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저벅.
움직인다.
머리가 떨어진 놈의 육체가.
그건 기괴한 광경일 수밖에 없었다.
설령 불사의 힘을 지니고 있어도 머리가 잘리는 치명상을 입으면 죽기 마련인데.
하지만 신인은 죽지 않았다.
터벅터벅 걸어가던 육신이 바닥을 구르고 있던 머리를 집는다.
「설마 내 육체에 손상을 입히는 존재가 있을 줄이야.」
조금 전과 같이 지면을 구르던 머리가 말을, 정확히는 의지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의지라는 건 육성과는 달리 전달하는 이의 심상이 담기는 것.
그 의지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기억의 편린을 통해 한 가지를 유추할 수 있었다.
“…신인?”
의지를 전달하는 게 신인이라는 것을.
정확히 말하면 신인이 아니라 과거 나와 함께했던 김대웅이란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
내 중얼거림을 들은 신인의 머리가 돌아간다.
잘린 머리가 스스로 돌아가는 건 숱한 것을 경험한 내가 보기에도 기괴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윤찬.」
두 번 들으니 더욱더 확실해진다.
신일을 보며 느꼈던 이질감의 정체가.
“육신과 영혼을 분리해 놓았던 건가?”
육신과 영혼의 분리.
그로 인해 신인은 완벽한 신인이 아니었다.
불완전한 상태였기에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눈치가 빠르군.」
숨길 것 없다는 듯이 답을 해 준다.
「귀찮은 세계의 법칙을 피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육체와 영혼의 분리.
그건 자신의 힘을 제한하는 일이기도 하다.
굳이 번잡하고, 귀찮은, 그리고 힘을 약화하는 일을 벌인 건 세계의 법칙 때문이었다.
미지가 만든 세계에 존재하는 법칙 중 하나.
그건 초월의 영역에 이른 존재가 필멸자의 세계에 과도한 간섭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99번의 시간 이동을 통해 신인이 어마어마한 힘을 얻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능히 초월의 영역에 이를 수 있는 것임을 말이다.
당연히 그는 초월자가 되어 현세와는 다른, 단절된 공간에 분리되었어야만 했다.
잊힌 역사에 등장했던 아스가르드나 올림포스의 신처럼 말이다.
하지만 신인이 원하는 건 단절된, 초월자의 고유 영역이 아니었다.
그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종말로부터의 해방.
그것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인류에 영향을 미쳐야만 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분리했다.
미지가 정한 세계의 법칙에서 예외가 되기 위해.
물론 그로 인해 본신 능력이 한참 떨어지게 되었지만,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가 지닌 육체의 힘, 그리고 지금까지 얻은 보구의 도움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헤라클래스의 수업을 통해 성장한 서영은 그것을 넘어섰다.
육체는 죽음에 이르렀고, 마침내 육체와 영혼이 만나는 순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스윽.
잘린 머리를 다시금 목 언저리에 얹는다.
그 순간.
꾸욱.
접착체를 발라 놓은 것처럼 머리가 붙었다.
“이제야 됐군.”
육체와 영혼의 완전한 결합.
뭔가 대단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전혀.
“그럼 승부를 이어 가야겠지?”
목이 잘렸지만, 아직 승부는 나지 않았다.
약속했던 승부, 서영과의 결전이 남아 있는 상황.
오히려 진정한 승부가 지금부터 시작될 참이었다.
“….”
서영을 바라보자 확인할 수 있는 건.
덜덜덜.
떨고 있는 가엾은 소녀였다.
그건 의외일 수밖에 없다.
솔직히 조금 전과 비교하면 신인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왜 서영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신인에게 두려움을 느끼며 몸을 떨고 있는 것일까.
‘서영만을 향한 살의. 그 기세가 의지를 꺾고 있다.’
뒤늦게야 깨달을 수 있었다.
신인의 기세는 잠잠한 게 아니다.
놀라울 정도로 정제된 그의 적의와 의지는 서영만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건 돋보기로 열을 가할 수 있는 것과 같은 현상.
