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finite Enchanter’s Journal of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8
078화.
바포메트.
사바트의 염소라는 이명을 지닌 초월적 존재.
놈을 확인한 순간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모두 뒤돌아 서!”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녀석과 눈을 마주치면, 적의를 읽히게 되면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명령.
여기서 만약 내가 그들의 신뢰를 얻은 이가 아니었다면, 손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휙.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 모두가 등을 돌려 바포메트를 뒤로했다.
됐다.
이것으로 최악의 경우는 피했다.
하지만 안심할 순 없다.
최악은 피했어도.
「음메에-」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직 바포메트의 음성이 염소의 울음처럼 들린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아직 놈과 대화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어쩌면 대화할 생각이 없는지도 모르지.’
워낙 제멋대로인 존재이기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히 나로서도 파악할 수 없다.
재수 없으면.
‘여기서 그냥 죽을 수도 있다.’
손아귀가 땀으로 흥건하다.
회귀한 이후 긴장해 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가장 긴장한 때라면 진시황과 서복을 잡을 때.
그나마 가장 긴장한 때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여유는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뭐랄까.
낭떠러지에 서 있는 듯하다.
조금만 발을 삐끗하면 그대로 떨어지는 낭떠러지.
그만큼 바포메트란 존재는 지금의 내게, 그리고 인류가 감당하기 힘든 존재였다.
그 증거로.
고오오오오!
녀석이 내뿜는 압도적인 기세에 몸이 자꾸만 움츠러든다.
진짜 살벌하다, 살벌해.
종말을 18년 겪은 당시의 나도 저 기세에 압도될 정도였다.
하물며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나약한 상태, 몸이 굳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태연한 척했다.
그 모든 기세를 담담하게 받아 내는 척, 억지로 흘려보냈다.
그럴 수밖에.
내가 여기서 긴장한 티를, 그리고 적의를 보였다간 놈이 손에 쥔 해골 지팡이가 곧바로 정수리를 쪼갤 테니까.
최대한 담담하게.
그리고 정중하게.
「사바트의 염소를 뵙습니다.」
일부 이들만이 아는 신어를 구사했다.
물론 내가 아는 게 아니다.
현자, 세상의 모든 것을 통달한 녀석의 정보가 신어를 구사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
바포메트의 검은 눈이 내게 향한다.
당장에라도 머리를 쪼갤 듯한 해골 지팡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신어가 일으킨 유의미한 변화다.
만약 신어가 아니라 놈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인간의 언어로 지껄였다면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쿵!
무릎을 꿇었다.
신격이라 불리는 것들은 그렇지 않은 척해도 신앙을 중시한다.
그렇기에 나는 놈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와 존중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고개를 깊숙이 조아리며 양손을 하늘 위로 떠받드는, 경건한 자세를 취했다.
회귀 전의 기억, 율리우스의 행동을 모방한 것이다.
‘지금의 내가, 우리는 놈을 상대할 수 없다.’
나름 최적의 인재를 모았지만, 바포메트를 상대할 순 없다.
아니, 설혹 상대할 수 있다고 해도 상대해선 안 된다.
정확히는 지금 당장 상대할 순 없다.
왜?
놈은 악마가 아니다.
더더욱이 괴물도 아니다.
놈은 초월자, 그중에서도 신격에 다가선 존재.
굳이 중립의 존재를 건드려 적을 더 만드는 건 지금 상황에선 최악의 수다.
건드리더라도 그 일을 진행한 이후여야만 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최대한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는 것.
「….」
그런데 반응이 없다.
‘설마?’
실패인가?
신마전쟁도 아니고, 이곳에 나타난 바포메트는 무언가 다른 건가?
숱하게 위기를 겪어 봤지만,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을 정도의 위기감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영겁과 같은 짧은 시간이 지나고.
「음메-」
염소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제길!’
의사를 전달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이 의식이 실패했다는 것을….
「신어를 사용하는 인간이라.」
…뜻하지 않았다.
놈이 신어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나의 이명을 들먹이는 자여.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먹혔다.
바포메트는 나와의 대화를 요구했다.
‘늦지 않았구나!’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일행이 등을 돌리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누군가 바포메트를 괴물로 인식했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놈은 자신을 괴물로 인식하는 모든 존재를 멸하는 주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격이었다가 악마로 전락한 존재의 열등감 때문이지.’
과거 그는 엄연한 하나의 신격이었다.
하지만 다른 신격에 의해, 그리고 후세에 전하는 잘못된 역사로 인해 악마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 보이는 외형 또한 본래 형체가 없는 신격에 ‘언어’의 힘이 더해져 만들어진 것.
그와 적대적인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외면에 속지 않는 언행이 필요했다.
‘그나마 고비는 넘긴 건가.’
바포메트와의 대화로 최악의 경우는 피했다.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칫 수틀리면 언제든 그 막강한 힘과 권능을 이용하여 내 목을 비틀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착각하곤 한다.
신, 신격이라 불리는 존재는 선한 존재라고.
하지만 그건 잘못된 인간의 상식일 뿐이다.
그들은 철저한 중립,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인간을 죽이면 나쁜, 악신(惡神)이다?
개소리.
우리가 지나다니는 벌레를 가볍게 짓이겨 죽이듯, 그들 또한 인간을 벌레로 여긴다.
귀찮게 하면 언제든 밟아 죽일 수 있는 그런 하등한 존재 말이다.
그렇기에 신격을 대할 때는 조심성이 필요하다.
최대한 그들의 심사를 건드리지 않는, 그들의 가치관에 반하는 행동을 해선 안 되는 것.
“….”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정면, 까맣게 물든 염소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
마치 내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통찰의 시선.
