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1
061화.
저벅.
단순한 움직임.
그저 걸었다.
진시황의 사각으로 스며들었다.
「무엄한!」
죽음의 기사들을 상대하고 있던, 진시황이 놀란다.
내 접근을 눈치채자마자 진천언월도를 휘두른다.
여전히 강맹한 위력이다.
하지만 소용없다.
운천필승이 작용했다.
가만히 있어도 놈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어떻게…?」
기벽이란 건 일종의 법칙을 뒤트는 힘이다.
내가 지닌 운수대통은 기존의 확률을 무시하는 정말 강력한 기벽이다.
모든 성공 확률을 두 배로 만드는 어마어마한 효과를 자랑한다.
강화사에게 있어서 정말 없어선 안 될 최강의 기벽인 셈.
그렇다면 엑스칼리버에 깃든 절대승리는 어떨까.
물론 엑스칼리버가 열화판에 불과하지만 말 그대로 무조건적인 승리를 가져다주는 사기적인 기벽인가?
아니.
아무리 기벽이라 하더라도 ‘절대적인 승리’란 건 있을 수 없다.
법칙을 뒤튼다 해도 어느 정도지, 무조건적인 승리가 가능했다면 윌리엄이 종말에서 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절대승리’는 승리를 위한 법칙을 뒤트는 것을 의미한다.
치명상을 입을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빗겨 간다거나, 목이 잘릴 위기가 팔이 잘리는 등으로 바뀌는 것이다.
즉, 승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상황을 만들게끔 작용한다.
하지만 일시적인 기벽이 내게 깃든 이상 양상이 조금 달라진다.
절대승리와 기존의 운수대통이 시너지를 내며 ‘반드시 승리하는 운수’로 바뀐 것.
운천필승.
절대승리와 운수대통이란 매우 강력한 두 개의 기벽이 합쳐진 만큼 운천필승의 효과는 남달랐다.
‘…조금 지쳤나?’
내 움직임이 느릿하게 느껴진다.
처음과는 확실히 둔해진 움직임.
그렇기에 비장의 카드, 절대승리를 발휘한 것이다.
멀쩡할 때보다 지쳤을 때, 그때 기벽이 작용할 수 있는 여건이 더 만들어지니까.
예를 들면 지금.
휘청.
잔뜩 힘을 준 진시황의 공격이 순간 균형을 잃은 채 휘청였다.
부우웅!
덕분에 가만히 있던 내 머리 위로 놈의 진천언월도가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놈의 공격을 흘린 것.
심지어 흔들린 공격의 여파로 빈틈이 허락되었다.
지금까지완 달리 기교나 과도한 힘을 들이지 않은 검이 무심히 수직으로 내리그어졌다.
서걱!
툭.
「….」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뜬 진시황의 눈.
아니, 지금은 진시황이 아니라 백기의 것이라 해야 하려나?
“놀랄 필요 있어? 어차피 네 거 아니잖아.”
바닥에 떨어진 채 펄떡거리는 팔, 그건 진시황의 것이 아닌 몽무의 것이다.
「크아아-」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괴성을 지른다.
팟-
놈이 사라졌다.
양단화의 능력인 가속을 극도로 운용하여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 순간.
사아아-
한 줄기의 미풍이 불었다.
지하에서 불어온 바람은 평소라면 느끼지 못했을, 미세한 대기의 흐름과 같았다.
살짝 몸을 옆으로 틀었다.
콰앙!
조금 전 내가 있던 자리, 그곳에 거대한 주먹이 꽂혔다.
다음에도 마찬가지다.
마치 공격의 궤적을 알려 주는 것처럼 대기의 흐름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반드시 승리하는 기벽, 운천필승의 힘이었다.
주변의 모든 상황이 내 승리를 위해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한다.
마치 온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
‘이 순간은 짧다.’
엑스칼리버에 깃든 절대승리는 지속시간이 매우 짧다.
그 말인즉 이 기분 좋은 전투를 더 즐길 새 없이 빠르게 승부를 내야 한다는 말이다.
「감히! 죽어라!」
저주를 퍼부으며 주먹을 뻗는다.
강맹한 위력이 담긴 주먹이 대기를 가로질러 안면을 향했지만.
“….”
피하지 않았다.
겁을 먹는 순간 기벽의 작용이 약해진다.
그렇기에 승리한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기적을 낳았다.
미끌.
팔이 잘려 뿜어진 피, 바닥에 흥건한 피에 의해 놈이 미끄러졌다.
비스듬하게 쓰러지는 놈에게.