태양 빛을 한 점에 모으면 그 열로 사물을 태울 수 있듯 신인의 기세가 한 점에 모여 서영을 위협하고 있었다.
초월의 영역마저 넘어선 신인의 기세가 한 점에 모이게 된다면.
‘상상할 수 없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테지.’
아무리 탈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신인의 그 기세를 받아 내는 건 서영에게 매우 힘든 일일 수밖에 없었다.
“호오?”
그리고 신인은 그러한 서영의 상태를 보고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내가 두렵느냐?”
“….”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내 기세의 실체를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인간이라니. 예상했던 대로 너는 구세주, 종말을 끝낼 존재로구나.”
서영의 정체를 짐작한 신인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안타깝구나.”
구세주라는 것을 알아챘음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옅은 동정심을 보인다.
“내가 구상한 세계에 구세주는 필요 없으니.”
동정이라는 감정이 순식간에 변화했다.
찌릿!
그건 내게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살의.
“아아-”
살의에 노출되는 것으로 서영은 탄식을 쏟아 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간 쌓은 업에서 너무도 많은 차이가 있다.’
99번의 시간 이동을 통해 쌓은 업, 그건 한낱 소녀에 불과한 서영이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좀 더 다양한 경험과 업을 쌓았다면 모를까, 이제 막 부활한 그녀는 경험이 일천했다.
헤라클래스가 조금 매만진 정도로 그 차이를 메꿀 순 없었다.
“승부를 끝장….”
“포기!”
막 움직이려던 신인을 제지하며 하얀 손수건을 던졌다.
백기가 없기에 준비한 나름의 퍼포먼스다.
“…뭐?”
날아오는 손수건을 본 신인이 의문을 토한다.
“포기라고.”
“….”
생각지 못했던 상황에 조금은 당황한 눈치다.
초월의 영역에 이른 이를 당황시킨 것만으로도 쾌감이 벅차오르는 게, 아마도 나는 변태일지도?
“…이 승부를 포기하겠다는 말이냐?”
“보는 바대로. 빤히 보이는데 굳이 그걸 되묻는 이유는 뭘까?”
“그럴 수밖에 없지.”
신인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이 승부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으니.”
“….”
그 말이 어느 정도는 맞다.
서영은 우리가 낼 수 있는 필승의 카드다.
그런 카드를 포기하게 된다면 사실상 이번 승부, 백의와 검은달과의 승부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럼, 내 휘하로….”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이미 승리한 듯한 신인의 말을 막았다.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고.”
“아직, 아직 할 수 있어요.”
단언하는 내 말에 끼어드는 이.
그건 확고한 결의로 가득 찬 서영이었다.
“제가 해 볼게요. 아니, 해내겠어요.”
“아니. 넌 안 돼.”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이미 심령을 제압당했어. 이 승부는 이미 기울어진 상태야.”
조금 전, 그 일련의 기세 싸움으로 승부는 기울었다.
심령이 제압당한 서영은 아무리 발악해도 신인을 감당할 수 없다.
그건 이곳에 있는 모든 동료가 마찬가지.
무거운 업을 쌓은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이는.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지.”
99번의 시간 이동을 통해 쌓은 업에 대항할 수 있는 건 그나마 1번의 회귀를 경험한 나다.
“하지만….”
서영이 우려는 나타낸다.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나는 일개 강화사에 불과하니까.
무신과 화신, 게다가 유일급 보구의 힘까지 얻은 서영이 해내지 못한 일을 감히 나 따위가?
“무엇을 걱정하는 지 안다. 하지만 걱정 마라. 내게도 비장의 카드가 있으니까.”
“….”
우려를 표하는 서영을 뒤로했다.
물론 걱정하는 건 녀석만이 아니었다.
“할 수 있겠어?”
“아무리 너라도 이건….”
우려를 표하며 다가오는 동료들.
신인의 진정한 힘을 깨닫지는 못했지만, 이번 승부가 얼마나 어려운지 대강은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믿네.”
