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신화 등급.
회귀 전, 그러니까 종말의 종착지까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등급이다.
그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던 것도.
‘진리의 서고를 통해서지.’
아마 율리우스도 그 진실에는 접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신화 등급, 그리고 그 위의 등급은 진리의 서고에서도 극비에 속하는 지식.
진리의 눈을 얻은 내가 아니라면 접근할 수 없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위대한 보구가 내 손에 쥐어져 있다.
“생긴 건 영 아닌데 말이야.”
위대한 등급이라고 해서 생긴 게 멀쩡한 건 아니었다.
나무다.
마치 가시가 솟은 듯한 모양의 길쭉한 나뭇가지.
내가 직접 합성으로 만든 게 아니라면 신화 등급이라 믿지 못할 뻔했다.
그만큼 허접, 아니 엉성하게 생긴 외형의 그건.
『+0 미스틸테인
분류 : 창
등급 : 신화급 보구
내구도 : 250/250
고유 효과 : 모든 불사 효과를 무시한다
설명 : 신조차 죽일 수 있는 신살의 무기.
단, 내구도가 다하게 된다면 영구히 파괴되어 복구할 수 없다』
‘신살!’
신살의 무기 미스틸테인.
과연 진리의 서고에서 봤던 대로 그 고유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놀랍군.’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새삼 놀랍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신살이라는 행위는 필멸자에게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를 다루거나 특별한 무기를 통해 그들에게 피해를 줄 순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초월의 영역에 이른 그들을 소멸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신살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해당 신에 대한 기원과 역사, 그리고 그 신앙마저 파괴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에 흔적이 남은 신은 언제든 부활할 수 있다.
그러나 미스틸테인이 있다면 그런 모든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미스틸테인은 저주받은 창. 놈들의 진체에 닿는 순간 기원과 근원, 그 모든 신앙을 흡수하여 완전한 소멸에 이르게 한다.’
그건 비단 신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지의 존재 또한 마찬가지.’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은 외부의 존재들.
근원 자체가 외부에 있기에 절대로 죽일 수 없는 그들마저 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게다가.
‘아직 강화 작업도 남았단 말이지.’
신살은 고유 효과에 불과했다.
만약 다른 유일급 보구와 같이 강화 작업을 거친다면?
‘할 수 있다.’
곧 다가올 격전, 검은달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대장, 아니 신인.”
과거 나를 도와주었던 은인인 김대웅.
그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남은 건 인류를 위협하는 신인, 지독하게 위험한 인물뿐이었다.
*
미국 백악관.
그 회의실 중 하나를 차지한 김대웅, 이제 신인이라 불리는 그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윤찬.”
수많은 시간은 이동하며 모든 정을 다 떼어 낸 줄 알았다.
그런데 왜일까.
이번 시간에서의 윤찬을 보면서 묘한 감상에 빠져들었다.
‘심마인가?’
인간의 감정이라 할 수 있는 오욕칠정을 끊었다.
그런데 감상에 젖는다?
일반적인 인간의 범주에 있는 게 아니기에 심마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심마로군.”
이내 확신한다.
그것이 심마라는 것을.
이대로 감정에 휘둘리게 된다면 그는 99번의 시간과 같은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기이하군. 수많은 시간에서 윤찬을 만났지만, 단 한 번도 이러한 일이 없었건만.’
왜 굳이 이 시간대의 윤찬에게선 다른 느낌을 받는 걸까?
그가 회귀한 상태이기에?
아니.
회귀한 윤찬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신인이 떠돈 시간 중에는 회귀한 윤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모든 윤찬을 죽였다.
자신의 뜻에 방해가 되기에.
결국에는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알기에.
‘정녕 네가 그럴 줄 몰랐지.’
사실 지금의 신인이 만들어지게 된 건 윤찬의 몫이 컸다.
여전히 희망을 품고 종말을 막기 위해 윤찬과 긴 여정을 떠났다.
당시 50번의 시간 이동을 경험했던 신인은 아주 막강한 힘과 강력한 동료들을 대동하여 종말의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배신당했지.’
마지막 순간, 윤찬에게 배신을 당하고 말았다.
그 순간부터 대웅의 운명은 신인의 것으로 바뀌었다.
완벽한 단 하나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49번의 시간 이동 동안 힘을 모았고, 마침내 지금에 도달하게 되었다.
수많은 윤찬을 죽였다.
그런데 지금 시간대의 윤찬에게선 색다른 감상을, 결국에는 심마까지 일으키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놈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이번의 기회를 위해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오직 이 순간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놓칠 순 없었다.
‘설령 그것이 모든 인류를 죽이는 일이라 해도.’
그는 선택받은 자.
종말을 막아야만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무슨 일이지?”
분명 방해하지 말라고 경고를 해 두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문들 두드린다?
무언가 큰 변고가 있는 게 아닌 이상은 불가능했다.
끼익-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나타났다.
‘율리우스.’
본래는 진리의 서고를 찾지 못해 평범한 이로 살았어야 할 이.
그러나 신인의 특성 부여를 통해 다시금 현자로 각성한 간부 중 하나였다.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손님이라니.
감히 누가 있어서 검은달의 손님이 될 수 있을까.
“신윤찬. 그가 찾아왔습니다.”
벌떡!
줄곧 평정심을 유지하던 신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내해라.”
노르웨이, 라그나로크 시련 이후 만나지 못했다.
다시 만나게 되는 날은 마지막 결전이라고 생각했건만, 여기서 만나게 된다고?
호랑이 굴로 찾아온 그 이유를 듣기 위해.
스슥.
곧장 순간이동으로 몸을 옮겼다.
백악관 입구.
솨아아아아!