서걱!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으으악!」
오른팔에 이어 왼팔마저 잘렸다.
툭!
피가 가득한 웅덩이에 팔이 떨어지면서 핏방울이 튀었다.
「윽!」
피 웅덩이를 인지하지 못했던 진시황의 눈에 튀긴 핏방울이 들어갔다.
아주 잠깐, 시야가 걷혔다.
‘지금!’
기벽이 만든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최대한의 힘으로 지면을 박차 순식간에 거릴 좁혔다.
슬라이딩하듯 미끄러지며 놈의 하단으로 검을 휘둘렀다.
스윽!
일격에 양단화의 다리, 가속이라는 능력을 지닌 다리가 분리되었다.
괴력과 기동성, 두 가지를 잃은 놈에게 남은 건 활용할 수 없는 두뇌뿐이다.
「이놈, 이노옴-」
분한 듯 고성을 질러 대지만, 이미 놈은 팔과 다리를 잃었다.
힘을 잃은 놈의 머리를 날려 버리는 건 무척 쉬운 일이다.
「으아아악!」
팔, 다리, 그리고 머리까지.
하지만 진시황의 목숨이 끊어지진 않았다.
어차피 잘린 신체는 그의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대장군들의 것.
놈의 진짜 육신은 멀쩡하다.
그 증거로 자세히 살펴보면 잘려 나간 자리에 갓난아기의 것과 같은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자라나면 다시금 접신을 발휘하여 괴물로 부활할 것이다.
“뭐해? 안 죽여?”
빨리 죽이지 않으면 다시금 부활할 것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영웅이 물었다.
“조금만.”
때가 오지 않았다.
놈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시간이 이대로 흐른다면 진시황은 대장군들의 신체와 접신하여 다시금 괴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겐, 우리에겐 그것을 감당할 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꾸물꾸물.
발버둥 치는 진시황의 팔과 다리가 급속도로 자라나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을 때.
스르르-
마침내 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붉은 연기와 같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형태와 움직임.
이제 금방이다.
선택의 순간.
“어딜!”
손을 뻗었다.
진시황의 콧속으로 빨려 들어가려던 놈을 손에 쥐자.
「컥, 커컥!」
희미했던 붉은 안개가 뚜렷하게 뭉쳐지며, 하나의 완전한 형상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스팟!
이상한 띠의 검을 움직여, 진시황의 머리를 베었다.
툭, 데구르르-
한 차례 허공에 뜬 머리가 지면을 구른다.
진시황의 완전한 죽음.
하지만 그것에 신경 쓸 새가 없다.
“쥐새끼 같은 녀석이 어딜!”
손에 잡혀 버둥거리는 놈을 노려본다.
붉은 안개는 아까 자취를 감췄던 창평군이었다.
‘아니.’
퍼억!
검병으로 놈의 얼굴을 가격했다.
그러자.
츠츠츠!
선비풍의 미남자였던 그의 날카로운 얼굴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인중 주변에 난 염소수염, 떴는지 감았는지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뱀눈에 매부리코.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게 됐다. 그렇지, 서복?”
놈의 진짜 이름을 말한 순간.
「네, 네 녀석이. 어떻게!」
뱀눈이 개안하며 붉은 눈동자를 드러낸다.
서복 혹은 서불이라 불리는 이.
역사에서는 진시황을 속여 삼천 명의 동남동녀와 뛰어난 장인들과 수많은 보물을 빼돌린 희대의 사기꾼으로 소개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성군이었던 진시황을 조종하여 폭군으로 만들었고 불로불사에 집착하게 하여 끔찍한 실험체로 만든 사악한 연단술사.
사실상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있는 흑막이었다.
*
『종말, 그리고 12년 후』
「짐이, 짐이 이런 무뢰배들에게….」
불멸의 황궁.
그곳의 옥좌를 지키던 진시황은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를 잃은 채 버둥거렸다.
“드디어….”
“드디어!”
윌리엄과 윤찬, 그리고 주위의 동료들.
드디어 해냈다는 환희에 젖은 그들은 그간의 피로를 싹 잊을 수 있었다.
진시황의 무덤, 불멸의 황궁.
막대한 보물이 묻힌 그 장소가 강호, 정확히는 천마에 의해 발견되면서 종말의 모든 세력이 모여들었다.
보구는 곧 힘.
특히 진시황이라 하면 중국을 통일했던 역사적인 인물.
그렇기에 그의 창고에 엄청난 양의 고대 보물, 보구가 가득 차 있을 거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그중 가장 활약한 세력은 두 곳이었다.
