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스윽.
온다.
눈을 감은 필멸자, 윤찬이 염제의 검을 휘두르고 있다.
피해.
피해라.
얼른 피해.
요르문간드는 그렇게 의지를 전달하였다.
하지만.
피하지 않아도 돼.
공격이 아니다.
뇌가 그것을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인지의 부조화였다.
공격인데 공격이 아니라고 받아들이는, 믿을 수 없는 현상.
‘왜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의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분명 평범하기 그지없는 공격인데, 왜 인지의 부조화가 일어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부조화는 혼란을 야기했고.
서걱!
그대로 공격을 허용하고 마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서걱, 서걱!
휘두르는 대로 요르문간드의 육신이 잘려 나간다.
부글부글.
물론 그 엄청난 회복력으로 인해 신체는 금방 회복되었다.
사실상 그게 요르문간드의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반쪽이긴 하지만, 미지의 힘을 얻은 뱀은 그야말로 불사의 영역에 닿아 있었다.
미지가 무서운 이유가 바로 그러한 점이었다.
외부, 전혀 다른 영역의 힘을 얻은 그들을 죽이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요르문간드는 무적이었다.
육신을 회복하는 데 별다른 힘이 드는 것도 아니기에 무한히 재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감히, 감히!」
그렇기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초월의 영역마저 넘어선 자신을, 미지가 아니라면 누구도 넘보지 못할 존재가 한낱 필멸자에게 당하다니.
촤아아악!
윤찬에 의해 잘려 나간 육신, 그것이 녹색의 독무를 일으킨다.
신경마비독이 아닌, 혈독.
강력한 산성으로 이루어진 그 독은 모든 물질을 단숨에 녹여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죽어….」
요르문간드는 그것을 윤찬에게 보내려 했다.
그런데.
‘…왜?’
공격의 의지가 일어나지 않는다.
분명 눈앞에 윤찬이, 필멸자가 있다.
그런데 존재가 없는 것처럼 누구를 대상으로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공격을 피하려 해도 인지하지 못해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없다.
공격하려고 하면 대상을 인지하지 못하여 공격의 의지가 일지 않는다.
완벽한 공격과 완벽한 방어의 일체.
그것이 바로 무념무상의 경지였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무념과 무상의 지경.
그 강력한 네메시스의 사자마저 굴복시킨 경지의 재현이었다.
사실 이 경지에 발을 디디게 된 건 우연의 일치였다.
요르문간드의 신경마비독에 의해 육신이 구속된 그것이 실마리가 되었다.
모든 걸 비워 낸 그 순간이 기폭제가 되어 과거 한영웅이 찰나 간 발현했던 무념무상의 경지에 들어가게 된 것.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그렇기에 그 공격과 존재를 인식할 수 없는 지고한 경지는 미지의 영역에 이른 요르문간드도 어떻게 대처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팟!
그리고 그 경지는 점차 발전해 간다.
쇄도하는 염제의 검.
하지만 이번에는 그 공격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
서걱!
머리가 잘린다.
부글부글.
물론 엄청난 회복력으로 인해 다시금 잘린 머리는 회복되었다.
서걱, 서걱!
그러나 회복력에도 불구하고 윤찬의 공격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탓.
발을 지면에서 떼며 한 차례 튀어 오른다.
그건 뭐랄까.
일정한 형식이 있는 검법이 아니라 마치 춤과 같았다.
사실 지금 윤찬은 의식이 없는 상태다.
지금 그가 펼치고 있는 건 20년 동안 쌓인 경험과 업을 종합적으로 발산해 내는 무대였다.
그 모든 업이 한데 어우러져 만든 것은 일종의 춤, 바로 검무(劍舞)였다.
스륵, 스르륵.
춤을 추듯 유연하게 움직인다.
어떨 때는 무심하게 툭, 또 어떨 때는 격정적으로 몰아친다.
강과 약이 공존하는 그 춤으로 인해.
서걱, 서걱!
