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쿠웅!
거대한 펜리르의 몸뚱이가 쓰러졌다.
부들부들.
게거품을 물고선 경련과도 같이 몸을 떨다가.
「….」
이내 침묵한다.
그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장내에 아무도 없었다.
「이, 이…!」
격정적인 로키의 반응.
그럴 수밖에 없다.
펜리르는 그가 라그나로크를 위해 공을 들인 작품.
그것도 죄악의 거인 앙그르보다와 동침하여 낳은 걸작이었다.
그런데 믿었던 펜리르가 죽었다.
고작해야 필멸자 하나를 집어삼키고선 말이다.
그 죽음에 놀란 로키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무렵.
스으으.
공중에서 결투를 주관하고 있던 미미르가 내려왔다.
특유의 푸른 안광이 펜리르를 살폈고.
「이번 결투는….」
그 승패를 알리려 한다.
‘무승부.’
‘이번에는 무승부로군.’
‘어쩔 수 없지.’
‘노력하였다, 인간.’
거인과 신족, 모두가 그 승부의 행방을 무승부로 판단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리우옌은 펜리르에 의해 삼켜졌고, 그를 삼킨 펜리르는 죽음에 이르렀다.
분명 삼켜진 리우옌이 어떤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을 예상했고, 그것은 곧 무승부를 뜻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단 하나, 미미르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리우옌 승!」
놀랍게도 그는 리우옌의 승리를 선언했다.
「뭐, 뭣?!」
놀란 로키가 판정에 반발하려 할 때 그보다 빠르게 신 쪽에서 반응이 있었다.
파앗!
엄청난 속도로 쇄도한 신, 그는 다르면 아닌 용맹의 신 티르였다.
「하아압!」
잘린 팔로 인해 한 손에 들 수밖에 없는 거대한 대검을 휘둘러.
서걱!
펜리르의 배를 가른다.
「무슨 짓이냐!」
「감히!」
신성한 결투에 나선 선수를 모욕하다니.
아무리 승부가 끝났어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닥쳐라!」
콰르릉!
하지만 티르는 거인들의 도발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용맹한 포효는 수르트를 비롯한 모든 거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할 정도의 엄청난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주르륵.
갈라진 뱃속에서 내장과 함께 흘러나오는 게 있었다.
「허!」
「죽지 않았던가?」
그것을 확인한 거인과 신, 모두가 감탄사를 뱉어냈다.
“으으….”
신음을 내뱉고 있는 그건 살점이 모두 녹아내린, 그리하여 하얀 뼈가 드러난 리우옌이었다.
펜리르의 위산에 노출된 그는 하얀 뼈가 노출되어 있었고, 심지어 사지는 녹아내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아아-”
“어째서….”
그 끔찍한 모습에 강회장은 물론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정도환마저 눈이 시뻘게졌다.
어찌 모르겠는가.
리우옌이 사지로 걸어 들어갔음을.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이번 결투의 승리를 가져왔음을 말이다.
「접근하지 마라!」
다가가려는 동료들을 만류하는 티르.
「아직 독기가 가득하다. 너희는 이 독기를 견뎌낼 수 없다.」
사아아아-
의식을 잃었으나 리우옌은 계속 독기를 내뿜고 있었다.
“더…계속….”
그건 의지의 힘이었다.
무의식 속에서도 여전히 독기를 발산하여 펜리르와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장엄한 모습인가!」
그 엄청난 의지에 티르는 감탄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용맹의 신.
자신의 목숨까지 버려가며 펜리르와 싸운, 그리하여 승리를 이끈 리우옌에 대한 찬사를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와락.
그를 안아 들었다.
치이이익!
초월의 영역에 있는 티르마저 영향을 줄 수 있는 지독한 독기였으나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메르시!」
다만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 뿐이었다.
「저를 부르셨나요.」
신들 진영의 후미, 그곳에 백색의 하늘거리는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있었다.
은빛의 머리칼, 한 번도 햇빛을 보지 않은 듯한 백옥의 피부를 자랑하는 그녀는 메르시.
모든 의술을 다스리는 신이었다.
「치료할 수 있겠나?」
티르의 말에 가까이 다가온 메르시가 인상을 찌푸린다.
「상태가 무척 심각하군요.」
「나는 치료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중이다.」
티르는 신들 가운데서도 꽤 높은 직위에 있는 이.
물론 같은 신들인 이상 서로 양보하는 게 관례긴 하지만 지금 티르에게 그런 허례는 중요하지 않았다.
리우옌의 생사.
필멸자에 불과한 이가 보여준 그 용기와 결의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그와 함께.
부우우웅!
그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광휘가 리우옌의 몸을 감쌌다.
둥실-
그와 함께 리우옌의 몸이 공중에 떴다.
「티르. 뭔가 하나에 꽂히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건 여전하군요.」
다시금 손을 뻗어.
화아아악!
티르의 몸 곳곳을 어루만졌다.
무의식적으로 발산한 리우옌의 독기는 티르마저도 상하게 할 정도였던 것.
「하하하! 그것이 바로 용맹의 신 티르지!」
살 수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후.”
“다행이다.”
“천만다행이로군요.”
티르의 자비로 인해 리우옌은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물론 그 후유증이 얼마나 생길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후에 일은 생각지 않는다.’
리우옌의 용기에 강회장을 비롯한 일행 모두가 결의를 다졌다.
목숨마저 버리는 그 용기는 신들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전해졌다.
그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목숨을 버릴 만한 결의.
그것으로 단단히 무장하며 다음 결투를 기다렸다.
「이번에 패배하면 모든 게 끝이다.」
수르트, 그가 평소와 달리 무척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화르르륵!
그 주변에서 이는 불꽃의 세기는 더욱더 강해졌다.
