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95
5화.
솨아아아-
폭우가 쏟아진다.
벌써 며칠째 쏟아진 기록적인 비로 인해 대지는 물에 잠기었다.
찰박.
정강이까지 올라온 물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걸음을 옮긴다.
“….”
나를 선두로 그 뒤에는 강회장, 윤서영, 한영웅, 윌리엄, 리우옌, 빙빙, 타오, 왕레이, 전상혁이 뒤를 따랐다.
“….”
나와 마찬가지로 비장한 결의로 가득한 얼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신인, 그리고 검은달과의 마지막 승부 말이다.
‘괜히 감상에 젖는군.’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과거의 편린이 떠올렀다.
내 손을 잡아라.
대홍수로 인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던 날 구해 준 손길.
이곳은 죽음의 순간 대장에게 구함을 받은 장소였다.
“…이곳을 선택했단 말이지?”
갑작스레 들려오는 음성.
쉬익!
마치 바람처럼 그곳에 나타나는 이가 있었다.
‘신인!’
물론 그는 신인이었다.
이제는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기에 후드를 벗어던진, 과거 김대웅의 모습을 한 그가 서 있었다.
“내가 가장 후회하는 일이 뭔지 아나, 윤찬?”
“….”
“그날, 너를 구해 준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실패였다.”
무엇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자신을 속이려 하는군.’
일종의 결의인지도 모르겠다.
남아 있는 정마저 끊어 내기 위한 일종의 정신 세뇌.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장소는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이는구나.”
그리 말하는 신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쉬이익!
조금 전의 그와 마찬가지로 바람과도 같이 등장한 이들을 바라봤다.
‘율리우스, 마리아, 폴리시키스.’
평정심을 이룬 마음에 파문이 인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검은달의 간부, 그들은 회귀 전 나와 끝까지 함께했었던 동료들이었기 때문이다.
현자 율리우스.
적화의 마리아.
거력의 폴리시키스.
율리우스야 녀석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들이.
“윤찬.”
“무척 어리석은 선택을 했구나.”
“이것이 인류를 위한 길이다.”
놈들은 말한다.
내가 잘못되었다고.
신인을 따르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나.
“글쎄?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지. 너희가 유일한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겠지?”
말투를 봐선 예전의 기억을 모두 지니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나를 흔들 수는 없다.
분명 그들은 내게 더할 수 없는 동료이지만.
‘지금의 내겐 이들이 있다.’
강회장을 비롯한 일행.
회귀 전의 인연은 지나간 인연일 뿐.
현재는 이들이 나의 동료들이며 신뢰할 수 있는 이들이다.
다만 걸리는 점이 있다면.
‘종말의 최후까지 생존한 기억과 경험을 지닌 이들이다. 쉽지 않은 승부가 되겠어.’
지금의 동료들을 믿지만, 그만큼 회귀 전의 동료들 또한 잘 파악하고 있다.
그들이 회귀 전의 모든 기억과 능력을 흡수했다면 상당히 까다로운 적이 될 게 분명하다.
“그럼, 마지막 승부를 가려 보죠.”
거창한 개최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이 모두 증인이며, 그 승부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다.
“그 전에 한 가질 짚고 넘어가지.”
하지만 본격적인 승부 전 신인이 물었다.
“여기서 패할 경우 내 밑으로 들어오겠다는 말. 그 말은 반드시 지켜야겠지?”
다시금 확인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놈이 굳이 이 귀찮은 일을 선택한 건 그 목적 하나를 위한 것이었으니까.
“물론입니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대가를….”
“아니. 나는 인간을 믿지 않아.”
신인이 손을 뻗자.
지이잉!
그의 손에 머무른 빛이 하나의 형체를 만들어 냈다.
“…계약서?”
“그래. 계약이다.”
놈이 지닌 특성 중 하나인 계약.
모든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족쇄와 같은 것.
“그곳에 내용을 써 놓았다. 확인하고 사인할 수 있도록.”
“….”
