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드드드득!
사방을 가득 메우는 뼈의 창.
수십?
아니 수백 개에 이르는 그 창에 깃든 힘은 지금껏 정도환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끝났구나.’
그 순간 이 노인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공격으로 자신의 삶이 끝날 것임을.
최대한 발악해 보았지만, 역시 죽음의 처녀에게 저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스륵.
그 의지로 인해 팔이 아래로 떨어진다.
본래는 진즉 떨어졌어야 할 팔이다.
그도 그럴 게 노인의 육신은 이미 한계에 이르러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갑옷이라는 대체품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헬의 공격에 의해 파괴되었다.
남은 것이라곤 갑옷의 조각이라 짐작되는 작은 조각뿐.
그것은 지친 노인에게 아무런 힘도 전해 줄 수 없었다.
떨어진 팔처럼 그의 육신은 지쳐 버렸다.
포기?
아니.
그는 여전히 이 싸움에서 이길 생각이었다.
다만 그 주체가 자신이 아닐 뿐.
‘서영아.’
멀리, 죽음의 군단과 싸우고 있는 손녀 윤서영을 응시한다.
지금의 그녀는 과거의 손녀 윤서영은 아니다.
다만 그 혼의 조각이 담긴 인형일 뿐.
하지만.
‘…이로써 완성된다.’
모종의 결심과 함께.
퍼억!
“크흡!”
내장이 튀어 나올 듯한 어마어마한 충격이 복부를 파고들었다.
죽음의 갑옷도 없이 맨 몸으로 헬의 권능을 받았다.
당장 죽지 않은 것만 해도 기적인 일.
하지만.
퍼퍽, 퍼퍼퍼퍼퍽!
수백 개 뼈의 창은 자비심 없이 노쇠한 육신을 두드렸다.
퍼억!
살점이 터지고.
뿌득!
뼈가 부러진다.
“웨엑!”
내장이 섞인 피가 역류한 상태.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비틀.
허나 노쇠한 육신은 쓰러지지 않았다.
수백 개 뼈의 창을 맞고도 여전히 대지를 딛고 서 있었다.
“도환!”
“어르신!”
뒤, 일행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린다.
“….”
비틀대는 몸으로 뒤를 돌아본다.
‘성현….’
강성현.
굴지의 그룹인 태왕 그룹의 회장이기에 처음에는 어색했다.
하지만 같은 시대를 공유했기 때문일까.
나중에는 허물없이 지내며 친구 하나 없던 정도환의 유일한 지기가 되어 주었다.
비록 오랜 사귐은 아니지만, 그에게 있어서 성현의 존재는 그 어느 누구보다 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웅, 윌리엄….’
울부짖는 영웅과 윌리엄.
그리고 그 자리에 없는 예일과 리우옌까지.
슈에리나 빙빙은 합류한지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기에 그들만한 정은 없어도 모두 소중한 동료들이었다.
‘너희들이 있기에 지난 날 나는 행복할 수 있었다.’
장의사 생활을 하며 인간의 감정을 서서히 잃어 갔다.
그나마 유일한 낙이었다면 딸, 그리고 손녀 윤서영일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하늘은 무심히 그의 소중한 것을 모두 가져가고 말았다.
하늘을 원망했다.
세상을 환멸을 느꼈다.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찼다.
아마 그대로 지냈다면 세상에 대한 환멸과 인간의 불신으로 그는 악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윤찬, 그리고 동료들 덕택에 그는 악마가 아닌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 고마움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고맙네.”
마지막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어르신!”
울부짖는 동료들의 마음을 헤아렸기에.
씨익.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푸욱!
지친 육신을 꿰뚫는 뼈의 창.
“아아-”
그 치명상을 본 강회장이 안타까움의 탄식을 내뱉었다.
아무리 각성자라 해도, 그리고 아무리 단련된 육신이어도 한계란 게 있는 법.
상체 전체가 꿰뚫리는 일격은 아무리 대단한 각성자라 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죽음.
우려했던 그 마지막이 정도환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렇지!」
「드디어 제 몫을 하는구나!」
처음으로 승리를 거둔 거인 진영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다.
