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4
074화.
‘이게 진정한 매화검법?’
내면 깊숙한 곳, 검마에게 육체를 허락한 윌리엄이었지만, 시야는 공유하는 상태였기에 그 검법을 보다 선명히 견식할 수 있었다.
그건 신세계였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처음 본 건 아니지만(그것을 펼친 왕레이와 화산 각성자들에겐 미안하지만) 이건 수준이 달랐다.
수십 송이 피워 내는 매화는 물론 장내에 진동하는 매화향까지.
‘경지에 이른 자만이 구현할 수 있는 향.’
솔직히 그게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왜 그런 말 있지 않은가.
일검으로 태산을 갈랐다는 등의 전설과 같은.
매화향을 구현하는 것 또한 그것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경지가, 전설로 치부한 그 절정의 경지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물론 육체의 한계로 인해 천지 사방에 진동하는 매화향과 꽃잎을 구현하진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검로가 아예 다르다.’
검왕의 재능을 지닌 그였기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검마가 펼치는 검법은 일전에 보았던 왕레이의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임을.
그리고 그건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그 움직임을 정밀하게 관찰하여 검식을 복사한다.
스윽, 슥.
내면 깊숙한 곳에서 그는 머릿속에 그린 검로를 구현하며 처음으로 찾아온 깨달음의 영역을 풀어내고 있었다.
*
「우어어어어!」
목이 잘린 거인이 괴성을 토해 낸다.
「하아! 나 못해, 안 해!」
지친 부인이 파업을 선언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손 하나 까닥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목을 붙일 수 없다.
그렇기에 거인은 부인의 도움 없이 홀로 싸움을 이끌어야만 하는 상태였다.
“오는가?”
쿵쿵대며 다가오는 거인을 빤히 바라보는 검마 무명.
3m가 넘는 신장의 거인이 쿵쿵대며 달려오는 그 광경은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으나 그에게선 묘한 여유가 느껴졌다.
“모처럼의 기회이니 잘 봐 두게.”
빙의라는 능력으로 그가 현세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잠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으로도 족하다.
짐승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기며, 검사는 자신의 검을 남기는 법이니까.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
제삼초식
매화토염(梅花吐艶 : 매화가 염기를 뱉어낸다)』
춤을 추는 듯한 동작.
그것은 검법이라기보다는 검무(劍舞)에 가까웠다.
지이잉-
그가 피워낸 궤적에 피어나는 수십 송이의 매화꽃 붉은, 흡사 아지랑이와 같은 기운을 만들었다.
서걱!
예외 없이 그 기운은 거인의 8개 머리 중 하나를 잘라냈다.
「크와아아악!」
머리를 잃은 그의 인격이 다시금 바뀌었다.
폭주.
이성을 잃은, 그야말로 한 마리 짐승이 된 거인의 무기는 대검이 되었다.
검이라기보단 몽둥이에 가까운 그 검을 휘두른다.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
제사초식
매개이도(梅開利導 : 매화가 피어나 날카롭게 이끈다)』
한 송이 거대한 매화가 전면에 피어났다.
쾅!
그것이 거인의 대검으로부터 무명을 보호했다.
그리고.
스스스-
충격에 의해 흩어지는 매화.
그 꽃잎이 사방으로 날리며.
팟!
폭주라는 인격을 지닌 거인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그렇게 후학을 위한 무명의 공세가 계속 펼쳐졌다.
그가 펼친 건 이십사수매화검법.
본래는 오랜 시간 특성을 갈고 닦은 화산의 각성자들, 매화검수라는 직위에 오를 정도가 되어야 발현할 수 있는 23초식의 검식이 발현되었다.
「으어어.」
어느새 1m 정도로 쪼그라든 거인.
아니, 이제 거인이라 부를 수 없는 꼬맹이가 담아둔 공포를 토해 내며 몸을 돌린다.
도주.
파앗!
그 속도는 쾌속하여 눈 깜짝할 사이 녀석이 부인을 짊어진 채 먼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대로 녀석을 놓치게 된다면 당장 고대의 파편을 얻지 못하는 건 물론 다시금 9개의 머리를 가진 채 부활하게 될 것이다.
