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3
033화.
전국에서 배송한 수많은 물품이 모이는 허브(Hub) 중 하나.
본래는 새벽까지 분주해야 할 물류센터에는 어쩐지 직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창고에 가득히 쌓여 있어야 할 물품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휑한 창고 안.
저벅.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또 내가 가장 빨리 온 거야?”
11월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붉은색 얇은 바람막이와 타이즈를 입은 여성.
색색의 브리지를 요란하게 넣은 그녀는.
짜악, 짝!
입 안의 껌을 요란하게 씹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니, 네가 제일 늦었어. 시연.”
분명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창고 안에 울려 퍼지는 음성이 있었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눈을 가늘게 뜬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천장, 주변을 밝히는 조명으로 인해 그림자가 길게 나타났다.
그녀의 시선은 정확히 자신의 그림자를 향해 있었다.
스스스슥-
놀랍게도 그림자가 움직였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잠시간 꾸물거리던 그것은.
스윽.
이내 대지를 딛고 일어섰다.
“하여간 음침하다니깐.”
분명 기현상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여인은 익숙한 듯 그저 미간을 찌푸리는 것에 그쳤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다.
스으으으-
갑작스레 창고 안을 감싸는 안개.
“왔네.”
익숙한 듯 다시금 말문을 연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안개가 사라졌다.
그리고 마술처럼 창고 안에 모습을 드러낸 이.
스으으-
흡사 그를 보호하듯 주변에 안개를 두르고 있었다.
저벅.
마치 약속한 것처럼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의 면면도 범상치 않다.
“여어!”
“다들 잘 있었어?”
활달하게 인사를 건네는 쌍둥이.
“….”
검은 검도복을 입은, 사선으로 이어진 흉터가 얼굴에 새겨진 사내.
총 다섯 명이 창고 안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녀석들이 보이질 않네?”
“하여간 이것들이 빠져 가지고. 그리고 대장은 어딜 간 거야?”
짠 것처럼 쌍둥이 사내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아니, 있다.”
명상하듯 눈을 감고 있던 검도 사내의 입에서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번쩍.
빛과 함께.
“모두….”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장내에 나타난 이.
얼굴의 반을 가리는 큰 선글라스와 쉽게 볼 수 없는 흰색 정장을 입은, 멋들어지게 수염을 기른 중년인이었다.
“…도착했군.”
“응?”
모두 도착했다는 그 말에 의문성이 튀어나왔다.
“대장. 아직 나머지 인원이 오지 않았는데?”
껌을 뱉지 않아 중간중간 새는 발음이 나온다.
명색이 상관이라 할 수 있는 중년인, 하지만 그는 여인의 행동을 지적하지 않았다.
“놈들은 오지 않는다.”
“엥? 어째서?”
“죽었으니까.”
“….”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농담?
그럴 리가!
그들이 알고 있는 중년인은, 대장은 이런 자리에서 농담을 할 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놈들이 임무에 실패했다.”
“….”
예상치 못한 말에 장내에 침묵이 일었다.
“임무라면 설마 여덟 명이 동원된 그 임무를 말하는 거지?”
믿을 수 없기에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그들에게 부여된 임무라 한다면 여덟 명이 동시에 움직이는 ‘그것’이 유일했다.
그런데 실패?
무려 여덟 명의 선지자가 동원되었음에도 실패하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래서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임무 실패에 대한 책임과 향후 일을 논의하기 위해.”
그제야 사안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 이거 엿 됐네?’
‘위에서 불호령이 떨어지겠는데.’
‘아니, 그 병신들은 어떻게 여덟이나 동원됐는데 실패하는 거야!’
마음속으로 이번 임무를 실패한 이들에 대한 원망이 한가득하다.
보통 동료가 당했다고 한다면 당연히 그들에 대해 걱정하기 마련인데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임무에 동원된 여덟 모두가 하위 계급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선지자라곤 하나 그들에게도 등급이라는 게 존재했다.