하늘에 구멍이 난 듯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를 맞으며 대지를 딛고 서 있는 이.
“윤찬.”
그는 바로 윤찬이었다.
“여어-.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반갑게 인사하는 그 모양새는 친근한 지인을 대하는 듯했지만, 아니.
속에는 강렬한 적의를 품고 있었다.
‘확실한 마음의 결정을 내렸구나.’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그런데 왜일까.
가슴이 찌르르한 감정.
그것은 조금 전 이야기했던 심마와 연관이 있을 터였다.
“참으로 오만하구나.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홀로….”
“아,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혼자가 아닙니다.”
쏘옥.
윤찬의 옆, 쏘옥 고개를 내미는 이는 박진우였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없는 벌레가 한 마리조차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
거친 신인의 말에 윤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고 있음을.
‘너는 그렇기에 안 된다는 것이다.’
자그마한 정에 이끌려 그를 배신했다.
윤찬은 종말을 막을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왔을 땐 이유가 있을 텐데.”
주변, 동료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마지막 전투를 결심했다면 이렇게 두 사람만 달랑 오진 않았을 터.
무언가 목적이 있을 터였다.
“뭐, 이미 짐작하고 있을 테지만, 마지막 전투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예상한 바였다.
대홍수의 전조가 시작되고 있는 만큼 이제 인류는 종말이라는 거대한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현재 남은 세력은 백의와 검은달.
과거에는 더욱더 많은 세력이 활개를 쳤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사실상 인류의 향방을 결정 지을 두 단체만이 남은 것이다.
당연하게도 서로 걷는 길이 극명하게 다르다.
인류의 향방을,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결정 짓는 일인 만큼 두 세력은 공존할 수 없다.
“마지막 전투를 전하기 위함이라.”
“방식은 간단합니다. 10명. 선수를 선발하여 위너스 방식으로 대결하는 것. 물론 끝까지 남은 쪽이 승리하는, 지극히 간단한 룰입니다.”
윤찬은 인류의 향방을 결정 지을 마지막 대결을 10 : 10의 위너스 방식을 제안했다.
“으하하하하-”
하지만 그 제안에 신인은 웃을 뿐이었다.
“내가 왜 그래야만 하지?”
사실 그건 성립이 안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미 세력으로 압도하는 검은달에서 그러한 편의를 봐줄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압도적 전력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인 것을 왜?
굳이 10명을 선발해 가며 상대가 유리한 쪽에 맞춰 줘야 하는지 이해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설마 겁을….”
“그따위 얕은 도발을 할 생각이라면 입을 다무는 게 좋을 거다. 내가 그 제안을 수락할 만한 대가를 말해 봐라.”
굳이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윤찬의 말을 끊었다.
도발?
그딴 거에 당할 정도로 신인은 나약하지 않다.
모든 행동에는 원인과 근거가 있어야 하는 법.
윤찬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 도발 따위만 믿고 이곳을 찾아오진 않았을 것이다.
“…역시 강단이 있으시군요.”
“칭찬은 내가 하는 입장이었지, 네 녀석의 몫이 아니었을 텐데?”
“…뭐, 간단합니다.”
일부로 말을 끊은 윤찬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만약 대결에서 우리가 패할 경우 군말 없이 검은달에, 그리고 신인에게 복종하도록 하겠습니다.”
“!!”
뜻밖의 말에 신인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솔직히 탐나지 않습니까? 저와 동료들의 전력이? 이들이 있으면 종말을 막아 내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될 겁니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당장 너만 있어도 충분하다.’
윤찬만 데리고 갈 수 있다고 해도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추후에 제거하게 될 테지만.’
누구도 믿지 못하는 신인은 결국에는 윤찬을 비롯한 이곳의 모두를 제거할 생각이었다.
물론 종말의 마지막 순간, 자신이 배신당했던 그 상황이 와야 할 테지만.
그전까지는 계속 살려 두고 종말을 막는 데 유용하게 사용할 생각이었다.
결국, 제거를 한다고 해도 그건 솔깃한 제안일 수밖에 없었다.
윤찬의 말처럼.
‘놈들이 있으면 엄청난 도움이 될 테니까.’
특성 부여를 받지 않은 그들의 전력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글쎄. 그것보다는 네 녀석의 죽음이 더욱더 끌리는데.”
콰아아아아-
신인에게서 뿜어져 나온 살의가 주변의 공간을 잠식했다.
“너만 제거한다면 이번 전쟁은 시시하게 끝이 날 터.”
여기서 윤찬을 제거한다면 이러한 복잡한 과정 없이 그가 인류를 완벽하게 다스릴 수 있게 된다.
굳이 돌아서 갈 필요 없는 길이 있는데 그것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나?
“에이-. 왜 그러실까. 설마 내가 그런 것에 대한 준비도 안 했을라고.”
하지만 윤찬은 내내 여유가 있었다.
“글쎄.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신인의 손이 흐릿하게 변하며.
쉬익!
순식간에 윤찬의 목을 노렸지만.
번쩍!
일순간 번쩍하는 황금빛 기운과 함께.
스르륵!
어느새 그의 육신이 사라졌다.
황금 수퇘지 굴보르스테, 진우가 발현한 그 힘이 순식간에 그들을 도주시킨 것이다.
「끝까지 죽이고 죽일지, 아니면 종말을 막기 위한 조금 귀찮은 길을 감수할 것인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멀리서 아련하게 들리는 음성.
“쯧!”
안타까움에 혀를 차는 신인.
‘별수 없겠군.’
상대의 수작에 놀아나는 기분이지만, 별수 없다.
윤찬을 비롯한 동료들을 들일 수 있다면.
‘조금 귀찮은 길을 선택해야만 하겠지.’
그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