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크오오오오!」
상처 입은 괴수와 같은 비명이 터져 나온다.
고통.
그것은 아자토스에겐 생소한 경험일 것이다.
크툴루와 대적했을 때도 그건 순수한 힘을 겨루었던 것.
진체에 상흔이 새겨지는 일은 없었을 테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탐식이 아닌 소멸을 목적으로 하는 내 공격으로 진체에 상흔이 생겼고,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그 생소한 경험을 하고 있을 때가 기회다.
비록 상처를 주었다곤 하나 그것이 승기가 될 순 없다.
찰나의 틈.
그것을 노려 결정적인 한 방을 먹여야만 한다.
“하아압!”
나만이 아니다.
웅웅!
각자 의지를 벼린 무기가, 생명의 근원을 베어버릴 수 있는 날카로운 힘이 아자토스에게 쇄도한다.
「이, 이익!」
근원을 소멸시키기 위한 살의.
실제로 그것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놀란 아자토스가 반응을 보이며.
스르르르르-
그 존재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었다.
스윽!
그렇기에 나와 일행의 공격은 애꿎은 허공을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그건 생각지도 못했던 일.
아자토스, 놈은 도주를 선택한 것이다.
「너희를…증오한다.」
존재가 사라지는 와중 그 일부가 남아 의지를 전한다.
「창조주인 내게 대항하는 피조물 따위는 필요 없으니.」
그 의지에 깃들어 있는 건 증오와 원한.
아자토스는 탄생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에 대한 강렬한 증오를 품었다.
「곧 너희는 심판을 받게 되리라.」
마지막 원념의 의지를 남긴 아자토스의 존재가.
스륵.
완전히 사라졌다.
“제길!”
그것을 빤히 알면서도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아자토스, 놈은 어디에서나 존재하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도주하고자 마음먹는다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놈이 방심하고 있을 때가 유일한 기회였는데.’
안타깝게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 놈을 없앨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잖아. 다음에도 마찬가지 아닐까?”
영웅이 희망에 찬 소리를 말했지만.
“그게 간단하지 않아.”
“어째서?”
“놈은 진화할 테니까.”
“…진화?”
“조금 전에야 힘만 믿는 머저리였지, 이제 분노와 증오를 깨달았으니 다음을 위한 진화가 일어날 테지.”
아자토스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힘을 뿌리는, 그야말로 생명의 근원이자 위대한 존재였다.
지금까지는 놈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파괴하거나 창조할 수 있었기에 어떠한 감정을 느낄 새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진체에 손상을 입었고, 고통을 받았다.
고통이란 건 향상심을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정진해야 하니까.
아자토스라는 위대한 존재가, 생명의 근원이 향상심을 가지게 된다?
‘그건 예삿일이 아니지.’
태초부터 존재해 왔던 녀석이 향상심을 가지고 수련하는 순간 그건 엄청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빠르게 성장할 테고, 그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것이다.’
얼마나 성장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를 살렸어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보다 빨리 여길 벗어나야 할 것 같은데.”
강회장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쩌적!
차원이 붕괴하고 있다.
이대로 이 공간에 머물게 된다면 완전히 붕괴한 차원의 틈새 안에서 미아가 되고 말 것이다.
“가자.”
내 말에.
“하압!”
힘찬 기합성과 함께 허공을 베어버리는 윌리엄.
그리고 다음 순간.
지이잉!
차원의 틈이 열렸고, 우리는 그곳으로 이동했다.
그와 함께.
콰콰콰콰쾅!
창조주를 잃은 최후의 혼돈, 그곳은 완전히 무너지며 소멸하게 되었다.
*
투툭, 투투툭!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지면에 떨어지며 작은 소음을 낸다.
비.
그것은 생명의 축복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내리는 비는 축복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꿈틀.
지면에 박힌 검은 비는 생명을 창조했다.
「키에에에엑!」
인간의 외형, 하지만 손과 발이 끔찍할 정도로 긴 괴물을.
수십 개의 눈이 달린 또 다른 괴물을 말이다.
그 비는 생명을 잉태하는 비였다.
다만 끔찍한 괴생물체를 창조하는 공포의 비이기도 했다.
“…엄마.”
그리고 저주받은 생명체가 탄생하는 그곳 근처에 공포에 떠는 이들이 있었다.
바들바들.
태양이 사라진, 어둠만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추위에 떨던 7살 소녀는 자신을 부둥켜안은 엄마를 불렀다.
뭔가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다.
근처에 생성된 괴물로 인한 공포, 그것이 부모를 찾게 된 원인이었다.
“쉿!”
마찬가지로 몸을 떨고 있던 30대 여성.
그녀는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가며 아이를 조용히 시키려 했지만 늦었다.
「키익?」
눈이 아닌 수백 개의 귀가 육체에 붙어 있는 괴물.
그 괴물은 검은 비, 저주의 씨앗이 지면에 박혀 생겨난 게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인간이었던 존재.
아니, 정확히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소녀와 여인의 남편이었던 자였다.
집을 향해 다가오는 괴물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비에 노출되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형된 것.
저 위에서 이 모든 걸 주관하는 이에게는 이것이 진화의 축복이 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인류에게는 아니었다.
괴물로 변화하는 지금과 같은 모습은 그들에게 저주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저주는 한때 가장 사랑했던 존재를 죽이기 위한 살인자를 만들었다.
저벅.
