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2
022화.
포르말린 냄새가 진하게 풍겨 오는 작업실.
스윽, 슥-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에 작은 소음이 들린다.
희미한 촛불을 의지하여 열심히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이.
촛불에 비친 그 손에는 주름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 나약한 손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푹!
손에 쥔 바늘이 살점을 꿰뚫고.
스윽.
바늘에 달린 실이 피부 사이를 오간다.
주름진 손이 하는 건 봉합이었다.
팔과 다리, 각 부위를 연결하여 하나의 완전한 신체를 만든다.
그것이 무엇인지 짙게 깔린 어둠으로 인해, 미약한 촛불 빛으로 인해 확신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만.
“으어….”
그의 주변, 마치 호위하듯 서 있는 무언가 언뜻 보인다.
일렁이는 촛불이 그들을 비추었고.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으으….”
괴성을 내는 건 피부가 파랗게 변한 시체였다.
어떠한 생명도, 에너지도 발산하지 못할 시체 여러 구가 일어나 장의사의 작업을 보호하듯 호위하고 있었다.
*
산.
그것도 꽤 험준한 산이다.
마치 어렸을 적 부모님 손을 잡고 올라가던 산소와 같은 느낌이랄까?
벌써 2시간째.
얼마 전의 나였다면 이미 지쳐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후우-”
하지만 지금은 그저 차오른 숨을 가볍게 내뱉는 것으로 신체에 활력을 돌릴 수 있었다.
육체의 한계를 끌어내는, 근육을 단시간에 찢었다 회복했다 하여 최대한의 근육을 키우는 영웅이 녀석의 단련은 확실히 효과가 좋았다.
게임, 애니에만 빠져 살던 이 육신을 쓸 만한 수준으로 바꿔 주었으니까.
‘이 방법이 아니었다면 단시간에 육신을 단련시킬 수 없었겠지.’
물론 강화라는 특별한 힘이 없었다면 애초에 시도해 볼 수조차 없는 방법이었지만.
“그나저나….”
온통 나무에 둘러싸인 주변을 훑었다.
강회장을 통해 그의 위치를 전해 들었다.
사진과 지형까지 다 머릿속에 각인시켰지만, 주변 산세가 워낙 험해 그 장소를 찾는 게 그렇게 쉽지 않다.
그렇게 계속 산을 돌고 있을 때였다.
지잉-
마치 현기증과 같은 이질감이 찾아왔다.
익숙하지만 지금은 조금 낯선 그 현상은 종말 때 자주 느꼈던 것이다.
“….”
즉시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다시금 주변을 훑었다.
빽빽할 정도로 나무가 심어진, 그저 평범한 지형일 뿐이다.
지이익-
정면에 보이는 거목에 뾰족한 바위로 표식을 남겼다.
그리고 다시금 주변을 탐사하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허!”
나도 모르게 헛바람을 내뱉고 말았다.
눈앞에 있는 건 조금 전 표식을 새겨 놓은 거목.
엑스 자로 깊게 파 놓은 그건 분명 내가 표시해 놓은 것이다.
익숙한 이 현상이 나타내는 건 오직 하나.
“결계?”
결계다.
무언가를 숨기거나 보호하기 위해 주변에 환상, 혼란 등의 정신계 공격을 펼쳐 놓은 것.
“어째서?!”
회귀한 이후 처음으로 당황을 느꼈다.
결계는 특성을 각성한 이후, 그러니까 종말이 나오고 나서야 발휘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런데 지금, 그것도 하필 내가 가려고 하는 곳에 결계가 펼쳐져 있다?
‘설마?’
나와 같은 회귀자가 또 존재하는 건가?
문득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회귀의 돌은 최후의 생존자들 모두가 뭉쳐서 겨우 얻어 낼 수 있었던 보물이다.
그런데 우리를 제외한 다른 누군가 그것을 얻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다른 건 몰라도 회귀의 돌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갔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아니면 각성의 의식이 시작되었다?’
종말 반년 전, 특성을 개화한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신의 축복, 누군가는 악마의 저주라고 말했으나 어쨌든 분명한 건 그로 인한 대혼란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모두 일시에 각성했다면 나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부 선택받은 이들이 있는 것처럼 먼저 각성한 이들이 나타났고, 심지어 그 특성의 능력이나 효과도 각양각색이었다.
자신이 선택받았다고 생각한 이들은 선행을 베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 힘을 남을 짓밟는 데 사용했다.
이건 내 예상이긴 하지만, 종말을 기획한 누군가는 그러한 혼란을 노린 것일지 모른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상념을 털어 냈다.
무엇이 어찌 됐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이 결계, 예상치 못한 현상의 주체를 알아내는 것이다 물론 결계를 깨뜨리는 일은 무척 쉽다.
‘종류는 주변 공간을 어그러뜨리는 것.’
결계의 가장 흔한 유형이다.
그렇다는 건 결계를 펼친 이의 특성이나 힘이 아직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아마도 정도환.’
그의 주거지 근처에서 결계가 발현되었다면 그것을 예상할 수밖에.
그게 조금 큰 문제긴 하다.
다른 어떤 세력의 도움 없이 홀로 십존이라는 강자의 반열에 오른 이.
만약 그가 정말로 일찍 각성한 게 사실이라면 최대한 빠르게 일을 진행해야 한다.
‘초급 결계라. 깨는 건 간단하지.’
초급 결계를 발동시키기 위해선 그 힘을 발산할 만한 중심, 그러니까 핵을 없애야 한다.
분명 근처에 그 힘을 발현할 만한 상징을 설치해 놓았을 터.
“이거로군.”
상징은 금방 발견되었다.
인위적으로 쌓은 돌탑.