헬이 패한다면 3승을 달성한 신족의 승리로 끝난다.
그렇기에 로키를 비롯한 모두가 가장 믿을 수 있는 패인 헬을 꺼내든 것이었다.
예상은 맞았고, 그녀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이며 인간을 죽였다.
「자, 그럼 다음….」
신이 난 로키가 다음 상대를 지목하려 할 때였다.
「성급하구나.」
그 움직임을 본 오딘이 제지하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
아직도 뭐가 남았나?
의문이 든 로키가 물었고.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형제여.」
「그 형제라는 소리!」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한 로키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오딘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일은 없었다.
지금은 신성한 결투가 한창인 상황.
「뭐가 아직 끝나지 않았단 말이지?」
헬이 만든 뼈의 창으로 정도환이 죽었다.
당연히 승리는 그들의 것이어야만 한다.
「아직 희망이 남아 있지 않으냐.」
오딘의 창이, 궁니르가 가리킨 곳에는.
콰콰쾅!
여전히 맞서 싸우고 있는 윤서영이 있었다.
「아니?!」
그 사실에 로키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윤서영은 망자다.
당연히 그것을 다루는 술자가 죽으면 같이 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여전히 남아서 싸우고 있는 거지?
「그녀가 그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로키와 거인족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오딘은 알고 있었다.
‘죽기 직전, 그는 자신의 모든 생명력을 이전했다.’
죽음에 다다른 순간 정도환은 자신의 생명을 모두 윤서영에게 넘겼다.
물론 그건 일반적으로 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이전부터 준비하였던 것이지.’
윤서영의 안, 텅 빈 그 생명의 주머니를 만들고 그곳에 자신의 생명을 계속 주입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 그릇이 완성되었고, 죽기 직전 정도환은 그 모든 생명력을 이전한 채, 윤환의 고리마저 끊어 버린 채 자신의 모든 것을 전해 준 것이다.
뚝.
물방울이 흘러내린다.
그것은 윤서영,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르는 것.
놀랍게도 영혼의 조각이 박힌 인형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든 인형이라 해도 그건 있을 수 없는 일.
그것이 가능한 건.
“할아버지….”
정도환의 모든 생명력을 전이 받았기에, 그리고 마침내 윤서영이라는 그 완전한 존재를 되찾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도환은 자신의 손녀딸을 되돌릴 방법을 알고 있었다.
다만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며 그녀를 살릴 경우 남아 있을 그녀가 짊어질 슬픔을 알기에 그것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어쩔 수 없이 죽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죽기 전 그 생명력을 넘길 수 있다면 손녀는 그 무게를 짊어지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력을 다했고, 패배했다.
그리고 죽기 직전 윤서영 안에 만들어 놓은 그릇 안으로 자신의 생명력을 넘긴 것이었다.
아니, 넘긴 건 생명력만이 아니다.
“아아아아-”
맞서 싸우는 그녀의 입에서 한을 담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덜그럭, 덜그럭.
그 순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윤서영을 공격하던 죽음의 군단이, 헬을 따르던 용맹한 전사들이 몸을 돌린 것이다.
「뭣이?!」
탄생한 이후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경악한 감정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덜그럭.
놀랍게도 조금 전 그녀가 했던, 정도환의 소환수를 빼앗은 행위를 연출했다.
고작해야 필멸자가?
죽음의 처녀를 상대로?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다.
“아아아-”
그녀는 유일 특성의 무신.
그리고 정도환이 전해 준 죽음의 인도자라는 특성을 융합한.
『죽음의 신』
새로운 특성이 발현되었다.
물론 그건 영원한 것이 아닌, 일순간일 뿐이다.
특별한 조건을 달성하지 않은 이상 각성자가 2개의 특성을 보유하는 건 무리다.
그러나 생명이라는 막대한 제물을 바친 대가로 윤서영은 잠시 동안 죽음의 신이라는 유일무이한 특성을 각성할 수 있었다.
그것은 죽음의 처녀를 뛰어넘는, 죽음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초월의 영역이었다.
