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파괴의 길?”
재차 물었다.
“그렇다. 파괴의 길. 이 썩어 빠진 세상의 완전한 파괴, 아니 그걸 파괴라는 행위로 단정 지을 수 없을 테지. 정화. 그래, 아자토스와 크툴루가 만든 이 세상을 정화하는 것이다!”
오랜 무의식 생활을 끝낸 김댕웅.
비록 무의식 속에 있었지만,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을 알고 있었다.
왜 안 그럴까.
각기 다른 인격이라 해도 그 주체적인 인격이 되는 순간 다른 인격이 벌였던 모든 일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확고한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완전한 파괴.
그것은 그냥 파괴의 행위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파괴 후의 재창조.
그가 말하는 파괴란 창조를 위한 밑거름이었다.
“내게 방법이 있다.”
그리고 놈은 그것을 실천할 계획까지 세운 듯했다.
“크툴루가 우리에게 넘긴 코어. 그것은 단순히 결계를 유지하는 매개체가 아니다.”
그리 말한 김대웅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웅웅웅!
그것은 찬란한 오색 빛에 휩싸인 빛의 구체였다.
“…코어?”
그것의 정체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르뤼에의 궁전 주변에 펼쳐진 결계.
아무도 뚫을 수 없는 그 막강한 결계를 유지하는 코어 중 하나였다.
“그래. 윤찬, 너라면 눈치챘을 테지. 이 코어 안에 깃든 어마어마한 힘을.”
“….”
진즉 눈치챘다.
코어 안에 깃들어 있는 엄청난 힘을 말이다.
그건 코어라기보다는 순수한 힘의 결정체.
“놈이 우리에게 맡긴 코어를 하나의 존재가 흡수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당장 눈앞에 있는 코어가 지닌 힘만 해도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코어를 흡수한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셈이로군.’
크툴루는 자신의 의지로 놈들을 지배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그게 맞긴 하다.
다만 요그 소토스, 지금은 김대웅이 지배한 이 존재는 달랐다.
설령 그 인격을 지배했다 해도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김대웅마저 지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인격은 각각이 독립된 개체로 크툴루의 지배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은 크툴루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
그리고 그 변수가 지금 코어를 통한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윤찬, 네가 도와준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
말없이 그 말을 듣기만 했다.
“물론 파괴하는 행위, 당장은 거부감이 들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수많은 미래를, 그 길을 보아 왔다. 그리고 오직 이 길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지.”
말을 하며 나를 바라보는 김대웅.
이젠 확실히 알 수 있다.
‘…놈은 김대웅이 맞다.’
요그 소토스의 함정?
아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건 김대웅, 과거 내가 대장이라 따랐던 이가 맞다.
다른 주체 인격에 밀려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그가 요그 소토스의 소멸과 함께 주체 인격으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완전한 파괴, 그리고 새로운 창조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니 윤찬. 나를 도와 다오. 네가 함께한다면 암울한 이 미래를, 미지가 지배하는 이 세계를 무로 되돌릴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를 위한 유일한 길이다.”
“완전한 파괴라….”
입을 떼었다.
“그렇게 되면 여기 인간들은 모두 죽는 건가?”
“당연히 그렇겠지. 파괴는 모든 걸 다 소멸시키는 행위가 될 테니까.”
“….”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 나는 수많은 인간을 보아왔다. 그리고 그들을 겪으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지.”
말을 잠시 멈춘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인간은 결코 미래를 살아가면 안 되는 이들이라는 것을.”
안다.
그가 오랜 시간 이동을 겪으며 다양한 형태의 배신을 겪었다는 것을.
심지어 그중에는 나의 배신도 포함되어 있었을 테고, 그건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바다.’
사실 나도 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태생적으로 인간이란 존재는 탐욕의 종족.
탐욕이라는 그 본성은 결국 사달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재앙의 씨앗과 같은 것이었다.
‘크툴루는 그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인간을 창조했을 테지.’
너무도 불완전한, 그렇기에 혼돈에 가깝기 때문에 인류는 시한폭탄과 같다.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김대웅의 확고한 신념을 좌절시킬 정도로 말이다.
“나는 코어에 깃든 힘을 통해 아자토스와 크툴루마저 흡수할 생각이다. 그리하면 완전한 존재, 세상을 파괴할, 그리고 창조할 힘도 얻을 수 있을 테지.”
“그리고…?”
내가 궁금한 건 이후의 일이다.
창조주에 가까운 힘을 얻은 그가 행하고자 하는 것.
“모든 것을 무로 돌린 후 새로운 세계를, 그리고 인류와 같은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완벽한 신인류를 창조할 것이다. 내 모든 힘과 전부를 소진하여.”
놈이 원하는 건 새로운 세상의 지배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걸 바쳐 완전한 신인류를 창조하는 것.
그리하여 완벽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야. 인간은, 너무나도 불완전한 존재지.”
“그렇….”
“하지만!”
나는 김대웅을, 과거의 대장을 똑바로 응시했다.
“불완전하기에 완전함에 다가갈 수 있는 거야. 태어날 때부터 완전하다면 그건 정말 재미없는 일 아닐까?”
완전한 신인류?
과연 모든 게 완전한 존재는 삶의 가치가 있을까?
아니.
내가 생각하기엔 전혀 그렇지 않다.
불완전하기에 완전함을 추구하며 나아갈 수 있다.
미완성이기에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김대웅은 과거 자신이 겪었던 배신으로 인해 그 불완전함을 배제하려고 한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동료들을 배신할 생각이 없어. 지금도 코어를 쥐고 있는 놈들과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그들을.”