한 사람을 제외하면 말이다.
“….”
팔짱을 낀 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강회장이었다.
“윤찬 군이라면 뭐라도 해낼 테지.”
오직 그만이 나를 향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었다.
“….”
“….”
허공에서 시선이 얽힌다.
“뒤를 부탁합니다.”
그를 스쳐 지나가며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물론 그에 대한 답을 듣지는 못했다.
저벅.
앞으로 나아간다.
고오오오오!
조금 전 서영이 느꼈을 미지의 공포를 뿜어 대는 신인을 향해.
‘…확실히 장난이 아니네.’
한 점으로 쏘아 보내는 그 기세라는 건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저벅.
힘겹게라도 한 걸음을 떼었다.
회귀 전, 그리고 이번 생에 쌓았던 업은 그 기세에 쉽사리 무너질 정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콰아아아아!
그 기세가 한 단계 더 올라갔다.
더욱더 살벌해진 기세는 내 걸음을 묶었다.
회귀를 경험한 내 업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초월의 영역.
‘왜 서영이 몸을 떨었는지 알겠네.’
그제야 서영이 두려움을 느끼며 몸을 떨었던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신인이 내뿜는 기세라는 건 단순한 기세의 영역이 아니었다.
심살(心殺).
의지만으로 적을 죽일 수 있는, 그야말로 초월의 영역에 이른 권능이었다.
만약 무리하게 저 살의를 뚫고 걸어가고자 한다면 그 충격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고 말 것이다.
지금 신인은 말하고 있다.
자격도 되지 않는 네 녀석이 뭘 할 수 있느냐고.
이곳까지 당도하지 않는다면 승부를 펼칠 필요도 없다고 말이다.
‘그럼 가야지.’
그와 싸우기 위해서는 이 시련을 극복해야 한다.
스윽.
그렇기에 가방을 열어 물품을 꺼냈다.
그건 히드라의 부식 독에 의해 망가진 묠니르였다.
오른손에는 대장장이 망치를, 그리고 왼손에는 묠니르를 든 채로.
까앙!
그것을 깨부술 듯 힘차게 망치질을 했다.
아무리 부식 독에 당했어도 묠니르는 절대 깨지지 않는 강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화아악!
망치질에 의해 묠니르가 빛에 휩싸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망치질.
까앙!
그와 함께 빛의 구체로 변한 그것이 내 몸에 흡수되었다.
『아이템 흡수』
그것은 무한의 강화사인 나만이 펼칠 수 있는 고유의 능력.
보구의 힘을 흡수하여 일시적으로 능력을 상승시키는 일종의 버프였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혹하다.
한번 아이템을 흡수하게 되면 해당 보구는 소멸한다.
유일급 보구에 이르는 묠니르가 아이템 흡수로 인해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쑤우욱!
그로 인해 내 능력은 비정상적으로 상승했으니까.
‘아이템을 흡수하여 나의 능력을 무한히 성장시킨다.’
그것이 신인을 상대하기 위한 나의 목표였다.
물론.
찌리릿!
묠니르 정도 되는 아이템을 흡수한 부작용이 뒤따랐다.
엄청난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는 묠니르였기에 육체가 과부하에 걸린 것.
물론 그로 인해.
저벅.
신인이 내뿜는 엄청난 살의를 뚫고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신인은 그리 간단히 보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콰아아아!
더욱더 강력해진 기세.
까앙!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궁니르를 흡수하였다.
그 행위가 여러 번 반복되었다.
묠니르, 궁니르, 티르의 갑옷, 부르트 강 등 동료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모든 보구를 흡수하였다.
그렇게 수십 개에 달하는 보구를 흡수했을 무렵.
척.
당도할 수 있었다.
신인의 바로 앞, 자격의 증명이 되는 장소에.
“이제 이 질긴 악연을 끝내 봅시다.”
신인.
과거의 대장인 김대웅.
그가 내뿜는 기세를 이겨낸 지금 나는 증명하였다.
놈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