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6
026화.
“별로 놀라지 않는군요.”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기현상을 겪고도 평온한 얼굴이라니.
나와 같이 종말을 겪었던 회귀자도 아니고, 이게 정말 갓 각성한 이가 맞나?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다.
하긴, 그러니까 십존이라는 가장 강한 인류 중 하나로 성장할 수 있었을 테지.
“놀라야 하나?”
“놀라운 광경을 봤으니까요.”
“세상을 살다 보면 때때로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곤 하지. 지금이 바로 그러한 것 중 하나고.”
잠깐 말을 끊은 그는.
“그리고 내 목적 또한 상식적이지 않은 것이라.”
하긴, 이 사람의 목적도 보통이 아니긴 하다.
“그래서 말인데.”
“예.”
“자네가 조금 전에 한 말. 그게 사실인가?”
감정이 없는 줄 알았다.
회귀 전에도 그랬고, 조금 전까지도.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기대, 그리고 약간의 흥분.
그 어떤 변화에도 무덤덤할 것 같은 그의 음성에 감정이 섞였다.
“물론입니다. 제가 허풍만 떠는 저런 녀석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거든요.”
“그렇다면 증명해 보게.”
곧장 증명해 보이길 원한다.
“…그런데 무섭진 않습니까?”
내 물음에.
“무엇이?”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갔는데요.”
“내가 누군지 잊었나 본데, 나는 죽음과 가장 가까운 사람일세.”
장의사.
죽음과 가장 가까운 자.
확실히 그에게 죽음이란 두려운 것이 아닌 가장 친숙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금 입술을 연 그의 몸에서.
스스스스-
검은 안개와 같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면에 닿은 순간.
드드드득!
지면을 강타하는 진동.
물론 지진과 같이 강렬하진 않았지만, 지면에 딛고 선 발을 통해 그 진동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푸확!
흙으로 덮인 지면을 뚫고 나오는 것.
“그으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한 살점과 하얀 눈동자.
굼뜬 동작의 그건.
‘좀비!’
이미 생명이 다한 시체에 특정한 마력을 부여하여 병사로 부린다.
비록 전투력이 높지 않은 최하급 망자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벌써 좀비를 부린다고?’
각성의 의식이 시작되었으니 어느 정도 능력은 발휘할 줄 알았다.
그런데 벌써 망자를 다루는 수준이라니.
‘애초에 시작점이 달랐구나.’
그와 비슷한, 망자를 다루는 수많은 특성이 있다.
하지만 정도환이 지닌 특성은 사령술의 정점.
『죽음의 인도자』
사존이라 불렸던 그의 진정한 특성이다.
죽음과 관련된 모든 능력을 한계 이상으로 다룰 수 있는 사기적인 특성.
100대 특성 중 하나인 그건 각성의 의식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망자를 부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건… 협박입니까?”
내 주위를 포위한 일곱의 좀비를 보며 가볍게 말했다.
“일종의 무력 시위지. 만약 내게 허튼소리를 했다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다른 사람이라면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글쎄요. 제게는 먹히지 않을 것 같네요.”
“…확실히 허세는 아닌 것 같군.”
“물론 허세는 아니죠. 다른 망자라면 모를까 좀비쯤이야.”
숫자는 좀 되지만 좀비는 최하급 망자에 불과하다.
물론 망자를 상대할 줄 모른다면 곤란을 겪을 수 있지만, 거기서 나는 예외다.
놈들의 약점을 파악하고 있기에 고작 일곱의 수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냥 보험이라 생각해 두게. 위협이 되진 못해도 충분히 귀찮게 해 줄 수 있다는 보험.”
“귀찮게라. 그 정도면 인정입니다.”
좀비 이외에 다른 능력을 사용할 수도 있으니 맘만 먹으면 나를 귀찮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어르신, 아니 따님의 염원을 이뤄줄 유일한 존재가 바로 저니까요.”
“…그 자신감. 한 번 믿어 보지.”
마침내 정도환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했다.
“따라오게.”
그리고 그를 동료로 삼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도 함께.
*
정도환을 따라 도착한 곳.