곧장 계약서의 내용을 확인한다.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내용이 없는, 아주 간단한 계약서였다.
『나는 이번 전투에서 패배 시 김대웅의 수하가 될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한 가지가 빠졌군요.”
“무엇이?”
“반대로 당신이 패배할 경우 우리 밑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
그게 궁극적으로 내가 노리는 것이기도 하다.
‘신인과 검은달의 힘은 막강하다. 그들을 내 휘하에 들일 수 있다면 종막을 막는 것, 그게 꿈은 아니다.’
같은 인류다.
종말을 함께 헤쳐 나가야 하는 처지에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싸우기만 했다.
솔직히 말해 그건 미지가 원하는 바.
‘사실 내가 회귀한 것도, 그리고 신인이 시간이동을 한 것도 모두 안배된 것인지도 모르지.’
어쩌면 더욱더 격렬한 충돌을 만들기 위하여 이 같은 일을 벌였는지도 모른다.
마치 아무것도 모른 채 장기 위의 말이 되어 움직이는 것처럼.
그렇기에 이번 전투를 계획했다.
비록 마음속에 칼을 품을지언정.
‘오랜 시간 함께하면 그 뜻이 같아질 것이라 믿는다.’
비록 동상이몽이라고 해도 그들을 교화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내가 대장의 은혜를 입어 바뀐 것처럼 말이다.
“…너희가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냐?”
“쭉 말하지 않았습니까.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안다고.”
“재밌군.”
비릿한 미소를 지은 그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스스스슥.
그와 함께 계약서 위로 검은 글씨가 새겨진다.
『김대웅을 비롯한 검은달이 패배 시 그들의 휘하에 들어갈 것을 맹세한다.』
물론 사인도 되어 있었다.
그것을 본 이후에야.
스슥.
나 역시 사인을 마쳤다.
화아아아!
그와 함께 눈부신 황금빛이 장내를 집어삼켰다.
계약이 성사된 것이다.
이제 이 승부의 결과에 따라 인류가 나아갈 길이, 그들을 이끌 이들이 결정될 것이다.
“서영.”
내가 내민 첫 번째 카드는 윤서영이었다.
“…네.”
소심하게 다가오는 소녀.
외형만 보면 벌레 한 마리도 잡지 못할 것 같지만.
‘내가 가장 믿는 카드.’
그녀를 누구보다 신뢰하기에 첫 번째 카드로 내세웠다.
특히 이번 전투는 10명이 공정하게 승부를 겨루는 게 아니라 위너스 방식이었다.
이긴 사람이 계속 이길 수 있는, 잘하면 1명이 10명을 물리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네가 해 줘야 한다.”
그녀에게 부담을 지웠다.
“최선을 다할게요.”
붉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답한다.
“아니. 최선 정도로는 안 돼. 네게 얼마나 많은 힘이 집중되었는지 알고 있겠지?”
가장 강력한 무기인 묠니르와 레바테인, 그리고 용맹의 갑옷을 주었다.
괜히 그 힘을 집중시킨 게 아니다.
그녀의 능력이 뛰어나기에, 그리고 그 뛰어난 능력을 잘 활용할 수 있기에 3개의 유일급 보구를 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목표는.
“최소한 3명. 어떻게든 3명을 데려갈 수 있도록 노력해 봐.”
10명을 선발하긴 했지만, 우리 중에는 버리는 카드가 좀 있다.
예를 들면 전상혁.
전투적인 능력이 강하지 않은 그가 우려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름 비장의 무기를 쥐여 주긴 했지만, 그게 통할지는 미지수였기에 불안함을 안고 갈 순 없다.
투신, 그리고 무신의 특성을 개화한 윤서영이 최대한 자신의 몫을 다해 주어야 이번 승부를 이길 수 있을 터였다.
“네! 자신 있어요.”
소심하던 소녀가 자신감을 내비친다.
“좋아.”
그 자신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호오?”
윤서영을 본 신인의 눈동자가 번뜩인다.