백의와 강호.
오강에 속하는 이 거대한 세력은 불멸의 황궁에서 정면으로 부딪쳤고, 그로 인해 엄청난 희생이 발생했다.
하지만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서로 목적이 다른 두 세력은 보물을 양보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생사를 건 결투의 끝, 마침내 승리한 건 백의였다.
강존 신윤찬이 천마를 물리쳤고, 수장을 잃은 강호는 지리멸렬하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진시황과 휘하의 대장군이라는 엄청난 강적이 남아 있었고, 그들과의 전투를 이어 가야 했다.
과연,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황제답게 진시황과 휘하의 장수들은 강했다.
종말 초반에 발견했다면 훨씬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벌써 12년이 흘렀고, 종말의 에너지를 흡수한 고대의 존재들은 매우 강력해져 있었다.
검성 윌리엄, 강존 신윤찬, 독마 리우옌, 그리고 이번 황궁 사태와 함께 합류한 현자까지.
그들은 힘을 합쳐 진시황이라는 거대한 적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대망의 순간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윌리엄.”
지친 기색이 역력한 동료들이 윌리엄을 응시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현재 백의를 이끌고 있는 건 그였다.
당연히 마지막을 장식할 이도 그여야만 했다.
“…그래.”
애초에 망설이고 있을 시간이 없다.
접신으로 퇴화했던 육신이 복구되고 있었고, 더 늦기 전에 끝을 맺어야 했다.
“죽어라, 탐욕의 왕!”
「아, 안 돼!」
죽음을 피하려 불로초를 찾아다녔던, 탐욕의 왕이 빽 소릴 질렀지만.
서걱.
황금빛 엑스칼리버는 정확히 진시황의 머리를 베고 지나갔다.
툭.
떨어진 머리, 충혈되고 부릅뜬 눈이 윌리엄을 한 차례 응시했다.
“끝이….”
엑스칼리버를 위로 치켜들며 승리에 취하던 그 순간.
“빌어먹을, 함정이야!”
균열이 간 단안경을 쓴 현자가 소리쳤다.
함정?
의문에 빠진 이들이 현자를 응시할 때였다.
스으으으-
인지하지도 못했다.
진시황의 잘린 머리, 그 틈새로 스며든 붉은 기운.
꿈틀.
죽어 버린 진시황의 손가락이 꿈틀댄다.
“얼른 놈을, 진시황을 죽여!”
현자의 다급한 외침.
그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윤찬이었다.
“하압!”
손에 쥔 용연(龍淵), 불멸의 황궁에서 얻은 보구를 휘둘렀다.
그러나.
카앙!
진시황 주변에 펼쳐진 붉은 안개에 튕겨 나갈 뿐이었다.
「으하하하하! 드디어, 드디어 이 빌어먹을 황제의 육신을 차지했구나!」
쑤욱!
잘린 머리가 자라났다.
하지만 그건 더는 진시황이라 부를 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염소수염과 뱀눈, 매부리코를 지닌 자는 서복이란 자였다.
「오랜 인내였다. 마침내 연단으로 완성한 육신을 차지했으니, 나야말로 불로불사의 신선이니라!」
진시황을 뒤에서 조종하여 그를 타락하게 만든 연단술사.
그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완성한 연단은 약의 형태가 아니라 진시황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보상을 얻었으니.
『마선(魔仙)』
그는 그토록 꿈꾸었던 신선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물론 불완전했다.
오랜 깨달음과 성찰을 통한 것이 아닌, 인위적인 연단술을 통해 강제로 완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신선의 기준에서 불완전한 것.
콰콰콰콰콰콰콰!
서복이 내뿜은 기운이 폭풍처럼 장내를 휩쓸었다.
“미친!”
“마, 맙소사!”
장내에 있는 이들은 나름 종말에서 구를 때로 구른, 한가락 하는 이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 그들이 기겁할 정도의 기세라니.
이런 힘은 생전 처음 겪는 것이었다.
「고맙다. 너희 덕분에 마침내 숙원을 이뤘으니.」
붉게 물든 서복의 눈이 윌리엄, 그리고 남아 있는 백의를 향한다.
「그 대가로….」
딱!
손가락을 튕기자.
쿠쿠쿠쿠쿠쿵!
천장에서부터 떨어지는 붉은 구체.
「…고통 없는 죽음을 선사해 주마.」
엄청난 열기를 품은 구체는 마치 태양을 옮겨 놓은 것만 같았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