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
004화.
『종말, 그리고 3년 후』
“키이익!”
“캬악!”
정면, 셀 수 없이 많은 괴물이 괴성을 질러 댄다.
종말과 함께 등장한 미지의 생명체.
오직 인간을 살육하기 위해 태어난 병기들은 그 목적을 위한 흉성을 폭발시키고 있었다.
맞이해야 하는 건 몬스터 웨이브.
파도처럼 쏟아지는 괴물을 막아 내야 하는 가혹한 임무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다.
종말이 시작된 지 꽤 시간이 흘렀기에 괴물에 관해서는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 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하지만 싸워야 한다.
힘들게 지은 아기 돼지 삼형제의 ‘집’은 배신자에 의해 위치가 발각되었고, 늑대에게 부서지고 말았다.
남은 건 먹이를 노리는 포식자처럼 혀를 날름거리는 괴물들과의 치열한 전투뿐.
“윤찬.”
현재 무리를 이끄는 리더.
비록 한 팔을 잃었으나 그건 동료를 살리기 위한 희생의 증거.
그리고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온몸 가득한 흉터 물러서지 않는 영광의 상처였다.
김대웅.
특유의 카리스마로 순식간에 무리를 휘어잡은 중년의 사내가 옆에 선 사내를 호명했다.
“예, 대장.”
강화라는 보잘것없는 능력을 지닌 사내를 받아 준 은인.
그렇기에 윤찬은 성심성의껏 그를 모셨고, 단 한 번도 그 명령에 토를 단 적이 없었다.
“…육체고 강화 가능하다고 했지?”
“….”
그 말의 저의를 알고 있기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은?”
“…예. 가능은 합니다. 하지만-”
“실패할 때 부작용이 심하다고 했지. 잘못하면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다고.”
“그렇습니다.”
육체 강화.
강화를 단련하여 마침내 도달할 수 있었던 능력.
하지만 처음 시도한 이후 육체를 강화하는 일은 없었다.
처음 시도 때의 강렬한 임팩트, 그건 아직도 윤찬의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윤찬.”
“네.”
“지금의 전투, 승산이 어떻다고 생각하나?”
“다들 사기가 충만합니다. 충분히 승산이….”
“네 희망을 말하는 게 아니다.”
“….”
침묵했다.
윤찬을 비롯한 모두가 알고 있다.
집을 잃어버린 순간 이 싸움은 승산이 없어졌다는 것을.
당장 눈앞에 있는 괴물이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든 놈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해도 다음, 수많은 희생을 통해 겨우 쫓아내는 데 성공한 늑대.
네임드(Named)인 녀석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방법은 하나뿐이다. 나를 강화해라, 윤찬.”
반박할 수 없다.
비록 실패 확률은 높지만, 만약 성공하게 된다면.
‘분명 가능성은 있다.’
강화사인 윤찬이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무리다.
“육체 전체를 강화하게 되면 그 페널티는….”
“죽음.”
대웅이 담담하게 읊조렸다.
육체 전체의 강화의 페널티는 죽음이다.
폭사.
육체 내부부터 일어난 폭발로 인해 그대로 즉사하고 만다
“대장. 부분 강화라면 찬성하겠지만 전신 강화라뇨. 그건 확률이 10%도 채 되지 않습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한 번도 토를 단 적이 없지만, 이번에는 조금 강하게 말했다.
대웅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그것도 아주 높은 확률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작은 확률이라. 그래도 그건 희망이라도 있다는 이야기로군.”
확실히 그렇다.
낮은 확률, 달리 말하자면 희망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전신 강화를 하지 않으면?
100%의 확률로 여기 있는 이들은, 대웅의 희생으로 어렵사리 이곳까지 생존한 이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하고 말 것이다.
“대장….”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리오.”
신실한 불교 신자인 대웅이 힘든 결정을 할 때마다 내뱉는 말이다.
손목에 찬 염주, 그것을 엄지로 굴리며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어찌 죽음이 두렵지 않겠는가.
그라고 해서 왜 살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누군가 희생하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다.
그리고 그 희생양은 언제나 그렇듯 대웅, 그 자신이 되어야만 했다.
“시작해라.”
“…예.”
그 확고한 결심을 읽은 이상 더는 토를 달 수 없었다.
“그럼,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대웅의 결심에 울컥한 윤찬이 울먹거리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다.
툭.
머리 위, 두툼하고 거대한, 그리고 따스한 대웅의 손이 얹어졌다.
