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8
018화.
딸랑-
문을 열고 체육관 안으로 들어섰다.
“….”
하지만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
카운터를 봐야 할 최연지를 비롯해 관장, 그리고 모든 이들이 사각의 링 주변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다.
‘그럴 줄 알았지.’
그건 익히 예상하고 있던 것.
처음부터 그곳에 존재했던 것처럼 은근슬쩍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3라운드로 진행….”
레프리를 맡은 최관장이 스파링의 룰을 설명한다.
각 라운드는 3분으로 3라운드가 주어진다.
중간 휴식 시간은 30초.
중앙에 선 영웅과 민석, 헤드기어를 쓴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친다.
‘얼씨구?’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영웅의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본능이라는 건가?’
학창 시절 민석과 같은 포식자에게 숱한 괴롭힘을 당해 왔다.
그 일로 인해 죽음을 생각했을 정도로.
비록 3년간 복싱을 배웠다지만, 자신감을 회복하기에 그 시간도 짧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마련했다.
민석, 저 양아치 새끼가 영웅을 보면 스파링을 제안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반대편 링, 그곳에 홀로 서 있는 최연지가 보인다.
‘마냥 혼자만의 짝사랑은 아니었단 거지.’
영웅은 모르는 것 같지만, 3자의 눈으로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녀 또한 녀석을 마음에 품고 있음을.
물론 지금 당장 그게 사랑으로 보이진 않는다.
항상 약자의 처지에 있는 녀석을 지켜 줘야겠다는 측은지심, 혹은 모성애.
하지만 그것 또한 사랑의 일종이다.
만약 녀석이 불행한 과거를 겪지 않은, 조금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매번 말했던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도 충분히 가능해.’
저 노란 머리 양아치 새끼만 없다면 말이다.
영웅이 녀석의 일도 그렇지만, 종말에서조차 놈은 쓰레기 짓을 벌인다.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는 양아치, 민석을 잠깐 노려보고 있을 때.
띠잉!
스파링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서로를 향해 다가간 둘이 주먹을 맞부딪쳤다.
그리고.
퍽!
일직선 궤적을 그린 양아치의 잽이 정확히 영웅의 안면에 적중했다.
“….”
하지만 힘이 담기지 않은, 속도에만 중점을 둔 잽이었다.
아랑곳하지 않은 영웅이 보폭을 넓히며 빠르게 민석의 품으로 파고든다.
녀석은 근접해서 싸우는 전형적인 인파이터.
당연히 상대를 자신의 사정권 안에 두어 난타전을 유도하려 했지만.
타탓.
양아치의 날랜 풋워크로 인해 그 모든 게 허사가 되고 말았다.
사이드 스텝으로 순식간에 오른쪽으로 돌아선 놈이.
퍽!
잽을 날린다.
퍽퍽!
한 번이 아니라 연타다.
양팔을 들어 가드를 확고히 한 영웅.
그래도 3년 동안 복싱을 배워 기본기는 탄탄하다.
슥, 스슥.
팔자로 위빙을 하며 잽을 피해 양아치의 품에 파고들려고 했으나.
퍼퍼퍼퍽!
놈의 동체 시력은 팔자로 움직이는 영웅의 머리를 정확히 가격할 수 있을 정도였다.
“와우!”
“저걸 다 맞힌다고?”
“미쳤는데?”
무리 가운데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그럴 테지.
아무리 영웅이 녀석이 재능이 없어도 나름 기본에 충실한 위빙이었다.
그런데 그 움직임을 예측하여 4방의 잽을 맞추는 건 프로들도 하기 힘든 일.
‘확실히 신체 능력은 양아치가 우위다.’
사실 우위라고 말하는 것 자체도 우습다.
다른 종(種)이라 생각될 정도로 영웅과 양아치의 신체적 능력에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했다.
“….”
그렇지만 영웅, 녀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입술을 꾹 다문 채, 가드를 올린 채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
끼익, 끽-
마치 미끄러지듯 링 위를 움직이는 현란한 풋워크.
