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3
023화.
지난 생에서 인류는 각성의 의식과 함께 대혼란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게 인류가 생각지 못한 엄청난 힘이 개개인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분명 누군가는 그것을 선한 것,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사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명백하게 소수였다.
소수를 제외한 다수는 그것을 자신의 이익에 활용하여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나마 다행한 사실이라면 개성을 개화한 이들이 집단으로 움직이는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반년이라는 지극히 짧은 시간, 그리고 선택받은 소수만이 특성을 개화했기에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탓이다.
‘만약 서로를 인지하고 세력을 형성했다면, 그랬다면 종말이 다가오기도 전에 수많은 이들의 피를 흘렸을 테지.’
한 번쯤 상상해 봤던 일이다.
만약 각성자들이 진즉 뭉쳐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집단을 형성했다면?
그런데 그 끔찍한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눈앞의 두 사내.
아무리 봐도 정도환을 꼬여 내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 같은 놈들에게서 지독한 악취가 풍겨 온다.
그건 조금 전, 실눈의 행동만 봐도 알 수 있다.
만약 내가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면 조금 전 일격을 견뎌 내지 못한 채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 공격에 일말의 망설임이 없다.
살의.
누군가를 죽여 본 이에게서 느껴지는, 종말에 익숙해진 이들이 뿜어내던 기운이다.
물론 그들과 비교하면 피라미와 다를 바 없지만, 일단 결은 비슷하다.
“이상해.”
정장 사내의 시선이 내게 닿는다.
“왜 태연하지?”
“태연하지 않아야 할 이유라도?”
“종말이라고 하면 다들 미친놈, 혹은 사이비처럼 대해야 하는데, 너는 전혀 그렇지 않아.”
나름 눈치가 있는 걸 보니 확실히 실눈보다 상급자인 게 맞는 것 같다.
“놀라긴 했지만 뭐랄까. 마치 종말을 알고 있는 듯한, 오히려 우리가 종말을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 놀란 것 같은 눈치인데.”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네.”
“어어?”
실눈 녀석이 의문성을 토한다.
“종말을 알아? 에이, 구라지?”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우와!”
거참 감정 표현에 솔직한 녀석일세.
“그럼 너도 어디 세력에 소속되어 있는 거야?”
그리고 단순하기도 하다.
세력에 소속되어 있냐고 묻는 건.
“넌 세력에 소속되어 있다는 말이네.”
자신이 세력 소속임을 방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년인의 날카로운 눈빛이, 책망하는 그 눈이 실눈에게 닿았다.
“…어, 음….”
“뭘 그렇게 기를 죽이고 그럴까. 어차피 그 정도는 눈치껏 알 수 있는데.”
“흐음.”
실눈을 향한 중년인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하나 묻지.”
고압적이다.
아마도 남에게 명령을 하는 지금의 태도가 익숙한 모양이다.
“너, 어떤 특성을 개화했지?”
이것 봐라?
이미 특성의 개화까지 알고 있네.
아니, 여기서 조금 더 깊이 파고들어 보면.
‘다른 각성자를 알고 있는 듯한 눈치야.’
아무리 봐도 정도환과 일면식이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런데 특성을 개화한 그를 정확히 찾아왔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이들이 속한 세력이 특성을 개화한 이들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는 확실하군.’
이 녀석들, 가볍게 넘길 만한 단체가 아니라는 점.
“어려운 질문인가?”
거듭되는 질문에.
“어려운 게 아니라 무례하지. 남의 특성을 대놓고 물어보는 건 도발과 다름없거든.”
종말 중에 이런 말을 했다면 당장 칼부림이 일어났을 테지만, 지금이야 뭐.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와 함께하고자 한다면 무슨 특성을 개화했는지….”
“관심 없어.”
“…관심이 없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왜 너희와 손을 잡을 거로 생각한 거지. 나는 전혀 관심이 없는데?”
놈들이 어떤 세력에 소속되어 있고, 그 세력이 각성자를 모으고 있는 건 알겠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일찍 뭉치는 게 생존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테지.’
