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2
042화.
『종말, 그리고 6년 후』
카멜롯 성, 가장 깊숙한 곳.
사아아-
꽃가루를 연상케 하는 빛의 입자가 흩날리는 신비한 공간.
정면, 수천 년은 버틴 거목이 높게 솟아 있고, 여기저기 뻗은 가지와 나뭇잎이 하늘을 드리웠다.
그 거목 아래에는 오색의 빛을 반사하는 호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마침내….”
“결국, 해냈어!”
호수의 주변을 둘러싼 인파, 그들의 행색은 처참했다.
본래는 광택으로 번쩍였을 갑옷 곳곳이 찌그러지거나 찢어졌고, 그 사이로 새빨간 선혈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건 운이 좋은 거다.
팔과 다리가 잘리거나 내장이 흘러나오는 배를 움켜잡은 채 겨우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불과 조금 전, 그들은 혈투라 불릴 만한 전쟁을 치르고 이곳에 도착했다.
저벅.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가는 이.
땀으로 머리칼이 젖었음에도 찰랑이는 황금빛 머리칼이 인상적인 그는.
“대장!”
수많은 단체가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던 종말, 백의라는 강력한 세력을 일으켜 세운 윌리엄이었다.
최고라 단언할 순 없다.
그러나 최근 1년간 급성장한, 적어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세력 중 하나라 단언할 수 있다.
아니, 조금 전의 전투로 거의 세력 2개를 궤멸했으니 이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봐도 될 것이다.
지금 이들의 희생은 그 영광의 상처와 다를 바 없는 것.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부하들과 마찬가지로 형편없는 몰골의 그가 공치사를 전했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우리의 가족이, 친구가, 그리고 소중한 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뚝.
볼을 타고 흐른 한 방울의 눈물.
그건 지금 윌리엄이 전하는 말이 거짓이 아닌 진심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
“부디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들의 희생을, 그리고 우리의 목표를.”
백의는 이 지옥과 같은 종말에서 최대한 많은 생존자를 구하기 위한 단체였다.
물론 그 일을 위해선 사방에서 압박해 오는 이들에게 대항할 힘이 필요했고, 지금 이 전투는 그것을 가지기 위한 과정이었다.
“윌리엄.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윌리엄의 옆을 지키던 사내, 백의의 간부 중 하나인 신윤찬이 다급히 말했다.
분위기 잡는 건 좋지만, 아직 전쟁이 끝난 건 아니다.
“와아아아-”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육체를 강화한 그의 귀에 선명히 들리는 함성.
그건 카멜롯의 심장부를 향해 적들이 들이닥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비록 중요 전투에서 승전보를 올리긴 했으나 아직 전쟁의 승리라곤 말할 수 없다.
이 전쟁이 일어난 이유, 그리고 완전한 승리를 위해선 결과물을 얻어 내야만 했다.
“그래.”
윤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윌리엄이 정면을 보며 걸어 나갔다.
뚝.
걸음이 멈춘 곳은 호수 앞.
“….”
그곳에 멈춰선 채 지금껏 등에 메고 있던 그걸 빼냈다.
소중하게 보관한 것치고는 낡은, 그리고 녹이 슨 검집.
하지만 외형과 다르게 그건 종말로 나아가며 얻은 힌트를 통해 겨우 얻을 수 있었던 보물.
“호수의 요정에게 바칩니다.”
잠깐 검집을 바라보던 윌리엄이 망설이지 않고 검집을 호수에 던졌다.
휘익!
포물선을 그린 검집이 호수에 떨어진다.
본래라면 풍덩, 물보라를 일으키며 호수 아래에 가라앉아야 할 테지만.
스윽!
놀랍게도 호수에서 새하얀 손이 튀어나와 날아오는 검집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툭.
검집에 달라붙어 있던 세월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투투툭!
먼지와 녹이 사라지자 마침내 본래의 외형이 드러났다.
하얀, 그리고 황금색 무늬가 조화된, 어딜 봐도 평범하지 않아 보이는 검집.
「…사악한 마법사에 의해 분실되었던 보물이, 칼리번이 마침내 아발론으로 돌아왔군요.」
호수에서 흘러나온 신비한 음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호수의 요정 비비안의 것.
마지막 전투에서 상처를 입은 아서 왕을 아발론으로 데려간 두 명의 요정 중 하나.
그녀의 호의를 살 수 있는 검집 칼리번을 제물로 바쳤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선악의 마녀에게 바칩니다.”