압박하려는 영웅의 돌진을 너무도 쉽게 벗어난 양아치.
‘아웃복서.’
전형적인 아웃복서의 움직임이었다.
맷집과 펀치력으로 KO를 노리는 인파이터와 달리 라운드마다 착실히 점수를 올리거나 카운터를 통해 한 방을 노리는 스타일.
움직임이 날래기에 수비에 능하며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인파이터와는 상성에 있는 스타일이었다.
상성도 좋지 않은데 재능마저 아득한 차이가 있다.
사실 그건 해 보나 마나 한 승부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처럼.
퍽, 퍼퍼퍽!
영웅은 계속 얻어맞았다.
아직 가드가 풀리지 않아 육체에 큰 충격은 없겠지만.
‘정신적인 충격은 상당할 테지.’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아서?
그건 당연한 결과다.
아무리 한 달간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해도 재능의 차이는 쉽사리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퍼퍼퍽!
양아치, 놈이 영웅을 농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맞지?”
“어. 민석이, 잽만 날리고 있네.”
“그것도 한 손으로만.”
현역 프로들은 이미 눈치채고 있다.
양아치가 일부러 잽만 날리고 있다는 사실을.
치욕스럽게도 잽만 날리는, 그것도 비교적 약한 왼팔만을 사용하는 상대에게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만약 잽이 아니라 제대로 펀치를 날렸다면?
지금처럼 멀쩡히 서 있는 게 불가능했을 거다.
그렇기에 녀석은.
꽈악.
분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듯 성난 황소처럼 저돌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퍼퍽!
여전히 빠른 풋워크를 따라가지 못한 채 연속 잽을 허용할 뿐이었다.
땡땡땡!
마치 30분과 같은 3분이 지났다.
양측으로 물러난 둘이 코너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그쪽으로 다가갔다.
“괜찮아?”
영웅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최연지.
“…네. 괜찮아요.”
“….”
잠깐 망설이던 그녀는.
“…여기서 포기하자.”
영웅에게 포기할 것을 권했다.
“너도 알잖아. 상대가 되지 않는 걸. 여기서 더 해 봐야 너만 비참해질 뿐이야.”
이걸 스파링이라 말할 수 있나?
양아치 녀석이 자신의 실력을 보여 주기 위한 일종의 쇼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기에 최연지는 영웅을 보호하기 위한 충고를 전해 주었다.
“포기할 거야?”
은근슬쩍 다가가 묻는 내 말에.
“그럴 리가.”
단호하게 답한다.
“무슨 소릴….”
“누나.”
다시금 만류하려는 말을 막는다.
“누나가 뭘 걱정하는지 알겠는데, 괜찮아요.”
어울리지 않게 그럴싸한 말까지.
지난 2주, 녀석은 변했다.
나름 지옥 훈련을 걸쳐 정신 개조에 성공했다.
물론 아직 불안한 요소가 있긴 하지만, 과거의 찐따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중이었다.
그건 뭐랄까.
그래 고치.
나비가 될 준비를 하는 고치처럼 녀석을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해 볼게요. 아니, 할래요.”
“….”
그 변화를 눈치챘기 때문일까.
“…변했네.”
“제가요?”
“응. 예전에는 이런 상황이면 질질 짜기부터 했을 텐데.”
와, 양아치 녀석의 주먹보다 더 아프게 때리는데?
“제가요?”
“그래. 너, 맨날 구석에서 울었잖아. 내가 그걸 모를 줄 알고.”
“….”
하긴, 저 성격에 오죽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체육관에 처음 온 날 세상 다 산 것처럼 질질 짜고 그랬을 게 빤하다.
“대견하네.”
그렇기에 변화한 영웅의 모습을 반긴다.
3년 전부터, 녀석의 가장 밑바닥부터 보아 왔을 테니, 그 변화가 달갑게 느껴질 테지.
‘확실히 녀석을 아끼는 모양이네.’
그 모습에서 최연지가 영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사랑이나 기타 감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그녀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 성장을 반기고 있었다.