어딜 봐도 수상쩍기 그지없는 그것을 발로 차 무너뜨렸다.
투툭.
아무렇게나 지면을 구르는 돌무더기와 함께.
지이이잉-
느낄 수 있었다.
주변에 펼쳐져 있던 결계가 사라졌다는 것을 말이다.
정면을 바라본다.
나무만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던 그곳에 난 오솔길이 보인다.
“….”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쯤 갔을까.
현재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허름하기 그지없는 초가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강회장이 보여 준 사진과 똑같다.
결계로 숨기고 있던 것, 그건 바로 정도환의 집이었다.
숨을 죽인 채 집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비록 초급 결계이긴 하지만, 그가 언제 각성했는지 알 수 없다.
아무리 회귀를 한 나라고 해도 홀로 십존의 반열에 이른 그를 상대함에 있어선 긴장될 수밖에.
천천히 집을 향해 다가가고 있을 때.
“…꽤 매력적인 제안….”
“…큰 힘이 되어 줄….”
안쪽, 대화 소리가 들린다.
선객?
혹시 모를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곳에 멈춰 서서 대화 내용에 귀를 기울일 때였다.
“…쥐새끼!”
별안간 들려오는 음성과 함께.
콰앙!
벽을 뚫고 나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미 동작을 예측한 뒤.
뒤로 몸을 빼며 거릴 벌렸다.
“….”
정면을 응시했다.
찢어진 눈과 날렵한 몸, 마치 동네 마실 나온 것처럼 편한 검은색 트레이닝복 세트를 입은 사내가 보인다.
“호오. 그걸 피해?”
그렇지 않아도 뜬지 안 뜬지 모를 듯한 실눈이 더욱더 가늘게 변한다.
“너도 선지자냐?”
선지자?
이건 또 뭔 개소리지.
“…엉? 영 모르는 눈친데?”
말을 하는 도중.
스팟!
신형이 사라진다.
아마 내가 평범한, 회귀자가 아니었다면 당황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윽!
녀석이 사라짐과 동시에 재빨리 오른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퍽!
그곳을 향해 내리꽂히는 발차기.
손목에 느껴지는 저릿한 감각에 다시금 뒤로 물러나 거릴 벌렸다.
“맞네. 선지자!”
확신한 눈빛이 날카롭게 변한다.
“이상하다. 분명 그분은 이곳에 선지자는 하나라고 했는데….”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기는 놈.
상대인 나를 앞에 두고서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각성자다.’
그것도 정도환이 아니다.
아무리 종말에 기현상이 벌어진다고 해도 20대 사내를 60대의 노인으로 바꾸진 못하니까.
‘분명 이건….’
곧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특성 중 하나.
『신속』
사기급이라 칭해지는 100개 특성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나름 쓰임새가 많은 특성 중 하나다.
능력이라는 건 간단하다.
인간이 낼 수 없는 한계 이상의 속도를 부여하여 움직인다.
이 속도라는 게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다.
도주, 공격, 방어 등 정말 여러 방면에 활용 가능하기에 효율적인 면으로 보면 정말 괜찮은 특성.
그리고 눈앞의 실눈이 그것을 펼치고 있었다.
‘각성의 의식이 시작됐다!’
이젠 확신할 수 있다.
종말 반년 전에 시작됐어야 할 각성의 의식이 무려 5개월 일찍 시작되었음을 말이다.
“…선지자?”
낯선 음성과 함께 구멍이 뚫린 집을 나서는 이들이 있었다.
하나가 아닌 둘.
30대 중반, 회색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이와.
‘정도환!’
아직도 잊히지 않는 얼굴.
온통 하얗게 새어 버린 머리칼과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이 괴팍해 보이는 인상을 자아내는 이.
그는 가까운 미래 십존 중 하나인 사존이 될 운명을 타고난 정도환이었다.
“어르신. 아는 자입니까?”
정장 차림의 중년인이 정도환에게 묻는다.
하지만 고개를 젓는다.
나는 알지만, 그가 날 알아볼 턱이 없지.
“너흰, 누구지?”
그래서 물었다.
아무리 봐도 수상쩍기 그지없는 녀석들의 정체가 궁금했기 때문에.
“뭐? 우리?”
실눈, 그리고 중년인.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힌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선지자.”
“선지자?”
“그렇다. 선지자.”
“목적은?”
“취조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말해 주지 못할 이윤 없지. 우리, 선지자의 목적은 앞으로 다가올 대변혁, 종말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
종말이라.
설마 그 단어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그것도 내가 아닌 타인의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네.
“믿기지 않겠지. 하지만 사실이다. 지금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는 큰 변화, 종말을 겪게 될 거다. 그것은 현재의 인류가 견뎌 낼 수 있는 게 아닌 시련.”
보인다.
중년인의 눈동자에 깃든 자부심이.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선지자. 우리는 선택받은 존재. 그렇기에 종말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인 거다.”
“…기회라고?”
상당히 거슬리는 말이다.
“인류를 이끌, 이 나약한 놈들을 지배할 기회!”
이야, 이건 좀 충격인데.
벌써 각성의 의식을 거친, 특성을 개화한 이들인 서로 뭉치려 한다고?
지난 생에 이런 일은 없었다.
‘묘해. 뭔가 바뀌고 있어.’
그 주체가 무엇인지는 빤하다.
나.
회귀로 인해 되돌린 삶으로 인한 나비 효과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과거 내가 겪었던 것과 같은 미래가 펼쳐지지 않을 것 같은 확신이 든다.
그 증거가 눈앞에 있다.
자신을 선지자라 부르며 특성을 개화한 이들을 모으려는 수상쩍은 두 놈.
장담하는데 녀석들은 특정 세력을 형성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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