 감싸던데, 이유가 있나?」
오딘이야 워낙 신비한 구석이 있으니 그렇다 쳐도 평소 조용하기만 한 이둔이 나서는 모습에 의문을 전했다.
「….」
잠깐 침묵하던 이둔.
오딘과 시선을 마주친 둘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저의 힘을 받아들인 성녀이기 때문입니다.」
성녀는 신을 모시는 이.
신과 소통하고 그 힘의 일부를 발현할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얼마 전, 예일은 생명의 여신인 이둔의 힘을 받아들였다.
본래는 실체가 없는 신을 모시던 그녀에게 생명의 여신이라는 실제의 신이 생긴 셈이다.
「오!」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안심이로군.」
단지 이둔의 힘을 받아들였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순간 화색이 돌았다.
마치 다 져가던 게임을 역전했을 때와 같은 분위기.
「그녀라면 어떠한 고난과 시련도 무사히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 말하는 이둔이 자신이 손에 든 황금 사과를 응시했다.
생명이라는 무형이 실체화된 그건 이번 결투의 열쇠.
‘어쩌면 엄청난 고통과 시련이 찾아올 테지만 견디세요.’
지금부터 찾아올 고통과 시련.
하지만 이둔은 믿고 있었다.
예일, 자신이 선택한 성녀라면 그 모든 고난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 고난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하압!」
힘찬 기합성.
스윽, 스스슥!
마검 발뭉이 그리는 궤적이 사납게 예일을 몰아친다.
펄럭!
황금 날개를 펄럭이며 간신히 그 공격의 영역권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지만.
서걱!
가슴 부근이 베이는 치명상을 허용하고 말았다.
주르륵.
예리한 칼날에 의해 베인 상처에서 핏물이 새어 나온다.
만약 평범한 결투였다면 거기서 싸움은 끝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화아악!
상처 사이로 새어 나온 황금빛.
그 순간의 현상과 함께 상처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뭐…?」
이 신비한 현상에 시구르드 또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발뭉으로 인해 벌어진 상처는 좀처럼 낫지 않는다.
출혈 효과를 동반하기에 죽을 때까지 피를 흘려야 하건만 어째서?
“한눈을 팔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요?”
가까이서 들리는 경고성.
어느새 접근한 예일, 그녀의 손이 벼락과도 같이 뻗어 나온다.
부러진 창, 그 뾰족한 부위가 위협적으로 시구르드의 머리에 접근한다.
순간적인 놀람으로 인한 빈틈을 정확히 파고들었지만.
휙.
시구르드는 전투로 단련된 용사.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일격을 피해내며 다시금 발뭉을 휘둘렀다.
쉬이익!
붉은 기운에 휩싸인 마검.
기습적으로 나온 것이지만, 그 일격 하나에 깃든 위력은 경시할 수 없는 수준.
펄럭!
날개를 펄럭여 추진력을 얻은 예일이 그 공격을 피하며 다시금 반격했다.
휙휙휙!
일진일퇴의 공방.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듯한 살벌한 공격의 연속.
고오오오오!
그 투기는 관전하는 신들과 거인들도 감탄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
하지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손가락을 까닥대는 로키.
「시구르드!」
그리고 그는 결투에 임하는 시구르드를 큰 소리로 호명했다.
「언제까지 장난을 칠 셈이지? 네 목적은 너를 장난감으로 여긴 신들, 오딘에게 한 방을 먹여주기 위한 게 아니었던가?」
로키는 불만이었다.
시구르드의 전력이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이 신호였던 것처럼.
퍽!
가까이 붙는 예일을 발로 찬 시구르드가 뒤로 물러났다.
「….」
로키의 말에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시구르드가 오른팔을 앞으로 뻗었다.
지이이잉!
검은 기운이 뭉쳐져 하나의 형상을 완성한다.
그건 악마의 형상을 본 따 만든 칠흑의 투구였다.
「…미리 사과하겠다. 내가 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음을.」
그건 오만이 아니다.
실력에 기인한 자신감.
그리고 그 자신감의 근원을 신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허!」
「에기르의 투구라니!」
「그 보물을 시구르드가 지니고 있었구나!」
신들은 시구르드가 손에 쥔 투구, 악마 형상의 투구가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에기르의 투구.
경외의 투구, 혹은 공포의 투구라고도 불리는 것.
그것 또한 발뭉과 마찬가지로 유일급의 보구이다.
콰아아아아아!
엄청난 패기(覇氣)가 사방으로 몰아닥친다.
“이, 이건…?!”
그 패기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예일은 기시감을 느껴야만 했다.
이 절대적인 기운은 흡사.
‘천하무적의 기세와 같아!’
놀랍게도 그 기세는 윤찬이 내뿜던 천하무적의 기세와 비슷했다.
세상 모든 것을 압도하는 기백.
그리하여 느끼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능력치의 하락.
그 순간 예일은 느낄 수 있었다.
발키르로 변한 자신의 능력치가 대폭 하락한 것을.
아니, 단순히 능력치의 하락뿐만이 아니었다.
“아아-”
몸속에 있던 기운이 빠져나가며 결국.