엄청나게 불어난 귀의 숫자만큼 뛰어난 청각을 보유하게 된 괴물이 서서히 소리의 근원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집 안에 숨은 모녀의 떨림은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키이익!」
그리고 이 수많은 귀를 단 과거의 아버지는 자신의 가족을 해하기 위해 집의 문짝을 걷어차며 그곳으로 접근했다.
물론 그 목적을 이루진 못했다.
서걱!
살과 뼈가 갈라지는 끔찍한 소음과 함께.
쿵!
세로로 갈라진 그 육신이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그만이 아니다.
서걱, 서걱!
무언가가 번쩍인다고 느낀 순간 주변에 있던 괴물이 모두 양단되며 죽음을 맞이했다.
“괜찮으십니까?”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눈을 감고 있던 모녀는 낯선 음성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괴물이 아닌 인간을.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청년을 말이다.
“괘, 괜찮아요.”
괜찮다고 말을 전하며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건 깨끗하게 세로로 갈라진 과거의 남편이었다.
“흑!”
혼자 있었다면 오열하며 무너졌을 것이다.
“엄마…울지마.”
하지만 딸이 있기에 어머니는 그 슬픔을 참아야만 했다.
“괜찮아. 엄마 안 울어.”
속내를 감추며 아이의 손을 꼭 잡는다.
“….”
나는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절망의 시기로군.’
이건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욱더 끔찍한 상황이었다.
물론 기존의 종말이 시작되었어도 똑같은 죽음과 공포가 세상을 지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지금처럼 끔찍한 형태는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남편이었던, 가족이었던 이가 괴물로 변하여 사랑하는 이를 죽이려고 한다.
차라리 같이 죽었다면 모를까, 그 일련의 과정은 끔찍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
‘놈이 노리는 건 아자토스인가.’
위, 창공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녹색 궁전을 바라보았다.
웅웅웅!
엄청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 기운이 무엇은 원하는지는 빤했다.
‘아자토스. 놈의 존재를 지상으로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
아자토스가 무서운 이유는 놈이 어디든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인즉, 자신이 원할 때면 언제든 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 녹색 궁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식은 그러한 능력을 봉인하려는 것이었다.
‘크툴루. 놈은 아자토스를 얕보고 있다.’
아자토스는 과거 놈이 알던 그 힘만 믿는 바보가 아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거대한 괴물은 진화를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크툴루가 놈을 지상으로 떨어뜨리는 의식을 완성한다면 어떤 식으로든지 끔찍한 결과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크툴루가 아자토스를 삼키든, 아니면 아자토스가 크툴루를 삼키든 재앙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
지금은 분리되었으나 두 괴물은 본래 하나였던 존재.
탐식을 통해 다른 하나를 흡수하게 된다면.
‘진정한 재앙이 탄생하게 되는 거지.’
어느 정도 대척점에 선 존재들이지만, 놈들이 더 강해지는 건 내게 있어서, 그리고 인류에게 있어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가 되는 것을 막아야만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크툴루의 저 의식을 방해하는 것.’
존재를 감춘,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아자토스를 제재할 방법이 없으니 남은 건 크툴루였다.
창공을 장식하고 있는 거대한 궁전 르뤼에가 빤히 보이니만큼 놈을 처리하는 것이 합당할 수밖에 없다.
다만.
‘궁전을 보호하고 있는 결계. 그건 지금의 우리도 깨는 게 불가능한 영역.’
의식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없애기 위해 놈은 강력한 결계를 펼쳤다.
그건 매우 강력한 것으로 나와 일행이 힘을 합친다고 해도 깰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결계라는 건 그것의 코어를 찾아 부수면 해결되는 일.’
절대적인 위력을 내기 위해선 그만큼의 강력한 코어가 준비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코어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던 미지, 외부의 존재와 고대의 존재.’
아니, 이제는 외부의 신, 고대의 신이라 불러야겠지.
놈들은 크툴루의 은총을 받아 더욱더 강력한 존재가 되었다.
더불어 창공을 장식한 궁전의 결계, 그것의 코어기도 하고.
저 결계를 깨는 방법은 간단했다.
결계의 코어가 되는 놈들을 처리하는 것.
물론 그건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요그 소토스, 슈브 니구라스, 노덴스까지.’
크툴루의 은총을 받아 진화한 놈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최종 흑막이라 생각했던 요그 소토스를 시작으로 슈브 니구라스, 심지어 아자토스의 가장 큰 일부를 통해 태어난 노덴스까지.
얼마 전까지도 상대하기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강력한 존재.
심지어 놈들은 더욱더 진화한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코어를 지키기 위해 각자의 영역을 만들어 그곳을 지배하고 있다.’
놈들은 고유의 결계를 펼쳐 그곳에 숨어 있다.
단순히 숨기 위한 게 아니다.
자신만의 영역을 펼쳐 그곳에 접근하는 먹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딜 봐도 뻔히 보이는 함정.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우리는 함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곳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
하지만 해야만 한다.
“흑, 흐윽.”
서러움을 참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는 여인.
“엄마, 으아앙!”
그리고 그 감정에 동화되어 같이 울음을 터뜨리는 소녀.
‘어떻게든 놈들을 저지해야 한다.’
이들이 더는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더 큰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도록 지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슬퍼하지 마십시오.”
슬픔에 빠진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제 곧, 모든 게 정상화될 겁니다.”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반드시.’
그 일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