“무신 특성은 소멸한 게 아니었나?”
단번에 서영의 특성을 알아봤다.
“이거 놀랍군. 수많은 시간을 이동했지만, 만나지 못했던 특성의 당사자를 볼 줄이야.”
이건 예상이긴 하지만, 신인의 시간이동은 어느 정도 제한이 있었던 것 같다.
예상컨대 종말이 일어나기 한참 전으로는 이동할 수 없는 형태.
그렇지 않다면 한참 전으로 이동하여 방해가 될 만한 이들을 다 제거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렇기에 윤서영을 살리지 못했던 것이다.
“하하하하하!”
별안간 웃는다.
그 웃음에는 언뜻 광기마저 느껴졌다.
“이거 대단한 우연이로군. 마침 우리도 죽음에서 부활한 이를 데리고 있었거든.”
죽음에서 부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그의 손짓에 따라.
찰박.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다른 이들과 달리 로브를 뒤집어쓴, 여전히 자신의 정체를 가린 이.
“….”
하지만 수수께끼의 이를 바라보는 윤서영의 표정은 지극히 담담했다.
다만.
파지직!
한 손에는 푸른 스파크가 튀는 묠니르를.
화르륵!
다른 한 손에는 멸화의 불길을 내뿜는 레바테인을.
아아아아-
그리고 전장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용맹의 갑옷을 정돈하며 상대를 노려볼 뿐이었다.
“….”
그것을 본 신인의 눈이 다시금 커진다.
알아본 것이다.
그도 쉽사리 얻을 수 없는 유일급 보구를.
“살아 돌아와서 긴가민가했는데, 결국 얻었군.”
그리고 그 가치를 꿰뚫어 보는 몇 안 되는 이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지윤!”
신인이 이름을 부르는 순간.
펄럭!
마침내 뒤집어쓴 로브를 벗어던진 이.
그리고 드러난 모습은 여인이었다.
30대 중후반?
창백한 피부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녀는 내 기억에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아-”
그녀를 본 서영은 경악하며 신음을 토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어, 엄마?”
엄마?
분명 서영은 정체모를 여인을 엄마라 불렀다.
“알아보는군. 그렇다. 그녀는 너의 어미인 정지영이다.”
놀랍게도 신인이 데려온 이는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알려진 서영의 부모인 정지영이었다.
하지만.
“….”
그녀의 눈은 딸을 향한 반가운 감정 같은 게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다만.
화르륵!
엄청난 불길을 내뿜을 뿐이었다.
적을 상대하기 위한 자신의 특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
“미친!”
그 순간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정지영, 서영의 어미인 그녀가 지닌 특성을 말이다.
『화신』
놀랍게도 그녀는 유일의 특성이 화신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불꽃을 마음대로 다루는, 그야말로 불의 신과 같은 힘.
‘죽음의 인도자부터 시작해 화신, 그리고 무신까지. 그녀의 집안에 특별한 피가 흐르는 건가?’
단지 운이 좋아서?
아니.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다.
신의 일족과 같은 어떤 특별한 혈통이 흐르는 게 틀림없었다.
‘아니지!’
지금 그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엄마….”
그리움에 몸을 부르르 떠는 서영.
“….”
하지만 정지영은 그런 서영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완전한 부활이 아니다.’
서영과 같이 희생을 통한 완전한 부활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 정지영은 과거 서영과 같은 껍데기에 약간의 혼이 부여된 상태에 불과했다.
그 모든 상태가 말한다.
서영의 승리라고.
‘일 났군.’
하지만 지금 그 전력의 차이는 큰 영향을 줄 수 없다.
서영은 정지영을 자신의 엄마라 인식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그 감정으로 인해 제대로 공격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럼 승부를 시작하지!”
당황하고 있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승부는 시작되었다.
“엄마!”
소리치는 서영.
화르륵!
그러나 그것에 개의치 않고 불길을 일으키는 정지영.
누가 봐도 그 승부의 향방은 뻔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