“울지 마라. 누가 보면 초상집인 줄 알겠네. 살아날 확률도 분명 존재하잖아?”
“큽. 예, 예. 그럼요. 대장이라면,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대장이라면 반드시 살아남겠죠.”
“그거면 됐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대웅이 눈을 감는다.
마치 한 마리의 곰과 같이 대지를 딛고 선 그를 잠깐 응시하던 윤찬은.
“하아아압!”
굳이 힘이 필요하지 않은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잔뜩 기합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
번쩍!
마침내 강화의 기운이 흘러 들어가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건.
“대장!”
푸른빛이었다.
강화 실패를 알리는 그 불길한 빛과 함께.
부릅!
눈을 부릅 뜨는 대웅.
내부에서부터 느껴지는 이질감.
강화 실패를 깨달은 그는 마지막을 직감했다.
“괜찮다….”
터져 나오는 기운을 힘겹게 억누르며 입을 연다.
“…썩 괜찮은 삶이었지 않은가.”
그와 함께.
퍼엉!
폭발과 함께 뼈와 살점, 그리고 핏물이 사방으로 비상했다.
철퍽.
그 잔해를 뒤집어쓴 윤찬의 눈이 풀린다.
“으아아아아아아!”
대장을 죽음으로 이끈 그는 지독한 혐오감을 이기지 못한 채 자신의 육신에 강화를 시도하였다.
번쩍!
*
벌떡!
몸을 일으켰다.
“….”
주위를 둘러본다.
오피스텔 투룸.
얼마 전 돌아온 과거 집이다.
“…쩝.”
요즘 악몽을 자주 꾼다.
아무래도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남겨 두고 온 잔재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나저나.”
자퇴를 선언하고 학교를 뛰쳐나온 지 꼬박 하루가 지났다.
학교에서 그렇게 깽판을 쳤는데 경찰과 같은 공권력의 개입이 없다는 건.
‘직접 처리하겠다는 뜻이지.’
미친 연놈들의 심장이 망가진 것까진 모를 거다.
하지만 강지은, 그년의 얼굴에 흉터가 생긴 걸 알고도 가만히 있는다?
말도 안 되지.
그 자식에 그 부모라고, 그 더러운 성격의 집안이 나를 가만히 둘 턱이 없다.
그런데도 아직 공권력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건 사설, 정확히는 뒷세계의 힘을 빌리겠다는 뜻이다.
재벌과 조폭은 마치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의 관계.
그들에게 사람 하나, 그것도 일개 고등학생인 나를 묻어 버리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뭐, 상관없지.”
하지만 이미 그에 대한 ‘대비’를 해 둔 상태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건 그거고, 일단 먹을 게….”
상념을 털었다.
당장 급한 건 쉴 새 없이 울리는 이 배꼽 시계를 꺼뜨리는 일.
과거에는 며칠을 우습게 굶어서 버틴 적도 있지만, 한창 혈기 왕성한 19살 청년의 배는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빨리 먹을 걸 입 안에 욱여넣지 않는다면 현기증으로 쓰러지고 말 것이다.
“쌀도, 라면도, 빵 부스러기 하나 없네.”
주방의 찬장을 모두 뒤져 봤으나 없다.
당연하지.
어제 내가 다 털어먹었으니까.
오랜만에 먹는 제대로 된 음식(?)에 환장한 채 싹 비워 버렸다.
아무리 요리법이 발달했어도 괴물의 사체를 이용한 요리가 맛이 있을 턱이 있나.
현대 요리의 상징인 MSG를 뿌린 지금의 음식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내 미각을 충족하기에 충분했다.
“장을 봐야겠어.”
식량 보급을 위해서 마트에 들를 수밖에.
곧장 스마트폰을 켰다.
여러 개의 아이콘, 그중 하나를 클릭하자.
『잔액 : 350,552,384』
통장의 잔액이 나왔다.
무려 3억 5천.
일개 고등학생이 만지기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하지만 금액의 크기는 내게 아무런 감흥을 줄 수 없다.
오히려 약간의 슬픔을, 잊고 있었던 예전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
식탁 위, 벽면에 걸린 액자에 보이는 건 화목한 세 가족이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
그 불행한 사고로 나는 혼자가 되었다.
3억 5천이라는 사망 보험금과 함께 말이다.