“….”
무명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리고.
팟!
마침내 손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손은 매화 가지를 만들었고, 그곳에서 매화를 피워 냈다.
하지만 검광이 번쩍였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다만.
“흐읍!”
예일은 보고야 말았다.
솨아아-
동굴의 양옆, 그곳을 장식한 수많은 매화나무를.
사실 그건 환상이었다.
검식과 함께 구현된 엄청난 매화향이 만든 실제와 같은 환상.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
제이십사초식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 매화의 향은 만리를 간다)』
어디든 매화나무가, 매화 향이 퍼지지 않은 곳이 없다.
그것은 멀찍이 도망가는 거인과 그 부인에게도 마찬가지.
「….」
신나게 도주하던 거인의 움직임이 멎었다.
쩌억.
그의 육신이 갈라진다.
쩌적, 쩌저적!
수백, 수천, 수만 갈래로 갈라진 그 육신은.
파앗!
매화 꽃잎이 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아악! 남편!」
계속 윽박만 질러 대던 거인의 부인이 경악하며 울부짖는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
이십사초식을 모두 펼친 무명이 검을 아래로 떨구었다.
본래는 조금 더 빙의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매화만리향이라는 절정의 공부를 펼쳐 그 시간을 앞당기고 말았다.
“잘 보았는가?”
내면을 향한 물음.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대의 재능이라면 굳이 물을 필요도 없을 테지.”
검왕.
그 재능은 파악한 무명이 웃었다.
“이것으로 화산에 지은 죄가 조금이라도 옅어지기를 바랄 뿐.”
그가 원한 건 검의 재능을 지닌 이에게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전수하는 것.
그로 인해 과거에 지었던 죄를 조금이나마 뉘우치는 것이었다.
그래. 그것이면 되었다.
“사형….”
그리운 그 한마디를 전한 무명의 존재가, 그 기운이.
스스스스.
다시금 공포로 스며들었다.
“허억!”
빙의가 끝난 그 순간, 내면에 숨어 있던 윌리엄의 존재가 다시금 육신을 차지했다.
“끄으응-”
곧바로 튀어나오는 신음성.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무명의 검법은 현재 그의 육신 상태로 펼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계 이상을 끌어다 썼기에 온몸이 쑤시다 못해 금방이라도 쓰러질 지경이다.
슬쩍 뒤를 바라보았다.
“하아, 하아-”
예일의 도움을 바라긴 힘들다.
거인의 죽음과 함께 그대로 주저앉은 그녀는 모든 기력과 체력을 소진한 상태였다.
별수 없이.
으득!
공진단을 비롯한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신체의 회복을 도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명이라는 검마가 펼친 검법의 환상에선 진즉 벗어났다.
지금 중요한 건 잡힐지 잡히지 않을지 모를 환상이 아니라 당장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저벅.
가누기 힘든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악!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거인의 죽음에 불평을 터뜨리고 있던 부인.
그녀가 허리춤에 달고 있던 검을 꺼내 윌리엄을 위협했다.
그러나.
퍽!
「꺅!」
풀칠 말고는 별다른 능력이 없기에 간단한 손짓으로 무장을 해제할 수 있었다.
「사, 살려줘. 나는 이용당했을 뿐이야. 이 멍청이 거인이 협박을 해서 그만.」
조금 전까지 의기양양하던 모습은 없다.
무릎을 꿇고 손발을 싹싹 비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가엾은 연기를 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미안. 그럴 수 없다.”
「이익!」
사정을 봐주지 않는단 사실을 알게 된 부인이 감춰 두고 있던 은장도를 꺼내어 달려들었다.
자칫 방심했다면 위험할 수 있는 기습이지만.
스윽!
이미 그에 대해 대비하고 있었던 윌리엄은 그대로 목을 그어 버렸다.
「끄윽….」
숨넘어가는 비명.
툭, 데구르르-
육신과 분리된 머리가 지면을 굴렀다.
원한과 원망으로 점철된 눈빛.
하지만 그 눈빛은 금방 사라졌다.
스스스.
실재하지 않았던, 고대의 파편으로 인해 만들어진 환상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모든 환상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 있는 건.