그리고 그건 그들이 착용한 왼쪽 가슴 위에 달린 배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마치 달을 형상화한 것 같은 배지.
달을 가리는 검은 부분이 많을수록 그 직위가 높은 것을 의미한다.
다른 이들이 보름달에 가까운 형태라고 한다면 백색 정장의 중년인은 달의 1/5가 검게 가려져 있는 형태였다.
그것은 무력의 수치이자 계급.
즉, 이곳에 있는 이들 모두 검은달 내에서 그 실력을 검증받은 이들이라는 것이었다.
배지를 받지 못한 하급 단원은 소모품으로 취급할 정도의.
“한 번도 없었던 실패라니.”
“위에서 불호령이 떨어졌겠네요?”
마치 자신 일이 아닌 것처럼 해맑게 물음을 던지는 쌍둥이.
“불호령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럼?”
“아무래도 이번 임무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중요했던 것 같다.”
“…얼마나 말입니까?”
“대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
침묵이 장내를 지배했다.
대계.
그것은 이들이 검은달이라는 세력에 모이게 된 이유였다.
그것에 지대한 영향을 줄 정도라면 불호령이 아니라 당장 이곳에 있는 이들의 목숨을 거두어도 될 정도다.
사실 아예 모르진 않았다.
어느 정도 언질을 받긴 했기에 여덟 명이나 되는 단원을 파견, 임무에 만전을 기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실패와 함께 단순한 경고 차원을 넘어선, 노골적인 압박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만회해야 하겠습니까?”
검도복 사내의 말에.
“위에서 바라는 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쌍룡검을 탈취하는 것.”
본래 임무의 목적이었던 쌍룡검의 탈취.
성공하기만 한다면 임무 실패를 불문에 부치겠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쉽네요.”
퉤, 씹고 있던 껌을 뱉어 낸 여인이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
“뭐, 병신들이 실패한 임무를 뒤처리하는 게 그렇지, 별거 아니네.”
“흐흐. 마침 심심하던 차였는데, 잘됐지.”
여인뿐만이 아니라 다들 자신감과 확신에 차 있다.
그들은 선택받은 선지자들, 게다가 그들 중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정식 단원이었기 때문이다.
“지체할 것 없지. 곧바로 이동한다.”
중년인 또한 그들의 자신감에 별다른 말을 전하지 않았다.
실력 면에서 여기 있는 이들 한 명이 임무에 투입된 여덟보다 더 강하다.
이들 여섯이 움직인다는 건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던 일, 지부의 전력을 동원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 어떻게 자신감이 없을 수 있을까.
확신에 찬 그들이 단서를 얻기 위해 목적지로 이동하려 할 때였다.
쐐애액!
대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퍼억!
어떤 충격으로 인해 쌍둥이 중 하나의 몸이 튕겨 나갔다.
“뭐?!”
남은 쌍둥이를 비롯한 장내의 모든 시선이 쓰러진 쌍둥이에게 향했다.
줄줄줄.
왼쪽 가슴, 관통된 심장 부근에서 흘러나온 피가 지면을 적시고 있었다.
*
‘일단 하나.’
9배율 스코프 너머, 목표가 쓰러지는 것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정보가 샌 걸 눈치챈 모양은 아니네.’
검은달, 놈들 은신처에 대한 정보를 얻었지만, 그것이 함정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넘어갈 수밖에 없는, 탐스러운 먹이인 건 사실.
그렇기에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물류 센터에 진입했다.
진입?
정확히는 먼 곳에서 자리를 잡은 채 저격하고 있다는 게 맞겠지.
정교하게 만들어진 저격용 에어건을 준비해 선제공격을 가했다.
기존의 일성이 아니라 이성, 게다가 풀강화를 마친 에어건은 놀라운 속도와 위력을 발휘, 순식간에 적의 심장을 관통했다.