종말을 알고 있는 누군가를 구심점으로 대비한다면 내가 겪었던 것보다 훨씬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적어도 이 녀석들은 도움이 될 만한 놈들이 아냐.’
종말 초반, 강력한 특성을 개화한 이들을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종말 최고의 세력인 오강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목표나 향상심 없이 그저 자신의 강함과 이득을 위해 세워진 세력은 얼마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부에서 무너지는 경우를 수두룩하게 봤다.
그리고 그때마다 혼란이 찾아왔다.
‘이런 놈들이 많아지면 그것 또한 손실이다.’
그렇기에 놈들과 협력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 검은 속내를 가진 단체를 무력화할 필요성이 있다.
“다가오는 종말, 그 큰 변화를 혼자 이겨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거 맞는데?”
“어리석군.”
눈살을 찌푸린 정장 사내.
“하긴.”
그러면서 피식 웃는다.
“아직 그분의 예언을 듣지 못했기에 가능한 오만일 테지.”
“그렇죠. 저런 애새끼가 뭘 알겠습니까.”
맞장구치는 실눈.
그것만 봐도 둘의 상하관계는 명확하다.
“어르신.”
내게서 시선을 거두어 정도환을 응시한다.
아마도 언제든 날 제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다.
“어르신은 어떻습니까?”
“….”
다 죽어 가는 눈이 정장 사내에게 닿는다.
“…정말 할 수 있나?”
“예. 그분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그야말로 초인이라 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분과 손을 잡는다면 어르신의 평생 염원이 이루어질 겁니다.”
“그렇다면….”
정도환.
아무래도 그는 이들에게 설득을 당한 것 같다.
아마 내가 없었다면 그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있었을 테지만.
“아저씨.”
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턱이 있나.
“그 양반들 말 믿지 마요. 어딜 봐도 말만 번지르르한 게 전형적인 사기꾼 아닙니까?”
뭐어?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초인?
회귀하기 전, 나를 포함한 일곱도 인간의 경지를 벗어나진 못했다.
우리는 여전히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고, 결국 종말의 벽에 좌절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갓 특성을 개화한 녀석이 초인은 무슨.
말만 번지르르한 것을 봐선 놈들 또한 별 볼 일 없는, 그저 그런 악당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놈들에게 추후 십존이 될 인재를 놓친다?
어림도 없는 소리.
“…자네는?”
정도환, 그의 눈동자가 내게 닿았다.
그 눈동자는 익숙하게 보아온 종류다.
수산 시장, 그곳에 진열된 생선.
단 한 점의 생명력도 느껴지지 않는, 죽어 버린 눈은 회색으로 물들어 있는 것 같다.
‘모든 걸 잃었으니까.’
나는 알고 있다.
그의 불행한 과거를.
왜 그가 인류를 적대시했으며, 왜 하트 여왕과 손을 잡았는지를.
그렇기에 이곳에 왔다.
그를 제거, 혹은 아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물론 최우선은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물론 회귀 전에는 적대시하는, 서로 앙숙인 관계였지만.
‘그를 잘만 이끈다면 인류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될 테니까.’
개인의 원한은 접어 두었다.
만약 살육을 추구하는 괴물이었다면 제거 쪽에 무게를 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물론 사정이 있다고 해서 그게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다만 정상을 참작하여,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꼭 그렇게 손녀를 살리고 싶습니까?”
“….”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자, 자네….”
“어떻게 알았느냐는 등의 이야기는 하지 마시길. 그건 말해 줄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제가 손녀분의 영혼을 이식하는 육신을 완성해 줄 수 있다는 겁니다.”
“뭣이!”
동그랗다 못해 부릅뜬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내가 누구도 알아내지 못한(아, 이 음침한 놈들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정을 알아냈으니까.
‘정도환. 그의 염원은 사고로 죽은 손녀를 살리는 것.’
30살 때 일찍 아내를 보냈다.
홀로 애지중지 키워 낸 딸은 1년 전에 교통사고로 보냈다.