요르문간드의 육신이 잘려 나갔다.
분명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건 요르문간드였다.
이 뱀의 육체는 쉴 새 없이 잘려 나가고 있었고, 심지어 그 공격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반격이 가능한가?
아니.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반격은커녕 윤찬이라는 존재 자체를 서서히 잊고 있었다.
「아….」
그로 인해 혼란이 찾아온다.
나를 공격하고 있는 건 무엇인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대체 무엇이지?
검무로 인해 타격을 받는 건 육신만이 아니었다.
정신.
그 정신에 파고들어 엄청난 피해를 쌓고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요르문간드의 유일한 약점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분명 육신은 미지의 영역에 이른 게 맞다.
그러나 정신은 그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윤찬의 검무는 그러한 약점을 적절히 파고들었고, 육신의 불사라는 여역에 이른 요르문간드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남기고 있었다.
「어…?」
그렇게 찾아온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마침내.
퀭.
독기와 살의로 반짝이던 요르문간드의 눈을 퀭하게 만들었다.
육신의 죽음이 아니다.
그건 정신적인 죽음.
무엇에 당하는지, 무엇을 공격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극도의 혼란 상태가 빚은 결과였다.
그리고 정신적 죽음에 이른 요르문간드의 목을 노리는 일격.
서걱!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목을 잘랐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일으킨 결과는 전혀 달랐다.
「….」
재생이 일어나지 않는다.
정신이 죽어 그 능력마저 발휘되지 않았던 것.
그리고 잠시 후.
번쩍!
무념과 무상의 경지에 들어간 윤찬이 눈을 떴다.
*
“….”
정면을 응시했다.
요르문간드, 불사의 힘을 얻은 뱀이 보인다.
하지만 긴장할 필요가 없다.
“…끝났나.”
무념무상의 경지.
그것에 들어간 것을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진 못했다.’
그건 펼치고 싶다고 해서 펼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신경마비독에 의해 육체가 구속되는, 육체의 구속으로 인해 잠시 찾아온 깨달음에 불과했다.
만약 육체가 구속되는 제약이 없었다면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완전히 물거품이 된 건 아니다.
‘한 번 갔던 길을 되돌아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어떻게든 일단 무념무상의 경지에 도달하였다.
그것이 비록 일시적인 것이라 해도 그 깨달음의 흔적이 여전히 육신에 새겨져 있었다.
그 흔적을 잘만 살필 수 있다면 다시금 그 영역을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
머리가 잘린 요르문간드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저벅.
걸음을 옮겼다.
그 걸음의 끝에 있는 건.
고오오오-
녹색 빛을 발현하는 도토리.
‘세계수의 심장.’
위그드라실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세계수의 심장이었다.
이 위험천만한, 어떻게 보면 불가능한 시련에 몸을 던진 건 이것을 얻기 위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지의 접근을 차단하는 힘.’
잊힌 역사 중 하나인 아스가르드가 그나마 미지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세계수의 심장 덕분이다.
이것을 우리의 세계에 가져갈 수 있다면 미지의 위협에서 어느 정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신족이 줄 선물은 받지 못하겠지만.’
본래 이 시련의 성공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신족이 가진 각종 보물이다.
궁니르부터 시작해 묠니르, 부르트강, 심지어 거인들이 지니고 있던 레바테인마저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세계수의 심장을 강탈해 간다면?
‘그 모든 건 요원한 일이지.’
요르문간드가 세계수의 심장을 강탈하면 모든 게 끝나듯,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다.
세계수의 심장을 탈취하는 것으로 이번 시련은 끝을 맺게 될 것이다.
유일급의 보구를 얻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종말을 막기 위해선 방법이 없다.
세계수의 심장을 가져가는 수밖에.
척.
본래는 요르문간드가 해야 했을 일을 대신하여 세계수의 심장을 억지로 꺼냈다.
툭.
그것을 감싸고 있던 세계수의 뿌리가 끊긴다.