집의 옆에 마련된 그곳은 작업실, 장의사에게 작업실이라 함은 염을 하는 장소였다.
시체를 처리해야 하기에 낮은 온도가 항시 유지되는 건 물론 각종 약품이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앙.
“이 아이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손녀, 윤서영이라네.”
어떻게 처리했는지 모를, 너무 멀쩡한 시체가 반듯하게 눕혀져 있었다.
언뜻 보면 정말 잠을 자는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 기운 자국이 보인다.
놀랍도록 정교한 솜씨로 육신을 기워 연결해 놓은 것.
마치 프랑켄슈타인의 그것처럼 말이다.
“혼(魂)은 모았습니까?”
혼.
쉽게 말해 생명을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에너지다.
본래는 이것은 인간의 영역으로 손에 넣거나 다루는 게 불가능하지만, 오직 하나. 죽음의 인도자는 가능하다.
죽음의 영역을 다루는 죽음의 인도자는 혼이라는 영역을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아, 그렇다고 해서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둥의 기적을 펼칠 순 없다.
완전한 기적이 아닌 불완전한, 조금 뒤틀린 ‘저주’만 가능할 뿐.
“…혼을 알고 있어?”
“어때요? 이제 조금 감이 오지 않습니까. 조금 전, 그 사기꾼 녀석들과는 다르다는 게.”
“확실히 조금씩 믿음이 생기는군.”
“그래서. 질문에 대한 답은?”
“충분하진 않지만, 일단은 움직일 정도는 될 것 같군.”
“벌써요?”
“그만큼 간절했으니까.”
솔직히 꽤 놀랐다.
벌써 움직일 정도의 혼을 모았다니.
‘하긴.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을 테니.’
당장 딸과 손녀의 곁으로 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그럼에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딸의 마지막 부탁을 완수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각성의 의식을 통해,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특성을 통해 그 염원을 이뤄 줄 수 있는 상황.
남은 건 그 혼이 깃들 만한 육신을 완성하는 것.
“그럼, 시작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죠.”
그는 지금 당장 원할 테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혼이 들어갈 그릇을 완성하는 것. 그건 상당히 힘든 일이라는 것. 그건 알고 있죠?”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예. 이게 무척 힘든 일입니다. 그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거래를 원하는가?”
“네. 상호 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거래.”
“말해 봐라. 내 손녀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응할 테니.”
빼지 않고 이렇게 나와주면 땡큐지.
“간단합니다.”
그렇기에 나도 직접적으로 말했다.
“힘을 빌려주십시오.”
“부하가 되어 달라는….”
“아뇨. 상하 관계가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건 동료입니다.”
“동료?”
“아까 놈들에게서 대략의 사정에 대해선 들었을 테죠.”
“…곧 종말이. 세상에 큰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하더군.”
“네. 놈들의 말처럼 곧 종말이 올 겁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말 엄청난 변화가.”
사실 이 변화도 조금 여유가 있을 줄 알았지만.
‘각성의 의식이 일찍 시작된 것으로 봐선, 종말의 시작 시각 또한 앞당겨졌을지 모르지.’
종말만이 문제가 아니다.
종말 이전 시작될 각종 전조 현상, 이에 대한 대비도 해 놔야 한다.
여기에 더해 수상쩍은 세력까지.
여러모로 골이 아플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나 혼자만의 힘만으로 안 된다.
이 모든 시련을 함께 헤쳐 나갈 동료.
“서영이의 그릇을 완성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할 수 있네.”
“좋습니다!”
진심이 담긴 말을 들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앞으로 걸어갔다.
반듯하게 누운 시체, 윤서영을 똑바로 응시했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란 건 간단하다.
정도환이 복원시켜 놓은 윤서영의 시체를 강화하는 것이다.
‘살아 있었다면 불가능할 테지만.’
시체이기에 가능하다.
내 강화 특성은 생물이 아닌 무생물에 한해선 성공확률이 100%에 달하기 때문이다.
온기가 식은 그 육신에 손을 가져간다.
움찔.
잠깐 움찔하며 동요하는 정도환.