“알았어. 더는 말리지 않을게. 마음껏 부딪치고 와.”
진심이 담긴 말.
“네.”
그 진심을 읽었는지 조금 전과 달리 조금은 활기차게 답했다.
때앵!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굳이 중앙에서 터치할 필요 없이 자세를 잡고 들어가는 영웅.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얼굴을 굳건하게 가드한 채, 마치 거북이와 같이 단단하게 접근한다.
퍼퍽!
여전히 양아치의 잽은 날카로웠고, 그 긴 리치와 풋워크로 인해 접근하는 게 힘들다.
그러나.
스륵.
영웅이 가드를 열었다.
그리고.
뻐억!
그대로 안면에 잽을 허용했다.
아무리 힘이 많이 들어가지 않은 잽이라도 정통으로 맞으면 버티기 힘들다.
하지만 가드를 열었다.
‘역시!’
그냥 맞지 않았다.
잽이 날아오기 전, 오히려 앞으로 돌진하여 충격을 줄인다.
말이 쉽지, 이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영웅은 해냈다.
마치 회귀 전, 적진을 향해 홀로 돌진하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후웅!
안면에 잽을 허용함과 동시에 아래에서 위로, 주먹을 크게 휘두른다.
놀란 양아치가 재빨리 스텝을 뒤로 밟으며 그곳에서 물러났다.
처음이다.
양아치가 양옆이 아니라 뒤로 물러난 것은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회.
파팟!
상체를 숙인 자세 그대로 양아치에게 파고든다.
“어딜!”
뒤로 물러나는 와중에도 잽을 날린다.
하지만 그건 무게가 앞으로 실리지 않은, 그저 시선을 끌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다.
퍼퍼퍽!
세 번, 안면을 향한 그 정타를 고스란히 허용하며 깊숙하게 파고든다.
‘맷집 하나는 기깔나게 만들어 놨거든.’
2주간의 지옥 훈련.
조금 뒤쳐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오로지 육체의 한계에 도전하는 훈련을 견뎌 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건 내 입에서도 욕설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혹독한 것.
그러나 영웅은, 녀석은 단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그 혹독한 일정을 소화해 냈다.
녀석은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단단한 고치를 조금씩 벗겨 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퍼억!
양아치를 코너에 몰아넣은 녀석이 그대로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끄으.”
영웅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신음.
“흐으.”
그리고 양아치는 웃고 있다.
그럴 수밖에.
영웅의 주먹은 복부에 꽂히지 않았다.
팔꿈치로 주먹이 날아오는 곳을 정확히 보호한 양아치, 녀석이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아무리 글러브의 보호를 받고 있어도 뾰족한 팔꿈치에 주먹을 날렸으니 충격이 보통이 아닐 거다.
하지만 녀석의 전진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후웅!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훅.
양아치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사각에서 뻗어 오는 주먹은 상당히 위협적이다.
시선을 아래로 묶어 둔, 나름 회심의 일격.
뻐억!
그리고 울려 퍼지는 둔탁한 타격음.
그건 수박을 박살 냈을 때 울리는 것과 흡사했다.
털썩.
무릎을 꿇은 건 양아치가 아니었다.
‘카운터가 제대로 들어갔는데?’
양아치 녀석의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훅이 뻗어오는 타이밍에 맞춰 그대로 오른손 카운터가 작렬.
“영웅아…!”
제대로 들어간 카운터에 놀란 최연지가 달려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움직이기 전 어깨를 잡아 다가가지 못하게 막았다.
“뭐 하는 짓이야!”
잔뜩 화가 난 그녀가 거칠게 말을 뱉어 낸다.
“기다려요. 녀석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그게 무슨….”
말을 잇지 못한다.
보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들어간 카운터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있는 영웅이를.
‘준비는 끝났다.’
2주의 지옥훈련을 통해 녀석은 성장했다.
아, 물론 모든 게 미친 듯이 성장한 건 아니고.
‘맷집.’
다른 건 몰라도 맷집, 그것 하나만큼 녀석은 괴물이라 불려도 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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