다른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보험금으로 싸우고 난리가 아니던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법정 대리인으로 지정되어 있었던 이모는 한 푼도 빼돌리는 것 없이 보험금 전부를 내 통장에 넣어 주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면 찬거리를 싸 들고 오피스텔에 놀러 오시는, 아주 좋은 분이다.
“이왕 돌려주는 거면 3년 전으로 되돌려 주지.”
그랬다면 부모님의 사고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긴, 세상이 어디 그렇게 내 마음대로 되겠냐마는.
불현듯 떠오른 감상을 털어 버린 채 밖으로 나왔다.
초겨울.
부쩍 쌀쌀해진 날씨로 인해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거리.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근처 마트로 서둘러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저벅-
주변, 내 걸음에 맞춰 이동하는 이들이 있다.
비록 일행이 아닌 척, 서로 거리를 둔 채 따라오고 있었지만.
‘이것들 봐라?’
이래 봬도 20년 넘게 전장에서 구른 백전노장이다.
그것이 미행인지, 혹은 거리를 걷는 사람인지 구분하지 못할 까.
“호-”
괜히 손에 입김을 부는 척하며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후방에 둘, 좌우로 셋.
검은 코트를 입은 건장한 사내 다섯이 미행하고 있다.
정확하진 않다.
이 나약한 몸뚱이로 적의를 감지하는 게 무딜 수 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놈이 보냈다.’
쌍둥이 남매의 부모인 강철준.
그가 자식의 복수를 위해 휘하에 있는 건달들을 동원한 게 분명하다.
칼 밥을 먹고 사는 건달 다섯 이상.
얼마 전 상대한 애송이 고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력이지만, 괜찮다.
상태는 만전.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뿐.
걸음을 빨리하며 마트가 아닌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접어든다.
철퍽.
오물과 쓰레기로 가득한 으슥한 골목길.
동네 양아치와 눈을 마주치게 될 것 같은 그곳에 서서 건달들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찰팍.
골목길의 앞뒤를 막은 여섯의 건달.
쯧.
하나는 눈치 못 챘다.
역시 감이 많이 죽은 모양이다.
“강철준이 보냈나?”
거침없는 내 물음에.
“…알고 있었나?”
누가 봐도 조폭, 얼굴에 긴 흉터가 새겨진 덩치가 답했다.
“그렇게 티 나게 따라오는데 모르면 병신이지.”
“그런데도 이곳으로 걸어 들어와? 겁대가리를 상실한 녀석이로군.”
어이가 없는지 허- 웃는다.
“그럼 순순히 따라갈 테냐?”
아마도 내가 포기했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그럴 리가.”
“그런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판단이 빠르다.
사내가 양쪽 건달들을 응시했고.
찰팍, 찰팍.
가장 건장한 건달 둘이 앞뒤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저항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팔다리 하나는 작살내도 좋다는 명령이 떨어졌으니까.”
살벌한 새끼들.
팔다리 하나는 작살내도 좋다니.
뭐가 어찌 됐든 목숨만 붙여서 오면 용납하겠다는 건데.
“글쎄. 그게 과연 너희 뜻대로 될까?”
거리가 더 가까워지기 전에 준비해 두었던 ‘그것’을 꺼냈다.
“음?”
그것을 본 건달들이 순간 움찔하며 멈춰 선다.
손에 쥔 건 검은색 글록.
물론 진짜는 아니고 비둘기 퇴치용으로 판매하는 비비탄 총이다.
“하!”
돌연 터져 나온 웃음.
“아하하하!”
“으하하하!”
어떤 놈은 허리까지 숙여 가며 꺼이꺼이 웃는다.
“꼬맹아. 고작 준비한 게 장난감이냐?”
“하, X발. 어이가 없어서.”
배때기에 칼도 꽂아 본 놈들이다.
고작해야 비비탄 총에 겁을 집어 먹진 않겠지.
“과연 그럴까?”
호선을 그리는 입가.
힘을 주어 비비탄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진짜와는 다른 얄팍한 소리.
분명 그건 장난감 총에 불과했지만.
퍽!
“끄악!”
일단의 비명과 함께 건달 하나가 바닥에 쓰러졌다.
놀라운 사실은 놈의 무릎은 파고든 비비탄으로 인해 엄지만 한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것.
“….”
“….”
너무 놀란 나머지 잠깐 동안 이어지는 정적 속.
“이거 강화 총이야, 이 개새끼야!”
의기양양한 내 음성만이 가득 울려 퍼졌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