그가 손녀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마음을 헤아리며.
『강화』
특성을 발현했다.
대상은 윤서영의 시체.
화아아-
밝게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광채.
처음에는 옅은 빛에 불과하던 그것은 이내.
화아아아악!
찬란한 빛으로 바뀌었다.
물론 그건 성공의 증거.
“이건?!”
놀란 듯 눈을 부릅뜬다.
“바뀐 게 느껴지십니까?”
“무, 물론.”
“아직 기뻐하기엔 이릅니다.”
“…그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번쩍!
계속 강화를 시도했다.
살아 있는 생물의 육체를 강화하는 것이 아닌 이상 시체의 강화는 누워서 떡을 먹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
『+99 윤서영의 시체
분류 : Unknown
내구도 : 無
고유 효과 : 無
강화 효과(9/99) : 無
강화 효과(15/99) : 無
강화 효과(20/99) : 無
……
강화 효과(99/99) : 無
풀강 효과(Max) : 無
초월 효과 : 혼을 담을 그릇으로서의 일부 완성
설명 : 정도환의 손녀 윤서영의 시체.
초월 강화를 통해 혼을 담을 그릇이 일부 완성되었다.』
‘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잡템으로 분류되던 시체는 언노운(미지의)으로 변했다.
비록 강화 효과는 전무하지만 초월 강화를 통해 유일한 효과가 생겼으니.
그게 바로 혼을 담을 그릇이다.
“끝났습니다.”
마지막 강화를 끝내며 슬쩍 옆으로 물러났다.
“오오오!”
감탄사를 내뱉는 정도환.
그는 초월 강화를 마쳐 확 바뀐 시체를 응시했다.
프랑켄슈타인처럼 곳곳이 기운 자국으로 가득하던 시체가 매끈하게 변했다.
창백한 안색도 조금은 돌아왔다.
물론 살아 있다고 생각할 순 없겠지만,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라 생각할 정도였다.
“이 정도 그릇이라면 충분히 혼을 넣을 수 있겠어.”
뒤, 나를 바라본다.
당장 울 듯 글썽이는 눈망울이 원하는 건 하나.
“지켜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혼을 집어넣는 과정은 엄청난 집중력을 요하는 일.
혹여 누군가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될 수 있기에 안전을 확보해야만 한다.
스으으으-
그의 손으로 검은 안개가 모여든다.
조금 전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내 그 안개가 걷혀 푸른 불꽃과 같은 게 드러났다.
그것이 바로 혼이다.
죽음의 영역에 한 발을 걸친 죽음의 인도자만이 발현할 수 있는 권능.
꽤 오랜 시간 모았을 게 분명한 그 혼을 망설이지 않고 시체에 불어넣었다.
“….”
처음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번뜩!
감았던 눈을 뜨는 윤서영.
비록 보통의 사람과 같진 않은, 흰자만 보이는 상태.
어떻게 보면 조금 전 보았던 좀비와 비슷한 상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영아!”
깨어난 서영을 와락 껴안는다.
“…으어어….”
하지만 대화는 되지 않는다,
‘부여된 혼의 크기가 너무 작아.’
만약 혼의 크기가 컸다면 좀비와 같은 상태가 아니라 인간에 가까운 망자를 만들어 냈을 테지만, 당장은 불가능하다.
특성의 힘을 좀 더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서영아!”
하지만 죽은 이를 움직이게 한 것만으로도 정도환은 무척 만족한 모양이었다.
“어르신.”
기뻐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 만족해선 안 된다.
“지금은 이 정도가 한계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물론이야. 앞으로 자네에게 적극 협조하겠네. 내 남은 모든 생을 바쳐서라도!”
여전히 손녀를 안은 채 결의를 다지는 정도환.
그 모습을 보니 확신할 수 있다.
사존 정도환.
그를 아군으로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하지만 아직 만족할 순 없다.
‘그 녀석들.’
종말을 예견한 수상쩍은 단체.
베일에 싸인 놈들을 끌어내야만 한다.
‘계약이란 말이지.’
단서는 계약 특성.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계약을 지니고 있던 한 인물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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