윌리엄이 등에 메고 있던 건 칼리번만이 아니었다.
옅은 황금빛을 발현하는 검, 순백의 그것은 엑스칼리버였다.
전조와 함께 등장한 이 보물은 여러 명의 손을 거쳐 마침내 윌리엄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금껏 소중히 사용한, 중급 보구 중 하나인 그 검을 윌리엄은 아무 미련도 없이 호수에 던졌다.
스윽!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손이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새하얗지 않은, 온통 검게 물든 손이었다.
「바위에 꽂혔던 왕의 검이 아발론으로 돌아왔구나!」
뭔가 편안한 음성이었던 전과 달리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어딘가 음습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걸로 두 명.’
아발론을 지키는 요정 비비안과 모르건 르 페이에게 제물을 바쳤다.
하지만 아직 이 의식은 끝나지 않았다.
잠들어 있는 보구, 승리의 검을 얻기 위해서는 마지막 과정을 거쳐야 했다.
“윤찬.”
나란히 옆에 서 있던 윤찬을 부른다.
그의 부름에 윤찬은 준비하고 있던 검 하나를 건네주었다.
칼리번이나 엑스칼리버와 비교할 수 없는, 그냥 일반적인 검.
스윽!
그것을 손에 쥔 윌리엄은 자신의 손바닥을 그어 상처를 냈다.
뚝, 뚜욱!
손바닥을 타고 흐른 피가 호수에 떨어졌다.
고작 몇 방울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몇 방울이 일으킨 변화는 그리 간단한 게 아니었다.
스으으으-
오색 영롱한 호수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왕의 자질을 이은 이의 피가 떨어졌으니….」
「…영면에 빠진 왕을 향한 길이 열릴 것이다.」
요정과 마녀, 전혀 상반된 둘의 음성과 함께.
촤아아악!
기적과도 같이 호수의 물이 양 갈래로 갈라졌다.
홀린 듯 갈라진 길을 향해 나아가는 윌리엄.
그 끝은 거목의 뿌리였다.
그리고 그 뿌리에 기댄 채 누워 있는 금발의 미남자.
“…아서 왕.”
영원불멸한 카멜롯의 왕.
기사들의 왕이자 승리를 부르는 왕 아서.
저릿!
분명 그건 시체였다.
하지만 당장에라도 검을 들고 일어날 것처럼 맹렬한 기세가 느껴졌다.
‘강하다.’
벌써 6년째 종말을 지나오며 수많은 강자, 그리고 괴물과 마주했다.
그 선봉에 섰던 게 윌리엄이다.
하지만 지금껏 본 그 어떤 존재보다 눈앞에 있는 미남자, 아서 왕의 존재감보다 큰 건 없었다.
이미 생명이 끊어진, 시체에 불과한 존재감이 그런데 살아 있을 때의 위엄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했을까.
위대한 왕에 대한 상념은 길지 않았다.
지잉잉!
그가 품은 검이 윌리엄에게 반응하여 공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왕이 품은 검.
그것이야말로 윌리엄과 백의의 모두가 엄청난 희생을 치러가며 가지고자 했던 결과물.
“…엑스칼리버!”
조금 전 호수에 던진 엑스칼리버는 이름만 같은 복제품, 흔히 말하는 열화품에 불과했다.
진정한 승리의 검, 엑스칼리버를 얻기 위해서는 검집이 칼리번과 원탁에 숨겨 놓은 열화판 엑스칼리버, 그리고 왕의 자질을 이은 이의 피가 필요했다.
그 세 가지 조건이 갖춰졌기에 윌리엄은 진정한 엑스칼리버에 다가갈 수 있었다.
흥분으로 조금 상기된 얼굴을 한 윌리엄이 아서 왕이 품은 엑스칼리버를 집어 들려는 그 순간.
“…안 돼!”
그의 친우 윤찬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의아함을 느낀 그가 뒤로 돌아본 순간.
푸욱!
오른쪽 가슴 부근에서 피어나는 화끈한 통증을 느낄 수 있었다.
“…제이콥…?”
그는 종말이 일어나기 전부터 윌리엄의 친구였던 제이콥이었다.
아니, 그만이 아니다.
푸욱!
사브르, 그 뾰족한 검이 왼쪽 가슴을 뚫었다.
“커헉!”
두 번, 가슴을 꿰뚫는 그 공격에 윌리엄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하지만 고통보다 의문이 앞섰다.