드드드드드!
고통을 느끼는지 격렬한 지진이 일어났다.
아아아아아-
마치 위그드라실의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투투투툭!
그 모든 것을 무시한 채 세계수의 심장을 꺼냈다.
스으으으.
엄청난 녹색 빛, 생명의 빛을 발하던 세계수의 심장은 그냥 보통의 도토리로 돌아가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무리한 욕심으로 그 소중한 보물을 잃은 게 아닐까 생각할 수 있지만.
‘곧 진가를 발휘할 때가 올 테지.’
진리의 서고에서 얻은 정보를 통해 이 심장을 활용할 방법을 알고 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 진가를 발휘할 날이 곧 다가올 것이다.
쿠쿠쿠쿠쿵!
그렇게 세계수의 심장을 배낭에 넣은 후 일어나는 변화.
스으으으.
머리 위에 가득하던 풀잎이 생명을 다한 채 갈색으로 물들었다.
드드득!
그와 함께 지면이 무너져 내렸다.
그 공간을 차지한 건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저 심연에 빠지게 된다면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차원의 틈을 헤매고 말 것이다.
‘이동을….’
얼른 이곳을 벗어나야지.
그렇게 마음을 먹을 때였다.
「오거라.」
갑작스레 들려오는 어떤 의지와 함께.
딱!
손가락이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아주 잠깐.
츠츠츠츠!
주변의 사물이 변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완성된 것은.
“윤찬!”
나를 반기는 익숙한 음성이었다.
“….”
주변, 초토화된 아스가르드가 보인다.
그 흔적을 통해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을 감상하는 사이 강회장을 비롯한 일행이 달려와 옆을 지킨다.
그리고.
「…세계수의 심장을 취하였구나.」
오딘, 그가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바라본다.
“….”
조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의 심장을 탈취한 것, 그건 요르문간드의 행위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기서 신족과 싸움을 벌여야 할 수도 있다.
그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해한다.」
하지만 상황은 달랐다.
「우리는 이미 잊힌 존재. 그대의 세계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을 테지.」
초월의 영역에 이른 신족은 지금 자신들이 어떻게 얽매여 있는지, 미지의 놀음에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알고 있는 것과 세계의 근원인 심장을 넘겨 주는 건 다른 일이긴 하다.
「이미 이 세계는 무너지고 있다.」
그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쿠쿠쿠쿵!
아스가르드의 한쪽이 무너져 내리며 심연을 드러내고 있다.
「아아아-」
반대편에 선 거인족의 한숨과 함께 육체가 사라진다.
세계수의 심장을 떼어내면서 그 존재가 소멸에 이르고 있는 것.
그건 신족도 마찬가지였다.
「…지겨운 시간이었도다.」
「마침내 자유를 얻으니.」
눈을 감은 채 소멸을, 구속에서 해방된 그 자유를 만끽한다.
「하지만 내겐 사명이,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구나.」
스스스.
소멸을 겨우 막아 내던 오딘.
그가 손을 휘젓자.
파파팟!
허공에 뜨는 것.
그건 찬란한 빛을 내뿜는 신들의 보구였다.
궁니르, 묠니르, 부르트강, 스스로 움직이는 검, 드라우프니르 등 강력한 보물이 서서히 움직여.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다.」
배낭 안으로 들어갔다.
“….”
세계수의 심장을 강탈하여 세계를 무너뜨린 내게 선물을 줄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리고 이것 또한.」
다음 손짓과 함께 거인족의 보물, 레바테인과 온갖 보물이 배낭 속에 들어왔다.
「그대여, 부디 영겁의 시간 동안 지속되어 온 이 저주를, 그 끔찍한 악몽을 벗어날 수 있기를.」
그리 말하는 오딘의 육신이.
파스스-
재가 되어 흩날렸다.
신족의 왕, 그의 죽음과 함께.
콰챠챵!
차원의 경계가 무너지며 마침내 우리는 본래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