“찾았다!”
윌리엄과 예일이 이곳에 온 목적, 고대의 파편이었다.
『相』
상.
윤찬이 말했던 그것을 마침내 얻게 되는 순간이었다.
*
세 번째 전조 이후, 며칠간 헤어져 있었던 일행이 마침내 한곳에 모였다.
“다들 임무는 완수했겠죠?”
곧장 본론부터 꺼낸 내 물음에.
척척척.
아무런 말 없이 준비해 온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들이 올려놓은 건 고대의 파편.
『相』
『對』
윌리엄과 예일이 상을, 정도환이 대를 얻었다.
‘이것으로 하나 완성.’
내가 가지고 있는 2개의 파편을 합치면 목표로 했던 하나의 기벽을 완성한 셈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다시금 테이블 위를 응시해 나머지 고대 파편을 바라봤다.
『一』
『路』
『精』
『進』
영웅이 일을, 강회장이 로를, 리우옌이 정과 진을 얻어왔다.
‘확실히 지금은 리우옌이 강해.’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는데도, 리우옌은 다른 이들이 하나를 얻어 올 때 무려 2개의 고대 파편을 얻는 성과를 드러냈다.
무형지독을 먹여가며 키운 보람이 있다고 할까.
‘하긴 초반에 독마를 막을 만한 방법이 없긴 하지.’
중후반에야 제대로 된 독 저항력을 갖추기 시작하므로 지금 리우옌의 상대가 될 만한 이는 손에 꼽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나를 제외하곤 홀로 특성의 진화를 두 번 얻었으니 혼자 치고 나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아주 성과가 없는 건 아니지.’
민석을 쓰러뜨려 두려움을 극복한 영웅.
그리고 들어 보니 윌리엄 또한 기연을 얻어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제대로 익힌 것 같다.
힘과 기교, 그리고 화려한 변화마저 갖춘 그 검법을 제대로 익힌다면 당분간 윌리엄의 적수가 될 만한 이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아직 녀석들의 성장은 끝나지 않았다.
배낭 안에 소중히 넣어 두었던 2개의 고대 파편을 꺼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올려둔 파편 중 2개, 상과 대를 따로 분류했다.
내가 있던 파편과 2개의 파편을 합치면.
『괄목상대(刮目相對)』
하나의 기벽이 완성되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는 뜻을 지닌 이것은 성장 속도를 비약적으로 촉진하는 기벽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동료들이 구해 온 4개의 파편을 합쳤다.
『일로정진(一路精進)』
한 가지 일에 한하여 엄청난 성장 효과를 나타내는 기벽.
“영웅, 그리고 윌리엄.”
그리고 그것은 영웅과 윌리엄에게 돌아갈 것이었다.
“이걸… 어떻게?”
사용 방법을 물어보는 영웅.
“그냥 손에 쥐고 그것을 흡수하겠다고 생각해 봐.”
“흡수?”
“그래. 빨아들인다는 느낌으로?”
대략적으로 기벽을 얻을 방법을 설명해 주었고, 둘 다 완성된 파편을 손에 쥔 채로 그것을 흡수하였다.
뭐, 대단한 현상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완성된 고대 파편이 미미한 빛을 발하였고, 잠시 후에 사라졌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것이 일으킬 변화라는 건 결코 간단한 게 아니었다.
‘대기만성의 결과를 빠르게 앞당겨 줄 괄목상대.’
영웅의 유일한 단점이라 한다면 그것이 완성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괄목상대라는 기벽으로 인해 그 시일을 훨씬 앞당길 수 있게 되었다.
윌리엄은 어떤가.
검왕이라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녀석에게 일로정진, 한 가지 길에 몰두할 수 있는 기벽을 선사하여 검에 귀재로 만들었다.
‘회귀 전에도 그 뛰어난 실력과 성장으로 최후의 생존자 중 하나였는데, 이번에는 어떨까?’
당시에는 얻지 못했던 기벽.
하지만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들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최고의 기벽을 선물했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다.
앞으로 시작될 경기.
‘거기에 모든 걸 건다.’
다시는 오지 않을 유일한 기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 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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