내가 요그 소토스와 전투를 벌이고 있듯 동료들 또한 코어를 가진 이들과 싸우고 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다.
코어를 가진 미지와 고대의 신을 쓰러뜨리고 르뤼에의 궁전에 펼쳐진 결계를 깨뜨리는 것.
그리하여 그 안에 숨어 의식을 진행하고 있는 크툴루, 나아가서는 어딘가에 숨어 있을 아자토스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건….”
“김대웅!”
계속 말을 이으려는 김대웅의 말을 저지했다.
“배신? 그럼 지금 네가 하고 있는 행위는 인류를 배신하는 일 아닌가? 결국 너도 끝까지 신념을 지키지 못한 채 배신하면서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할 수 있단 말이지? 그러면서 완전한 신인류를 창조하겠다?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놈은 배신한 인류를 위해 배신하고자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동료들을, 여전히 인류를 믿고 있다.
지금까지 그들과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여전히 남아 있기에 그들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이다.
“그러니 더는 설득하려 하지 마라. 네가 가는 길, 그리고 내가 가는 길이 다르니까.”
놈의 길이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어쩌면 그 바람대로 완전함을 갖춘 신인류가 탄생할 수도 있을 테지.
하지만 나는 그 계획을 막고, 지금의 인류를 지킬 뿐이다.
“…알겠다.”
최후까지 설득하려고 했으나 단호하게 끝맺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건 그 누구도 없을 테지.”
가는 길이 다르다는 걸 느낀 그는.
꿀꺽.
망설이지 않고 코어를 삼켰다.
그 순간.
콰콰콰콰!
엄청난 기운이, 조금 전의 요그 소토스보다 훨씬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윤찬. 너를 죽이겠다.”
“나 또한 마찬가지.”
한때는 그 누구보다 의지하던 동료였으나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사이.
“….”
“….”
서로를 짧게 응시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팟!
마치 짠 것처럼 동시에 몸을 움직여 쇄도했다.
쾅!
주먹과 주먹이 부딪치며 엄청난 굉음이 발생했다.
콰쾅, 콰콰콰쾅!
눈 깜짝할 사이 수십, 아니 수백 전의 합이 이루어졌다.
“실력이 많이 늘었군.”
그건 순수한 감탄이었다.
“나와 같이 시간 이동을 겪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의 실력이라니!”
사실 성장의 기회로 따진다면 나보다 김대웅이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건 많다는 수준이 아니지.
영겁의 시간 동안 시간을 이동하며 업을 쌓았고, 그건 회귀를 한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
하지만 나는 고작 회귀라는 한 번의 기회를 통해 지금의 업을 쌓을 수 있었다.
물론 조금 운이 좋긴 했다.
김대웅마저 쉽게 접할 수 없는 아자토스, 그의 의식 속에서 의지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자세한 사정을 알 턱이 없는 김대웅은 내 실력에, 발전한 그 힘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윤찬. 과거 나는 너와 수천 번의 대련을 했었지.”
“….”
공격을 하면서도 여유가 있는지 계속 입을 연다.
“정확히 3,521번 대련했고, 그 모든 대련은 나의 승리였다.”
알고 있다.
회귀 전, 김대웅은 나를 수련 시켜준다는 명목하에 대련을 하고 했었다.
그 전적이란 건 0승, 3,521패.
나는 단 한 번도 김대웅을 이겨 보지 못했다.
그건 뜻밖의 일일 수밖에 없다.
나는 무한의 강화사라는 특성이 있는 데 반해 당시의 김대웅은 특성을 각성하지 못한, 무각성자였기 때문이다.
“특성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도 너는 나를 이기지 못했지.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니.”
어느 순간.
휙!
움직임이 달라졌다.
의지의 크기를 키운 지금의 내게도 보이지 않는 움직임.
그것이 바로 김대웅의 전력이었다.
퍽!
안면에 느껴지는 강렬한 충격에 비틀대며 물러난다.
퍼퍽!
복부, 그리고 옆구리를 강타하는 주먹.
“크으-”
염주를 손에 감싼 김대웅의 주먹은 과거처럼 내 육신에 쓰라린 고통을 남겨 주고 있었다.
‘그때와 똑같군.’
부족한 내 실력의 향상이라는 명목으로 항상 대련을 해 주었던 김대웅.
그때도 염주를 돌돌 말아 무기처럼 사용하곤 했었다.
비록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는 건 말도 안 되지만, 과거의 편린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건 내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상황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비록 무각성자였어도 육체적인 능력이 뛰어났던 대웅.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코어를 흡수한 대웅은 그때와 같이 엄청난 육체적인 힘을 얻었다.
그 육체의 힘은 의지의 힘을 키운 나를 압도할 정도였고.
퍽, 퍼퍽!
쉴 새 없이 내 육신을 강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기시감이 드는 광경.
하지만 분명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왜냐하면 무한의 강화사라는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던 그때와 달리 지금의 내게는 그 힘을 마음껏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텁!
매섭게 쇄도하는 대웅의 주먹을 손아귀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육체 약화』
강화는 모든 사물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상승의 힘이다.
하지만 의지의 힘을 키운 이후 나는 강화라는 것에 대한 이치를 깨달았고, 그로 인해 강화가 아닌 하락의 힘, 약화를 얻게 되었다.
스으으으!
불길한 검은 연기가 대웅의 몸을 감쌌다.
그것은 강화가 아닌 약화의 힘.
“뭐, 뭣?!”
기껏 끌어올린 그의 육체 능력을 약화하는 또 다른 영역의 권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