덜그럭, 덜그럭!
조금 전까지만 해도 헬의 충실한 부하였던 죽음의 군단이 목표를 변경했다.
「….」
그녀의 주위를 포위한 죽음의 군단을 보는 마음이 썩 편하지 않다.
「어리석은!」
그 감정이 분노로 표출되었다.
드드드득!
그녀는 자신의 권능을 이용하여 뼈의 창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건 조금 전 정도환을 공격했던 것과 같은 크기가 아니었다.
뿌득, 뿌드득!
엄청난 크기의 창이 머리 위를 장식한다.
「감히 내게 덤빈 어리석음의 대가를 받아라!」
비록 그녀가 부리던 수하였지만, 그것을 파괴하는 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다.
어차피 망자는 계속 그녀의 세계를 찾아올 테고, 그들을 복종시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건 확실한 파괴.
쿠쿠쿠쿠쿠!
공중을 장식한 거대한 뼈의 창이 그대로 지면에 떨어졌고.
콰콰콰콰콰쾅!
엄청난 충격이 지면을 뒤흔들었다.
파아앙-
뒤이은 충격파가 파도처럼 장내를 휩쓴다.
단 한 방.
그녀가 일으킨 거대한 뼈의 창은 미드가르드의 영웅이라 불리었던 수많은 망자를 단숨에 소멸로 이끌었다.
「….」
물론 헬은 멀쩡했다.
그녀의 몸 주위.
쩌저적!
뼈의 보호막이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웬만한 충격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 뼈의 보호막이 있는 이상 그녀는 안전하다.
다만.
“너어-”
그 충격의 여파를 뚫고 나오는 이.
마치 공간을 뛰어 넘은 듯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윤서영의 절대적인 주먹이 뼈의 보호막을 강타했다.
헬은 생각했다.
아무리 강력한 힘이어도 뼈의 보호막을 한 번에 뚫지는 못할 거라고.
그렇게 공격을 준비하던 그녀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커헉!」
복부에 느껴지는 엄청난 충격.
탄생한 이후 처음으로 느껴 보는 고통이라는 것에.
쿠당탕.
나동그라졌다.
「어, 어떻게?」
뼈의 보호막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윤서영은 보호막의 보호 아래 있는 그녀에게 타격을 주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거지?
『침투경(侵透勁)』
장애물을 건드리지 않고 그 뒤의 대상을 공격하는 경지.
무신이라는 유일의 특성을 가진 윤서영만이 발휘할 수 있는 지고한 경지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너-”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주먹에 담는다.
퍽!
「끅!」
그녀의 주먹이 헬의 육신을 강타한다.
드드득!
뼈의 창 등을 생성하여 어떻게든 그녀의 움직임을 묶으려 했으나.
빠직!
윤서영은 다가오는 모든 공격을 다 쳐내며 헬에게 집중 공격을 가했다.
그 어떤 방향, 어느 거리에서 공격을 가해도 윤서영은 그 모든 공격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채 모두 쳐냈다.
『용안(龍眼)』
모든 공격의 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무신의 특성.
그녀에게 있어서 그저 파괴력만 강한 헬의 공격은 상쇄하기 쉬운 먹잇감에 불과했다.
퍼퍽.
쉴 새 없이 주먹과 발이 오간다.
퍼퍼퍼퍽!
헬의 공격과 달리 윤서영의 공격은 단 한 번도 빗나가지 않았다.
물론 보통의 공격이었다면 죽음을 피하는, 죽음 그 자체인 헬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웅웅웅!
지금 윤서영 주먹과 발을 감싸고 있는 건 데스 사이드와 같은 순수한 죽음의 기운.
그로 인해 헬은 엄청난 타격을 받아야만 했고.
「아아-」
힘이 잔뜩 실린 발차기에 의해 비틀대더니.
털썩.
이내 그 자리에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죽음 그 자체로 모든 신이 두려워하던 존재.
죽음의 처녀 헬은 한낱 필멸자에 불과한, 그리고 얼마 전까지 전용 소환수였던 윤서영에 의해 무릎을 꿇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