차차창!
그녀를 감싸고 있던 황금빛 날개와 무장이 벗겨졌다.
더는 발키르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 된 것이다.
그건 당연하게도 에기르의 투구로 인한 변화였다.
근원적인 공포를 끌어내어 상대의 능력을 대폭 하락시키는 건 물론 모든 마법적인 변화를 해제한다.
발키르의 변신 또한 마법적 효과 중 하나이기 때문에 에기르의 투구는 그 모든 효과를 해제하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철컹.
황금빛 찬란한 갑옷이 시구르드의 몸을 감쌌다.
황금 갑옷.
모든 물리, 마법적 공격으로부터 착용자를 보호하는 유일급 갑옷.
스윽.
오른손의 발뭉과 함께 왼손에 쥐어지는 검은 흐로티.
이 역시 마검이라 불리는 유일급 보구였다.
에기르의 투구와 황금 갑옷, 마검 발뭉과 흐로티.
미드가르드 제일의 용사는 유일급 보구로 자신을 치장하며 최강의 전력을 끌어올렸다.
「….」
그 압도적인 모습에 신족 모두 할 말을 잊은 듯 침묵을 지켰다.
패배.
그 두 글자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유일급 보구로 무장한 지금의 시구르드는.
‘초월의 영역에 도달하였다!’
놀랍게도 초월의 영역에 도달하였기 때문이다.
필멸자가 아니라 신들과 싸워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전력을 보유하였는데 그 누가 있어서 시구르드의 적이 될 수 있겠는가.
「으하하하하하!」
경악한 신들과 달리 거인족들 사이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과연 시구르드!」
「미드가르드 최고의 용사다운 전력이구나!」
지금껏 인상을 구기고 있었던 로키 또한.
「진즉에 그랬어야지.」
만족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불의 신, 그렇기에 세상의 모든 무구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그는 시구르드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가 파프니르라는 마룡을 죽이고 그의 보물을 갈취했다는 것을.
에기르트의 투구와 흐로티, 그리고 황금 갑옷까지.
그 유일급 보구로 무장한 시구르드의 적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신의 힘을 받드는 성녀라 할지라도 말이다.
“…대단하군요.”
찌릿.
살을 따갑게 하는 엄청난 기세에 예일이 말했다.
「항복하시오.」
조금 전과 같이 시구르드는 예일의 항복을 권유했다.
물론 조금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조금 전과는 달리 이제는 적수가 되지 못한다.
유일급 보구로 무장한 시구르드.
하지만 에기르의 투구로 발키르의 효과마저 해제된 예일은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항복이라….”
예일이 슬쩍 뒤를 응시했다.
동료들,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포기해.
항복해.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동료들은 눈빛으로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건 안 될 것 같은데요.”
하지만 예일은 이 승부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어리석구나!」
지금껏 존중으로 대하던 시구르드의 날카로운 말.
「때론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지금의 전력으로….」
“글쎄요. 기록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시구르드의 거듭된 설득에도 그녀는 전혀 포기하지 않았다.
“제가 불리하다고 여기는 건가요?”
「누가 봐도 네가 불리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렇다면 한 가지만 약속해 줄래요.”
「무엇을?」
“10분.”
예일이 검지 손가락 하나를 펴며 말했다.
“10분 동안 저를 패배시키지 못한다면 당신의 패배가 되는 걸로.”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10분이면 무방비 상태의 예일을 수백, 아니 수천 번은 죽이고도 남을 시간이다.
“왜요? 약속하지 못….”
「약속하지. 이 정도의 무장을 갖추고도 너를 패배시키지 못한다면 내 패배로 간주하겠다.」
“들으셨죠?”
예일의 시선이 허공, 그곳에 떠 있는 미미르에게 향했다.
「추가 조건인가? 알겠다. 지금부터 10분 동안 성예일이 패배하지 않을 시 이 승부는 그녀의 승리가 된다.」
미미르가 정식으로 승인한 추가 조건이 결투에 적용되었다.
「무슨!」
깜짝 놀란 로키가 만류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으하하! 마지막 발악인가?」
「어디, 버틸 수 있으면 얼마든지 버텨 보아라!」
물론 다른 거인들은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들 또한 생각했다.
10분이면 수백, 수천 번은 죽이고도 남는 시간.
그 시간을 예일이 버텨낼 수 있을 턱이 없다.
「내가 너를 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나의 원한은 그 무엇보다 크고 강대하니.」
예일이 어떤 생각으로 추가 승부 조건을 제안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시구르드는 고작 인간의 정 따위로 자신의 목적을 잃을 생각이 없었다.
「죽어라!」
스윽, 슥!
발뭉과 흐로티, 두 개의 마검이 궤적을 그리며 예일에게 쇄도했다.
서걱!
살점이 갈라지는 끔찍한 소음.
전력을 다한 일격을 피하지 못한 예일은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죽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화아악!
조금 전 상처에서 새어 나왔던 눈부신 황금빛.
“이제 9분 50초간 남았군요.”
그 빛과 함께 그녀는 죽음에서 되살아나는 기적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