치렁치렁한 적색 머리칼의 그녀는 윌리엄의 연인인 젬마였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윌리엄.”
“미안해. 정말, 정말 미안해.”
가슴을 찌른 두 사람이 무릎을 꿇은 윌리엄에게서 엑스칼리버를 빼앗아 뒤로 던졌다.
척!
검이 향한 곳, 그것을 낚아챈 건 음흉한 미소를 띠고 있는 사내, 백의의 간부 중 하나인 최진성이었다.
“최진성!”
분노한 윤찬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든다.
“쯔쯔. 이미 늦었어.”
평소라면 그 기세에 겁을 집어먹었을 테지만, 지금은 다르다.
화아아악!
승리를 부르는 검 엑스칼리버가 황금빛 찬란한 광채를 발하기 시작했다.
*
“빌어먹을 새끼.”
최진성.
놈을 떠올릴 때마다 이가 갈린다.
‘녀석의 훼방이 없었다면 미래가 상당히 바뀌었을 텐데.’
놈이 없었다면 백의가 흑성으로 갈라지는 일이나 엑스칼리버가 윌리엄에게 뒤늦게 들어가는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굵직한 것만 나열해서 그렇지 그 이외에도 사건 사고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그 모든 일에 최진성이 연관되어 있었다.
‘그 귀찮은 녀석이 사라졌나 했더니 왜 시커먼 달 놈들이 나오질 않나.’
종말의 최대 적 중 하나인 놈은 죽었다.
그런데 웬걸?
놈이 사라지니까 오히려 그보다 더 독한 검은달이라는 놈들이 나타났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더니.
오히려 최진성이 있던 세계가 더 낫지 않았을까.
그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빛이 보이는 입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스스스슥!
주변 사물이 빠르게 변화한다.
아주 잠깐, 그 모든 변화가 끝이 났을 때 눈앞에 펼쳐진 건 넓은 홀이었다.
대리석 기둥이 세워진 그곳의 중앙에는 거대한 원탁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원탁의 중앙을 뚫고 나온 건 거목이었다.
천장은 뚫고 나온 거목이, 그 가지와 나뭇잎이 천장을 만들고 있었다.
원탁 주변에 마련된 의자는 13개.
하지만 마련된 의자에 주인은 없다.
다만 그 자리를 대신하여 그 주인이 썼던 것으로 짐작되는 각종 무기가 놓여 있을 뿐.
한눈에 봐도 보통의 것이 아닌, 최소 중급 이상의 보구라는 걸 알 수 있는 각종 무기.
홀린 듯 다가간 곳은 원탁의 중앙, 북쪽에 마련된 자리였다.
스으으으-
은은한 황금빛 광채를 발하는 그건.
『엑스칼리버(改)
분류 : 검
등급 : 중급 보구
내구도 : 500/500
고유 효과 : 승리의 왕 효과 발현
설명 : 약속된 승리의 검. 이 검이 찬란한 황금빛을 발산하게 되면 그 전쟁은 반드시 승리한다.
-위대한 마법사의 손길이 닿아 있다-』
엑스칼리버.
하지만 그건 감정사의 눈으로 본 그 이름 옆에는 ‘改’가 표시되어 있다.
그것은 눈앞에 있는 게 위력이 약화된 복제품, 즉 열화판이라는 증거였다.
그리고 위대한 마법사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문구 또한.
‘미치광이 마법사 녀석의 작품이지.’
최진성과 마찬가지로 놈을 떠올리면 절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놈에 대한 상념을 이어 가는 사이 벌어지는 기현상.
츠츠츠!
허공에 황금빛 글씨가 새겨지고 있었다.
『자격을 증명한 자여. 그대에게 선물을 주니. 하지만 명심하라. 원탁의 방에서 가지고 갈 수 있는 건 단 하나의 무기이니. 그 이상의 욕심을 부린다면 화를 입게 될 것이다.』
13개의 무기.
하지만 원탁의 방 외부로 가지고 갈 수 있는 무기는 단 하나에 불과했다.
그것을 어기게 되면 가져갈 수 있는 하나의 무기도 사라지게 되니, 여기서 신중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아마 백이면 백 유일한 중급 보구인 엑스칼리버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 시작해 볼까?”
미치광이 마법사가 설정한 룰을 어길 수 있는 유일한 길.
지금부터 그 작업을 시작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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