「재밌군.」
바포메트가 웃었다.
「뭔가 거슬린다고 했더니, 법칙을 뒤틀었을 줄이야.」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빤하다.
‘내가 회귀한 것을 알고 있다.’
회귀의 돌을 통해 법칙을 뒤틀었다는 걸 곧바로 파악한 듯하다.
과연 신격.
삼라만상을 꿰뚫어 보는 그 눈을 피할 순 없다.
「….」
잠깐 당황해 침묵을 지켰다.
「상관없다. 아니, 관심이 없다고 해야 하나? 네가 무슨 목적을 위해 법칙을 뒤틀었고, 또한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다.」
「…예.」
「네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필시 저곳에 있는 문을 봉인하기 위함일 터.」
「그렇습니다.」
맞다.
이곳에 온 목적 중에는 카타콤 깊숙한 곳에 열린 지옥문을 봉인하는 게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그게 조금 바뀔 수 있고, 온전한 목적은 아니었지만, 일단 거짓말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잘됐군. 인간.」
「네.」
「나는 이 세계의 균형을 위하여 이곳에 소환되었다」
균형을 위한 소환.
그 말이 마냥 틀린 건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고.’
내가 녀석을 속였듯 바포메트 또한 내게 일정 이상의 진실을 말해 주지 않고 있다.
물론 균형을 위해 소환됐다는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건 아니다.
너무도 빠르게 진행된 두 번째 전조로 인해 지옥문이 꽤 열렸을 테고, 그곳에서 어떤 강력한 존재가 나타났겠지.
그리고 이 균형의 붕괴를 막기 위해 파견된 것이 바포메트였다.
놈은 그 강력한 존재의 힘을 희석하기 위해 나타났고,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하려는 중이다.
신어, 그리고 자신을 괴물로 인식하지 않는 나를 통해서 말이다.
「지옥문을 비집고 나온 존재는 지금의 너희가 감당할 수 없는 매우 강력한 존재. 그러니 나를 도와라.」
「어떻게 도우면 되겠습니까?」
다른 목적이 있긴 하지만, 일단은 지옥문에 가는 게 먼저다.
물론 그것도 쉽지는 않다.
지옥문에서 빠져나온 각종 악마가 카타콤 내부에 진을 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협력이 필요하다.
바포메트라는 아주 강력한(물론 아직 그 힘을 전부 발휘할 순 없을 테지만) 신격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지옥문에 다가가는 게 한층 쉬울 테니까.
「간단하다.」
믿지 않습니다.
내가 종말을 20년 동안 종말을 경험하며 느낀 건 ‘간단하다’라고 말한 것치고 간단한 게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바포메트라는 이 강력한 신격이 간단하다고 말하는 게 과연 인간인 우리에게도 간단한 일일까?
‘어림없지.’
아마 지금의 나나 우리가 가당하기 힘든 시련일 게 분명하다.
그렇기에 안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임무의 난이도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대로.
「나는 지옥문을 봉인할 주문을 완성해야 한다. 그 주문은 상당히 오랜 시간과 집중이 필요한 것. 그러나 이곳에는 이미 지옥문을 빠져나온 악마들이 다수 존재하니.」
이거, 대충 예감이 온다.
「인간, 네가 그리고 너희가 해야 할 일은 그 악마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이다. 그리하면 대악마가 빠져나오기 전, 지옥문을 봉인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바뀌었다.
내가 알고 있는, 현자가 전해 준 정보에 카타콤의 클리어 조건은 지옥문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봉인이었다.
이곳 지하 미로 어딘가에 감춰진 성유물(聖遺物)을 찾아 그것을 지옥문에 던져 일시적인 봉인을 유지하는 것.
애초에 바포메트라는 신격은 포함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바뀌었다.
‘빠르게 시작된 두 번째 전조로 인해 실종된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로 인해 지옥문이 열리는 시간이 단축된 건가?’
이곳에 오기 전 소식을 들었다.
이미 꽤 많은 사람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실종된 이들은 지옥문을 열기 위한 피의 제물이 되었을 테고, 그로 인해 회귀 전과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대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조건이 마련되었고, 파괴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바포메트가 파견되었다.
이번 임무는 그가 지옥문을 닫을 수 있는 주문을 완성하는 동안 그 힘에 이끌려 접근하는 악마들을 처리하는 것.
「그래서, 인간. 네 대답은?」
심연을 담긴 바포메트의 검은 눈동자가 번뜩인다.
「당연히… 하겠습니다. 대악마가 나타난다면 이 세계에 큰 혼란이 찾아올 게 빤하니 말입니다.」
「실로 현명하구나. 그렇다 인간. 이곳에 나타난 지옥문의 규모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거대한 것. 그것을 막지 못한다며 이 세계에 엄청난 재앙이 강림하게 될지니.」
솔직히 그곳에서 누가 나올진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바포메트가 이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라면 기대해도 될 것 같은데.’
강력한 존재가 나올수록 내게는 이득이다.
「기꺼이 이 신성한 임무를 맡겠습니다.」
그리고 그 속내를 속이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론 신성한 임무라며 추켜세우는 양념 한 숟갈도 잊지 않았다.
신격들이 은근히 허당인 경우도 있어서 이렇게 아부 좀 해 주면 또 좋아 죽거든.
「훌륭하구나!」
효과는… 굉장했다.
제안을 수락한 것보다 신성한 임무라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던 듯 입가에 지은 웃음이 더욱더 진해졌다.
하지만 놈은 모를 거다.
녀석의 웃음이 진해질수록 내 입꼬리 또한 올라간다는 사실을.
x