『+99(★★) AWM 에땁 에어건
분류 : 화기(에어건)
내구도 : 20/20
고유 효과 : 탄환의 속도 미량 증가
강화 효과(9/99) : 탄환의 위력 미량 증가
강화 효과(15/99) : 탄환의 속도 소량 증가
강화 효과(20/99) : 탄환의 위력 소량 증가
강화 효과(30/99) : 스코프 배율 증가
……
강화 효과(99/99) : 탄환의 위력, 속도, 명중률 보통 증가 풀강 효과(Max) : 탄도 및 명중률 보통 보정
초월 효과(★) : 낮은 확률로 급소 명중
초월 효과(★★) : 낮은 확률로 필중
설명 : 사냥, 생존용 공기 저격총.
초월 강화를 통해 배율 증가, 탄도, 위력, 속도, 명중률이 전반적으로 보통 이상으로 상승했다.』
위력과 속도, 명중률이 상승한 강력한 저격 에어건.
혹시나 있을 함정에 대비하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았다.
멀리서 스코프로 대상을 확인하며 선빵을 날렸다.
발각될 일?
없다.
주위에 녹아들 수 있는 길리슈트로 엄폐를 확실히 해 놓았기 때문이다.
에어건까지 가릴 수 있는 넓은 길리슈트를 통해 주변과 완전히 동화한 상태로 저격한다.
놈들에게 ‘탐색’류의 특성이 없는 이상 이곳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일 거다.
철컥!
공기를 주입하기 위한 한 번 장전하고.
나머지 쌍둥이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조준했다.
빠르게 주변을 살피며 내 위치를 찾으려 애쓰지만.
‘어설퍼.’
역시 어설프다.
어둠 속에서 목표를 노리는 스나이퍼가 있음에도 주변을 살핀다?
죽여 달라는 말과 진배없다.
‘하나 더.’
검은색 도복의 사내를 향해.
타앙-
납탄을 발사했다.
쐐애애액!
조금 전 날아갔던 것과 같은 탄환이 대기를 가른다.
하지만.
퍽!
그것은 조금 전과 같이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다.
검사, 놈이 날아오는 납탄을 정확히 반으로 쪼갰기 때문이다.
‘발도!’
범상치 않은 검의 궤적, 그것을 본 순간 단번에 놈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발도』
검집에 수납된 검을 빠르게 뽑아 일격에 적을 베는 검술의 일종.
수준이 상당하다.
그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특성도 특성이나 각성 이전에도 상당한 검사였던 게 분명하다.
거기에 발도라는 특성을 얻었으니 빠르게 날아오는 탄환을 갈라 버리는 것도 가능할 테지.
‘전과는 수준이 다르네.’
단 일격이었지만, 그걸로 수준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놈들은 송윤식의 자택에서 마주쳤던 각성자보다 훨씬 더 강하다.
그러나 그게 위협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여전히 놈들은 나를 발견하지 못했고, 내게는 원거리에서 요격이 가능한 화기가 쥐어져 있으니까.
위치를 발각당하기 전에 원하는 정보를 모두 얻을 셈으로.
타앙!
다시금 탄환을 발사했다.
이번 목표는 껌을 씹고 있는 여자.
색색의 브리지를 요란하게 넣은 그녀를 향한 탄환은.
퉁!
그녀의 육신에 닿지 못했다.
몸이 풍선처럼 불어나 탄환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다.
『풍선껌』
꽤 희귀한 특성이다.
마치 풍선껌처럼 몸을 자유자재로 늘렸다 줄였다, 그리고 조금 전처럼 거대한 풍선이 되어 충격을 흡수하기도 한다.
쌍둥이, 발도, 그리고 풍선껌까지, 세 명의 특성을 확인한 직후.
“거기냐!”
백색 정장을 입은 중년인, 그가 움직였다.
번쩍!
어두운 장내를 밝히는 한 차례의 섬광이 피어난 것을 확인한 순간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스릉-
바닥에 준비해 두었던 일본도를 검집에서 꺼내어 전방을 향해 휘둘렀다.
카캉!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며 한차례 불똥이 튀었다.
정면, 그곳에 창을 든 중년인이 서 있다.
그 짧은 순간 공간을 도약하듯 내 앞에 당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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