불행한 건 그 사고에 휘말린 게 사위와 딸만이 아니라 손녀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칠흑과 같이 어두운 그의 인생에 유일한 안식이자 빛이 되어 주던 두 존재가 동시에 죽었다.
그리고 딸아이가 죽기 직전.
‘아빠. 우리 딸, 서영이는 꼭 살려….’
형편없이 뭉개진 채 겨우 그 말을 입밖에 내뱉었다.
하지만 그건 정도환에게 이루어 줄 수 없는 소원이었다.
손녀 김소영 또한 온 몸의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상하는, 현대 의학으로는 손 쓸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시체를 오래 보관하고 다녔지. 딸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기 위해.’
정도환이 하트 여왕과 손을 잡은 이유는 그녀에게 소생의 물방울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는 그녀를 죽여야 얻을 수 있는 것이지만, 정도환은 그녀에게 협력하는 대가로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시련을 얻었다.
물론 나와 윌리엄, 그리고 백의의 공격에 의해 그 꿈은 저지되었지만.
하지만 만약 그가 처음부터 독한 마음을 품고 전략적으로 공격해 왔다면 나를 포함한 그곳의 모두가 죽음에 이르고 말았을 것이다.
그만큼 정도환은 사기적인 특성을 개화한, 인류의 생존과 파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인물이었다.
“어떻습니까? 흥미가 동하지 않습니까?”
그러한 사정을 다 알고 있기에 협상을 제언할 수 있다.
“그, 그게 정말인가? 정말 서영이를 다시 살려 줄 수….”
처음으로 죽어 있던 눈이 반짝인다.
“어르신.”
하지만 그것을 방해한 건 정장 사내였다.
“설마 저자의 말을 믿는 건 아니지요? 볼품없는 저 녀석이, 그것도 혼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혼자라는 것을 강조하며 나를 깔아뭉갠다.
“우리와 손을 잡으시지요. 그분께서 어르신이 염원하는 손녀분의 소생을….”
“쯔쯔. 말도 안 되는 소릴.”
다시금 반격했다.
“우리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죽은 사람을 살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놈들은 정도환의 사정을 정확히 모른다.
그리고 그건 내게 아주 유리한 이점으로 작용할 터였다.
“어르신이 원하는 건 부활이 아냐. 그렇지 않습니까, 어르신?”
“…그렇네.”
아무래도 신뢰가 점점 내게 기우는 것 같은데?
“어르신의 작업. 제가 도울 수 있습니다.”
“….”
눈이 커진다.
내가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결정타 하나 더.
“아무런 사정도 모르는, 게다가 죽은 사람을 되살리겠다는 저 말을 믿는 건 아니죠? 뭐, 보나 마나죠. 당장 해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언제고 해 주겠다고 꼬드겨서 잔뜩 일만 시키다가 버릴 게.”
종말을 20년 동안 살아왔다.
최후의 칠인이 될 때까지 생존했지만, 인간이 사람을 살리는 경우는 없었다.
아, 물론 딱 한 번 있었다.
정도환이 목숨을 걸고 얻으려 했던 소생의 물방울.
하트 여왕이 떨군 그 보물을 통해 당시의 전투로 죽어 버린 윌리엄을 되살렸었다.
적어도 인간의 힘으로 죽은 자를 되살리는 기적을 행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이곳에 온 저놈들의 말은 거짓말이라는 것.
그리고 거짓말하는 놈들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건방진!”
“이 새끼!”
거짓이 들통났을 때 도리어 화를 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장, 실눈은 그러한 공식에 걸맞게 화를 내고 있었다.
단순한 화가 아니다.
노골적인 살의.
‘이 새끼들, 사람들 여럿 죽여 봤군.’
그 살의는 평범한 이들이 뿜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어도 살해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이들만이 내뿜을 수 있는 것.
그렇기에 알 수 있다.
이놈들, 그리고 배후의 세력이라는 것은 종말 초반 활약했던 그 멍청이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어차피 이렇게 할 생각이었잖아? 귀찮게 말 섞지 말고 바로 가 보자고.”
결국, 놈들이 원하는 건 무력 행사였다.
그리고 나는 언제든 그것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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