단단히 화가 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벌써 두 번을 패했다.
5선 3승을 달성해야 하는 만큼 이번이 마지막 결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로키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제가 나설게요.」
저 지하 안쪽에서 울리는 듯한 낮고 울리는 음성.
아아아아-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죽은 자의 비명이, 귀곡성이 가득한 저주받은 존재.
「헬.」
위기에 나선 건 죽음의 처녀 헬이었다.
뭔가 이질감이 드는 회색의 피부, 그리고 이와 대조되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죽은 자들의 세계 헬을 다스리는 존재였다.
「헬이라.」
「마침내 저주받은 그녀가 나서는구나.」
신들 쪽에서 동요가 일었다.
당연한 일이다.
비록 초월자는 아니나 헬은 초월자들조차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그 이유는 그녀의 권능이 불사의 영역에 있는 신들마저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다스리는 자.
불사마저도 파괴할 수 있는 자.
그것이 바로 헬의 권능이었다.
“…내가 나설 차례로군.”
헬이 걸어오는 것을 본 정도환이 나섰다.
“괜찮겠나?”
걱정하는 강회장의 물음에.
“…승산이 있어 보이진 않는군.”
“….”
담담한 그 말에 강회장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알고 있다.
헬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정도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한다.
그리고 누군가 중 그나마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게 정도환이었다.
“걱정하지 말게. 내 이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테니.”
이미 정도환은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강회장은 어떠한 위로도, 그리고 어떠한 격려의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럼.”
앞으로 걸어 나간다.
“….”
쓸쓸한 그 뒷모습을 응시하는 강회장은 어쩐지 친구의 등이 무척 넓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죽음, 생사에 초탈한 그 모습은 한낱 노인에 불과한 그를 거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서영아.”
항상 그의 옆을 지키는 윤서영, 죽음의 힘으로 다시금 부활한 그녀를 부른다.
그와 함께.
지이이잉-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과 함께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윤서영.
“네. 할아버지.”
예전보다는 좋아졌지만, 여전히 딱딱하게 끊기는 말투.
“이 할애비가 미안하구나.”
“뭐가 미안하다는 건가요.”
“너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서. 그리고 안식에 든 너를 괴롭힌 것 같아서.”
그는 알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게 예전의 손녀 윤서영이 아니란 사실을.
다만 그 혼의 조각을 통해 비슷한 인형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녀는 윤서영이지만 윤서영이 아닌, 전혀 다른 존재였다.
물론 시간이 지나 어떤 특별한 힘과 계기를 얻는다면 완전한 부활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살아왔다.
손녀를 살린다는 목적 하나를 위해.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정도환은 그 목표를 포기하였다.
“못난 할애비를 용서해다오.”
그는 진심 어린 사과를 전했다.
부활이라는 꿈도 이뤄주지 못한 채 여기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안식에 들었어야 할 그 영혼까지 괴롭혀 가며 지금의 길을 걸어왔는데, 그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
정도환의 말에 윤서영, 그의 전용 소환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배시시.
어색하지만 그녀는 분명 미소를 짓고 있었다.
“괜찮아요. 할아버지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어요.”
“….”
그건 환상이었을까.
지금껏 그냥 인형이라고 생각했던 소환수, 그녀에게서 예전 손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 고맙구나.”
그제야 정도환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윤서영이다.
그녀를 인형으로 생각한 자신의 마음이 단지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을 뿐.
“할애비와 함께 마지막을 불태워 보자꾸나.”
“네!”
막혀 있던 무언가가 뚫린 기분이다.
그제야 마음의 안식을 얻은 정도환은 죽음의 처녀 헬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안타깝구나.」
정도환을 본 헬이 탄식을 토한다.
「그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네 가엾은 운명이.」
수준의 차이는 상당하다.
더욱이 헬과 정도환 모두 죽음의 힘을 다루는 이들.
그 역량의 차이는 명백했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리오.”
항상 윤찬이 중얼거렸던 말이다.
당시에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정도환은 그 말의 진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비록 이 한목숨이 사라지는 한이 있어도….’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꿈이 좌절되어도 한 가지 목적만큼은 분명히 이룰 것이다.
헬.
지금의 결투에 있어서 가장 큰 적이 될 그녀를 어떻게든 물고 늘어질 것을.
“오라!”
정도환은 전력을 개방했다.
사아아아-
그가 일으킨 죽음의 기운으로 인해.
드드드득.
지면이 갈라지며 그곳에서 엄청난 수의 망자 군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인님의 명이다!」
반가운 얼굴인 파라켈수스, 그가 군단을 지휘하며 강렬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그 수는 일천에 이를 정도.
게다가 단순한 망자가 아니다.
지금까지 일행이 상대해 왔던 강력한 각성자들이 죽음의 기사가 되어 주위를 완벽하게 포위하였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것을 본 적은 경악을 금치 못하겠지만.
「….」
헬에게선 아무런 동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태연하다.
씨익.
한 줄기 미소마저 입가에 걸리니.
「그것이 네 전력인가? 과연 죽음의 힘을 다루는 이 답구나.」
칭찬.
하지만 그건 하수의 재롱을 바라보는 고수의 태도와 다를 바 없었다.
「너는 깨닫게 되리라. 내 앞에서 네가 다루는 힘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스윽.
그저 가벼운 손짓 한 번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척척척.
조금 전까지 헬을 향해 강렬한 적의와 사념을 내뿜던 망자 군단이 뒤돌아섰다.
「주인님의 명이다. 훼방꾼 정도환을 없애라!」
파라켈수스.
조금 전까지 정도환을 따르던 그의 외침과 함께.
두두두두-
정도환이 일으킨 망자의 군단이 이전의 주인을 없애기 위하여 달려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